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4
4
아까 그일이 있고 나서 5시간이나 지나서야 사냐 공주는 에리카 소령과 같이 텐트에서 나왔다. 여전히 나에게는 쌀쌀맞게 대학, 내 옆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테스텔은 줄익 듯이 노려보지만, 어쨌든간에 사냐 공주가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왔어?”
“…….흥!”
……나 정말 뭘 잘못했나?
“모르면 가만히 좀 계시죠, 창민경.”
어이어이…… 내가 뭔 잘못……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자. 괜히 사냐 공주 신경 긁을 필요 없을테니까. 나참, 언제나 쓸데 없이 화를 낸다니까, 사냐 공주는.
툭
사냐 공주의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나탈리가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물었다.
“뭔일 있었어?”
“아니.”
“그런데 왜저래?”
그걸 알면 내가 천재게? 그것보다 너무 달라붙지 말고 조금은 떨어져주라. 사냐 공주가 또 도끼눈 뜨고 노려보니까. 음, 아무래도 그거겠지. 지난 이틀동안 전투에 대비한다고 바쁘게 돌아다녔으니까. 아마 지쳤을거다. 분명 그걸거야. 왜냐하면 나도 지금 힘들거든. 최대 18척의 전함이 이 작은 섬으로 몰려올거라는데 얼마나 무섭겠냐? 그렇지, 나탈리?
“아니, 창민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고?”
“……너, 바보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나탈리.
“왜 그럽니까, 프로필라이넨 중위. 처음도 아닐텐데요.”
거기에 이제는 포기했다는 듯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에리카 소령의 확인 사살. 잠깐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정말, 창민겨…….”
왜애애애애애앵~
비상벨이 울린다. 야밤중에 갑작스레 울려퍼지는 귀 찢는 고음이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를 울리며 고막을 두드렸다.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등화관제를 한 뒤 잠에 빠져들기 위해 불편하게나마 참호 안에서 누으려던 해병들이 화들짝 놀라며 방공호로 대피했다. 물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있던 건물은 나무 판자를 조잡해게 세워 올린 조종사 대기실. 폭탄이 근처에 떨어지면 폭압으로부터 지켜주기는 커녕 날카로운 나무 파편들이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죽일거다.
“이 개자식들!”
“좀 잠 좀 자보자!”
해병들이 온갖 육두문자와 욕지거리를 한바가지씩 쏟아내면서 대공포를 발포하기 시작했고, 검은 허공에서 터지는 5인치 대공포탄들의 섬광 사이로 군데군데 하얀색 후소군의 항공기들이 지나갔다.
부우우웅
도플로 효과로 점점 꼬리를 끌며 멀어지는 엔진소리가 작아지기 무섭게 비행장 곳곳에서 폭발이 일며 흙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꺄악!”
“고개 숙여!”
근처에서 터져버린 파편 덩어리가 사냐 공주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지나갔다. 간신히 사냐 공주의 머리를 눌러 자세를 낮추게 한 덕분이지, 아니었다면 큰일날뻔 했다. 날아온 파편은 단순한 흙덩이가 아닌, 활주로에 깔린 마스터 배드 철판 조각이었으니까. 이게 말이 ‘활주로에 까는 얇은 철판’이지, 실제로는 무진장 단단한 물건이다.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들의 딱딱한 고무 바퀴에 흠집하나 나지 않는 놈들이거든. 그런 놈의 파편이 머리를 직격? 그건 즉사다. 봐, 내 팔도 스치기만 했는데 피가 배여나오잖아……..
피?!
“차…창민아…… 팔에!”
“그..급한건 아니야! 일단 지금은 방공호 안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급하게마나 몸을 움츠렸다. 무시무시한 폭압이 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다행이 꼴사납게 자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흐릿한 불빛에 머릿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네…..? 어라? 하나가 없다?
“빨리 가시지요!”
“자…잠깐만! 한명이 없는데?”
“너 또 본인 안셌잖아! 다 있다고.”
아…아차! 갑작스러운 폭격에 너무 당황했다보니 순간적으로 머리가 안돌아가는구나.
“원래 안돌아갔잖아요!”
사…사냐……
“이….이런때 장난칠 때 아니잖아! 빨리 달리기라도 하라고!”
