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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6 - 솔로모니아 해전 Part 4


  4
  처참했다.
  긴급 출격을 한지 8분만에 전투 공역에 도착한 우리는 거의 별다른 저항 없이 그대로 들어온 후소 제국 공격기대 제 2파와 부딛힐 수 밖에 없었다. 함대 방공 임무를 맡고 있던 전투 초계기들이 제대로 임무를 달성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하늘에 떠있던 15기의 블랙캣은 18기의 제로센에게 말 그대로 유린당했다. 무겁고 둔중한 블랙캣으로 ‘비행 학교에서 배운대로’ 선회전을 걸어버리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 2번째 기회란 없었다. 운 좋게 5기의 블랙캣만이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아직 남은 적의 숫자는 11기. 하지만 5 대 11의 불리한 전세는 우리 기사단이 전장에 합류함과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우리 기사단 잔존기체 7기와 살아남은 항공모함 블랙캣 5기로 12 대 11이라는 구도가 나온 것이다.
  강철과 강철의 격돌.
  서로를 향해 헤드온으로 지나치며 기총을 난사했다. 하얀색과 푸른색이 엇갈리고, 하늘에는 불꽃과 검은 연기가 피어나며 사방에 금속 파편을 날렸다. 이미 전술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건너가버린 상태……라고 생각했지? 천만의 말씀. 나는 단순히 목표를 위해 강행 돌파한 것 뿐이라고.
  “유나 소대는 좌측! 사냐 공주는 우측! 서로 교대하면서 공격할거야! 사냐 공주 먼저 돌입! 나와 유나는 엄호한다!”
  [알았어요, 창민경!]
  [수신]
  유나 중위의 소대와 나와 나탈리, 이렇게 다섯기의 블랙캣이 하이요요와 로우요요를 반복하며 제로 전투기들과 정신없는 공중전을 하는 동안, 별다른 저항 없이 안전하게 엔터프라이즈로 접근해오던 적 공격대의 등짝을 사냐 공주가 덮쳤다. 슬쩍 고도를 올렸다가 다시 헤머헤드턴을 성공시키며 방향을 돌린 사냐 공주는 우월한 상대 고도를 사용해 후소 공격대 후미, 그러니까 뇌격기들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빠져나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제로기 2기가 살아남은 항공모함 전투 초계기들의 원형진에서 빠져나와 사냐 공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지만, 어림 없는 짓이지.
  “나탈리!”
  [응!]
  등을 쉽게 내줘버린 적기는 나와 나탈리에게 총알세례를 듬뿍 얻어받고 불타는 관짝이 되어 연기를 뿌리며 산화했다.
  [교대!]
  “유나!”
  [예!]
  적 공격 편대를 한바탕 헤집어놓고 온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이 귀환함과 동시에 이번에는 유나 중위의 소대가 적 공격대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첫 공격에서 뇌격기 3기와 급강하 폭격기 2기가 떨어진 덕분에 한참 당황한 적기들 사이로 이번에는 3기의 블랙캣이 난입했다. 공중제비와 루프를 그리며 적진을 유린하던 유나 주위의 소대는 뇌격기 6기와 급강하 폭격기 1기를 격추, 혹은 중파시키고 나와 나탈리 페어와 교대했다. 차례로 원을 그리며 한번 공격한 다음에 이탈하는 전술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었다. 호위하는 제로기도 막고, 우리의 목표인 적 공격대도 막았으니까. 원래 후소 공격대의 전력은 케이트 뇌격기 21기와 발 폭격기 14기. 뇌격기가 총 9기 탈락하고, 폭격기는 3기가 탈락해서 이제 남은 적기의 수는 23기.
  하지만 이제 남은 공간이 없었다.
  그래, 후소 공격대가 함대 방어진을 돌파하고 구축함들의 대공망에 들어온 것이다. 아군 대공포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좋지 않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아군 오사의 위험도 큰데다가 애시당초 구축함 방공망까지 왔다는 말은 이제 엔터프라이즈를 타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창민아! 뇌격기 먼저 처리하자!]
