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일관 하고 있는 소년을 보며, 아키라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나보구나. 다음 주 금요일까지 시간을 줄게. ”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주일.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결정을 내려야한다.
“하지만, 쿄타로군도 알고 있지?”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 되어야 하는거.”
“....”
알고 있다.
정확히 인터하이가 끝난 이후부터, 소년은 계속 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도망 칠 수 없다.
언제까지 붙잡혀 있을수 없다.
그날 그렇게 도망친 이후, 자신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좋은 대답을 기다릴게.”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키라를 보며, 순간 쿄타로는 뭔가 떠올랐다.
“아, 아키라씨!”
“응?”
갑작스러운 소년의 부름에, 청년이 그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어느새 소년은 어른스러운 얼굴이 아닌, 그 나이 또래의 소년처럼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까먹을뻔 했네요. 저희 부 애들에게 싸인 좀 해주세요.”
“....”
스가 쿄타로라는 소년은 키요스미 마작부의 소녀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모두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다들 제각기 답이 다를 것이다.
일행의 대표격이라고 할수 있는 히사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직접 부탁한 아이였다.
아직도 소년과 첫 만남만큼은 이상할치 소녀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았다.
2월.
바람이 싸늘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던 때. 타케이 히사는 학생의회장으로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행정적 부분을 제외하고, 학생의 자치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준 만큼, 신입생을 맞이 할 준비로 학생회도 바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방학중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와서 학생회 업무를 보던 그녀는, 학생회를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충고라고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마작부를 폐부 시키고, 학생회에 전념하는게 어떻니?’ 라고.
마작부라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 마작부는 마작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원이라고는 2명.
작년에는 그나마 이름만 올라가 있는 선배들 3명의 이름을 올려, 어떻게든 유지가 가능했지만, 그들은 올해 졸업했다.
실상 히사와 마코 두 명만 남아 있었다.
마코도 집안 일 덕분에 완벽하게 부 활동에 매진하지는 못했다. 자신도 학생회 일이 더 많아 제대로 활동도 못했다. 이대로라면 부는 폐부되어야 한다. 그렇게 꿈꾸던 인터하이는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어찌 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 어느새 잠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황혼이 물든 시간.
문득 잠에서 깨고 핸드폰을 쳐다보니, 부재중인 전화가 몇통. 그 전화의 진원지는 마작부의 고문 선생님 츠치이 선생님. 깜짝 놀라, 히사가 핸드폰을 쳐다보니, 선생님의 메일이 와 있었다.
[타케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애가 한명있는데, 올해로 들어온 신입생. 혹시 괜찮지 않으면 그 아이를 마작부에 넣어주지 않겠니? 일단 마작부 부실에 가 있으라고 열쇠를 맡겨 보냈긴 한데....]
그 메일이 온 시간은 대략 2시간 전이었다. 히사는 한순간에 잠이 깨어버린 느낌이었다. 신입생을, 그것도 부원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귀한 아이를, 놓쳐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소녀는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까지, 그리고 구교사 4층이라는 계단을 한순간에 올라갔다.
돌아갔겠지?
하지만, 그래도...혹시...제발.
수많은 생각을 품고 마작부 부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미닫이 문을 연 순간.
드르르륵-.
한 소년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마치 황혼빛과 같은 금발, 시력이 나쁜지, 아니면 패션인지 모를 가벼운 뿔테안경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생긴것도 미형. 차이나 칼라의 교복만 아니었다면 청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년은 어른스러웠다.
히사는 천천히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여전히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소년을 쳐다보니 패보와 비슷한걸 읽고 있다.
패보지만, 마작에 관련 된 건 아니다.
19개의 가로 새로 직선.
흑과 백의 돌.
“바..둑?”
“아.”
소녀의 목소리에 소년이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케이...선배인가요?”
“아, 내가 타케이인데, 당신이, 그러니까 츠치이 선생님이 말한 신입생?”