폭격은 무려 3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원래 매일매일 폭격이나 포격을 맞던 터라 폭격을 맞았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폭격의 규모가 평소보다 컸다는 것 뿐. 밤이라서 정확한 수는 세지 못했지만, 탐조등이 밤 하늘을 비출때 마다 못해도 2대, 많으면 5에서 6대의 폭격기들이 잡혔었다. 그러니까 아마……. 한 100여대가 폭격한거라고 보면 되겠지. 호위기들은 더 많을거고. 어제 하룻밤동안 무작위로 쏘아올린 대공포탄들에 격추된 적기의 총 수는 확인 격추만 10대가 넘어간다. 한발당 3000발은 쏴야 폭격기 하나 잡는 대공포가 무려 10대나 격추해냈다는 말은…… 그냥 쏘면 맞았다고 보면 되는 정도인거지.
공습의 규모 만큼이나, 우리의 피해도 무지막지하게 컸다. 주 활주로의 해안가 80m구간이 완벽하게 날아가버렸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상태에서 공병들이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복구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다. 워낙 파여버린 덕분에. 또한 진지내 여기저기에 떨어진 눈먼 폭탄들에 맞은 블랙캣 몇기가 파괴되었다. 급하게 출격하기 위해 무장과 연료를 만재해 놓았던 블랙캣 3기는 그대로 펑! 나머지 곁에 있던 몇몇 기체들도 파편에 맞아 동체 여기저기 흉하게 구멍이 뚫려버렸다. 덕분에 37 기사단에서 3기 – 2기 전손에 1기 작전 불능 – 그리고 우리 기사단에서 2기 – 1기 전손에 1기 작전불능 – 손실이 발생해버렸다. 안그래도 남아있는 전투기가 적었던 상황에서, 5기의 전투기를 잃어버린 덕분에 우리에게 남은건 37 기사단의 9기와 우리 기사단의 7기를 합쳐 16기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기사단은 감편된 덕분에 규모가 작은거, 알고 있잖아, 왜그래?
제일 아쉬운 것은 바로 사망자의 숫자였다. 지금까지의 공습은 워낙 포격과 폭격에 시달려온 에르데 제국 해병대원들이 잘 피하고 숨어준 덕분에 평균적으로 하룻밤에 사망 둘, 부상사 수명에 그쳤었다. 물론 그렇게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목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공습의 규모를 보았을 때는 분명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의 손실이었다. 놈들은 대부분 비행장을 폭격했으니까. 하지만 아까는 달랐다. 무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무려 100여명이 넘어갔고, 부상자는 벌써 300명을 돌파했다. 너무 많아 의무병들이 눈물을 머금고 트리아지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밀려오는 부상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점은 우리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의 마음을 처참하게 찢어놓았다. 나와 나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귀족, 영주, 아니면 공주. 자신의 백성들의 찢겨진 몸을 보는게 편치는 않겠지. 하지만 나는 반데그라프 소장의 호출을 듣고 부상병들을 돌보러 가겠다는 사냐 공주를 억지로 붙잡아 말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민경, 지금 부상자들은……..”
“알아. 일손이 모자란다는거. 하지만 그건 그들이 할 일이야. 어차피 네가 가봤자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아까 폭격의 여파가 조금은 컷던 것 같다. 해병대 지하 통신소 입구 앞에서 멈춰선 나는 아직도 조금씩 떨고있는 사냐 공주의 어깨를 두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다음 그녀의 눈을 강하게 응시했다.
“진정해.”
“하지만…….”
“진정하라고. 그들은 프로야.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수년간 훈련을 받은 베테랑들이라고.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가봤자 주변에서 움직이기만 방해되는 짐짝에 불과해. 그들의 일은 믿고 맡겨. 네 백성들이잖아? 조금은 믿으라고.”
이정도면 조금은 진정되었겠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잖아. 그러니까 가자. 그만 좀 울고.”
내 말에 사냐 공주는 숨을 깊게 들이쉬기를 몇번 반복하더니 이내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을 닦아냈다.
“아…안울었어요! 고..공주가 운다니,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에요!”
네…네….. 그러시겠지요.
“아..아니라니까요!!”
토닥토닥, 작은 손으로 내 가슴 때려봤자 별로 아프지도 않다.
“……왔으면 슬슬 그만하고 좀 들어오지, 소령.”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노는건 그만두고 들어가봐야겠다. 못마땅한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지하 벙커 안으로 들어간 반데그라프 소장을 보고 빙긋 웃은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혼났다.
“상황이 시급한데 빨리빨리 움직일 생각은 하지 못할 망정 히히낙락 거리면서 놀고 있다니, 귀관은 아무런 생각이 없나보군.”
“창민경은…….”
