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ie 028.5 발렌타인 특전 - 하룻밤의 꿈은 허락 되는 것이군요 Part 2
3
결국 나는 그 피시 앤드 칩스라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면 별다른 후회는 없다. 사냐 공주와 에리카 소령이 ‘분명 맛있다고 했는데……’라거나 ‘다시는 그런 기름진 음식 먹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걸 보면 분명 내가 먹지 않길 잘한 것이다. 등가죽과 뱃가죽이 서로 합체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지만, 그래도 에리카 소령의 선물을 사올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선물? 지금 주머니 않에 고이 모셔 놓았다. 뭐냐고? 메롱, 안 알려주지.
음식점에서 나온 우리를, 정확하게는 나와 에리카 소령을 사냐 공주가 데리고 간 곳은 바로 해변가. 벌서 수평선에 그 끝트머리를 걸친 붉은 해는 점점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노을의 노란빛 햇살이 하늘을 주황색으로 색칠했다. 그리고 언제 준비해 놓았는지 한대의 붉은색 수상기가 물위에 둥둥 떠있었다.
“짜잔~ 어때? 노을 멋있지?”
“……예. 멋있네요.”
“흐흥. 내가 여기 알아보려고 꽤나 발품팔면서 돌아다녔다고? 그런데 여기만큼 멋진 곳은 없더라고?”
……근 몇일간 저녁마다 놀러나간게 이거 때문이었냐…… 뭐, 에리카 소령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니 뭐 어쩔 수 없지. 거기다 이미 지난일이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흐흥, 아직 안끝났는데? 아직 감사할거 남았는……”
실실 웃으면서 에리카 소령에게 말하던 사냐 공주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굳었다. 그리고 나도 굳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사륜구동차를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냐고?
“유….유나……”
“일을 그렇게 많이 남겨두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빨리빨리 결제받고 상부에 넘겨도 쉽지 않을 판에!”
“으……. 그거 서류에 싸인하는거 힘들단 말이야……”
“그러면 미리미리 해놓던가요, 계속 저녁시간마다 빼먹으셔서 이렇게 늦어진거 아닙니까! 소령님과 사령관님 두분 다 안계셔서 안그래도 할일이 많아 죽겠는데! 빨리 오세요!”
“조….조금만 더….. 아야야야야! 미안! 그냥 내가 내발로 걸어 갈게….! 아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야생 유나 대위가 사냐 공주의 귀를 잡고 질질 끌고 가버렸다. 마치 우리는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대로 사냐 공주를 끌고 가버렸다. 일명, 데이트의 방해꾼을 제거해버리기 작전…..인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데이트를 딱히 하던 것도 아니었고. 뭐, 별 상관 없으려나.
……에리카 소령, 슬쩍슬쩍 수상기를 보고 있어. 복엽기 아래 플로트 달린 구식 기체이지만 워낙 마음에 드나보다. 하긴, 가장 하고싶다는게 애인이랑 같이 비행하는거라는데.
……애인은 아니지만 해줘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나와 사냐 공주를 가장 많이 도와준, 가장 큰 조력자니까.
“저기, 소령?”
“예, 사령관님?”
“저거, 타볼까? 같이?”
“예?”
살짝 당황한듯 한 목소리. 갑자기 내가 이런 말을 꺼내니까 황당한 듯 하다. 아니, 황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쌍치 못한 말에 놀랐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에리카 소령의 손을 붙잡은 다음 수상기를 향해 다가갔다. 지키고 있던 해병은 별다른 말 없이 알아서 경례를 하고는 가버렸다.
……잠깐, 이거 설마 사냐 공주의 함정이라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응, 아닐거야. 설마 그럴리가. 그래, 아니어야해(…).
“빨리 타.”
“하….하지만 이건 우리 물건도 아니고……”
“에르데 제국 군용기잖아? 그리고 우리는 군인이잖아? 사냐 공주가 알아서 책임 지겠지.”
최고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사냐 공주니까.
“공주 전하에게 그런걸 덮어 씌울 수는……”
“한번쯤은 괜찮을거야.”
왜냐하면 어차피 내가 다 해결하고 변명하게 되어 있거든. 결국에는 내가 다 해야하는 일들이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소령? 걱정하지말고 빨리 타. 내 말에 넘어간건지, 아니면 그냥 포기를 한건지 순순히 붉은 뒷자석에 앉는 에리카 소령. 그녀가 좌석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엔진에 시동을 걸고, 내 몸과 계기를 점검한 다음 주저 없이 스로틀 레버를 앞으로 쭈욱 밀었다. 동체 아래의 플로트가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흰 거품을 만들어냈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리며 뒤로 지나갔다.