히사가 조심스레 말한다. 여전히 소년은 자신보다 연상처럼 보인다. 그러자, 소년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올해 키요스미 1학년이 되는 스가 쿄타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예의 바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는 타케이 히사, 학생 의회장과 마작부 부장이야. 잘 부탁해.”
자신있게 손을 내민 히사를 향해, 소년은 조용히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스가군은 마작에 관심이 있어서? 아, 싸구려 차지만 이거라도 좋다면.”
홍차를 내밀며 히사가 물었다.
“아뇨, 사실은 룰도 몰라요.”
“그럼, 역시 바둑?”
“에?”
히사의 말에 살짝 놀란 듯 쿄타로가 되묻는다.
“그 책, 바둑 기보잖아.”
살짝 눈짓으로 쿄타로가 옆에 치워놓은 바둑 기보를 가리킨다. 순간 동공이 커졌지만, 이내 수습한 소년이 차를 마셨다.
“그냥, 할아버지가 용돈 주신다길래, 장난 삼아서 두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았어요.”
“헤에-.”
소년의 말에 히사는 그렇구나 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상했다. 그때 소년은 장난삼아 한다기에는 너무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있었고, 공부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입 부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녀의 시야에 그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마작은?”
“마작도 그다지 관심없어요. 그냥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 제가 잘 아는 분인데, 제가 중학교때 워낙 귀가부였던지라, 불만 이셨나봐요. 그래서 좀더 청춘을 구사하라며 절 여기에 넣으신 것 같아요.”
“.....”
소년의 말에는 뭔가 의지같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가 시켜서, 그리고 뭔가에 떠밀려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소년의 눈동자. 그 눈동자가 소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년은 어른스럽다. 뭔가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년의 눈동자는 허무하다. 아무런 재미도, 흥미도 못 느끼는 그런 눈동자.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재미없구나.”
“예?”
“스가군, 재미없는 아이네. 뭔가 어른인척하고, 그런 주제에 눈동자는 힘도, 의지도 느껴지지 않고.”
“아...”
쿄타로는 소녀의 지적에 살짝 쓴 웃음을 띄웠다. 초대면의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텐데도 그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게 히사에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이세상은 재미 없는것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에게 외쳤다.
“나의 부원이 되렴. 스가군. 이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너에게 알려줄게. 그 첫 번째로, 너에게 전국의 광경을 보여줄게.”
“전...국?”
소년이 되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활기차게 말했다. 지금껏 어느 무엇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그래, 전국! 나는 올해 동료들을 모아, 인터하이 마작부를 재패할거야.”
“그, 광경이라는게, 좋은건가요?”
소년이 되묻는다. 그리고 소녀는 단언한다.
“분명히 좋을 거야. 왜냐하면.”
소년을 향해, 그리고 앞에 있을 동료들을 향해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6명]이 함께 보게 될, 그런 풍경이니까-!”
소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던, 소년의 표정이 살짝 변한다. 그러더니
“하하...”
소년이 웃었다.
“앞으로, 잘부탁드릴게요. 타케이 선배. 아니 부장.”
그게 소년의 입부였다.
결국 소녀의 약속은 지켜졌다. 그녀들은 도전했고, 이뤄냈다. 그리고 문득 히사는 생각한다.
우리가 본 그 광경이 스가군에게도 즐거웠을까.
모든 싫고 짜증나는 일들을 그에게 미뤄버린 우리를 그는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타케이 히사에 스가 쿄타로는 [동생]이다. 마작부의 모든 부원들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전부 동생 같지만, 쿄타로는 조금 다르다, 쿄타로는 착한 믿음직스러운 동생이다.
큰 누나인 자신이 멋대로 약속하고 , 멋대로 의지해버리고, 그래서 혹시 원망받고 있지 않을까, 그걸 묻는게 무서운 그런 동생.
