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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5 - 스트라이크 패키지 Part 6


  6
  내 기분이 어떻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계획한 수색 작전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라슨 소령에게 작전 명령을 하달한지 15분만에, 그가 이끄는 제 33 정찰 폭격 기사단의 카탈리나 비행정 8기가 수면을 박차며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 하늘로 날아올랐다. 최대 2000파운드의 폭장이 가능한 카탈리나기의 날개에 달려있는건 폭탄이나 어뢰가 아닌 보조 연료탱크. 최대한 넓은 거리를 정찰해야하기에 내린 지시다. 남아있는 연료 탱크가 블랙캣용 밖에 없어 정비대들이 구멍 끼워맞추느라 고생 좀 했지만 말이야.
  과나카날섬에서 이륙한 8기의 카탈리나기들은 섬 북방 30km 해역에서 부채꼴모양으로 갈라져 이시각에도 시시각각 과나카날 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적 함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보고가 없는 걸 보니 못 찾은 모양이고. 카탈리나기들이 3시간이 넘게 열심히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우리대로 해안 감시원들을 파견하거나 섬 주변을 비행하는 등 나름대로 정찰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기사단은 정찰 및 수색을, 37 기사단은 전투 초계를 맡는 형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후소 공격 함대의 존재였다. 어디로 갔는지, 마치 귀신처럼 스르륵 우리의 감시망에서 사라져버린 이들은 카탈리나 비행정들의 정찰로도, 우리의 수색으로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놈들을 찾는데만 십여대가 넘는 항공기들이 동원되었지만, 이 바다 어딘가에 숨었는지 후소 함대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출격을 위한 최종 점검을 마치고, 작전 브리핑을 하고, 계속적으로 전투 초계를 위해 비행기를 띄우는 등 일부러 부대를 바쁘게 굴렸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직도 두명이 지상에 남아있습니다. 모두들 조종사 대기실에서 2시간째 대기하고 있고요.”
  그래. 이게 문제다. 전투를 앞둔 군인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시간 = 생각. 오케이? 풀어서 말하자면, 시간이 생기면 누구든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제 곧 치룰 전투에 집중되어버린다. 전쟁의 참혹함, 전투의 혼란,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자연스레 마음 한켠에 자리잡게 된단 말이지. 그러면 자연스레 소심해져버리기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때문에 말이야.
  “남아있는건 누군데?”
  “공주 전하와 마울러 대위 입니다.”
  “……그리고 지금 두사람이 같이 있다고?”
  “예.”
  ……그 두사람은 같이 있으면 뭔가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지……. 가봐야 하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작전 텐트. 각종 무전기기와 통신장비들이 설치되어 실시간으로 전해져오는 정보들을 한번에 모아서 상황을 판단하는 곳. 조종사 대기실과는 멀지 않지만…… 유사시에는 그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이다.
  “가봐야 하나?”
  “가셔도 되냐고 물으셔도 됩니다.”
  …..정곡이네.
  “그리고 그렇게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부담갖지 말고 다녀오라는 말이겠지. 어떻게 부담을 안가질 수 있겠냐만.
  “근무지 이탈은 아닙니다. 중령님도 어떻게 되었건간에 기사는 기사. 당연히 대기실에 들어가실 권리가 있습니다. 놈들의 함대가 발견되는 순간 우리도 출격하는 것이니까요.”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논리……냐만 뭐, 지금 내가 이용해먹을 수 있으니까 절찬리에 이용해주도록 하겠다.
  에리카 소령 덕분에 잠깐 텐트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조종사 대기실로 향했다. 그래, 이건 근무지 이탈이 아니야. 나는 떳떳한 항공기사, 파일럿인걸. 조종사 대기실로 가는건 당연한 말이지. 거기다, 나는 지휘관이다. 이제 곧 작전에 투입될 부하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는건 지휘관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렇게 자기 만족과 세뇌를 끝낸 나는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적. 조용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과는 180도 다르다. 나는 사냐 공주와 마울러 대위가 서로 싸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두사람은 지금 마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사냐 공주는 신문을 읽고 있고 마울러 대위는 모자를 푹 눌러쓴채 자고 있다. 그럴 시간에는 차라리 작전 지도나 다시 한번 볼 것이지.
  “어라, 창민경?”
  나의 존재를 눈치챈 사냐 공주가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반갑게 맞아준다. 그 소리에 깼는지 마울러 대위도 모자를 살짝 들어 나를 흘깃 살펴보고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든다.
  아, 저녀석 정말 마음에 안드네.
  “어쩐일이에요? 경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지휘 텐트일텐데?”
  “잠깐 와봤어. 두사람 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에서 울고 있을 것 같아서 달려왔는데, 내가 틀렸나보네.”
  “피~ 제가 어린애인가요?”
  내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앙증맞은 주먹으로 나를 툭툭 치는 사냐 공주. 나보다 수십배나 나이 많은 사람한테, 이론상 누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너 애 맞아.
