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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6 - 솔로모니아 해전 Part 1


  1
  부아아앙
  블랙캣의 엔진이 사납게 울어댄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내리 꽂히는 나는 신중하게 적 폭격기에 크로스헤어를 맞추었다. 그리고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주저 없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퉁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예광탄 줄기가 날개에서 뻗어나간다. 엔진으로부터 꼬리날개까지 일직선으로 총탄을 맞아버린 적기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채 온몸에 불이 붙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제로기들이 늦게나마 대응하지만, 이미 늦은건 늦은 법. 그들이 자신들 편대 한가운데를 돌파한 내게 달려드려는 순간, 우리 기사단과 37 기사단의 검은 고양이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덫에 갖힌 먹이의 몸을 꿰뚫었다.
  후소 제국의 공격기 편대는 아주 무난한, 정석적인 대형을 취하고 있었다. 느리고 둔중한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들이 편대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하얀색 제로 전투기들은 외곽에서 V자 편대를 형성한 채 눈에 불을 켜고 하늘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은 나는 가상하다고 비웃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양을 등지고 있었으니까.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하늘의 유이한 장애물이 바로 구름과 태양이다. 태양을 등지고, 구름 속에 숨었다가 갑작스럽게 내리꽂힌다는 것이 내 계획이었고, 그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엄청난 시력을 자랑하는 그 후소의 조종사들이, 우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첫번째 일격에 떨어져나간 적기는 무려 3기. 발 폭격기 2기와 제로기 1기가 차가운 하늘 한가운데에서 불꽃을 피워내며 새하얗게 타올랐다. 거기에 검은 연기가 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적기가 대략 5기 정도. 편대의 절반정도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욕심따위는 부리지 않는다.
  “전기, 공격 직후 급상승! 제로기와 선회전은 시도하지 않는다. 곧바로 상승해!”
  [오케이. 따라가고 있다고!]
  급강하를 끝내자마자 나는 날개를 흔들며 모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급상승하라고. 내 말 뜻을 알아들은 나탈리를 필두로 우리 44 기사단원들은 엔진 추력을 최대로 올린 채 기수를 치켜들고 다시 고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44 기사단만.
  [적전 도주는 사형이다! 적기를 모조리 격추시켜!]
  뭐래? 마울러 대위의 목소리가 통신망에서 울려퍼짐과 동시에 불길한 느낌을 감지한 나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대위! 지금 뭐하는겁니까?”
  [놈들 앞에서 등을 보이면서 꽁무늬를 뺄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겁만 처먹은 44 기사단과는 다르니까요.]
  [누가 겁을 먹었다는거야? 죽을래?]
  [대위! 방금 그말은 취소하세요!]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한번 해보지는거지?]
  마울러 대위의 한마디에 나탈리, 사냐 공주, 그리고 유나 중위가 발끈한다. 아니, 발끈해서 될 일도 아닌데.
  “대위! 지금은 내가 지휘합니다. 당장 상승하세요!”
  [싫습니다. 명예를 위하여, 돌격!]
  “그건 명예가 아니라 개죽음이라니까!”
  세상에, 선회력 좋은 제로기를 상대로 선회전을 거는건 도데체 뭐하자는 거야? 뭐긴 뭐야, 그냥 죽자는 소리지.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비행운들 사이로 흰색과 파란색 실루엣이 언듯언듯 보인다. 숫자만 따지자면 9 대 4로 37 기사단쪽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까먹지마라. 후소 제국의조종ㅇ사들은 에이스다. 베테랑들이다. 어떻게 하면 손쉽게 격추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살​인​기​계​들​이​라​고​…​…​ 봐봐. 무리한 선회를 따라가려다가 속도만 잃고 다른 적기에게 무력하게 잡혀버리잖아. 이제 7 대 4. 여전히 숫자가 많은건 이쪽이지만 유리한건 저쪽이다. 9 대 4에서도 졌는데 7대 4로 이기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안되겠다. 작전 변경이다.
  “나머지는 계획한데까지 상승해. 최중요 목표는 적 호위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적 폭격기니까!”
  [에? 창민경, 뭘 하시려……]
  “나탈리! 내 뒤에 붙어. 우리는 아래를 지원한다.”
  [알았어!]
  [창민경?!]
  당황한 사냐 공주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지만, 지금은 그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위험에 빠진 아군을 구출하는 것. 숫적 우세만 잘 살려준다면 어느정도 견제하면서 나머지를 살릴 수 있다.
  ……마울러 대위 나중에 내려가면 나 좀 보자. 죽었어.
  두손으로 움켜쥔 조종간을 잡고 온 몸의 체중을 실어 뒤로 잡아당긴다. 감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원심력이 내 몸을 짓누르고, 중력은 내 피를 잡아당긴다. 무거워진 머리를 간신히 고정하며 수직으로 선회를 마친 나는 그대로 다시 적기 편대 한가운데로 내려꽂히기 위해 움직였다.
