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5
5
“전체, 차렷!”
처처척
“기사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절도있는 경례가 내게 쏟아진다. 단상에 선 나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사냐 공주를 필두로 한 우리 44 기사단. 오른쪽은 다친 팔에 깁스를 한 채 조용히 경례를 올리고 있는 켈더프 중령과,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마울러 대위의 37 기사단. 다른 37 기사단원들은 그저 그런 표정인데, 그러니까 다시말해 별 다른 불만은 없어보이는데, 꼭 저놈만 나를 노려보고 있다. 너, 나중에 좀 보자.
지금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진장 졸리다. 3시간 밖에 잠을 못잤거든. 정말 농담이 아니라 눈만 붙혔다 떴는데 내가 설정해둔 기상시간인 3시가 다 되어 버렸다. 덕분에 몸과 마음, 모두다 피곤한 상태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상태는 마찬가지이기에 나만 뭐라고 불평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하게 임시 항공 기사대 ‘인피니티’의 창설식을 끝낸…… 아, 기사대가 뭐냐고? 우리 필그림 기준으로 말하면……. 대응되는게 없구나. 굳이 말하자면 우리 세계 영국군 기준으로 전투 비행단, 그러니까 필그림 기준으로 치자면, 굳이 치자면, 전투비행대대 정도 되겠지. 귀족층 때문에 장교 수가 너무 많아 중령이 지휘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딱 전투비행대대가 되겠다. 에르데 제국 항공대의 최소 전략제대인 이 기사대는 그 규모에 따라 보통 2개나 3개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기사대의 보유 항공기 숫자는 대략 30기에서 50기 사이. 하지만 원래 완편 상태가 9기인 우리 44 기사단이나 빅토리아 대륙에 전력의 3분의 1 가량을 두고 온 37 기사단이 꾸린 임시 항공 기사대 ‘인피니티’의 총 전력은 15기에 불과했다. 그래, 블랙캣 15기 말이야. 일반적인 항공 기사대 전력의 절반의 숫자. 반데그라프 소장과 켈더프 중령은 나와 에리카 소령 같은 슈퍼 에이스들이 있으니 안심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당장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왜 졌는지 생각해보자. 고작 중전차대대 하나가 전차 군단을 막아설 정도로 막강했던, 그 뛰어난 성능에 우리 필그림들이 기동력과 화력, 속력 부분만 약간 손보고 대량 생산해낸, 6호 전차 티거들은 쏟아져나오는 소련군의 T-34의 물량에 짜부라져버렸다. T-34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만들었습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니까. 어쨌건간에, T-34를 상대로 그렇게 우위를 보이던 티거 전차들도 물량에 밀려버렸는데, 제로 전투기보다 딱히 나은건 없는,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좋지 않은, 전투기인 블랙캣을 타고 항공 기사대가 투입될 만한 전투에 투입된다고? 숫적 우세에 밀려 박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란체스터 제 2법칙이라고 들어들 봤잖아? A군이 B군보다 많고, A군의 B군의 질이 동일할 때 살아남는 쪽은 각 제곱의 차의 제곱근이라고. 아아, 질은 우리가 좋네 뭐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에이스는 이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평균적으로 봤을 때 조종사들의 전투 센스는 저쪽이 훨씬 좋으니까.
뭐, 어쨌건 우리 ‘인피니티’ 항공 기사대 덕분에 에르데 제국이 이곳에 투입할 수 있게된 전력은 도합 5개 항공 기사대, 14개 기사단이 되었다. 우리 44 기사단과 37 기사단 2개 기사단에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의 6개 기사단, 그리고 항공모함 사라토가의 6개 기사단. 원래라면 와스프도 같이 왔어야 했겠지만, 급유 및 정비 문제 때문에 사파이어만으로 돌아가버렸다. 아쉽지만, 이미 떠난 차에 손 흔들어봤자 돌아오지도 않으니 상관 없겠지.
그러고보니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생각 없이 있을 때가 아닌데……
“전원 모였습니다.”
“아, 고마워, 소령.”
아참. 작전 회의 중이였지. 기사단에서 기사대로 승격된 우리는 아예 전용 작전 텐트까지 배정받았다……..그냥 반데그라프 소장이 쓰던 작전 텐트랑 같은 곳이었지만, 지금까지 정비하는 전투기 날개 위에 지도 펴놓고 브리핑하던 것 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암, 그렇고 말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에리카 소령이 펼쳐놓은 지도는 우리가 있는 과나카날의 해도였다. 어제 카탈리나 비행정이 적과 접촉했던 곳의 좌표는 붉은 색연필로 표시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3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 30노트로 갔다고 행각하면 무려 90해리에 달하는 동심원을 수색해야한다. 어, 바금 그것도 못하냐라고 생각했지? 네가 해봐라, 그게 쉬운 일인가.
“전부 수색하는건 무리입니다.”
“알고 있어.”
수색할 시간도, 병력도, 여력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지.
“창민아~ 모셔왔어.”
지도를 보면서 경로를 고심하려던차에 갑작스럽게 나탈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옆에 내가 부른 리히트를 데리고 말이지.
