Sortie 024 - 지니아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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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사흘간 매일매일, 하루에 세번씩 찾아가보았지만 테스텔 힐셔 준위는 매번 내가 갈때 마다 없어졌다. 분명 카를로스 상사에게 지금 있다고 미리 전화를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덕분에 지난 사흘간 나는 초계활동에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 필그림 같았다면 그냥 전투기를 돌려서 쓰겠지만, 에르데 제국의 문화상 항공 기사의 전투기는 황제라도 함부로 뺏어 쓸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이기 때문에 일개 항공 기사에 불과한 내게 그런 권한은 없었다. 각자의 기체는 그 항공 기사 본인만의 특별한 애인 비슷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하지만 창민아, 고작 그런 이유로 3일이나 초계를 빠진다는게 말이 돼? 너 하나 없으니까 우리가 커버해야할 범위만 늘어났다고.”
나탈리의 핀잔 섞인 말투였지만 사실 내가 할 말은 없다. 그건 사실이니까.
“그 힐셔 준위라는 자, 제가 소환할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1기사의 호출에 응하지 않는다는건 정말이지 무례한 일이네요.”
그리고 웬지 모르게 화가 나있는 사냐 공주. 힐셔 준위가 나를 무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억측을 하는건 조금 빠른 것 같지만.
“다시 한번 가보지, 뭐.”
어차피 가보지 않으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나는 다시 초계를 위해 나가는 나탈리와 사냐 공주, 에리카 소령을 배웅하고 바로 정비소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쩝. 은근히 부럽다. 누구는 지금 3일이나 비행하지 못해서 몸에 안달이 날 지경인데, 누구는 너무 오래 비행한다고 투덜거리다니…… 내가 나탈리였으면 좋아라 했을텐데 말이야.
“아차……”
전화하는걸 깜빡했다. 어디긴 어디야, 정비소대지. 미리 통보하고 가는게 예의 일 것 같아서 지금까지 계속 미리 전화를 하고 갔는데…… 뭐 상관 없으려나? 사실 전화하려면 관제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귀찮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휴대용 전신기 같은게 있을 리는 만무하고 말이지. 그냥 가자. 별일 있겠어, 설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비소대 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소대 본부 텐트로 향했다. 하도 와서 이제는 다들 익숙한 눈치인지 내게 가볍게 목례만 올리는 정비대원들에게 나도 가벼운 눈인사로만 답하고 텐트 앞으로 다가갔다.
후…..
왜인지는 모르지만 긴장된다. 많이 와봤는데, 처음도 아닌데, 어째서? 아마 텐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때문일거다.
“……면 안됩니다, 준위님.”
“알아요, 나도.”
카를로스 상사에 이어 엣되보이는 고운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아시면 좀 실천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까지 저희가 그렇게 뒤를 봐드려야만 합니까?”
“그분께서 그만 둘 때까지요.”
그분?
“상사도 알잖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제 1 기사 각하께서는 그런걸 따지실 분이 아닙니다. 저희 같은 천민 나부랭이들과도 손을 잡고 격려까지 해주신 분입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카를로스 상사의 말이 내 낯을 간지럽게 한다. 그건 그렇고 굉장히 심각한 자기 비하들이네. 천민 나부랭이라니……
“그분은 분명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만나보세요. 이렇게 매일 찾아오시는데도 기다리게하는건 예의가 아닙니다!”
“안돼요.”
딱 잘라말하는 목소리.
“그분은 공주 전하의 제 1기사. 저 같은 평민이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집어치우고 일이나 시작하세요, 상사.”
“준위님!”
“다 끝나면 저한테 보고하고, 제 1기사님께 연락 오면 내게 알려주는 것도 잊지 말고요.”
저벅 저벅. 발걸음이 들리고는 이어 활짝, 텐트 입구가 열린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열어졎혀진 텐트 입구에 서있던 것은 얼굴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은 소녀였다. 어깨까지 내려온 진주빛의 긴 은발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이고, 녹색 눈동자가 나를 보고는 놀란 듯이 커진다. 작은 입술이 빼꼼 열리려는 찰나, 카를로스 상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먼저 내게 들린다.