  “나탈리, 무리한거 아니지?”
  [거…걱정 마!]
  무리 했구만, 이녀석. 그렇게 몸 좀 관리하라고 일렀거늘.
  [나…나중에 내려가서 네가 직접 치료해준다면 괜찮아질지도?]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몸 상하지 않게 조심이나 해라.”
  뭐라고 중얼거리는 나탈리의 말을 대충 넘긴 다음 나는 시선을 아래로 집중했다. 7기의 푸른색 블랙캣 전투기를, 4기의 하얀색 제로기들이 뒤쫒는다. 그 우월한 선회력을 이용해 37 기사단의 전투기들을 끌어들인 제로기들은 블랙캣 보다 훨신 작은 원을 그리며 선회를 마치고 너무나도 손쉽게 블랙캣의 꼬리를 따라잡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익의 기총의 탄도가 조금 일그러지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카울링의 기총밖에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 정도? 카울링의 기총은 7.7mm. 저정도는 블랙캣이 좀 맞아도 괜찮다. 괜찮아. 튕겨냈다. 쓸데없이 튼튼한 블랙캣의 내구도가 이럴때는 빛을 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도 이제는 한계라는거지만.
  까가강
  [피…피탄!]
  마울러 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짜슥, 그러니까 좀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건데, 왜 괜히 나서가지고 죽음을 자처하냐? 마울러 대위의 블랙캣의 오른쪽 날개 외피 일부가 벗겨져 나갔고, 동체에도 수십개의 탄공이 뚫려있다. 하도 두들겨맞은거겠지. 아, 또다. 한차례 더, 제로기의 날카로운 기관총탄들이 블랙캣의 알루미늄 외피를 꿰뚫는다.
  “그런데 저녀석……”
  뭔가, 이상하다.
  [창민아, 마울러 대위 말이야, 어째……]
  “응. 조금 그렇지?”
  적기와의 거리 1km.
  [선회전은 비행학교 졸업한 애들이나 하는 초보적인 비행이잖아. 그걸 왜 여기에?]
  “폭격기 잡는데 선회전을 사용하나? 아니, 이제는 전부 고고도 급습으로 바꾸지 않았어?”
  나탈리도,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마울러 대위는 이리저리 흔들면서 꼬리의 적을 떼어내려는 것 같지만, 그게 통할리가 있나? 둔중한 블랙캣으로 날렵한 제로기를 선회력으로 제압하려고 하다니, 바보다. 완전히. 아니, 적성군 장비 카탈로그 스펙 정도는 좀 알아 두지, 대위? 거기다, 너 제로기 보는거 이번 처음이 아니잖아? 제로기를 떨쳐내려면 그냥 급강하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왜 선회전을 고집하려는건지…… 아니, 일단 지금은 저 제로기나 잡고 보자.
  “나탈리, 내가 미끼 할테니까.”
  [저런 녀석한테 너무 잘해주는거 아니야? 너한테 자꾸 버릇 없이 굴잖아.]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어. 아예 종족부터가 다른데.”
  [……알았어. 똑바로 해. 너나 잡히지 마.]
  “어허, 나를 누구로 보고. 그럼 간다!”
  나탈리에게 짧게 신호를 보낸 나는 조종간을 살짝 앞으로 당겨 마울러 대위의 블랙캣과 ㅈ로기 한가운데에 가볍게 들어선다.
  “대위! 나가!”
  [에…?]
  “나가라고, 임마!”
  방아쇠를 가볍게 눌러 기관총을 잠깐 발사한다. 나의 난입으로 놀란 마울러 대위는 베럴롤로 제로기의 사선에서 이탈해버렸고, 제로기는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먹잇감이 마음에 드는지 곧바로 내게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맞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살짝 움직여서 적을 약올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오케이, 추가 적기는 없음. 딱 2초간 직선 비행을 해주다 바로 기수를 틀고, 2초간 직선 비행을 하다 기수를 틀고, 그렇게 살살 적기를 약올렸다. 상대가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아무리 침착해도 이러면 점점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겠지. 특히 갑작스러운 증원으로 원래 호위해야 할 폭격기들과도 떨어져버렸고, 거기에 숫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이니까. 내 뒤에 따라 붙은 후소 조종사는 인내심이 다 떨어진건지 내가 똑바로 날려는 순간 마다 기총탄을 날렸다.
  [창민아!]
  물론 그걸 눈치챈 나는 잽싸게 조종간을 꺾어서 피했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의 시간벌이 불과할 뿐이었다. 선회를 하며 점점 좁혀지는 제로기와 내 블랙캣 간의, 그다지 멀지 않은 공중상의 거리. 우리 둘의 거리가 대략 400m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두 발로 단단한 강철 바닥에 버티고 선 다음, 나탈리를 불렀다.
