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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설날 기념 깜짝 선물!! - 스카이 나이츠 - 리부트 Sortie 000 프롤로그


  두 눈을 부릅 뜨고 서로를 노려본다.
 
  초록색 제복이 몸을 휘감고 있지만 그거으로 폭발적으로 성숙한 몸매를 숨길 수는 없다. 곡선을 그리는 몸매의 라인은 거친 제복에서도 빛을 발하고, 살짝 열린 제복 앞섶 사이로는 살색이 언듯 언듯 보인다. 가슴께에 달린 해병대 소령 기장 아래에 은색 실로 자수된 이름이 남국의 태양빛에 빛났다.
 
  Erina Hoplites Fault 에리나 호플리테스 폴트. 제국 의회 의장의 외동딸. 제국에서 두번째로 아름다운 여성이자 제국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막강하고,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그녀에게 맞설 수 이는 귀족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당당하게, 새침하게 길다란 금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무시무시한 시선을 바다보다 파란 눈 깊숙한 곳에서부터 쏘아보낸다.
 
  “그래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칼이 살을 베는 것 같은 서늘함이 온 몸을 엄습하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자동적으로 이곳이 열대지방인지 극지방인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남극에서 온 것 같은 그 차가움은 이내 날카로운 창처럼 변해 그녀의 ‘적’에게 날아간다.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던진 창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그녀의 ‘적’은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낸다.
 
  “쓸데없이 말을 늘리는군. 여는 분명 말했을텐데?”
 
  아무런 동요도 없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다. 그저 고고하게, 스스로의 신분을 증명하듯 도도하게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 넘길 뿐. 체리빛 입술을 보이지 않게 깨물며 에리나 폴트 소령이 말했다.
 
  “그쪽이야 말로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귀관이 그렇게 듣고 싶다면 다시 말하지, 소령.”
 
  한번 호흡을 가다듬은 목에서 지상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후소를 공격한다.”
 
  15살은 되었을까라고 의심될 정도로 작은 소녀는 쪽빛 머리카락을 무더운 열대바람에 휘날리며 폴트 소령의 눈빛에 맞선다. 에리나 폴트의 푸른 눈에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에메랄드 빛의 녹빛 눈. 작고 아담한 소녀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담력이라고는 믿어질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국이 공격당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던 우리 선량한 제국민들이 그 신성한 피를 뿌리며 죽어갔단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복수를 실행한다.”
 
  “그래서 공격을 하시겠다구요? 저 함대를?”
 
  “지금 적 함대는 필리피나스 제도로 향하는게 분명하다. 절대로 우리 제국민의 목숨을 개죽음으로 몰 수는 없다. 그곳의 아군을 지원해야 한다고 여는 생각한다.”
 
  진지한 소녀의 말을 흘러넘기며, 에리나 폴트는 피식 웃었다.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명령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명령없이 움직일 수 없고요. 그랬다가 정말 전쟁이 나면, 전하께서는 그걸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전하의 판단에 희생될 무고한 영혼들을 달래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의회의 동의도 없이 황족이 군대를 동원하시겠다고요? 방금 그 말을 쿠데타 기도로 간주, 반역죄로 체포, 구금할 수 있는건 잘 알고 계실텐데요.”
 
  정적. 모든 소리가 차단된다. 의회가 이제는 무늬만 남은 황족에게 꺼내들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에리나 폴트는 주저 없이 사용했다. 황족의 군사력 임의 동의? 의회의 암사자라고 불리는 그녀의 성격이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흠칫
 
  순간 에리나 폴트는 자신의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리나 폴트는 그녀의 시선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더욱 기가 살아서 그녀를 노려보는 소녀의 기세에 질렸다. 자신보다도 어린 그녀지만 소녀의 눈빛에서 담겨나오는 경험과 부담감은 자신의 배를 넘었다.
 
  그녀는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막강하고,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제국의 귀족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제국 귀족 중에서.
 