“시정하겠습니다.”
나는 반박하려는 사냐 공주를 손으로 제지한 다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일단 내가 잘못한 것도 있는데다가, 여기서 잘잘못 가리느라 보낼 시간 따위는 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왈가왈부하기 시작하면 욕먹는건 사냐 공주다. 내가 자중하는 수 밖에.
“크흠. 알면 좀 고치게.”
워낙 못마땅한지 헛기침까지 한다. 거봐, 괜히 안건드리길 잘했지.
“예.”
“우선 호출한 이유는 두가지일세.”
그렇게 말한 반데그라프 소장은 언제 화가 났냐는 듯 자신의 손을 지도 위로 올렸다.
“폭격이 시작된지 40분쯤 뒤, 야간 정찰을 나갔던 아군 카탈리나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고속으로 야간 항주중인 함대를 포착했다고 하더군.”
“등화관제를 안했나요?”
“오늘이 보름달이라서 운이 좋았습니다. 구름이 조금 껴서 정확한 함대 숫자나 함종을 확인하지 못한건 아쉽지만 말이죠.”
색연필로 카탈리나 비행정의 보고가 들어온 곳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데그라프 소장이 입맛을 다셨다(…)
“놈들은 현재 슬롯을 통과하며 남하하고 있네. 카탈리나의 보고에 의하면 적의 속도는 대략 20노트. 자신들이 본 항적만 15개. 그중에서 유난히 커보이는 함선의 실루엣 2개가 언듯 보였다고 하네.”
“전함이군요.”
“그렇습니다, 전하.”
……전함 18척 중 2척의 행방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나머지 16척은 또 어디로 증발했는지 모르겠지만.
“누메이아의 사령부에서도 이 보고는 접수 했네. 그래서 플레이크 제독 각하의 기동부대가 북상하는 중이고.”
“예상 도착 시간은요?”
“아군은 내일 오전 9시. 저쪽은 언제 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네. 언듯언듯 구름 너머로 보이는 적함대를 조심히 탐지한 것이니 제대로 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는군.”
아무래도 적들이 발견된 거리가 카탈리나 비행정의 작전 반경 근처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건 그렇고, 호출된 이유 2개, 후소 제국 함대의 남하과 아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북상은 다 들은 것 같은데?
“저기, 하실 말씀이란건?”
아마 작전명령이겠지.
“이번 전투에 한정해서 자네를 임시 중령 계급으로 올릴 생각이네.”
그리고 틀렸다.
잠깐잠깐잠깐!! 지금 뭐라고? 임시 중령으로 진급? 그것도 너무나 갑자기? 거기다 이번 전투에 한정해서라는 말은 또 뭐야? 지금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 궁금해진 나머지 나와 사냐 공주는 바보처럼 되물어버렸다.
“예?”
“예?”
“그 말 그대로일세. 이번 전투에 한에서 자네는 임시 중령 계급으로 전시 진급. 37 기사단과 44 기사단을 통합한 임시 항공 기사대을 지휘할거야.”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뇌 회전이 따라가질 않는다. 사냐 공주도 갑작스러운 말에 놀랐는지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이고.
“왜…왜 그런 일을 창민경에게?”
“켈더프 중령이 부상당했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당장 조종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창민 소령을 지휘관으로 편제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켈더프 중령이 부상당했다는 말은 제쳐두고 떠오르는 의문. 어째서 나냐? 이봐요, 소장님. 나 필그림이에요. 에르데 제국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전투에서 지휘관으로 멋대로 기용해도 되는건가요? 예?
그게 다가 아니다. 비록 나와 사냐 공주, 에리카 소령이 전부 소령이라는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부 상하관계에 있다. 사냐 공주는 기사단장에 공주. 에르키 소령은 작전참모에 영주. 그리고 나는 부기사단장 및 전투 고문관. 계급이 어쨌든, 사냐 공주가 나보다 상급자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그동안 단 한번도 그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적이 없다. 그런데 뭐? 나를 중령으로 임시 진급시켜서 지휘관으로 써먹겠다고? 비록 내가 그동안 전투 지휘를 많이 내리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나 ‘고문관’의 자격이었지, 지휘관의 자격이 아니었다고. 결론적으로 중요한 전술적 결심 수립은 전부 사냐 공주가 한거니까.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옆에서 챙겨주는 참모일 뿐이다. 그런 나를, 사냐 공주를 제치고 바로 지휘관으로 세우겠다고? 우리 기사단원들이야 걱정 없지만 다른 기사단, 특히 사냐 공주를 무시하는 37 기사단에서는 더더욱 사냐 공주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한번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그래서 나는 반대했다.