“준비 됐어?”
[예.]
“이수한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기수부터 들어올렸다. 갸르릉 울어대는 엔진의 소음이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빠르게 스쳐지나가던 수면이 찰랑이던 것도 잠시, 우리는 하늘로 날아 올랐다. 푸른, 아니,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를 박차고서.
“이수 완료. 괜찮지?”
[저도 항공 기사입니다만?]
알아, 안다고. 그냥 신경 쓰여서 물어본 것 뿐이야. 혼자서 투덜거린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을 찡그렸다. 눈부시다. 찬란한 빅토리아 대륙의 노을이 노란 고개를 해수면 위로 빼꼼 내밀고 그 붉은 얼굴을 감추려는듯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고요하다. 아무것도 없다. 전투의 두려움도, 초계비행의 긴장감도, 죽음의 공포도 없다. 그냥, 조용하다. 들려오는건 해안가에 부딛히며 부서지는 파도소리. 그리고 엔진의 진동 뿐.
“어때? 올라오길 잘했지?”
[…..예. 아름답네요.]
에리카 소령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저무는 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검은 반점 여럿이 꾸물거리는 태양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런 평화로운 모습으로, 이런 평화로운 상태로 저렇게 아름다운 해를 마지막으로 봤던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검은 반점?
[미확인 비행물체, 확인. 전방 2km]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에리카 소령이 내게 보고했다. 역시, 우리 기사단의 눈 답다. 문제는 지금 이상태에서 에리카 소령을 제대로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이지만. 비무장에 저속 기체인 이 복엽 수상기가, 과연 저 미확인 항공기들보다 빨리날 수 있을까? 그럴리가. 실루엣은 딱 단엽기인걸.
“기종 확인할 수 있어? 국적 표시는?”
[태양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적들의, 아니, 미확인 항공기들의 접근 방위는 서쪽. 후소 제국의 주요 침입 루트다. 설마, 이 시각에 공격해오는건가? 못할건 없지만, 그동안 전례가 없던 일이다. 물론 전쟁터에서 전례가 없다고, 전에 그런일이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을거라고 단정하는건 그냥 생각하지 않고 죽겠다는 말과 동의어지만.
마음만 같아선 막아서고 기종을 확인하고 싶지만 피아 식별도 안되는 상태에서 다가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군이면 다행이지만 만약 적이라면? 그대로 죽는거지, 뭐. 변변한 방어무장 하나 없는데 무슨 수로 적 전투기와 교전한단 말인가?
“후퇴한다.”
[예]
조종간을 격하게 꺾으며 기수를 낮춘 다음 해수면 가까이로 내려갔다. 고도의 이점을 잃어버리지만, 어쩔 수 없다. 안그래도 속도가 느린 복엽기로서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속도를 뽑아내야만 한다. 2000피트를 가리키던 고도계는 이제 10을 가리키고 있었고, 몇미터 아래있는 수면에서 튀기는 물보라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공기중으로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속도는 고작 200노트. 턱없이 느리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검은 점에 불과했던 미확인 항공기들은 어느새 그 자태를 드러내며 우리의 후바응로 근접해오고 있었다. 맥주캔 같은 통통한 동체 가운데 달린 기다란 테이퍼익. 그리고 푸른색과 흰색의 페인트.
응?
[끼얏~호!]
순식간에 다가온 이 ‘미확인 항공기’들은 우리 주변을 스쳐지나가며 신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이 ‘미확인 항공기’들의 부대 문장을 보았을 때야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도망치던게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나온거냐?”
[헤헷! 이렇게 될줄 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지요~]
[다들 준비하고 있었다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요.]
[[에리카 소령님! 생신축하드려요!]]
즐겁게 떠들며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생일축하의 인사를 외쳤다. 그걸 듣는 에리카 소령은 나이 한살 더 먹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런 그녀의 입에 걸려있는건 화가 아니라 미소였다.
씁쓸한 미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에리카라면 괜찮다고?]
……뭐가?
[안돼! 또 늘어나면 메인 히로인인 내 위치가 위험해져?!]
……나탈리, 너는 또 무슨 말을 하는거야?
[창민이 너는 몰라도 돼.]
[어차피 들어도 못 알아듣잖아요. 에리카 데리고 잘 돌아오기나 하세요. 자, 전부 초계 경로로 다시 복귀해요!]