“소령 라슨, 호출 받고 왔습니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금발을 휘날리며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머리에는 장교용 모자가 씌워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길다란 금발 머리는 뜨거운 여름바다람에 휘날렸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졌다. 그의 등장에 텐트 안의 여군들은 얼굴을 붉히며 놀라고, 남군들은 인상을 구기며 경악한다. 노는게 제일 좋은 나탈리도, 국민을 위해 싸운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냐 공주도, 그 차가운 에리카 소령도 전부. 아마 압도,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 우리 모두는 그의 존재 그 자체에 압도당해버렸다. 아마 이 세상에 요정이 존재한다면 저렇게 생겼겠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외모다. 입이 자동으로 쩍 벌어질 정도.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 그대로 살아났다는 느낌.
“바…..반가워요, 라슨 소령.”
“우리 제국의 에이스 기사를 직접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귀족이라는 티를 팍팍 내듯 절도 있는 자세로 내게 인사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 주변의 여군들은 전부 좋아서 꺅꺅대고 있다. 아, 웬지는 정말 모르겠는데 짜증나네. 은근히.
내게서 고개를 돌린 라슨 소령은 내 옆의 사냐 공주에게 다가갔다. 이자식, 뭘하려고? “그리고 제 6 황녀 전하를 뵙게 되어 가문의 영광입니다.”
무릎을 반쯤 굽히며 사냐 공주의 한쪽 손을 받아들고 가볍게 입을 맞추...... 이자식! 왜 내가 화가 나는거지? 거기다 사냐 공주는 왜 좋다고 얼굴이 붉어진채 미소를 짓는건데? 왜?
“바..반가워요, 라슨 소령.”
“진작에 찾아 알현했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한걸 용서하십시오.”
“아니에요. 이곳은 전장. 소령이 있을 곳은 귀관의 비행기이지, 제 앞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관대하게 이해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뿌직.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 머리에서.
“자자자자자자, 이제 인사들은 대충 그만하고. 얼굴만 알았으면 되었지 뭘 대화까지 하고 그래?”
“창민경?”
“하하하하. 제가 전하를 직접 뵌 황공함에 때를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중령님.”
중간에 끼어들어 두사람을 갈라놓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사냐 공주. 하지만 라슨 소령은 그저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뭐야, 이렇게 하니까 내가 두사람 사이를 일부러 갈라놓은 것 같잖아.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에 충실하기 위해서 나는 그런거라고. 따..딱히 질투가 나서 그런게 아니란말이야!
“잠깐만요, 창민경. 지금 라슨 소령에게 무례하게 뭐하는 짓인가요?”
“괜찮습니다, 공주 전하. 중령님께서는 더 시급한 문제 때문에 그러신 것일테니까요.”
“창민경, 지금 라슨 소령에게 사과하세요.”
“공주 전하, 정말……”
“창민경, 지금!”
……옆에서 사냐 공주를 말리는 라슨 소령이었지만, 그의 노력은 헛것이 되었다. 사냐 공주는 여전히 화가 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창민경!”
그러니까, 내가 왜? 뭘 잘못했다고?
“시끄럽고, 제대로 라슨 소령께 사과하세요! 무례한 짓을 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내가 왜……
“창!민!경!”
……안해주면 내가 죽을 분위기다. 그냥 여기에서 끝내자. 이렇게 왈가왈부할 시간이 아깝다. 그래, 이건 내가 무례한게 아니라 싸우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거야.
“미안합니다, 소령. 내가 순간 잘못 행동했습니다.”
“아닙니다, 중령님. 시급한 전황을 두고 생각없이 행동한 제 불찰입니다.”
됐냐?
“흥!”
내게서 고개를 돌린 사냐 공주는 라슨 소령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창민경이 요즘 많이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나봐요. 관대하게 넘어가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주 전하.”
……정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 나가버렸네. 나탈리, 너는 왜 혀를 쯧쯧 차고 있냐? 응?
아, 젠장. 몰라. 그냥 빨리 할 얘기만 하고 넘어가야지.
“소령의 부대는 정비 끝났나요?”
“예. 어젯밤에 말씀해놓으신 그대로 정찰 출격 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슨 소령.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적들이 택했을 항로는 제한적이에요. 해가 뜨면 우리 초계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놈들이니까.”
“어떻게 되었든 여기를 향해 오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대략 예상하고 있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적의 정확한 전력만 파악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세요. 호위기 까지 붙혀줄 여력은 없으니까, 적기는 알아서 잘 피하고.”
“알겠습니다.”
내게 투명지 뭉치를 받아든 라슨 소령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는 나가기 직전 여군들에게 쓱, 썩소 한번 쭉 날려 주시고. 아주 좋아 죽는구만, 다들.
“창민아, 너 아까 왜 그랬어? 완전 화났던데?”
“내가?”
“응. 그러면 안돼지! 저렇게 잘생긴 사람한테 그러면 안돼!!”
“……그럼 나중에 자대배치 그렇게 해줄께.”
“응~어? 잠깐만, 창민아? 뭐라고?”
나탈리가 뭐라고 조잘거리든말든, 그냥 무시하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하늘. 우리의 상황을 알려주듯 캄캄하다.
어쩌면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지금 내 기분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