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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8 - 문제아 하나 Part 3


  3
  “마르살리온 소위! 일격 이후 이탈해서 살아남은 적기를 경계해야죠! 어째서 달려드는건가요? 그대는 돌격하다가 죽고 싶은건가요? 만약 상대가 창민경이 아니라면 어쩌려고 했나요?”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사냐 공주의 힐난이 시작되었다. 우리 44 기사단 전용 텐트에서 디브리핑을 하기로 했지만, 어째 지금의 상황은 디브리핑이라기 보다는 그저 혼나는 자리다. 사냐 공주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지무지 화가 난 상태고. 아까 명령을 듣지 않은 것 치고는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물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마르살리온 소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건데, 마르살리온 소위의 전술, 어디에서 많이 본 적 있었으니까. 분명 첫번째 기동은 매우 정석적이었다. 일반적인 에너지 파이팅처럼 고고도에서 속도를 축적한 다음 내리 꽂히는 것. 하지만 그 다음 기도이 일반적인 붐앤줌 전법과 마르살리온 소위의 비행술을 가른다. 정석대로라면 즉시 기수를 들거나 완전히 급강하해서 악명높은 원형진 선회전에 말려드는 것을 회피한다. 마르살리온 소위의 움직임은 그의 정반대. 마르살리온 소위가 원형진에 말려드는게 아니라, 원형진이 마르살리온 소위에게 말려든다. 약간의 상대고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무조건적인 선회전 대신 블랙캣 특유의 엔진파워를 사용해 하이요요와 로우요요을 반복, 실속에 빠지지 않고 여유롭게 적기의 후방을 농락하는 전술. 웬지 낯이 익단 말이지…… 아, 그렇구나.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었어.
  잠깐, 설마 하이요요랑 로우요요가 뭔지 모른다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도데체 훈련소에서 뭘 배운거야?
  요요라는 기동 자체가 운동에너지를 급격하게 감소시켜 내 뒤의 적기를 오버슛 시키는거다. 그중 하이요요(High Speed YoYo)는 말 그대로 자신의 속도가 빠를 때 사용하는 공중기동. 내 뒤의 적기가 쫒아오면서 날카롭게 선회를 시작하면, 속도가 빠른 나는 당연히 더 넓은 선회반경을 그리게 된다. 선회전, 턴파이트에서는 작은 선회가 좋은 법, 그렇게 되었다가는 바로 하늘에서 제대할 수 있지. 그래서 나오는게 하이요요다. 적기를 앞에 두고 일부러 갑작스럽게 급상승을 하면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등가교환되면서 속도가 줄어든다. 그동안 적기가 지나쳐가면 다시 기수를 밑으로 눌러 속도를 회복, 적기의 꼬리를 물게되는거지. 이건 쫒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적기를 쫒아가면서 너무 속도가 빠르다 싶으면 하이 요요를 통해 상대고도를 획득하고 속도를 내줌으로서 최소한의 손실로 자신의 우위를 지킬 수 있는거다. 반면, 로우요요는 속도가 느릴때 사용한다. 고도와 속도를 등가교환해서, 기수를 내림으로서 속도를 얻고, 그 탄력을 이용해 다시 상승, 적의 꼬리를 잡는거지.
  이상, 질문 있나? 없지?
  사실 나도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사냐 공주가 굉장히 화나있거든. 슬슬 적당한 순간에 끊어서 구출해줘야겠다.
  “……우리 44 기사단은 긍지와 자긍심으로 뭉친 최고의 에이스 부대! 삶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는 기사 따위는 필요 없어요! 아무리 우리 기사단의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도 나, 사냐가 받아들일 수 없어요!”
  “……”
  마르살리온 소위는 아무런 말도, 변호도 없이 그저 땅만 바라보면서 조용히 사냐 공주의 화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죽어요! 우리 44 기사단에서 전사자라니, 있을 수 없어요.”
  ……그래. 우리 기사단원들은 하나의 가족. 소중한 가족을 잃는건 지난 매치포인트 해전에서의 끔찍한 기억으로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거기다 자랑스러운 우리 제국의 기사의 머릿속에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차있다니, 이것 또한 제국의 황녀로서 인정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마르살리온 소위 귀관은 본토로 귀환시킬거에요.”
  ​“​…​.​알​겠​습​…​.​예​?​”​
  처음으로, 마르살리온 소위가 반응을 보인다. 충격이라는 듯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싫다는 듯이 몸을 떨면서.
  “불만인가요?”
  “…….저….저는 싸울 수 있습니다!”
  “자살하려고 하는 기사에게 내어줄 항공기 따위는 우리 제국에 없어요. 안그래도 부족한 전투기를 자살 도구따위로 내어줄 수는 없으니까요.”