날개를 흔들면서 우리 주변을 포위했던 블랙캣들이 민첩하게 갈라지며 기수를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에리카 소령은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슬슬 돌아갈까?”
[……예.]
4
에리카 소령의 얼굴은 우리가 착수한 다음까지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씁쓸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죄책감에 잡혀있는 얼굴이었지만 그 이유를 알아낼 정도로 내 눈치는 좋지 않다.
하지만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을지도.
“사령관님.”
“응?”
“오늘……. 왜 이렇게 하신겁니까?”
“……뭘?”
“오늘, 왜 갑자기 저를 데리고 나온 것입니까?”
윽. 사실대로 말하면 혼나려나?
“역시, 공주전하의 명령이었습니까?”
“……”
부정은 못하겠다. 분명 나는 개인적으로 에리카 소령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에리카 소령과 같이 둘이서 놀러나오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건 왠지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온 몸에서 전율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음…… 아직 내가 생일선물 안줬지?”
“……말 돌리시는건가요?”
뜨끔. 하지만 멈추지 않고 제복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아까 몰래 사두었던 것을 슬쩍 꺼냈다.
아, 별건 아니다. 그냥 목걸이다.
“자. 조금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예?”
“선물이야.”
“……목걸이가 말입니까?”
굉장히 당황해하며 손사래를 치는 에리카 소령. 조금 얼굴이 벌개져 있는데…… 왜 그러지? 설마 선물받는게 부끄럽다거나….. 에이, 설마. 영주는 선물 같은거 자주 받잖아. 그럴리는 없을 것 같은데……
“아, 혹시 선물이 너무 소소해서 그래?”
“……”
시선이 차가워졌다. 미안, 그건 아닌가보네.
“……그 한심한 자격지심은 언제까지 갖고 가실건가요?”
“……미안.”
“사령관씩이나 되셨으면 좀 자신감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습니까.”
“자신감 있게 줬으니까 그러면 좀 받아 주라.”
“…..예.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쉰 에리카 소령은 갑자기 머리를 묶더니 자신의 새하얀 목을 내게 내밀었다.
“직접 채워주십시오.”
혼자서 못해? 는 아닐거고. 선물인데 그정도 정성은 해줄 수 있지. 목걸이 하나 채워주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알았어.”
손을 뻗어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둘렀다. 부드러운 그녀의 금발머리가 손가락에 닿았다. 부드럽다. 편안하다. 손을 뻗다보니 우리 둘의 몸이 가까워져버렸다. 기분 좋은 향기가 코 끝을 간질인다. 정신이 한순간 혼미해질 정도였지만, 정신줄을 다잡고 목걸이를 채웠다. 아까 샀던, 사파이어 같은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목걸이가 아름다운 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목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캬, 내가 골랐지만 잘 골랐단 말이야.
그렇게 자화자찬하고 있던 내게 에리카 소령은 목걸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아니.”
즉답. 그런걸 내가 알리가 없잖아.
“그런거 몰라.”
“그런가요?”
“그래.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을 하던간 내가 소령에게 선물한 것의 의미는 변함이 없어.”
“의미라뇨?”
다 알면서 물어보는 듯한 그녀의 질문에 순간 웃음이 픽, 나왔지만, 나는 간지러운 낯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다고. 언제나. 지금까지 우리를 잘 돌봐줘서. 우리를 잘 챙겨줘서. 우리를 위해 모든걸 해줘서 고맙다고.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령은 내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도 같이 잘 해보자고.”
쿡쿡, 에리카 소령이 웃었다. 그리고는 뻗어온 그녀의 손이 내 손과 겹쳐졌다.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에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이번에도 간신히 정신줄을 잡아 살아났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그리고 앞으로는 에리카라고 불러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중한 사람에게 소령이라니, 사령관님은 여심을 몰라도 전혀 모르는군요.”
미안. 내가 그런거랑 전혀 관련이 없잖아. 하지만 평소에도 에리카 소령을 소령이라고 불러오던 나였고, 그것이 조금은 어색했었기 때문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알았어.”
그리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이제 들어갈까, 에리카?”
“예.”
살포시, 내 손을 잡은 그녀는 조용히 나를 따라 해안가를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산들바람과 따뜻한 저녁노을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 느낌에 취해, 나는 에리카의 작은 혼잣말을 놓쳐버렸다.
“……하룻밤의 꿈 정도는 허락되는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