  좋은 아이디어야, 나탈리! 동의한다는 표시로 날개를 흔든 나는 열심히 후방기총을 쏴대며 우리를 쫒아내려는 급강하 폭격기들을 무시하고,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뇌격 코스에 진입하는 적 뇌격기대에 달라붙었다. 어차피 발 폭격기는 전방 기총이 없으니까, 등이야 무제한으로 ​노​출​시​켜​주​지​…​…​.​물​론​ 제로가 달라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조준간에 적기의 실루엣이 들어올 때 마다 짧게 방아쇠를 눌렀다. 투투퉁, 익숙한 진동과 함께 십수발의 예광탄이 꼬리르 끌며 푸른 하늘을 꿰뚫고 적기에게 날아가 박혔다. 그리고는 쾅! 대폭발. 일부러 캐노피 뒤쪽의 연료탱크를 노린 보람이 있었다. 나탈리도 느린 뇌격기 사냥 정도는 손쉽게 해내었고, 진형을 짠 채 우리에게 후방 기총으로 저항하던 남은 뇌격기 12기 중 8기가 불덩이가 된 채로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나머지 4기도 격렬한 대공포화에 크고작은 손상을 입고 이리저리 흩어져버렸다. 좋아, 그렇게 뇌격기 세력은 전부……
  아차……
  [차…창민경! 급강하 폭격기들이!]
  젠장, 가장 위협적인 뇌격기들에만 신경쓰다보니 급강하 폭격기들은 완전히 잊고 있었어! 이미 6000피트까지 낮추어진 고도에서 급강하 폭격기들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애시당초 18000피트라는 우월한 고도에서 급강하를 시작한 발 폭격기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엔터프라이즈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 정도? 거대한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구축함마냥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최초로 급강하했던 적기의 폭탄은 함미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곳에 물기둥을 일으키며 불발로 그쳤다. 두번째 폭탄도 좌현에서 적어도 십수미터 떨어진 곳에서 허무하게 폭발해버렸고. 문제는 세번째 폭탄이었다. 세번째 폭탄은 엔터프라이즈의 함미 갑판에 명중했다. 연약한 나무 갑판을 뚫고 들어간 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거대한 화염이 개방식 격납고의 셔터문 밖으로 뿜어져나왔다. 몸에 불이 붙은 수병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이 붙은 전투기들을 셔터 밖으로 밀어냈다. 검은 연기가 치솟하 시야를 가렸다. 다행인건 엔터프라이즈의 속도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일까? 우리의 방해를 뚫고 들어와 엔터프라이즈에 폭탄을 박아넣은 적 조종사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네번째로 내려오던 급강하 폭격기 뒤에 따라붙은 나는 적기가 가장 느린 시점, 그러니까 폭탄을 투하하기 직전에 좀의 날개를 날려버렸다. 투하는 커녕 조종조차 어렵게 된 발 폭격기는 필사적으로 기체를 회복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걸, 뭐, 어떻해? 그냥 빠지는 수밖에. 같이 강하해 내려오던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급강하 폭격기는 나와 나탈리,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의 합동 공격으로 폭탄을 일찍 투하하고 이탈해버렸으며, 덕분에 폭탄은 저 멀리멀리 날아가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폭발했다. 일곱번째 급강하 폭격기는 대공포탄에 직격, 불타는 관짝이 된 채로 추락했고, 나머지 2기의 급강하 폭격기는 신참이었는지 달려드는 우리와 선임들의 허무한 죽음을 보고 겁을 먹은건지 아니면 싸움하기 싫었는지, 꽁무니를 뺐다. 물론 우리도 즉각 추격해서 1기를 끝끝내 격추해냈지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나 중위 소대와 전투 초계기들과 전투를 벌이던 제로기들도 기수를 돌려 퇴각했다. 물론 우리 기사단은 추격 금지. 당장은 적을 추격하는 것 보다 날아오는 베티 폭격기들을 막는게 급하니까. 나는 추격을 끝까지 살아남은 3기의 전투 초계 블랙캣들에게 맡긴채 불타는 엔터프라이즈 상공을 지나 북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스러운 소식만 전해졌다.
  [적기는 37 기사단을 보자 곧바로 도주했다. 호위기가 없었기 때문에 추격한 37 기사단은 8기를 격추했다. 귀관도 즉시 귀환해서 보고를 올리고 추가 공격에 대비하도록!]
  반데그라프 소장의 명령이다.
  [어떻게 하게요?]
  “돌아가야지, 어떻게 하긴.”
  [추격 안해도 괜찮은거야?]