“가….각하?!”
“아….미안해요. 내가 방해 했나?”
내 앞의 아가씨는 나를 보곤 무슨 메두사를 본 인간 처럼 굳은 채 벌벌 떨고 있다. 오히려 반응을 보이는 것은 카를로스 상사…… 내가 뭘 잘못했나? 왜들 그렇게 당황하는 눈치지? 아, 혹시 방금 전의 그 대화 때문에?
“아아아아닙니다, 각하. 오실줄 미리 알았더라면 저희가 나름 준비를……”
“준비가 왜 필요해요? 근무시간에 온건데.”
그 근무시간이 24시간이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야.
“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는 다시 내 시선을 내 앞의 소녀에게로 돌렸다. ……그렇게 떨지는 말지. 무슨 내가 나쁜 짓 하려는 것 같잖아.
“처음뵙……”
“죄송합니다각하제가죽을죄를지었습니다.”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싹싹 빌면서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이 소녀. 뭐지? 내가 정말 나쁜짓 한 것 같은데? 아니, 왜, 그럴 때 있잖아. 마피아들이 빚을 못 갚은 상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나오는 시츄에이션. 지금이 딱 그 모양이다. 단지 이번에 당황한 것은 내쪽이라는 것이 다르지만.
“저기?”
“무슨죄든지달게받을터이니제발저희소대원들만은살려주시기바랍니다.”
……나는 아무 말 한적 없다? 그나저나 아까 텐트 안에서 들리던 고운 목소리와 같은 느낌인걸 보면…… 이 녀석이 바로?
“테스텔 힐셔 준위?”
“예! 각하!”
……이제 고개 좀 들지? 당황한 내가 카를로스 상사를 보지만 그쪽도 같이 엎드려 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온 정비소대가 나를 향해 엎드려 있구나……이봐요, 다들 작업중에 뭐하는 짓이야?
“다들 뭐하는 겁니까?”
“요…용서해주십시오, 각하!”
한목소리 한마음. 다들 벌벌 떨면서 내게 말하고 있다. 잠깐 장난 정도는 처도 괜찮겠지?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 하는 겁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텐데요?”
“히..히익!”
단체로 떤다…… 뭐냐, 이거?
“그대들의 죄는 최선임자 하나에게만 묻도록 하겠어요. 지금 즉시 각자 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전투가 코 앞입니다!”
“죄…죄송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앞에 넙죽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둘 다 이제는 일어서죠?”
주섬주섬, 일어나는 두사람. 카를로스 상사야 나를 한번 봤으니 덜 당황한 상태이기는 해도, 힐셔 준위는 완전에 겁에 질린 표정이다. 하기야, 내가 ‘최선임자’라고 말했으니.
“상사는 가서 제가 물어본 것좀 알아보고, 힐셔 준위는 나 좀 보죠.”
“힉”
“예…예! 알겠습니다.”
당황해하는 상사를 뒤에 두고, 겁에 질린 힐셔 준위의 손목을 낚아챈 나는 그대로 텐트 안으로 들어와 입구를 막았다. 이제 천막에 있는건 우리 두사람 뿐이 되었다. 힐셔 준위는 내 등 뒤에서 떨고 있는 모양인지 뭔가 슥슥 하는 소리가 들릴 뿐. 아무래도 제대로 물어봐야겠지. 왜 지금까지 나를 만나지 않았냐고.
“준위……”
“준비되었습니다, 각하.”
뭐가?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넌 또 왜 옷을 벗었냐? 그것도 속옷만 남기고? 차라리 벗을거면 다 벗……이 아니라……. 나에게 여자의 나체 어택은 별 감흥이 없다. 왜냐하면 나탈리의 것은 너무 많이 봤…… 이것도 아니라……
“지금 뭐 합니까?”
