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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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온 몸에서 전해져 온다. 후텁지근한 열기가 몸을 덥히고 찐득찐득한 공기가 몸을 감싸온다.
......덥다.
우리가 과나카날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과 동시에,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아직 8월은 멀었는데! 여덟밤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더우면 제대로 더워질 8월은 얼마나 더울지 상상조차도 하기 싫다. 계속된 무더운 날씨와 열대야의 시달림에 과나카날의 우리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 8일 이후로 15일이 넘도록 아무런 보급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틀렸다. 후소 제국의 뇌격 능력을 두려워한 에르데 제국 해군 함대는 필사적으로 야간 해전만큼은 피해왔다. 계속된 야간 해전의 패배 때문이겠지. 거기다 남오스트해 방면군 사령관인 곰리 제독 각하의 이상할 정도로 무신경함 때문이기도 하겠고. 아니, 어떻게 자기 휘하의 부하들이, 그것도 1만이 넘는 병력들이 이런 섬에 처박혀있는데 제대로 된 지원조차 안해줄 수 있지? 항공기의 지원 같은건 받아보지 않은지 오래고, 탄약이나 연료, 식량 등이 온 것도 지난 8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연료와 탄약이라도 받아놓았으니 매일같이 몰려오는 후소 제국의 구축함들과 폭격기들에게 반격이라도 해보지만. 아, 지금은 5인치 대공포를 해안포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다. 당장 격침 효과는 없지만, 최소한 몇발 정도 반격탄을 날려주는게 아예 날리지 않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심리적으로 말이야, 심리적으로.
결론적으로, 갑자기 끊겨버린 보급은 아군의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재개된 빅토리아 항공전 때문이다. 7월 20일을 기점으로 과나카날에 새로 배치되기 위해에르데 제국의 육군 4사단과 2개 항공 기사단이 빅토리아 대륙에 15일 도착했다. 하지만 이런 증원을 눈치챈 적들은 갑작스럽게 그동안 소강상태였던 빅토리아 대륙 항공전을 다시 개시,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경계를 풀어버렸던 빅토리아 대륙 방어군을 급습했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빅토리아 대륙의 에르데 제국군과 브리타니아 제국군은 무려 80대에 달하는 항공기를 상실해버렸고, 그 이후로 매일같이 이어지는 폭격의 릴레이에 맞서기 위해 과나카날로 돌리려고 했던 항공 기사단들을 자신들 쪽으로 재배치해버렸다. 제공권이 장악당해버렸으니, 보급 함대가 출발할 수 없는건 당연한 이야기인거…..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덕분에 우리에게 주어진 지원은 카탈리나 비행정 8기와 그 안에 실려있던 보급품 약간……이 전부였다. 원래 반데그라프 소장은 최소 대함 공격기 및 장거리 초계, 정찰기로 사용이 가능한 중폭격기나 경폭격기들을 보내달라고 했었지만, 곰리 제독이 보내준건 말 그대로 ‘장거리 기체’인 카탈리나들이 전부였다. 아니, 받은건 고맙기는 하다만, 문제는 그런게 아니라 왜 카탈리나 비행정이냔 말이지. 뭐, 이걸로 뇌격이 가능하기는 하다. 말 그대로 ‘가능’만. 워낙 느리고 큰 기체라서 대공포에도 잘 맞고, 전투기 호위라도 붙었다, 하면 그냥 학살당하는 신세일 뿐이니까. 그리고 설사 뇌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고 해도, 에르데 제국의 어뢰는 끽해봐야 그 연료인 에탄올 뽑아 토피도 쥬스나 만들 수 있는 쓰레기잖아? 안될거야, 아마.
“무슨 생각해요?”
“아니, 뭐…… 그냥 좀 답답해서.”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구나. 답답하다, 지금. 굉장히. 후텁지근한건 둘째치고, 우리의 상황이 너무 안좋아서 말이야.
“증원…… 때문인건가요?”
“응. 오는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번에 증원이 오면 우리 기사단이 드디어 전선에서 물러날 수 있었거든. 솔직하게 말해서 좀 쉬고 싶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싸웠어. 휴식도 쉬는 시간도 없이. 제대로 마음 편히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이제는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쩍 내 옆의 사냐 공주를 보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인 상황. 휴식도 없이 싸워온 것에 지쳤는지 눈가에는 다크써클이 내려와있고, 윤기가 흐르던 쪽빛 머리도 이제는 푸석푸석해졌다. 말랑말랑해서 꼬집을 때 느낌이 좋던 포동포동한 볼살도 다 어디로 갔는지 살짝 야휘어 있고. 생각해보니 나탈리도 많이 야휘었지. 에리카 소령도 그렇고. 다들 내색은 안하지만 말이야.
“쉬고 싶으신건가요?”
“물론.”
“그럼 아바마마께 전화해서 휴가를 좀 받을까요? 창민경 혼자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니 괜찮아.”
“에?”
“괜찮다고.”
갈거면 다 같이 나가는거지, 치사하게 나 혼자 나가지는 않는다.
“방금 쉬고 싶으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는데…… 나 혼자서는 싫다는거지. 그리고 나 혼자서 유유자적 쉬고 있을 상황도 아니고. 나라고 노는거 안좋아하고 쉬는거 안좋아하겠어? 그냥 동료들을, 소중한 사람들을 이런 지옥에 던져놓고 혼자서 몸만 빠져나온다는 사실이 싫다는거다.
“……창민경은 전투를 좋아하는거, 아니었나요?”
내게 놀랐다는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뭐야, 이녀석.