  “칫. 창민경은 저를 너무 어리게 취급해요. 저도 다 컸다구요.”
  “농담이지?”
  “이이이이익! 아니거든요! 저 이제 결혼 해도 되거든요! 어른이거든요! 창민경보다 훨~씬 어른이거든요!”
  “그래, 그래.”
  “으읏….. 왜…왜 또 그렇게 기분 좋게 ​쓰​다​듬​는​건​데​요​?​!​”​
  “미안, 미안……”
  사냐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달래던 도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헉. 마울러 대위, 언제 깬거지? 마울러 대위의 푸른 눈동자가 내 것과 그대로 부딪혔고, 나는 순간적으로 오한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어째서? 내가 뭘 잘못한거지? 마울러 대위는 왜 또 화난거야?
  “저를 저따위 꼬꼬마와 비교하다니, 참 기분 더럽습니다, 중령님.”
  ……여하튼 이녀석은 입만 열면 짜증 나게 만드네.
  “뭐라고?”
  “제가 전투에 겁먹어서 울 줄 알았다고요? 하, 웃기지도 않습니다. 그런 저질 농담은 골목길 하수구에나 버리고 오십시오. 지금까지 300소티를 넘게 출격한 제게 그따위 모욕을 주다니, 무슨 생각이십니까? 거기다 저런 머리에 든 것 없는……”
  “야, 대위!”
  “왜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나를 노려보면서 툭툭 내뱉는 저 말투가 싫다. 저 눈빛이 싫다. 저 분위기가 싫다. 황족을 싫어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이녀석은 다른 반황제파와는 또 다르다. 다른 반황제파 기사들이 황제의 권력 팽창을 경계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이녀석은 그냥 황족 일족을 싫어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아냐고? 눈빛이나 말투가 다르다. 저녀석의 말투에는, 확실한 증오가 느껴진다.
  맞아. 어쩌면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예를 들어 황실 인사 때문에 피해를 봤었다거나, 아니면 황족들의 개인 추문에 휘말렸었다거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녀석의 이러한 행동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황족과 연관된 일 때문에 사냐 공주를 싫어한다고? 그건 단순히 사냐 공주가 황녀라서 그런거잖아. 사냐 공주가 이녀석에게 뭔 짓을 했는데? 아무것도 안했잖아?
  “지금 귀관 앞의 이 분은 황녀이기 이전에 소령. 귀관의 상급자입니다. 제대로 예를 갖추세요, 대위.”
  “싫습니다.”
  이것이!!!
  “제가 뭐하러 그렇게 해야 합니까? 공주라서요? 황녀라서요? 그러면 답니까? 그러면 고귀한겁니까? 예?”
  “난 누가 고귀하다 그런말 한적 없습니다. 계급에 맞게 행동하라고 했을 뿐. 사람이 아니라 계급에 대고 경례를 하란 말입니다, 대위.”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논리 입니까?”
  싫으면 말든가.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마울러 대위를 그냥 두고 갑작스럽게 폭언을 들어 기분이 다운 되어 있을 사냐 공주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주었다. 절대 내 속이 뒤숭숭해서 그런게 아니다. 음, 그래. 그렇고 말고.
  “차…창민경……”
  “괜찮아. 저런 말은 무시해도 돼. 음, 그래. 그런건 듣지 말자고. 저런 말만 들으면 짜증나잖아.”
  “……저는 괜찮은데, 창민경이 화가 나신 것 같은데요.”
  “나? 아니야. 괜찮아. 절대 그렇지 않아. 음, 그렇고 말고. 내가 왜 짜증이 나? 나를 욕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괜찮아…….”
  뿌드득
  “이 갈지 말고요. 저는 괜찮으니까.”
  아아…… 천사다. 천사가 여기에 있어!
  “그건 그렇고 창민경.”
  “응?”
  “뭔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소리? 무슨 소리?”
  “비행기 엔진 소리요. 하늘 위에 떠있는 것 같은데……?
  비행기 엔진 소리? 손목시게를 슬쩍 확인했다. 현재 시각 오후 12시 38분. 전투 초계 나간 기사들이 돌아올 시간도 아니고, 전투 초계를 위해 출격할 시간도 아니다. 카탈리나 비행정들이 돌아올 시간은 더더욱 아니고. 이미 2시간쯤 전에 돌아와서 재급유 받았으니까.
  그렇다면 뭐지? 이 엔진소리. 굉장히 낯이 익은데 말이야. 제로 전투기의 소리는 절대 아니다. 이건 분명…… 블랙캣의 엔진 소리인데? 아, 설마?
  벌컥, 문이 열리면서 얼굴이 붉게 상기된 에리카 소령이 들어왔다.
  “중령님, 도착했습니다!”
  “에리카, 무슨 일이야? 누가 도착을 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사냐 공주는 순간 당황해했지만, 나는 에리카 소령의 말 뜻을 알아채고는 활짝 웃었다. 도착했다. 그들이.
  “아군입니다. 우리 주력 함대입니다! 엔터프라이즈와 사라토가가 도착했습니다!”
