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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28.5 발렌타인 특전 - 하룻밤의 꿈은 허락 되는 것이군요 Part 1


  1
  “으음……”
  후텁지근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지나간다. 본래 새벽 공기라는 것은 조금 쌀쌀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있어야 하거늘, 오늘의 공기는 기분 상하게도 덥고 후텁지근하다. 덕분에 엇그제 빨았던 회색 생활복은 또다시 땀과 더운 공기에 젖어 축축해져버렸다.
  ……짜증난다.
  궤변이라면 또 궤변이지만, 이건 나에게 있어서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다. 아침, 하다못해 새벽의 공기 만큼은 상쾌하고 시원할 것. 지난 6월 말에 과나카날에 배치된 이후로 무려 8개월동안이나 그곳에서 톱밥처럼 천천히 썩어야 했던 나로서는 절대 조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더위 속에서 개고생을 하고 지난 2월 1일, 간신히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 빅토리아 대륙으로 돌아온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쾌적하고 시원한 환경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싶었다. 솔직히 그렇잖아? 그런 지옥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왔는데 그정도의 일탈은 허용해줄 수 있는거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런 일 따위는 없었다. 매일매일이 보고, 보고, 보고에, 전투 보고서 제출, 전투에서 사용했던 탄약, 장비 목록 제출 등등, 온갖 서류 작업 투성이였다. 평소라면 에리카 소령이 도맡아 했을 작업이었지만, 참 고맙게도 그녀가 과나카날이라는 녹색 지옥 속에서 열심히 끝내놓은 서류들은 수송선이 빅토리아 시티 앞바다에서 격침되면서 다 같이 꼬르륵, 가라앉아버렸다. 덕분에 우리는 후소 제국에 대한 새로운 분노로 이를 박박 갈면서 모두들 다 같이 서류 작업에 매달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응, 그래, 짜증난다고. 나중에 전선으로 돌아가면 가만 안둘꺼니까.
  어쨌거나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덥다는 사실에 기분이 끔찍하게 나빠지지만, 별 수 있나? 날시는 내가 어쩔 수 있는게 아닌걸. 그냥 침대에 누워 뒹굴거릴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어차피 깨버린 잠,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 짜증나, 정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간단하게 아침 운동이나 하지, 뭐.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바로 빅토리아 시티의 야구장이다. 해병 1사단의 해병대원들은 경기장 관람석에서 모포만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 우리는 ‘귀하신 몸들’이니 당연히 선수 대기실을 배정 받았고. 오히려 생각해보면 밖에서 자는게 훨씬 시원할 것 같기는 하지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구보를 위해 나온 나는 쓸데없이 쏟아질 시선들을 생각하며 소리없이 스리슬쩍 나왔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해병대원들은 전부 경기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짧은 머리의 금발 여군을 보면서……
  “우오오오! 몸매 끝내준다!”
  “역시나 사파이어의 영주! 영주라면 몸매도 좋아야하는건가?”
  “거기다 똑똑하잖아?”
  “얼굴도 예뻐!”
  “전투도 잘해! 무적이야!”
  “오오오옷! 역시 제국 최강의 미녀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아!”
  ……확실히,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 상으로도 저 여군인의 몸매는 확연하게 들여다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나이스 바디에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조각 같은 몸매. 남자 해병대원들의 혼이 담긴 찬사가 다른 여군들의 여린 가슴을 찌르고 피투성이로 만들 정도였다. 이미 몇몇 여자 해병대원들은 두 다리를 모으고 팔을 두른 다음 얼굴을 처박고 좌절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뭐, 이해는 한다. 이렇게 어렴풋이 보았을 때는 분명 저런 여자랑 데이트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해버렸으니까. 아니, 그게, 내가 여자를 밝힌다기 보다는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거다, 느낌이.
  실제로 봤을때는 그런 생각이 발할라로 날아가버렸지만.
  “일어나셨습니까, 사령관님?”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의 이름은 에리카 사파이어 소령이었다. 젠장할, 짧은 금발이면 눈치를 미리 챘어야하거늘, 뭐하는거냐, 나란 놈은?
  “응? 으응. 좋은 아침이야. 아침부터 뭐해?”
  “아침 구보중입니다만?”
  “그….그건 알겠는데, 왜 꼭두새벽부터 이러고 있냐는건데……?”
