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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8 - 문제아 하나 Part 4


  마르살리온 소위의 손을 잡아 텐트 밖으로 끌고 나온 나는 곧바로 격납고로 향했다. 아무래도 다른사람들이 있는데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단 둘이 있는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 마르살리온 소위는 사냐 공주에게 혼이나 풀이 죽은 모양이다. 고개를 숙여져있고, 눈에는 생기가 없고, 몸에도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무슨 걷는 인형마냥 내게 끌려온 마르살리온 소위와 그런 마르살리온 소위를 끌고온 나를 테스텔이 격납고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오세요 주인니……”
  “안녕, 테스텔. 정비는 다 끝난거야?”
  “예? 아, 예! 그럼요.”
  어디다 신경을 판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이 조금 늦다.
  “저기…… 하실거라면 이곳은 조금 별로지 않나요?”
  “응?”
  “아니, 정 여기서 하시고 싶다면 간이 침대정도야 금방 갖고 올 수 있지만, 여기 보는 눈이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여기도 보는 눈이 많다고? 다른데로 옮길까? 에이, 상관 없겠지. 그냥 이야기만 할건데. 조용히 구석진데 앉아서 이야기하면 상관 없을거다.
  “아니. 괜찮은데.”
  ​“​에​…​그​…​.​그​런​가​요​?​ 그쪽은 처음으로 보이는데……”
  “괜찮아. 나도 이런거 처음이니까.”
  “예? 그…그런가요? 그…그러면 저도 같이……”
  같이? 뭘? 이걸 테스텔 네가 듣는다고 해서 별로 도움될건 아닌데.
  “예? 듣다니요? 그….. 하려던거 아닌가요?”
  “뭐? 뭘 말이야?”
  “그…… 아후, 숙녀에게 그런 야한걸 입에 담게하다니, 실례에요, 주인님!”
  “……난 이녀석이랑 얘기할 장소 찾는건데?”
  “……”
  하얗던 테스텔의 피부가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어이, 괜찮냐? 터질것 같은데?
  “……저기, 괜찮아?”
  툭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닙​니​다​~​”​
  내가 살짝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버린다. 뭐야. 또 멋대로 이상한 상상이나 했구나, 테스텔. 뭐,. 하는수 없지. 아무 의자나 대충 집어오는 수 밖에. 눈에 들어온 간의 의자 2개를 주워온 나는 마르살리온 소위를 앉히고, 나도 앞에 앉았다. 아직도 사냐 공주에게 혼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풀이 죽어있는 마르살리온 소위를 보니 살짝 장난끼가 일었다. 초점없는 눈가에 손을 흔들어서 반응이 없는걸 확인한 나는 두손을 마르살리온 소위 앞으로 가져간다음…….
  짝!
  소리나게 쳤다.
  “꺄아아악!”
  퍽
  “꾸에엑?”
  …..그리고 맞았습니다.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자세하게는 못봤지만, 마르살리온 소위의 주먹이 내질러져있다. 저거 왜 이렇게 아프냐? 저 체격에서 나올만한 힘은 아닌데. 꼴사납게 나자빠진 나를 마르살리온 소위가 봤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놀랬어?”
  “헉!”
  굳어버렸다. 그리고 1초후, 간의 의자에서 내려온 마르살리온 소위가 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제​가​잘​못​했​습​니​다​다​시​는​그​러​지​않​겠​습​니​다​한​번​만​용​서​해​주​세​요​다​음​부​터​는​잘​할​게​요​아​직​완​성​하​지​못​했​단​말​이​에​요​벌​써​돌​아​가​면​안​돼​요​아​직​날​고​싶​어​요​제​발​돌​아​가​지​않​게​해​주​세​요​뭐​든​지​다​할​게​요​”​
  ……왜이래?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힉!”
  그리고는 또 놀랜다. 은근히 새가슴이네, 마르살리온 소위.
  “진정해. 안잡아먹으니까.”
  끄덕끄덕
  “일단 앉자. 일어설 수 있지?”