  “뭐?! 정말이야?! 야호!”
  즐거운지 사냐 공주가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 뒤를 에리카 소령이 따른다. 마울러 대위도 주력 함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흥분이 되었는지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종사 대기실 밖에서는 이미 수백명의 해병대원들이 해안가에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블랙캣 전투기와 돈틀리스가 긴 비행운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손을 흔들면서 반기는 해병대원들에게 대답하듯 같이 날개를 흔들어주면서. 어이쿠, 그러다가 괜히 균형 잃고 추락하지는 마라……. 헤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건 어쩔 수 없구나. 아, 얼마만에 보는 함대냐? 사보섬을 배경으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엔터프라이즈의 16 기동부대와 사라토가의 11 기동부대. 두척의 거대한 항공모함들을 경순양함과 구축함이 둘러싸며 호위하고 있었고, 최 선두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함선이 항공모함 함열을 이끌고 있었다. 항공모함 크기의 거대한…….. 아니, 상부 마스트나 함포 사이즈를 보면 저건…… 전함?
  “우오오오! 저건 신형 전함 노스 칼레도니아!”
  ​“​저​…​.​.​정​말​입​니​까​,​ 공주 전하?”
  “그럼요! 저걸 해군 건함 계획에서 본 적 있다구요! 벌써 나왔을 줄이야!”
  ……사냐 공주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것보다 건함 계획 극비 문서 아니야? 읽지 마! 다른사람들은 방금 사냐 공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사냐 공주가 떠들어대는 신형 전함 노스 칼레도니아의 제원에 대해서 청취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 좋냐, 다들? 하긴, 군축 조약 이후 30년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신형 전함인데 당연한거겠지.
  “좋아! 후소놈들 오기만 해봐라! 모조리 박살내주마!”
  “우와와아아아!”
  우리 임시 기사대의 지상 근무 병력들이나, 해병대원들이나, 사냐 공주나 심지어 마울러 대위조차도 열광하며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래, 와라. 박살내주겠다라고 외치면서. 그렇게 흥분한 우리의 모습이 즐거웠는지 저 멀리 항공모함에서 부웅, 뱃고동이 길게 여운을 남기며 과나카날의 해변가 위로 울려퍼졌다.
  툭툭
  “주인님? 저기, 지휘 본부에서 찾는데요.”
  “아, 그래? 고마워, 테스텔.”
  “뭘요. 그러면 나중에 상을 꼭! 주세요~”
  ……무슨 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한 100년쯤 뒤에 그렇게 하도록 하지. 테스텔이 알려준대로 바로 지휘 본부로 뛰어간 나는 대기하고 있던 무전 장교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나탈리다.
  “어, 나탈리. 무슨 일이야?”
  [아, 창민아. 10분 있다가 도착할건데, 지금 비행장 위에 있는 애들 누구야? 공습 받는거야?]
  “공습 받고 있으면 이러고 있겠어? 바로 방공호로 뛰어들었겠지.”
  [아, 그렇구나.]
  “엔터프라이즈와 사라토가의 함재 기사단이야. 드디어 도착했네. 위쪽에 연락해서 말해둘테니까 너희들은 아군 오사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들어오고.”
  [오케이~]
  나탈리와의 무전 교신을 마친 다음 지금 우리 비행장 위에서 날고 있는 항공기사들에게 전체 무전을 날렸다. 나탈리 편대 들어오니까 쏘지 말라고. 그리고는 곧바로 정비대에 연락해 나탈리 편대가 착륙하는 즉시 재급유하고 긴급 점검을 하라고 일러두었다. 언제 어디서 적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주력 함대의 도착 소식이 정비대에도 전해진 모양인지 모두들 들떠있는 목소리였다. 하긴, 우리가 그동안 좀 외로웠나? 많이 외로웠지.
  나탈리 편대가 도착한 뒤 몇분 뒤, 전투 초계 임무를 맡고 있던 37 기사단 전투기들이 내려왔다. 비행장 상공 초계는 함재 기사단이 맡아준 덕분에 우리 기사대는 적 함대 공격만을 준비할 수 있었다. 동체를 점검하고, 엔진에 기름칠을 하고, 기관총에 탄약을 장전하고, 파일런에 폭탄과 로켓탄을 달고, 지도에 비행 경로를 표시하고, 조정간 영점을 다시 맞춘다. 그리고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놓는다. 주력 함대의 도착에 사기가 오른 모두는 아무런 불평 불만 없이, 오히려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기쁘게 손을 놀렸다. 언제라도 후소 제국을 응징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그리고 대망의 오후 2시 30분.
  [라슨 소령입니다. 적 분함대 발견! 위치는 에코 찰리 에이트, 마이크 델타 세븐!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2척, 수송함 다수, 그리고 전함 1척! 현재 상공에는 적기 없습니다!]
  “수신 완료. 인피니티 리더에서 인피니티에게! 편대는 날아가면서 짠다. 지금은 급속 이륙하는 것에만 주력하도록! 전기 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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