  에리나 폴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상기를 하며 밀리지 않는 작은 소녀의 기세에 몸을 떨었다. 소녀의 제복 위에 금빛 실로 자수된 화살을 움켜쥔 독수리의 반짝임이 그녀의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제국군 최고의 정예부대, 근위대의 문장. 의회파로서 권력을 움켜쥔 황제에 반하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 것은 단순히 그 문장만이 아니었다. 그녀 앞에서 버티고 선 소녀의 모든 점이 싫을 뿐이었다. 이름도 많다.
 
  제국 근위 44 항공 기사단의 기사단장,
  최전방 작전기지 대거 섬의 방어군 사령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국의 여섯번째 황녀.
 
  에리나 폴트에게는 극악 상성의 인물이 지금 눈 앞에서 버티고 서있었다. 그녀는 더더욱 눈가에 힘을 주며 사냐 공주를 노려보았고, 사냐 공주도 답례하듯 백옥같이 아름다운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에리나 폴트를 노려보았다.
 
  파지직. 전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공중으로 튄다.
 
  “저 함대는 필리피나스로 향하는게 확실하다. 지금 기회가 있을 때 공격해야 해.”
 
  “그건 추측일 뿐, 우리에게는 공격 명령도, 교전권 허가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잘못 출격했다가 진짜 전쟁을 내고 싶은건가요, 전하는?”
 
  “여가 전쟁광인줄 아는가?”
 
  “아닙니까?”
 
  “실력을 인정받아 최전선에 배치되어도 아직도 그런 말을 듣다니, 슬프도다.”
 
  “실력을 인정받은게 아니라 숙청된 것이겠지요.”
 
  양측 모두 질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 머리채 잡고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이다. 아마 보는 눈들 때문에 절제하고 있는 모양인지 양측의 손이 꿈틀, 꿈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두가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짧은 금발의 에리카 대위는 이마에 손을 댄 채 한숨을 쉬고 있었고, 몇몇 장교들은 질렸다는듯이 고개를 절레절래 흔들었다. 서로서로 힐끔힐끔, 눈치만을 보면서 누가 먼저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네가 먼저 나가.’
 
  ‘시…싫어! 네가 나가!’
 
  ‘미쳤어? 나더러 죽으라고?’
 
  흠칫흠칫, 눈빛이 마주칠때 마다 장교들은 몸을 떨었지만 그 누구도 용감하게 일어나 저 둘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직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들이다.
 
  ‘……생각해보니 저녀석이 하면 되겠네.’
 
  대위 계급을 단 해병대 장교 하나가 턱짓으로 넘어진 사냐 공주의 의자 옆에 앉아있는 한사람을 가리켰다. 백인들 사이에 앉아있는 이질적인 검은 머리 소년. 정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후소 스파이다! 당장 끌어내!’라고 외칠 정도로, 이로보나 저로보나 오리엔탈계가 분명했다. 물론 그는 후소인이 아니다. 오리엔탈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외계인이다.
 
  ‘죽어도 상관 없잖아?’
 
  ‘그렇지. 암, 그렇지. 어차피 죽으면 필그림 놈들이나 곤란하지, 우리가 곤란한건 아니잖아?’
 
  키득거리면서 눈빛을 통해 의견을 맞춘 장교들. 먼저 제안했던 해병대 대위의 손가락 다섯개가 펴졌다 하나씩 굽혀지고, 마지막 새끼손가락이 손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에르데 제국의 제 6 황녀 사냐 공주의 제 1기사에게,
  얼 E. 버드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한 소년에게.
 
  갑작스러운 시선을 눈치챈 얼이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노골적인 눈초리에 이기지 못하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끼익
 
  얼의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소리를 내자, 티격태격 싸우던 사냐 공주와 에리나 폴트 소령의 눈길이 얼에게로 모아진다. 사람 하나 잡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몸서리를 치며, 얼은 입을 열었다.
 
  “뭐죠? 비천한 필그림 주제에 아직도 할말이 남아있나요?”
 
  그리고 입을 닫았다. 저건 이길 수 없다. 잘못 시작했다가는 또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건 사양이다.
 
  “소령, 여의 기사에게 비천하다는 말은 너무한거 아닌가?”
 
  “공주 전하, 저 쓰레기가 전하의 기사든, 약혼자든, 남편이든,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남편은 아니다!”
 