“제제제게 버벌을 주신다고…….”
……벌벌 떨면서 그런 말 하지 맙시다. 내가 무슨 몹쓸 짓 하는 놈도 아니고. 갑자기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가…각하?”
“시끄럽고, 옷 입어요. 내가 하고 싶던건 그런게 아니니까.”
“지....직접 벗기시려고?”
“아니라니까!”
난 그냥 얘기를 좀 하고 싶을 뿐이라고!
“예……”
“나는 단지, 왜 준위가 지금까지 나를 피해왔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힐셔 준위…… 왜?
“정말…..이십니까?”
뭘 그런걸 되묻냐.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요. 그러니까 옷 빨리 입고 내 앞에 좀 앉아봐요. 이야기나 좀 해보게.”
내가 의자에 앉고, 그 앞에 힐셔 준위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절대, 절대로 내가 시킨거 아니다, 이거. 오해하지 말자. 이건 100% 힐셔 준위의 자유 의지였으니까.
“저기…… 좀 제대로 앉으면 안되요?”
“평민인 제가 어찌 감히 마주 앉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고개를 조아리면서 자세를 더더욱 낮춘다. 어째 내가 훨씬 부담스럽다, 이거?
“저기……”
“예?”
“명령이니까 제발 제대로 의자에 앉아주십시오.”
역시나, 명령이라는 말에는 어쩔 수 없는건가? 내 ‘명령’에 그제서야 힐셔 준위는 머뭇머뭇, 자세를 일으켜 의자에 앉는다…… 흐음, 그렇다면 내가 명령만 한다면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할 수 있는건가? 으헤헤헤…… 가 아니라, 지금은 내가 해야할 일에나 집중 하자, 제발! 이미 충분히 지연시켰잖아?
“고마워요.”
“명령하셨으니까요.”
살짝 웃으면서 가볍게 목례를 하는 힐셔 준위. 은근이 예쁘네…… 가 아니라! 나 정말!
“시간 없으니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뭘 이야기 하실지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하는 힐셔 준위.
“그래요?”
“예.”
“그럼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나요?”
“예.”
……뭐야, 이거? 너무 쉽게 풀리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내줄거면 지금까지 길게 길게 끌어올 이유도 없잖아? 왜 그런거야?
“준위? 지금까지 왜 나를 피해온거에요?”
“각하는 공주 전하의 기사, 저는 한낱 평민. 어찌 감히 제가 고귀하신 각하를 뵐 수 있겠습니까?”
……또 신분이 문제야? 이건 뭐, 답이 없다.
“이봐요, 준위.”
이크, 나도 모르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해버렸다. 이런, 힐셔 준위가 떨잖아. 내가 그렇게 무섭나?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내 손을 살짝 그녀의 어깨에 얹어 진정시켰다.
“힉…”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떼내려는 그녀였지만 내가 어깨를 강하게 잡아 눌러 막았다. 보나마나 귀족은 평민을 만지면 안된다, 뭐 그런 말이겠지.
“이….이러시면 안됩니다.”
“왜요?”
“고귀하신 분의 손을 어찌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하아…… 미치겠구나.
“나, 준위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고귀한 사람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지만…..”
“그만. 이제 그만 하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내 앞에서는 고귀하니 뭐니, 귀족이니 평민이니 따지지 말기, 알았죠?”
“각하, 그건.......”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신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어차피 신분 따위, 죽으면 상관 없는데.”
정확하게는 사람과 리히트…..겠지만, 상관 있나? 힐셔 준위도 대충 알아들은 듯한 눈치니까 상관 없겠지.
“하….하지만……”
“어허. 그러면 혼나요. ‘명령’이라니까. 난 당신의 계급상 상급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다시는 내 앞에서 귀족이니 뭐니 그런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나요?”
“……예, 알겠습니다.”