  “저….저는 딱히 자살하려고 하는게……”
  “자살하려는게 아니라고요? 진형을 무너뜨리고, 혼자서 돌진해서 원형진에 휘말리다가 격추당했는데, 그게 자살하려는게 아니라고요? 그건 무모한짓이에요. 적 항공기사들의 실력을 얕보는 건가요, 아니면 적 전투기의 실력을 얕보는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뭐지요?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이유는? 죽고 싶은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그건……”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라면 본토로 돌려보낼거에요. 우리 기사단에서 당신의 의미 없는 죽음 때문에 슬퍼할 사람이 하나 있으니까요.”
  ……근데 왜 다들 날 보는거지? 아니, 내가 슬퍼하지 않을거라는건 아닌데 말이야.
  “말을 하기 싫다면 내게는 보낸다는 선택지도 있어요. 안그래도 요즘 창민경 옆에 너무 많은 여자가 꼬이는거 같아서 화가 나려던 참인데요. 마음만 같아선 모조리 보내버리고 싶지만 창민경이 그걸 반대하니 어쩔 수 없지만요.”
  “본심 나왔습니다, 공주 전하.”
  ……사냐 공주 원래 저랬나?
  “그래서, 뭔가요? 대답해보세요.”
  “저…저는…….”
  슬슬 구해주자.
  “저기, 기사단장님?”
  텐트 안의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왜요?”
  윽! 이 박력. 마치 지금 방해하면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지만, 지금은 강행하자. 설마 사냐 공주가 나를 죽일일도 없느니와, 계속 이렇게 추궁당하면, 전입 첫날부터 이렇게 박살나면 마르살리온 소위가 불쌍하잖아.
  “화 다 풀었습니까?”
  “저, 화 안났거든요? 지금 굉장히 차분하거든요? 지금 안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창민경 주변에 자꾸 여자가 늘어나서 화난게 아니거든요? 절대, 절대 그런거 아니거든요? 거기다 그 호칭은 뭔가요? 언제부터 저를 그렇게 불렀다고?”
  ……그래 그래. 알았다. 그렇게 치자고. 거기다 내가 지금 이 호칭으로 부르는 이유는 순전히 네가 화나 있어서 그런거잖아. 비위 정도는 맞춰줄 수 있지.
  “아니, 별건 아니구요, 기사단장님께서 지금이 무슨 시간이지 착각하신 것 같아서 말이죠.”
  “뭐라고요? 그리고 그 기사단장이라는 말 좀 빼주세요! 언제부터 우리 사이가 그렇게 멀었나요?”
  쩍. 에르데 기사들의 입이 마치 턱 근육이 끊긴 것 마냥 아래로 뚝 떨어졌다. 이봐요, 공주님. 방금 그 말은 우리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잖아. 당장 취소해! 난 아직 애인도 없단 말이다!
  …..가 아니라, 지금은 마르살리온 소위 구출에 집중하자고.
  “아니, 지금은 마르살리온 소위를 혼내는 시간이 아니라, 디브리핑 시간이지않습니까. 기사단장님께서 모두에게 디브리핑을 해주셔야지 한사람만 혼내면 안되지요.”
  “창민경, 이건 혼내는게 아니라……”
  “지금 이건 공주전하의 제1기사가 아니라 44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으로서 ​말​씀​드​리​는​겁​니​다​.​”​
  적막이 텐트 안을 휘감는다. 내 말에 삐쳤는지 사냐 공주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나와 마르살리온 소위를 번갈아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르살리온 소위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고. 나? 멀쩡하다. 사냐 공주가 설마 나를 죽이겠어?
  ……설마가 사람을 잡지는 않겠지?
  “……흥! 몰라요, 마음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대신 나한테 그 호칭을 붙이지 마세요. 얼마나 어색한지 알아요? 우리 둘 사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딱딱했나요?”
  “……방금 그 발언은 좀 ​자​제​해​주​셨​으​면​…​…​”​
  “아, 시끄러워요, 창민경! 나 이제부터 디브리핑할거에요, 하면 됐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사냐 공주도 은근히 귀엽다. 사실 이건 투정이라고 보기는 조금 뭣하지만 말이야.
  “그럼 나는 잠깐 마르살리온 소위랑 얘기하고 올께. 디브리핑 잘 부탁해”
  “에? 창민경이랑 마르살리온 소위 둘이서만요? 단 둘이서?”
  “반대! 난 반대!”
  ……나탈리, 왜 거기서 끼어들어서 상황을 악화시키냐?
  “저도 같이 갈래요!”
  “안돼. 넌 디브리핑해야지.”
  “하…하지만!!”
  “자, 가자.”
  얼굴을 붉히며 길길이 날뛰는 사냐 공주와 나탈리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준 다음, 나는 아직도 벌벌 떨고있는 마르살리온 소위를 데리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마르살리온 소위 몸에 손대면 절대 용서 안할테니까요!”
  “……사냐, 창민이 저 바보가 과연 그럴까?”
  “아……”
  그런짓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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