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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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지났다.
지난 이틀동안 뭐를 했냐고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려 죽겠지? 말 안해주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거다. 왜냐하면 말하고 자시고 할 스토리 분량이 안나오니까. 응, 당연한 이야기지, 사실. 지난 이틀동안 우리가 한건 먹고, 자고, 싸고 한 것 밖에는 없거든. 거기다 37 사단과 협조해서 초장거리 정찰을 나갔다온게 한 두번……정도? 나머지 시간에는 블랙캣을 기름칠하고, 닦고, 조이고, 표면에 왁스 바르고…… 그래, 정비나 했다고. 기본 취지는 물론 ‘언제 처들어올지 모르는 적에 대비해서 기체들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 시키는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별 기대 안한다. 반데그라프 소장님과 켈더프 중령은 1개 기사단이 방공 요격 임무를 맡고, 다른 하나가 대함 공격을 한다는 계획을 수립하는 모양이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거. 안그래도 후소의 제로 전투기보다 카탈로그 스펙만으로는 열등한게 우리 블랙캣 전투기다. 전투가 벌어지면 제로 전투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텐데, 그걸 1개 기사단만으로 막으라고? 불가능할걸? 격추는 둘째치고, 너무 많아서 포위 안당하려고 움직이기 바쁘겠다. 절대 불가,라는건 아니지만 아마 그렇게 해서 성공할 확률은 0에 수렴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뾰족한 수가 있는건 아니었기에, 그리고 켈더프 중령과 반데그라프 소장의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냥 잠자코 있었다. 우리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우리는 적 전함들이 오면 놈들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대함 무기는 항공기를 제외하면 단 2개, 5인치 대공 고사포와 어뢰정 뿐이다. 우선 대공포는, 말 그대로 ‘대공’ 고사포니까 사정거리도 괜찮고, 포구 속도도 빨라 포탄이 충분히 위력적이다. 거기다 하도 적들이 비행장을 폭격해대는 탓에 이제 대공포 사수들은 눈 감고도 파리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어버렸다. 못해도 4탄이나 5탄에서는 적 폭격기에 파편을 박아넣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우선 구경이 너무 약하다. 5인치라는 구경이 대공포의 세계에서는 무진장 큰거지만, 함포로 봤을 때는…… 글쎄올시다. 정말 잘 쳐줘야 구축함을 상대 해볼 정도? 거기다 탄 자체도 철갑탄 대신 고폭탄들만 잔뜩 있다. 그나마 후소 제국 구축함들의 장갑이 그리 얇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지, 정상적인 장갑을 달고 나왔다면…… 아마 막혔을거다. 놈들은 대부분 우리 대공포 최대 사거리 끝에서 알짱알짱거리니까. 그런데 이걸로 전함을 상대하겠다고? 비장갑 구조물인 상부 구조물이나 좀 노려볼 정도다. 아마 별다른 피해도 없을테지만.
두번째 히든카드인 어뢰정, 그러니까 PT보트 부대는 꽤나 위력적이다. 5인치 대공포대들의 사격은 전함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간지러운’ 수준이지만, 어뢰는 전~혀 다르다. 애시당초 어뢰 자체가, 낮은 함급의 전투함이 상급 전투함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 만큼 그 파괴력 자체는 정말 강력하다. 잘만 박아넣는다면 1발에 중순양함도 격침시킬 수 있으니까. 물론 탄약고에 맞았다는 전제가 붙지만. 어쨌건, 5인치 대공 고사포대들은 전함에게는 그냥 날파리 같은 존재인 반면, 자신을 최소 중파시킬 수 있는 어뢰를 탑재한 이 PT보트들은 분명 위협적인 존재임이 틀림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가장 먼저, 어뢰가 쓰레기다. 에리카 소령 뿐만 아니라 모두가 긍정하는 진실: 에르데 제국의 어뢰는 쓰레기다. 이 어뢰들을 달고 출격했던 뇌격 기사단원들은 매치포인트 해전에서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했다. 생존자? 그런거 없다. 간신히 살아서 돌아간 몇몇의 운 억세게 좋은 리히트 빼고는 전부 죽어버렸다. 전투 끝나고야 안 사실이지만, 이 어뢰들, 개발국에서 테스트도 안해보고 그냥 양산 결정한 물건이란다…… 어딜가나 방산 비리를 널려 있구먼. 좀 일을 할거면 제대로 하라고. 당신들 때문에 우리 용감한 뇌격 기사단원들이 죽어버렸잖아! 이때 쓰인 어뢰들은 개발국에서 ‘개량’한답시고 몇개 가져갔지만, 이내 다시 보급되었다. 왜냐, 전선에서는 당장 어뢰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이 어뢰들, 안에 있는 에탄올로 토피도 쥬스 만드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못하잖아? 안될거야, 아마……
그리고 두번째, PT보트의 수가 너무 적다. 지금 당장 과나카날에 배치된PT보트의 숫자는 고작 5척. 1척당 어뢰 4발이 전부니까 다 합쳐봤자 20발이 전부다. 평균적인 뇌격 성공률을 감안해 봤을 때 명중탄은 한…… 1발 정도 될까나? 연안에서 벌어질 전투이기 때문에PT보트들이 근거리에서 적함을 기습할 수 있겠지만, 후소 놈들도 바보 멍청이가 아니다. 최소한의 호위는 당연히 있을거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전함의 부포들의 제압 사격은 당연히 기대할만하다. 그런 곳으로 돌진해서 뇌격을 시도한다 한들, 아마 반전해서 빠져나오는 와중에 모조리 격침당해버리겠지. 거기다 설사 운 좋게 정확하게 어뢰를 살포했다 하더라도, 안그래도 멍청한 저 쓰레기 어뢰들이 멋대로 자폭해버리거나 불발이 일어난다면? 뭐긴, 뭐야. 망했어요지.