  “이게 제 원래 일과입니다.”
  새벽 3시가?
  “오늘은 30분 지각입니다.”
  ​몰​라​뭐​야​이​거​무​서​워​…​…​ 알고보니 에리카 소령은 전부터 이렇게 일찍 일어나 사냐 공주의 뒷바라지를 해왔다고 한다. 그녀 왈 “여자의 아침은 준비가 많은 법이니까요.” 뭐를 준비한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건만, 그녀는 그렇게만 말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에리카 소령이 사냐 공주보다 조금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둘다 꽤 오래 살지 않았나? 아마 한 삼백 몇살 정도…....? 그러면 그 삼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렇게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대단하네!
  쾅!
  “……숙녀 앞에서 나이 이야기를 꺼내는건 목숨을 헌납하겠다는 말입니다. 주의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아, 그거요? 오늘 에리카 한살 더 먹어서 그랬을거에요.”
  아침 근무를 위해…..라기 보다는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보고서 파일들을 정리하고 작성하기 위해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사냐 공주에게 에리카 소령의 갑작스러운 차가운 태도에 슬쩍 물어보았고,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What? 오늘이 에리카 소령 생일이라고요? 오늘? 2월 14일에?
  “예. 2월 14일, 오늘이 맞아요.”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준거야. 미리 알았다면 작은 생일파티라도 할 수 있었잖아.
  “데헷. 일이 너무 많아서 그만……”
  “……네 전속 부관 정도는 챙겨야 하는거 아니냐?”
  “에리카는 전속 부관이 아니라 친구니까요.”
  “……그러면 더더욱 챙겨야 할 이유가 늘어나는데……?”
  “……데헷?”
  데헷, 따위로 때우려 들지 말라고. 그런거 해도 안귀여우니…… 으음, 귀엽기는 하지만서도 말이야. 여러모로 곤란해진다고. 나라던가 나라던가 나라던가.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급하게 그걸 생각해내곤 창민경에게 한마디 할 생각이었는데요.”
  “응? 뭐?”
  “오늘 하루, 애인이 되어 주세요.”
  “싫어.”
  생각할 건덕지도 없이 거절했다. 내가 왜? 뭐하러 너랑 애인 행세를 해야 하냐?
  “그….그런! 어떻게 남자가 저처럼 깜찍한 여자에게 ‘하루만 애인이 되어줘’라는 말을 듣고도 멀쩡할 수가 있나요? 지금쯤이면 발정난 개처럼 달려들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네가 여자냐?”
  “애지.
  “이이이이익!”
  “……으아아악! 미안해! 발로 차지는 말라고, 그렇다고!”
  “쳇. 그런 쓸데없는 말로 상처를 주는 창민경은 맞아도 싸요. 주인에게 대들다니, 못된 버른은 또 어디에서 배워왔나요? 37 기사단이죠? 그렇죠? 역시 그쪽이죠?”
  ……오늘따라 텐션이 높네, 우리 공주님.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제가 아니라 에리카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는거에요.”
  “응 그래…… 뭐?”
  “에리카는 언제나 애인이랑 데이트 하는걸 꿈꿨거든요. 가장 하고 싶어하는게 애인이랑 단 둘이서 비행하는거? 물론 영주에 군인이라서 남자는 커녕 애인도 없었지만요.”
  조금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사냐 공주가 나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고로 명령이에요, 창민경. 오늘 하루 당신은 겉으로는 강철의 여인, 속으로는 연약한 소녀인 에리카 사파이어의 애인! 외강내유의 그녀를 위해 데이트를 하세요!”
  하하하하하. 지금 내가 뭘 잘못들었나? 농담이지? 그렇지? 안그래도 할거 많다고, 거기에 더 일을 추가하면 어쩌자는 말이야?
  “부관에게 그정도 해줄 수는 있잖아요? 그동안 그렇게 도움을 받아놓고 날로 먹을 생각인가요? 그렇게 안봤는데요, 창민경……”
  “……”
  “창민경에게 다른 능력이 있다거나 돈이 많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창민경이 잘하는건 쌈박질 뿐이니까.”
  “……그 쌈박질 밖에 못하는 녀석이 네 제1기사라는 사실은 잊어버린거냐?”