“헤헤. 농담이에요. 창민경이 싸움을 잘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건 아닌거, 알고 있어요.”
“……그렇게 잘하지도 않아.”
“적기 50기를 격추한 사람이 그런말 하면 안되죠.”
“……48.5기야.”
“그정도는 그냥 50기라고 말해도 돼요, 창민경.”
“전과는 확실하게 해야지.”
“나, 제국의 제6 황녀 사냐의 제 1기사에게 그정도 자만은 허락되요, 헤헷. 그 이상은 안되지만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밝게 웃는 사냐 공주. 그런 그녀의 미소가 저녁 노을이 비쳐 금빛으로 빛난다.
……예쁘다. 정말로.
“분위기 좋은걸 깨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만,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에리카 소령이 등 뒤에서 난데없이 나타났다. 내가 여기 있는건 어떻게 알았는지 둘째치고, 그렇게 나타나지 좀 말라니까. 사람 놀래키는 그거, 악취미야 소령.
“죄송합니다만, 이게 재미있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재미로 놀래키지말라고.”
“그럼 제 스트레스는 어디로 풉니까?”
“……미안하다.”
쿡쿡, 작게 웃은 에리카 소령이 말을 이었다.
“굳이 부단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같이 와주셔야겠습니다. 두분 다.”
“왜? 무슨 일 있어, 에리카?”
“반데그라프 소장의 호출입니다. 전 부대 지휘관 집결, 이라더군요.”
전부? 정말 뭔일 있는가보다.
“금방 갈게.”
“무슨 일일지 모르니까, 소령은 테스텔에게 이야기해서 우리 전투기들 최종 점검하고 무장 장착 대기하고 있어. 바로바로 장착할 수 있게 준비해놓으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부르셨습니까?”
지휘 텐트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도착해있던 상태였다. 해병대 대대장들 뿐만 아니라 과나카날에 같이 주둔해있는 어뢰정 함장들, 그리고 37 기사단의 단장인 켈더프 중령과 부단장 마울러 대위도 같이.
“역시 어쩔 수 없군요. 여자란 준비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마울ㄹ……”
……오자마자 싸움질 시작할 기세로군. 열받아서 한마디 하려던 나의 손을 사냐 공주가 덥석, 잡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이 느껴지면서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되어간다. 화가 나는건 여전하지만.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사냐 공주. 그녀가 바라지 않는 싸움을 굳이 해야할 이유는 없겠지. 좋겠네, 마울러 녀석. 목숨 하루 더 연장해서. 사냐 공주만 아니었으면 네까짓 것, 그냥 모가지를 베어버리는건데...... 아, 농담이 좀 지나치다고? 농담 아닌데?
꾸욱
알았어, 알았어. 진정 할게.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차가운 미소를 흘리는 마울러 대위를 무시하고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째 조금씩 늦어지는군, 소령. 많이 긴장이 풀렸나보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늦지 말도록. 그리고 마울러 대위?”
“예, 소장님.”
“자네도 말 조심하게. 공주 전하는 황족이기 이전에 자네의 상관이야.”
“……시정하겠습니다.”
쌤통이다. 그렇게 불만스러운 말투로 툭툭 뱉어도 이쪽이 유리한건 변하지 않는다고. 물론 나나 사냐 공주도 그닥 잘한건 없지만.
“자, 그럼 모두 모였으니 현재 상황을 전파하겠네. 지도를 봐주게나.”
반데그라프 소장은 탁자에 펴져있는 지도로 손을 가져갔다. 우리 과나카날 섬 뿐만 아니라 그 위쪽의 슬롯, 그리고 해처리 섬과 빅토리아 대륙까지 표시되어 있는 거대한 지도였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다들 잘 알고 있을테니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네. 과나카날 섬이야 우리 대대장들이 워낙 잘 해준 덕분에 적들이 우리 방어선을 뚫지 못했고, 하늘은 37 기사단과 44 기사단의 활약 덕분에 폭격의 강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네.”
승전……이라고 해봐야 작은 국지전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말해주면 또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크던, 작던, 우리가 이긴건 이긴 것이니까.
“문제는 해처리 섬이네.”
반데그라프 소장의 손가락이 지도 위쪽을 가리켰다.
“먼저, 기니아 제도에서 출발해 정찰 활동을 벌이던 우리 B-17 폭격기 하나가 이곳의 항공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네. 지난 6월 말에 후소 제국이 자랑하는 기갑 함대가 도착한 이후로 아무런 활동 없이 잠잠하니 워낙 이상해서 확인을 한거지. 현상은 이틀전에 끝났고, 어제 카탈리나 비행정 편으로 도착한거네. 워낙 간단한 사진이라 전문 판독관의 판독 같은 것도 필요 없었고.”
반데그라프 소장의 부관이 2개의 봉투에서 꺼낸 사진들을 지도 위에 펼쳐보았다.
“노란색 종이가 붙어있는건 지난 6월에 찍은거고, 이 빨간색 종이가 붙어있는게 이번에 찍은거네. 다른점을 알겠는가?”
당연하지.
“함대가…… 없군요.”
누군가 중얼거리자 반데그라프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봐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6월 말에 찍힌 사진에는 해처리 섬의 군항 안에 들이찬 십수척의 거대한 전함들과 중순양함들이 한눈에 딱 들어왔지만, 새로 찍은 사진은 그런거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그저 구축함 몇척과 수송선 몇척만이 항구 안에 조용히 정박해있을 뿐이었다.
“맞았네.”
침울한 목소리로 반데그라프 소장이 말했다.
“놈들의 기갑 함대가…… 사라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