그렇게 우리에게 갖고 있는 세장의 카드 중 2장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한장의 패는 바로 항공 공습 밖에 없다. 갑작스럽게 함대 상공에서 나타나 급강하 폭격을 하고 빠져나가는 수십기의 전투기를 막을 수 있는건 항공기의 방공 엄호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미리 그 공습을 실행할 비행장을 박살내놓는다거나.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방법도 단발성 공격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블랙캣 전투기들이 급강하해서 적 함대에 피해를 준다고 한들, 급강하 폭격은 기본적으로 적 함을 끝장내기에는 위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런 급강하 폭격이 적 전함 18척 모두를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런다고 하더라도 한번 급강하 하면 우리는 속도와 고도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 제로기에게 사냥 당하기 딱 좋은 시점이라는 말이지. 어찌어찌해서 우리가 운 좋게 급강하 폭격을 성공시키고, 제로기들에게서 빠져나왔다고 쳐보자. 하지만 비행장이 남아있을까? 전함 18척이 모조리 전투불능에 빠진다고 쳐도 아직 중순양함 12척이 남아있다. 이건 또 어쩔건데? 카탈리나 비행정도 뇌격은 가능하다고? 적 함대의 한복판으로 그 느린 날으는 돼지가 들어가서 뇌격하고 나오라고? 카탈리나 다 죽게 생겼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완전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병사들의 생명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후퇴 작전을 시작해야하지만 지금까지 이곳에서 흘린 피와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덕분에 나는 작전 수립에 골몰하고 있는 반데그라프 소장과 켈더프 중령, 그리고 참모진과 같이 고민을 해보고, 안건도 건의해보았지만……. 음 글쎄. 아까도 말했듯이 나라도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건 아니다. 이럴때 필그림 함대라도 와주면 좋으련만……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니면 하다못해 빅토리아 대륙에서 지원이 도착하면 좋으겠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바쁜 듯 하니 어림 없겠지. 에르데 제국의 항공모함들의 출동은…… 글쎄. 급유 때문에 와스프가 사파이어만으로 돌아간 덕분에 지금 빅토리아 대륙 남부에 남아있는건 ESS 엔터프라이즈와 ESS 범블비, 단 두척 뿐. 그런 금쪽같은 항공모함이 이쪽으로 올거라고는 별로 기대 안한다. 아니, 아마 안보내주겠지. 그 겁쟁이 곰리 제독이 보내줄리가. 아마 기갑 함대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기겁해서 책상 밑에서 벌벌 떨고 있을껄?
아, 사냐 공주는 뭐하냐고? 내가 또 테스텔과 붙어있다고 삐져서 텐트 안에 토라져 있다. 그것도 이틀동안이나. 에리카 소령이나 반데그라프 소장이 빨리 좀 해결하라고 재촉하고는 있지만…… 하아, 나중에, 나중에. 지금 당장 닥친 일도 많다고!
“지금 할 일을 나중에 미루는건 기사라는 자가 할 말이 아닙니다, 부단장님.”
“내가 지금 할 일은 사냐 공주 달래는게 아니라 전투 준비하는거거든?”
“맞아요, 소령님! 지금은 저와 같이 전투 준비 하셔야 한다고요!”
……테스텔 너는 또 왜 그렇게 의기양양해서 말하냐?
“아, 시끄러워! 좀 다들 저리 가요!”
……사냐 공주 화났다. 물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모르게 화가 난듯 한 에리카 소령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사냐 공주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고, 나와 테스텔을 겁에 질린 채 도망갔다.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은 내가 할일만 하면서 컨디션 조절하자. 웬지 바쁜 날이 올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