  “지금!”
  그리고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급선회에 중력 가속도가 내 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미리 두 발로 몸을 지탱해놓은 것이었지. 아직 버틸 수 있다. 몇초도 되지 않아 수직으로 반원을 그린 내 블랙캣의 캐노피 아래로, 나탈리의 블랙캣이 스쳐지나가며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당황해버린 제로기를 물어뜯었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외피를 뚫고 들어간 예광탄, 고폭탄, 소이탄, 철갑탄이 차례로 폭발하고 불을 붙이고 꿰뚫었다. 순식간에 날개 반쪽이 날아가버린 제로 전투기는 중심을 잃은 채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불덩이가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고. 자, 이제 9 대 3. 딱 3배 차이. 조종사들의 기량으로 치자면 비슷하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추가 증원에 이어 아군기의 손실을 본 후소 제국의 조종사들은 조금 머뭇거리면서 37 기사단에 대한 공격을 멈추어버렸다. 순간적으로 내려온 2기의 블랙캣, 그러니까 나와 나탈리의 팀워크를 보고 겁을 먹어버린거다. 그리고 그 틈을 봐주지 않고 나는 재빨리 다시 진형을 짜던 제로 전투기들을 최외곽부터 압박해들어갔다. 기본적인 후소 제국의 비행 소대 진형을 짠 이 3기의 제로기들 중에서 재수가 없었던건 가장 왼쪽에 있었던 놈이었다. 그녀석이 편대에 합류하기도 전에 내 기총탄에 몇발을 피탄당했고, 순식간에 엔진에 검은색 연기가 나기 시작했으니까.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던 그 제로기는 나의 행동에 힘입어 달려온 37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이리저리 농락당하다 격추당했다. 이제 남은 제로기는 2기. 그리고 그들의 전의는 자신들이 타고 있는 전투기의 이름 마냥 제로. 9 대 2라는 숫적 열세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자신들의 원래 호위 목표인 공격기 편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 발 폭격기와 케이트 뇌격기?
  [격추, 격추!]
  [오예~ 나도 격추!]
  [창민경! 저 2대가 격추했어요!]
  [중령님, 적 공격대 섬멸 완료했습니다.]
  전투기 호위가 없는 공격기들은 그저 요격기의 밥일뿐. 사냐 공주가 지휘한 나머지 44 기사단의 블랙캣 7기가 일거에 포위, 그나마 급강하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급강하 폭격기 3기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격추되었다. 그리고 그 빠져나간 적기들도 모두 엔진에 불이 붙었거나 연기가 나거나 날개의 외피가 벗겨졌다거나 하는 등 크고 작은 손상을 입었고. 즉, 저 상태로는 핸더슨 비행장에 다가가지도 못한다.
  그래, 적 공격대 전멸이다.
  [확실한가?]
  반신반의하는 켈더프 중령의 목소리. 뭐, 나 같아도 다시 확인해볼 상황이다. 물론 우리가 기습을 했고, 호위기 숫자가 적었다고는 하지만 적기는 20여기나 되었는데 말이지. 거기다 불침 항공모함 핸더슨 비행장을 확실하게 지켜내려는 뜻도 있을거다, 분명.
  “예. 최소 중파 상태의 발 폭격기 3기는 진로를 북동쪽으로 돌렸고, 살아남은 제로기 2기는 그들을 호위하며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라슨 소령이 발견했던 후소 함대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추적해서 모조리 수장시키도록. 스크램블 했던 해군 기사단은 이쪽에서 알아서 하겠네.]
  “알겠습니다.”
  후두 마이크의 송신 버튼을 누르고 대답하면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연기를 흘리며 날아가는 3기의 폭격기와, 그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2기의 제로기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저 검은 연기 덕분에 몇 킬로미터나 떨어졌는데도 아주 잘 보인다.
  추적 하기 딱 좋은데.
  “전원, 지금부터 딱 1분 뒤 후퇴하는 적기를 추적한다. 혹시라도 놈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 구름 바로 아래에서 딱 붙어서 날거야. 계기 비행이 중요해지니까 다들 조심하고. 그리고 피탄당한 사람들 중에서 돌아갈 사람은 지금 보고하고 돌아가.”
  아까 제로센과의 교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7.7mm 기관총탄이 약하다고 해도, 기관총은 기관총. 많이 맞았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시나, 37 기사단 블랙캣 7기 중에서 3기가 이런 이유로 탈락해버렸다. 그들에게 외부 무장을 버리고 기지로 돌아갈 것을 지시한 나는 곧바로 편대를 짜고 적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남긴 검은색 연기를 찾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우리는 적의 항공모함을 끝장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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