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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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널널한 분위기가 감돌던 지휘 천막의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동안의 계속된, 작지만 소소한 승리의 기쁨에 젖어있었던 얼굴들에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기갑함대. 후소 제국의 주력이자 최강의 함대. 나가토, 후소, 야마시로, 이세, 공고, 하루나, 히에이, 기리시마 등 널리 알려진 전함만 18척. 에르데 제국의 주력인 14인치 주포보다 강력한 16인치 주포를 장착하고 있는 데다가, 8인치 함포를 탑재한 중순양함만 12척에, 함대의 뇌격을 책임질 경순양함이 14척. 거기에 ‘전함을 호위하는 구축함’만 22척 이상인 대함대. 그동안 트럭 섬에서 이곳, 과나카날까지 몰려와 매일밤 함포로 우리를 괴롭히고 두들겼던 그놈들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런 놈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던 트럭 섬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3가지 뜻 중 하나다.
“후소 제국이 과나카날에 대한 공세를 포기한 덕분에 물러나지 않았을까요? 계속된 공격에도 결국 계속 막혔으니까……”
해병대 대대장들 중 하나가 조심조심 말을 해보았지만, 그 말을 들은 우리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대대장에게 해줄 말도 단 하나 뿐이다. 설마. 설마 그럴리가. 지금까지 후소 제국이 과나카날에서 상실한 전력은 항공기 80여대, 구축함 3척에 불과하다. 물론 지상군은 궤멸당하고, 비행장까지 빼앗겼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단 지상군 피해도 1개 연대급 밖에 되지 않으니까. 오히려 이쪽의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지금까지 에르데 제국이 이곳에서 상실한 전력은 항공기 70여대, 항공모함 1척, 중순양함 4척, 구축함 8척이 넘어간다. 해병대의 전사자도 벌써 1000명에 가까워졌는데다가 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부상병들이 많아 최대 80%의 전투력을 내는것도 의심스러운 수준이고. 설상가상으로 보급선까지 불완전해 보급이 왔다가, 말았다가 할 정도니까. 지금까지 후소 제국이 입은 피해는 우리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인거다. 아니, 아니지. 완전히 우세한거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피해를 입혀넣고 고작 그정도 피해를 입었다고 후퇴한다고? 미친거 아냐?
……흥분해버렸지만, 어쨋든간에, 그 가설은 OUT!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뭐, 그러니까 ‘가설’아니겠어.
“……재배치된게 아닐까요? 요즘 기니아 전선 쪽에서 계속 전투가 벌어진다는데……”
다른 해병대 대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고, 몇몇 장교들은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억였다.
“글쎄. 자네 말대로 기니아 전선 쪽에서 후소 제국군의 움직임이 활발하기는 하지만, 그쪽에는 아군 주력함대도 없고, 굳이 기갑함대를 투입할 이유도 없네.”
그래. 이게 발목을 잡는다. 빅토리아 대륙 방위 함대에 배치된 함정들은 가장 큰 함선이 중순양함일 정도로 규모가 작은데다가, 애시당초 그 순양함들도 희귀해서 거점 방어에나 투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곳에 전함만 18척인 기갑함대가 몰려가서, 뭐 어떻게 하려고? 물론 전함의 함포 사격이 지상군 제압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정도는 이미 그곳에 배치된 후소 중순양함 4척으로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거기다 그쪽에서 항공모함도 3척이나 접촉했다고 하니 항공 지원도 빠방할테고. 즉, 있는 전력으로도 이미 승기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굳이 그쪽에 대규모의 지원 병력을 들이 부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승기를 굳히겠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기갑함대 전체가 출동했다? 그건 완전히 전력 낭비다. 전함 한두척만 차출해서 보내도 뚫릴 곳인데 18척이나 보낼 멍청이는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남는 가설은 단 하나 뿐이지.
“그렇다면, 후소 놈들이 이쪽으로 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주 전하.”
사냐 공주의 말에 체념하는 듯이 말하는 반데그라프 소장. 그 말과 동시에 모두의 얼굴이 흙빛이 되면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마에 떠올랐다. 뭐,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아직도 에르데 제국에게는 작전 가능한 전함이 없고, 주력 항공모함들은 전부 빅토리아 대륙에 집결해 있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후소 제국의 기갑함대가 이곳으로 몰려온다면? 뭐, 어떻게 되긴. 다 죽는거지, 그래.
……머리가 아프군, 그래. 저정도의 전력이 일거에 과나카날로 처들어온다면, 우리의 패배는 자명한 것. 18척의 전함들이 일제히 주포에서 불을 뿜고, 그 엄호 사격을 바탕으로 후소 놈들의 상륙부대가 일거에 해안가에 상륙한다면 분명 우리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 기사단이나 37 기사단은 그나마 공중에서 저항을 좀 해보겠지만, 생각을 해봐라. 기갑 함대 정도의 규모가 작전을 벌이는데 상공 엄호도 안해주겠냐? 아마 이 과나타날 섬의 하늘은 하얀색 도장의 후소 전투기로 득시글 거리겠지.