  나탈리의 질문에 잠깐 말문이 막힌다. 뭐, 정석적으로라면 추격하는게 옳겠지. 다만, 우리의 상태는 지금 그러기 힘들다는거다. 사방을 수색하며 공격할 거리를 찾던 아군 돈틀리스들과 블랙캣들은 결국 오늘 하루가 끝나는 시간까지 아무런 정보를 전달해주지 못했다. 아니, 전달은 커녕 연료만 잡아먹고 온 셈이지. 그런 상황에서 가뜩이나 없는 방공 전투기들을 추격에 내보냈다가 들어오는 추가타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걸 경계하는 것일거다, 반데그라프 소장은.
  그리고 이제는 시간도 시간이지. 벌써 오후 5시가 다 되가는걸. 슬슬 어둑어둑해지면 양쪽, 에르데 제국이나 후소 제국 모두 항공 전력은 사실상 봉인된다. 그 점을 가르쳐주듯 함재기들을 수용하기가 무섭게 11 기동부대와 16 기동부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사용하고 남은 물자들만 해변에 남긴 채 남쪽으로 전속력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건 남겨두고 떠나는 우리에게 사과하며 언제가 다시 올것을 기약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 그 뿐이었다.
  뭐, 조금 특별한 선물도 주고 갔지만.
  “부르셨습니까?”
  “아, 왔나. 이리 오게.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
  켈더프 중령이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나와 사냐 공주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우리에게 등을 지고 켈더프 중령과 한참 이야기 하던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어?
  “핫핫하! 오랜만이야, 소령! 아니, 이제는 임시지만 중령인가?”
  “소령으로도 편합니다, 중령님.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니야! 그대는 중령 계급으로도 부족하지 않나. 그정도 자부심은 갖고 어깨를 좀 펴게. 여기 그대 주인인 공주 전하도 계시지않는가.”
  “……예……”
  “공주 전하, 다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어서와요, 중령. 저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이렇게 친하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악수 있는 항공기사는 다름 아닌 맥스 레슬리 중령. 지난 매치포인트 해전때 최고의 순간에 나타나 돈틀리스로 후소 항공모함들을 수장시켜버린 영웅 중의 영웅,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과나카날에 몸소 나오셨다. 무슨 일?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모함이 엔터프라이즈로 변경되는 바람에 말이야. 눈에 보이는 아무 후소 배나 때려잡으려고 우리 기사단의 돈틀리스 8기와 블랙캣 4기로 공격 정찰을 나갔지. 그런데 아무것도 없더군. 쥐 죽은듯이 고요해.”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뭐, 별로 할 말은 없어.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인단말이야. 그래서 그냥 기름이나 축내고 돌아왔더니 모함은 가버렸더군.”
  “그건……”
  “알아, 마르쿠스. 과나카날에 오기 전에 그정도 교육은 받았다고. 다만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하여튼 자네는 예전부터……”
  투닥거리는 두사람을 바라보던 나는 언듯 뭔가 떠올랐다. 잠깐. 그러니까 엔터프라이즈가 떠나버린 덕분에 레슬리 중령이 핸더슨 비행장에 임시로 온거잖아? 그렇지? 그러면 우리랑 같이 싸운다는 말인가?
  “아아, 그렇게 되었어. 잘부탁하네. 중.령. 이제는 계급도 같으니까 그때처럼 같이 잘 해보자고!”
  꾸욱 꾸욱
  무언가 나를 누른다. 돌아보니 사냐 공주.
  “창민경, 그렇게 좋아요?”
  “응?”
  “굉장히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요.”
  “뭐, 좋지.
  제대로 된 공격기인 돈틀리스 8기에 새로 조립된 F4F-4블랙캣 4기. 작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전력 증강이었다. 아, 조금 홀가분하다. 이제는 더이상 블랙캣에 폭탄다는 짓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헥 하면 무거워져서 제대로 비행이 안된다고.
  ……이제와서 푸념해도 끝난 일이지만 말이야.
  “그래요? 그렇게 좋아요?”
  ……무슨 의미야, 방금 그건?
  “아아……. 창민경은 역시 저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는건가요. 어째서 팔팔한 남정네를 보고는 미소를 짓는데 저를 보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건가요……”
  “그런거 아니야.”
  “맹세할 수 있나요?”
  “당연하지!”
  “그럼 쓰다듬어주세요!”
  …..어떻게 그렇게 귀결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알았다. 해줄게. 조용히 사냐 공주의 쪽빛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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