  “……그러니까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 갚으라고요!”
  무시하고 있구만, 무시하고 있어!
  아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어째서 일이 맨날 이렇게 되는거냐고…… 그나마 지금까지는 별탈 없었던 에리카 소령과의 관계가 이번 일로 대격변, 혼란, 혼돈과 마주할 것 같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전~혀 좋지 않은 사실이다. 안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신경써야할 건덕지가 늘어나는 셈이니까. 아픈 머리 때문에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꾸욱꾸욱 누르던 나는 사냐 공주가 말한 마지막 한마디를 놓쳐버렸다.
  “……에리카라면 저도 괜찮으니까요.
 
  2
  “……”
  “그….그럼 가볼까?”
  “예? 예….예에……”
  뭐, 그래서 이렇게 어이없이 나와 에리카 소령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가 시작되어 버렸다. 이걸 데이트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치더라도 조금 불편하기는 하다. 에리카 소령은 우리가 나선 경기장, 정확하게는 작업해야할 서류들이 잔뜩 쌓여있는 사무실을 자꾸 돌아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돌아간다거나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아까 사냐 공주가 ‘공주’로서 자신의 ‘신하’에게 ‘명령’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비번에서 제외야, 에리카. 오늘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돌아오면 나 정말 화낼테니까, 각오하라고?”
  차마 주인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울며 겨자먹기로 에리카 소령은 부대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색하군요.”
  “그러게. 갑자기 이렇게 해도 말이지.”
  “예. 어차피 일년 더 늙는건데 이런거 축하 따위 해 봐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소령이 태어난 날이고……”
  “이렇게 하루하루 나이가 먹어갈수록 주름 생기고 살 푸석푸석해지는걸 모르십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나​섰​습​니​다​…​…​그​래​도​ 마지막으로 할 말 하나만 할께요……
  “괜찮아. 에리카는 아직 예쁜걸!”
  왜 사냐 공주가 우리랑 같이 있냐는 거다! 분명우리더러 데이트를 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따라오는거야?
  “제가 저에게 소중한 에리카를 창민경과 단둘이 내버려 둘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같이 축하해주고 싶은걸요.”
  “……”
  그렇게 나오면 또 내가 할말이 없지.
  “그리고 발정난 창민경과 에리카를 같이 놔둘 정도로 제가 부주의한 사람은 아니고요.”
  “발정 안났거든!”
  쳇, 취소다. 여하튼 진지하게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니까…… 뭐, 그렇게 따라오고 싶다면야 나는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상관 없지, 에리카?”
  “예. 어차피 저도 전하와 함께 있는게 더 좋으니까요.”
  ……방금 그 말, 가슴이 아픈데요, 에리카 소령.
  “자, 그럼 우선 영화나 보러 갈까? 내가 벌써 다 말해놨으니까 몸만 가면 되는데?”
  ……저기, 일딴 이거 데이트 맞지? 그렇지?
 
  그 뒤로 8시간, 8시간 동안 나와 에리카 소령은 사냐 공주에게 끌려다녔다. 영화관에서 무슨 말도 안되는 내용을 담은 전시 선전영화, ‘에도 상공 30초’를 상영하고 있었던 덕분에 아일린 공주와의 머리 아픈 추억을 다시 새록새록 뇌에 각인시켜야만 했고, 그 다음에는 쇼핑을 간답시고 여성 옷 매장에 끌려가 팔자에도 맞지 않는 패션 심사를 해야만 했다. 거기다 나를 수치심으로 죽이고 싶은건지 에리카 소령을 수치심으로 죽이고 싶은건지 아니면 아예 생각이 없는건지(…) 나와 에리카 소령을 속옷 매장으로 데리고 가서는 온갖 속옷을 꺼내입어보며 내게 의견과 자문(…)을 구했다. 왜? 고문관이라서.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냐 공주가 고문관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그 고문 말고 이 고문 말이야.
  “에리카, 어때? 오랜만에 나오니까 재미있지?”
  “전하와 같이 다녀서 즐거웠습니다.”
  “아니, 나 말고~ 이렇게 놀러다닌게 재미있었냐고.”
  “글쎄요.”
  모호한 표정을 짓는 에리카 소령.
  “아무래도 제가 해야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나온게 마음에 무척 걸리는군요.”