조금 머뭇거리던 힐셔 준위다 대답하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야지. 진작에 좀 그럴 것이지. 어디서 신분 갖고 을질이야, 을질은? 세상이 어떤 시데인데? 거기다 나 그런거 엄청 싫어하는거 알면서……가 아니라, 모르나? 모를 수도 있구나…… 음…… 뭐, 상관 없나. 이제는 해결된 일인까 괜찮겠지.
“저….. 각하?”
“소령님이면 족합니다, 준위.”
“하…하지만…..”
찌릿
“…….소령님”
“왜요?”
“왜…..왜 제게….. 이렇게 해주시는 거죠?”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 하지만 여전히 내게 대하는 태도는 이질감이 섞여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서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공주의 제 1기사라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는데 자기더러 귀족이나 귀빈자 취급을 해주지 말라고 하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르데 제국민들에게나 해당되는 사항. 나는 다르다. 그런 구속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그런게 짜증난다. 고작 부모 운 좋아서 누구는 귀한 대접 받고, 누구는 천대 받는다고? 웃.기.시.네. 내가 고칠거야, 그런게 계속해서 남아 있는다면.
“같은 군인으로서, 같은 전우로서 당연한 대접을 하는 것 뿐입니다.”
“흑……”
…….아니, 이봐요. 왜 우는건데, 거기서?
대충 그녀를 달랜 나는 곧바로 내가 하려던 일을 시작했다. 준위가 운 이유는 ‘감동’했다나, 뭐라나? 아니, 내가 한 말에 감동할만한 구석이 있나, 없나는 둘째치고, 왜 우는건데? 내가 ‘귀족’이라서 도망쳐 다녔다는거나, 내가 말 좀 했다고 감동해서 우는거나…… 이거 같이 일해도 괜찮은 사람인가 아닌가 모르겠네. 아쉽게도 지금 과나카날에 있는 사람들 중에 힐셔 준위를 제외하고 받을 수 있는 도움도 없다.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
그래서 힐셔 준위에게 어디있는지 찾아봐달라고 부탁한 나는 그녀의 부탁으로 졸지에 끌려나와 정글 속을 걷고 있었다. 그게 벌써 1시간째…… 뭐하는거냐, 나?
“저기…… 준위?”
“예, 소령님?”
“우리 어디로 가는거에요?”
“엔진 찾아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지. 분명 그랬지. 그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데 엔진을 숨겼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어느 누가 정글 속에 엔진을 숨기겠냐고? 이렇게 축축하고 습한데에다가 엔진 보관했다가는 다 부식되서 못쓰게 되겠다.
“소령님, 저를 믿으세요.”
안 믿으려는게 아니라 당신이 믿기 힘들게 행동하니까 그렇지. 왜 정글 쪽으로 가냐고…..가 아니라, 갑자기 언덕이 나왔잖아?
“여….여기는…..?”
“우리 비행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에요. 오는 길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꽤나 멋지지 않나요?”
……그래, 멋지기는 멋지지. 옥빛의 바닷물들이 찰랑이며 해변가와 부딛히고, 밀려온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고, 바다에서 달려온 짠내음의 바닷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이 곳에서는 지난 1달간 우리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지켜내왔던 핸더슨 비행장이 자리잡고 있으니까. 검은색 마스터 배드가 깔린 주 활주로와, 그 옆에 잔디밭으로 만들어진 제 1 전투기 활주로. 그리고 그 중간의 무성한 숲 속 군데군데에 숨겨진 블랙캣 전투기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곳이 오스트해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평화롭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벌써 수천이 넘는 리히트들이 이 곳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 것을 망각할 정도로.
“……그런데 준위? 왜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거지?”
“다른건 몰라도 이곳은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지금 보고싶은건 경치가 아니라 작동하는 엔진인데 말이야”
“……엔진이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힐셔 준위.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잠깐, 그게 무슨 말이요 준위 양반. 엔진이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니? 내가 아까 말했잖아! 작동 되는 엔진 말이야, 엔진! 우리 블랙캣 엔진 37 기사단거 회수한거 달라고!