  끄덕끄덕
  일어나서 자리에 앉았다. 맞은 볼이 조금 욱신거리지만 별 수 있나, 내가 장난친 결과인데. 인과응보지, 뭐.
  “소위. 내 이름 알고 있어?”
  끄덕끄덕
  “내가 누구인지도 알겠네?”
  “고….공주님 애인……”
  ……애인 아닌데. 고문관인데. 뭐야, 그 눈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눈이잖아. 이거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하…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분명……”
  “소문은 믿지마. 다 거짓이니까. 알았어?”
  끄덕끄덕
  나참. 누구야, 사냐 공주랑 내가 연애중이라고 퍼뜨린 고얀놈이. 난 애인은 커녕 여자친구도 없는 몸이거든? 고독의 솔로거든? 공돌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겨? 안생겨요. 여러분 그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지난 십수년간 어둠의 다크니스에서 고독의 솔리터리를 곱씹어온 내게 이제와서 여자가 생긴다고?
  말.도.안.돼.
  더군다나 이런 소문이 나면 사냐 공주에게도 좋지 않다. 정치적으로. 안그래도 권력투쟁에서 밀려버린 사냐 공주다. 에르데 제국과 필그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는데, 그 상황에서 필그림 출신 기사와 염문설? 사냐 공주를 산채로 매장해버릴 일 있나. 절대 안되지.
  그런데 왜 사냐 공주는 아무말이 없지? 모르는건가? 나중에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지금은 눈 앞에 있는 의문부터 해결하자.
  “귀관에게 물어볼게 몇가지 있는데 말이야, 물어봐도 돼?”
  도리도리
  “대답 안할거야?”
  끄덕끄덕
  “내가 사냐 공주랑 협상할 수 있는거 알지?”
  끄덕끄덕
  “지금 사냐 공주는 널 본토로 보내버리려는 것 같은데…… 그러고 싶어?”
  도리도리.
  “그래? 그럼 소위, 내가 하는 말 잘 들으면 본토로 귀국 안해도 되는데……”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도 없다가 그 한마디에 반짝 반응한다. 반응을 보이는건 좋은데, 어째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제게 목숨 빼고 어떠한 것을 요구하셔도 됩니다. 몸도, 마음도 전부 바치겠습니다. 그러니께 제발, 제발 여기에 남아있게 해주세요. 날 수 있게 해주세요!”
  ……간곡하게 부탁하는건 알겠는데 손은 놔주라. 거기다 몸도 마음도 바치겠다니, 그건 또 뭐야?
  “필요 없어.”
  “에?”
  콰과광하는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마르살리온 소위의 얼굴에 떠올랐다. 은근히 놀려멋는 맛이 있네, 마르살리온 소위.
  “이….이래뵈도 자신 있습니다. 모..몸은 어리지만 오히려 요즘은 로리가 대세……”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아, 머리 아프네……다들 오해하는거 같은데, 나 그렇게 변태 아니야.
  “내가 원하는건 내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 몇가지, 그리고 추후 전투에서 내 명령에 따를것. 그거면 충분해.”
  “저…저는 자유롭게……”
  “일단 듣고 결정하는게 어때?”
  ​“​아​…​알​겠​습​니​다​.​”​
  좋아, 일단 진정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귀관의 비행방식에 대해 딱 하나 질문할거야. 그거에 대해서 숨김 없이 말해줬으면 해. 내가 생각하는 대답과 귀관의 대답이 일치하면 나는 귀관의 자유 행동을 보장하지. 이런 조건은 어때?”
  ​“​…​…​알​겠​습​니​다​.​”​
  납득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살리온 소위가 대답했다. 나는 곧바로 손가락 하나를 펴보이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귀관의 기동에 대해서야. 귀관의 기동은 조금 뭐랄까,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마르살리온 소위의 기동 중간중간, 블랙캣이 끔찍하게 느려졌던 순간이 있었다. 특히 방향을 전환할 때. 거의 실속에 가까울 정도로 느려진 마르살리온 소위의 블랙캣은 플랩을 활짝 펼친 상태로 거의 ‘두둥실 떠있는’ 상태였다. 아마 엔진 추력도 줄였겠지. 물론 느려지면 방향 전환이 쉬워지지만, 반대로 운동에너지를 버리는 격이니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니다. 특히 선회전에 강한 제로 전투기를 상대로는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 자네가 죽으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그렇게 무모한 기동을 하는 이유는 뭐지?”