  “우으, 에리카는 무슨 일 중독자 같아.”
  “어렸을 때 부터 이 일을 해왔으니까요.”
  하긴, 수백년간 연륜이 쌓이면…… 죄송합니다.
  “뭐, 에리카의 성실성은 나도 잘 아니까.”
  “과찬이십니다, 전하.”
  “그럼, 이제 밥만 먹고 들어갈까?”
  어쨌건, 장장 8시간에 걸친 ‘에리카 소령의 생일을 맞은 특별한 일탈’ 사건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부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우리는 시내의 한 음석점으로 들어갔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전통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라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냐 공주가 가자고 했으니 나는 아무말 없이 잠자코 들어갔다.
  ……절대 지쳐서 그런게 아니다.
  ​“​피​곤​해​보​이​시​네​요​,​ 사령관님.”
  “응? 으응. 뭐, 어쩔 수 없잖아. 사냐 공주가 저렇게 웃는 낯으로 있는것도 오랜만이고 말이지.”
  “후훗, 역시 그런가요?”
  지난 몇달동안을 전선 최고의 격전지에서 버텨야만 했던 사냐 공주다. 체력이 좋은 나도 힘든데, 사냐 공주가 힘들지 않다는건 정말 거짓말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사냐 공주가 오늘처럼 마음편히 웃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뭐, 에리카 소령의 생일 덕분에 나온거니까. 그건 감사하게 생각해.”
  ​“​…​…​놀​리​시​는​거​죠​,​ 지금? 그러니까 때려도 되는거죠?”
  ……나이와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구나, 에리카 소령. 하지만 웬지 물어보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 에리카. 오늘 생일이니까 선물 줘야지.”
  “예?”
  어리둥절해하는 에리카 소령의 앞으로 사냐 공주가 포장된 큰 상자를 내밀었다. 삐뚤빼뚤, 서툰 솜씨로 붙혀져 있는 포장지들이었지만, 그건 분명 에리카 소령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을거다. 공주가 직접 포장해서 준 선물이라니, 얼마나 자주 받을 수 있을까?
  “자, 생일 선물. 생일 축하해!”
  “아니, 저….. 그……”
  “괜찮아. 이건 그동안 에리카가 나에게 해준 것에대한 내 나름의 감사 표시니까. 부담갖지 말라고. 그것보다, 빨리 꺼내보는게 어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에리카 소령에게 말하는 사냐 공주. 그녀의 눈빛에 져버린 채 조금 발그레 해진 볼을 숨기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에리카 소령. 그런 두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공주와 귀족, 아니면 주인과 영주 등의 관계가 아니었다. 이 두사람은마치 친자매처럼, 아니, 어쩌면 친자매보다 더더욱 단단한 끈으로 묶여져 있었다.
  ​“​이​…​…​이​건​…​…​.​”​
  “음, 지난번에 내가 에리카 시계 망가졌다고, 그래서 새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면서 그랬잖아? 그래서 새로 산거야. 에리카에게 꼭 필요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완전히 고개를 숙여버린 에리카 소령의 태도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긴, 이 세상의 어떤 공주가 자기 부하가 지나가면서 한 말을 귀담아듣고 그걸 실천할 생각을 할까?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걸 사냐 공주는 쉽게 해냈다. 그만큼, 에리카 소령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는거겠지.
  “아, 창민경의 선물은 나중에 클라이막스에서 줄거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아마 그게 훨~씬 더 좋을거야.”
  “……?”
  “그렇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령관님.”
  어이, 이봐, 잠깐만, 지금 뭐라고? 선물? 난 딱히 준비 못했는데? 아니, 미리 알았다면 했지만 내가 에리카 소령의 생일을 안건 겨우 15시간 전이거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준비하라고?
  하지만 나는 말들을 바깥으로 꺼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냐 공주가 나를 노려보면서 ‘빨리 사오지 않으면 ​능​지​처​참​해​버​릴​거​에​요​.​ 그건 창민경이라도 예외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눈빛으로.
  “피시 앤 칩스 3개 나왔습니다”
  “아하하하하……. 그….그럼 나는 잠깐만 실례……”
  크흑! 음식을 앞에두고 후퇴하다니, 식전무퇴라는 말도 있어늘…… 뭐,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에리카 소령의 선물을 사와야 하니까.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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