“뭐라고 했나, 중령?”
“다시 한번 재고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냐를…… 아니, 공주 전하이자 44 기사단장이 버젓이 있는데 제가 통합지휘관이 된다는 사실은 좀…… 그렇습니다.”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이면서 부탁하는 나. 그런 나의 머리에 사냐 공주가 매운 꿀밤을 놓았다.
“아얏!”
“창민경, 뭐가 재고에요, 재고는? 어차피 매일 하던 일 또하는건데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놈 평판이 떨어질가봐 하는 말이지. 안그래도 무시당하는데 나까지 나서면 어떻게 되겠어?
“그런게 무슨 상관 있어요? 우리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지휘관을 맡으면 되는거지요.”
“하..하지만……”
“어차피 여기에서 가장 뛰어난 제국의 에이스는 창민경 뿐인걸요. 당연히 창민경이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줘야죠.”
……말을 못하겠어. 저런 낯 부끄러운 말들을 태연하게 본인 앞에서 말하다니!
“공주 전하의 말씀대로 하게. 이편이 양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게할 유일한 방법이니깐 말이야.”
……아. 맞다. 생각나버렸다. 황제파 기사들과 의회파 기사들간의 묘한 알력과 경쟁심. 자기네들의 기사단장이 쓰러졌는데 그 공석에 오른게 사냐 공주라면, 분명 알게 모르게 반발이 있을거다. 의회파 놈들은 뭔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항제파나 의회파가 오를 수는 없다. 왜? 그렇게 되면 반대편에서 격렬하게 반발할게 뻔하니까. 그래서 고른 대타가 바로 나. 나는 필그림이기에 양쪽에서 딱히 특별히 공격적인 감정 같은건 없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자면 싸우지 말라고 붙혀놓는 가짜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뭐, 이해했으니까, 이제는 별다른 거부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만. 속으로는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지만.
“알겠습니다.”
“사냐 공주 전하께서는 44 기사단장으로서 이 중령을 잘 보필해주시기 바랍니다.”
“넵! 알겠습니다!”
빠릿빠릿한 차렷 자세로 기쁘게 경례하는 사냐 공주…… 하아, 웬지 일들이 더 안좋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버린다.
“중령. 이제부터 중령은 이미 항공 기사대 ‘인피니티’의 지휘관이네. 자네의 양 어깨에 이 섬에 주둔한 1만명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동이 틈과 동시에 초계활동을 시작해야 하니 그만 쉬게.”
가볍게 목례를 마친 나와 사냐 공주는 걸어나왔다. 사냐 공주는 뭐가 그리 기분좋은지 연신 방긋방긋 웃고만 있었다. 반면 내 얼굴은 완전이 우그러진 상태. 고작 전투기 몇기로 저 대함대를 어떻게 상대하란 말이냐…… 아무리 지원군이 도착한다고 해도 말이야.
벙커에서 나오자마자 아직도 무언가를 태우는 불빛에 밝혀진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대충 위급한 불만을 끄고 나머지는 그냥 타게 놔두는 해병대원들과 공병대원들은 지쳤는지 아무데서나 널브러져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전 12시 40분. 동이 틀려면 멀었다.
“피곤하지?”
“예? 예…… 조금요. 창민경은요?”
나? 피곤하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걸.
“그럼 주무실거에요?”
“응? 응. 자야겠지. 너도 좀 자야하잖아. 같이 자자.”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한발짝 걸어가는 나.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냐하면 사냐 공주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체 고개를 숙이고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왜?
“저..저기….. 방금 그말…… 진심인건가요?”
“뭐가?”
“가가…같이 자자….고 한거요.”
“응 진심인데.”
“저…..그….그래도 전쟁터 한복판에서 무드 없이…….그…..그런건…….”
“그런건?”
“에?”
“아니, 잠깐만. 너 지금 무슨 생각….?!”
갑자기 눈앞에서 별이 번쩍! 하고 터진다. 우와, 빅뱅도 이것 보다는 안밝을 것 같은데. 바닥에 쓰러져버린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저 화가 나버린 사냐 공주의 얼굴뿐.
“저…저기? 잠깐만?”
“차…창민경은 정말 너무해요!”
……내가 뭘 했다고 내게 화를 내버리고 가는 사냐 공주의 등 뒤를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뭘 잘못한거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