“아~ 그 엔진이요~ 저는 왜 소령님께서 전차 엔진을 찾으시나, 했죠.”
“아까 분명히 말했잖아! 블.랙.캣.엔.진.이라고!”
“야하하하하하~ 죄송합니다~”
……뭐가 야하하야 야하하가…….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처음 그상태 그대로 냅두는게 나을 뻔 했다. 내가 말 놓으라고 했다고 이제는 내게 장난까지 걸고 넘어지다니…… 캐릭터성의 변화가 조금 빠른데? 이거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래서, 그 물건은 어디에 숨겨놨는지 알아요?”
“그거 어디에 숨겨놓긴 했는데요…… 음……. 너무 잘 숨겨놔서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농담이지?”
“넵.”
……울고 싶다.
“이쪽에 있어요. 설마 제가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어디에 놔두었는지 까먹었을까요?”
……웬지 그럴 것 같은데 말이지.
“소령님, 저를 너무 안 믿으시는거 아니에요?”
내가 당신을 안 믿는 이유는 너무 텐션이 빨라서 그래.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간다니까.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어디있는데요?”
“이쪽으로~”
그렇게 1시간 뒤…….
“다 온거야?”
나를 질질질 정글 속으로 끌고 들어간 힐셔 준위의 발걸음이 딱 멈추었다. 정글이라고만 말하니까 뭐 편한줄 알지? 전~혀 아니거든. 사방은 늪지에 축축하지, 습기차지, 온갖 식물들의 가지와 줄기가 얽히고 섥혀 있고, 거기다 머리 위, 발 아래에 기어다니는 벌레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이런 지옥에서 딱 1시간만 걸어봐라. 그냥 엔진이고 나발이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다 왔어요……? 어라?”
“왜? 뭐야?”
준위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생기를 얻었던 나는 그녀의 추가타에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여기가 아닌가보네요.”
……당신, 이거 일부러 한거지, 지금?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다른데로 가봐야겠네요.”
“아니, 그걸 기억 못해?”
“야하하하……. 기억은 하는데, 어디에 뭘 묻어두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서요……”
그러니까 그게 기억을 못하는 거지 않습니까, 힐셔 준위!
“야하하하……. 다음건 분명 맞을거에요.”
……맞기는 개뿔. 그렇게 하루종일 나와 힐셔 준위는 정글 안을 뒤지고 다니면서 일명 ‘힐셔 아지트’들을 찾아다녔다. 그 와중에 땅 아래 뭐를 묻었는지 확인하는건 전부 내 일이었고. 신기하게도 내가 땅을 팔때마다 야전 식량, 총탄, 탄창, 총기, 드럼통, 침낭, 식기류, 군복, 양말, 팬티, 브래지어 등등등이 나오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이 여자가 일부러 이러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래서 결론적으로, 엔진 오늘 못찾았다.
아, 미치겠네. 내일 초계도 빠져야 한단 말이야? 그럼 우리 기사단원들에게는 뭐라고 둘러대야하는거지?
“야하하하하….. 죄송해서 어쩌죠, 이거?”
“당신, 날 놀리는거지, 지금?”
확 멱살 잡고 싶지만 여자라서 못하겠다, 젠장!
“야하하하하…… 그럴리가요. 설마 제가 제 1 기사 각하의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도록 만들겠어요?”
“오늘 그랬잖아, 오늘!”
“야하하하~ 오늘은 제게 소중한 시간이었는걸요.”
당신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힘들고 의미없는 시간이었다고. 더 맥 빠지는 사실은 오늘 둘러본 ‘힐셔 아지트’는 전부 서른개가 넘어 간다는거다. 오늘 한 5개 정도 돌아봤으니까……. 설마, 일주일 넘게 걸리는건 아니겠지?
“야하하~ 설마요. 내일은 반드시 찾아낼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못믿겠다고.
“저는 제 1 기사 각하의 동앗줄인걸요. 믿어 주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동앗줄이 썩어 있었다는걸 미리 눈치 챘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