“예상되는 적의 세력은 어느정도 됩니까?”
조심스럽게 내가 물었다. 기갑 함대의 규모를 몰라서 묻는게 아니다. 아까 말한대로, 이곳에 처들어올 만한 적의 총 규모를 말하는거다.
“정확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네, 소령.”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반데그라프 소장이 대답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건 후소 기갑함대의 출항일 뿐이니까.”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하는 반데그라프 소장.
“하지만 놈들이 한꺼번에 출항한 이상, 분명 이곳으로 오기는 오겠지. 그것이 함대 전체가 되든, 분함대가 되든 말이야.”
“후소 놈들의 생각이 우리와 같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일시에 병력을 집중해서 적을 각개 격파한다, 그것이 우리 제국군의 기본 교리 아닙니까?”
켈더프 중령의 부가 설명. 맞는 말이다. 에르데 제국군의 장교들은 다른 곳에서 일시적인 약세가 발생하더라도 한번에 주력을 모아 적들의 약점을 공략하는 작전을 매우 좋아한다. 그것이 기본 교리이기도 하고 말이야. 코랄해 해전에서도 당장 가용 가능한 항공모함들을 전부 결집시켜 후소 제국과 교전을 벌였고, 매치포인트 해전에서도 응급 수리만을 간신히 해결한 호넷을 밀어 넣어서 비슷한 숫자의 항공모함을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고 말이다. 물론 내 모함이었던 호넷은 가라앉아버렸지만…… 웬지 모르게 슬퍼지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참. 켈더프 중령님이 말을 하는데 멍를 때리는건 좀 예의가 아니지.
“제가 후소 제국 장교라면, 일거에 기갑 함대를 이곳으로 투입, 빅토리아 대륙에 묶여있는 우리 항공모함들을 견제하면서 과나카날을 함락시킬겁니다. 그 직후에는 그 여세를 몰아 빅토리아 대륙까지 침공하겠죠. 어차피 그곳이나 이곳이나, 배치된 병력 자체는 적지 않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만, 너무 낙관적인거 아닌가요?
“뭐라고 했나 소령?”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데그라프 소장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시치미 뚝, 떼고 시선을 돌렸다. 응? 말해봤자 좋을거 하나 없거든. 어차피 켈더프 중령이 후소 장교도 아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최소한 내가 생각할 때는.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후소 제국은 에르데 제국이 아니니까. 지금까지의 후소 제국의 전투 스타일을 봤을 때는, 그러니까 계속된 축차 투입을 봤을 때는, 이번에도 그렇데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딱 보면,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후소 놈들은 우리를 얕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보통 자신보다 강한 적이라고 생각이 들면 전력을 집중해서 공세를 펼 생각을 하지, 병력을, 그것도 자기네보다 열세인 병력을 끊임없이 축차투입할 생각을 안하니까.
“켈더프 중령, 자네의 생각은 분명 일리가 있네만은,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네.”
“예.”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켈더프 중령. 그 뒤 반데그라프 소장은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지금의 소식은 함구하고 있게. 우리의 상대는 ‘규모 미상’의 적이야. 굳이 장병들에게 알려서 사기를 떨어뜨릴 이유는 없겠지.”
“”예.””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대비를 해야겠지. 카탈리나 비행정들과 어뢰정 부대는 오늘부터 장거리 정찰을 시작하게. 최대한 먼 곳에서 놈들을 찾아내야 우리의 대처도 빨라질테니까.”
카탈리나 비행정 부대 지휘관과 어뢰정 부대의 지휘관, 두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을 보며 말을 마친 반데그라프 소장은 나와 사냐 공주, 그리고 켈더프 중령과 마울러 대위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두 기사단도 정찰에 동참할거네. 물론 비행장의 방어도 해내면서. 두 기사단장이 잘 협의해서 정찰 스케줄을 짜도록 하게.”
“예, 소장님.”
“알겠습니다.”
우리를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지은 반데그라프 소장은 이내 전원을 돌아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규모조차 모르는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미리 대비는 해두겠지만, 그렇다고 미리 겁을 먹어있을 이유도 없다. 놈들도 멍청한 바보들이 아닌 이상, 우리가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으니. 그러니 제군들, 당당한 에르데 제국군의 일원으로서 그날까지 마음 단단히 먹도록!”
“”예! 소장님!””
반데그라프 소장의 위엄 넘치는 연설이 끝나자 우리 모두는 허리를 딱 바르게 펴고 우렁차게 외쳤다. 소장님 말대로, 우리가 미리 쫄아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다만, 이때 우리는 후소 놈들이 바보 멍청이라는걸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