  물론 난 답은 알고 있다. 원형진을 부수려면 저런 저속 기동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대부분이 그 전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저속이라 위험하기 때문이다. 너무 저속이면 적에게서 쉽게 달아날 수 없고, 실속에 빠질 위험도 커진다. 천재가 아니라면 그런 기동은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리고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미친 짓을 해낸 전설이 하나 있었지만. 내가 궁금한건 마르살리온 소위의 의중이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기동을 한건가?
  “……저는……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목숨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실력에 대한 과신이나 맹신은 좋지 않아.”
  “제 실력을 믿은게 아닙니다. 블랙캣을 믿은겁니다. 계속해서 실험해왔으니까, 계속해서 확인해왔으니까 작은 진동, 작은 변화가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믿은겁니다.”
  “블랙캣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려 했다는 말이지?”
  끄덕
  “약속과는 조금 다르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 이짓을 하면서, 죽지 않을 자신이 있나?”
  “예?”
  “귀관의 현재 기동은 위험하다. 아무리 귀관이 블랙캣의 성능을 잘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만약의 경우가 있는 법이니까. 사냐…..가 아니라 공주 전하가 말한 것 처럼, 우리 기사단은 더이상 기사단원을 잃고 싶지 않아. 내게 약속할 수 있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끄덕
  만족할만한 대답이다.
  “좋아. 그럼 계약 확인. 귀관이 원하는대로 하게 해줄게. 사냐 공주에 대한 걱정은 내게 맡기고 귀관은 귀관이 원하는 비행을 마음껏 하도록. 나중에 우리 필그림 전술집도 갖다줄 테니까 그것도 한번 읽어보고.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 파트를 읽어보면 귀관이 원하는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필그림 항공 전술집은 분명 내 트렁크 어딘가에 처박혀있으니까 찾으러 가야 했거든. 갑작스러운 내 태도의 변화에 적응이 안되는건지, 마르살리온 소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끄​…​끝​난​겁​니​까​?​”​
  “어. 가봐도 좋아. 사냐 공주에게는 내가 말해놓을테니까.”
  “……”
  “아까 약속한거잖아? 내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니까 반드시 지켜질거야.”
  “저기……”
  “응?”
  등을 돌려 나가려던 나를 붙잡았다. 부끄러운건지 무서운건지 옷깃만 간신히 잡는 수준이었지만.
  “왜….. 이런걸 해주시는건가요?”
  “뭘?”
  “제 인사파일에 적힌 말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게 따뜻한 말을 해준 분은 단 한사람도 없었어요. 언제나 제게 너무 성급하다, 생각 없다, 자살할 생각이냐, 독단적이다라는 말만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런데 왜 중령님은 제게 이런 말을 해주시는거죠?”
  “우선 난 중령이 아니라 소령이야. 기사단장보다 높은 부기사단장이라니, 그럴 수가 없잖아? 이건 임시 중령 계급이야. 아직 반납하지는 않았지만.”
  “……”
  “그리고, 누구를 도와주는데 이유가 필요했나? 언제부터? 귀관이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의심하든 믿는 난 도와주기로 결정한 이상 귀관을 최대한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귀관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내 이름을 걸고 넘어가면 돼.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그거면 됐지?”
  사실 그렇게 된건 순전히 사냐 공주 때문이지만. 사냐 공주는 원수나 다름없는 나를 용서하고 그 쓰라린 기억을 내색조차 하지 않은 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간다. 철천지 원수가 자신의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아가면서. 그런 내가 사냐 공주에게 보답해줄 수 있는건 확실한 사냐 공주의 편을 만들어주는 것. 많이도 필요 없다. 최소한 사냐 공주가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지 못할 정도, 최소한 사냐 공주가 무시당하면서 살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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