  “……약혼은 부정 안하시는군요”
 
  무의식적으로 대답해버린 사냐 공주가 곤란한 처지에 처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공격을 재촉하는 에리나 폴트 소령. 그런 두사람을 앞에 두고 말리기 위해 쩔쩔 매는 얼을 보면서 모두들 쌤통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는 사간의 발단이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얼의 손에 들려있는 누런 종이가 이 난장판의 주범이었다. 평화로운 월요일 아침, 암호도 아닌 평문으로 날아온 이 전문에 적혀있었던 것은 고작 7개의 단어 뿐이었다. 하지만 그 5개의 단어는 대거 섬의 모두를 흔들어놓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URGENT
  AIRRAID ON ​S​A​P​A​I​R​E​H​A​R​B​O​R​ X THIS IS NOT DRILL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강경파인 사냐 공주도, 주화파인 에리나 폴트도, 모두들 믿지 않았다. 불가능.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으니까. 아니, 사파이어만이 폭격당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사파이어만이 어디인가? 은은한 사파이어 빛이 나는 바다로 유명한 제국 최고의 관광지이자, 2억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오스트해를 제국의 내해로 만들어버린 항공모함 5척과 전함 8척의 주력함을 보유한 에르데 제국 최강 함대 오스트해 함대의 모항. 제국 전체를 통틀어, 제국의 수도 파체미아보다도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막강한 바다 한가운데의 요새. 2개 사단 3만명의 병력이 언제나 상주하고, 최소 20개에 달하는 항공 기사단이 하늘을 지키고, 150mm 해안포대 수십문이 바다를 향해 포문을 겨누고 적을 기다리는 중무장한 불침전함. 그런 사파이어만이 공격당했다고? 그럴리 없잖아라고 모두들 믿고 있었다.
 
  단 한사람, 얼을 제외하고.
 
  급보를 손에 넣자마자 얼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달디 단 늦잠을 실컷 즐기던 모두를 깨우는 비상벨을 울리고, 항공기 기체들을 점검하고, 섬 주변으로 정찰기를 날린 얼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결코 곱지 못했다. 당연하다. 얼은 고작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적이였던 남자니까. 해묵은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같이 지낸지 일주일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르데 제국군 장교들의 시선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아니, 차라리 무미건조하면 다행이다. 살해를 당하지나 않을 까, 걱정해야 하는게 얼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간 단련된 철면피 덕분에 얼은 껄끄러움을 무릎 쓰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명령을 받은 정찰기는 지체없이 출격했다.
 
  그리고, 정찰기의 무전이 사파이어만 폭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두 여전사의 싸움의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적 함대 발견. 중순양함 6척, 구축함 12척! 현재 위치 마이크 알파 포 나이너. 적 함대의 예상 도착지점은 필리피나스 제도입니다!]
 
  추가 공격! 갑작스럽게 대거 섬 북쪽 600km 지점에서 발견된 거대한 후소 제국의 침공 함대의 존재에 경악한 모두가 생각하기를 그만두었을 때, 사냐 공주는 주저 없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황녀의 명령은 모두를 달구어놓았다. 섬의 급강하 폭격기들과 뇌격기들, 그리고 배틀 플레인들이 급하게 무장을 준비하고, 사파이어만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륙하려던 찰나, 에리나 폴트 소령의 목소리가 이들 모두를 멈춰세웠다.
 
  “다들 반역죄로 전부 사형당하고 싶은건가? 당장 출격 중지해! 이건 불법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두사람은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났다. 전쟁터에서 금과 같은, 아니, 목숨과도 같은 1시간이라는 시간이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 당장 결정해서 행동에 옮겨도 급한데 싸우면서 시간이나 잡아먹는 두 여편네를 보며, 얼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하…한숨? 지금, 지금 여 앞에서 한숨을 쉰거냐?”
 
  “감히, 필그림 주제에 나의 고귀한 몸 앞에서 그런 불결하고 불쾌한 숨을 뱉은건가요?”
 
  아아…… 글렀다, 이 부대는. 확실히 글렀어. 그렇게 생각하며 얼은 이제 타깃을 바꿔 자신을 옥죄여오는 두 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걸까?
 
  다시는 이런데 오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는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는 누구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난, 난 그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살리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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