소메야 마코에게 있어서도 스가 쿄타로는 동생이다. 하지만 히사와 달리 그녀가 느낀 쿄타로는 어딘가 위태로운 동생이었다. 히사의 말과 시작된 전국 재패. 그것을 위해서는 전력으로 서포트 해줄 부원들이 필요하다. 강호교라던가 자금줄이 많은 학교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키요스미와 같은 약소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마작을 제외한 서류작업이라던가, 회계, 쇼핑, 요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담이 한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본래 잡무는 1학년의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잘못하면 원망받아도 이상할게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탈퇴를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해냈다.
히사라던가, 다른 1학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마코에게 그모습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그 일에 빠져버리려는 듯, 그리고 어딘가 도망치고 있는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다 균형을 잃게 된다면, 쿄타로는 더욱더 나락으로 빠져버릴 것이다. 소녀는 감으로 그걸 느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소년에게 참견할 권리가 없었다.
소년의 사정도 몰랐고, 집안 관계도 원만하다고 했다. 도저히 그 나이 또래 소년이 도망치고 싶어하는 일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는 소년을 곁에서 보고만 있기로 했다. 마코에게 있어 소년은 그런 존재이다. 무언가 도망치고 있는 위태로운 동생.
하라무라 노도카에게 있어서, 스가 쿄타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급생이다. 입부한 그 순간부터 시선은 자신의 가슴에 향하고 있었고, 배려라고는 눈꼽마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자상해서, 소녀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는 그런 소년이었다. 그래서 미워할수 없는 그런 소년. 유키도 그러했고, 사키도 그러했으며, 자신도 그러했다.
하라무라 노도카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급생. 그래서 옆에서 잔소리를 하면서, 챙겨주고, 그리고 3학년까지 같이 학교 생활을 보낼 그런 친구였다.
가타오카 유키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오빠였다. 언제나 친남매처럼 자신의 제멋대로인 부탁도 호칭도 웃으면서 들어주는 그런 소년이었다. 가끔 투닥 투닥 거리기도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수 있는 노도카와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년은 자상해서, 자신이 나약해질거 같으면 언제나 옆에서 붙잡아 주고 도와준다. 그래, [오빠]다. 만약 오빠가 있다면 쿄타로와 같을 것이다. 자신과 장난치면서도 어려울때는 의지할수 있는 그런 형제.
미야나가 사키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이정표였다. 언제나 친남매처럼 붙어 있었다. 어렸을때도 항상 자신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성적인 소녀는 언제나 소년의 손을 잡고 세상과 소통했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어느날 소녀에게 말했다. 나, 정말 좋아하는게 생겼어. 그래서 도쿄에 가기로 했어.그 당시 소녀의 가정은 매우 위태로웠던 때였다. 그래서 가장 소년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소년은 소녀의 손을 놓고 가버렸다. 가지말라고 하고 싶었다.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말하지 못했다. 가지 말라면 소년은 분명 자신의 곁에 남아 있어 줬을 텐데.
하지만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다.
결국 소년은 떠났고, 그 이후로 엄마도, 언니도 떠났다. 무척이나 쓸쓸한 중학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소년은 돌아왔다. 소년은 무척이나 지친 얼굴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다녀왔어...라고 말했다.
소녀는 소년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그대신 다시 소년이 자신의 손을 잡고 나아가주길 바랬다. 소녀의 바램대로 소년은 다시 소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는 즐거웠고, 계속 이대로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소년의 과거따위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게 된다면, 다시 쿄타로는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소녀는 소년의 과거를 봉인하기로 했다.
미야나가 사키에게, 스가 쿄타로는 그런 존재였다.
이유는 다르지만, 스가 쿄타로라는 소년은 마작부 소녀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친밀한 동료였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키요스미 마작부에는 스가 쿄타로는 항상 껴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스가 쿄타로에게 있어, 마작부 소녀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나보구나. 다음 주 금요일까지 시간을 줄게. ”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주일.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결정을 내려야한다.
“하지만, 쿄타로군도 알고 있지?”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 되어야 하는거.”
“....”
알고 있다.
정확히 인터하이가 끝난 이후부터, 소년은 계속 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도망 칠 수 없다.
언제까지 붙잡혀 있을수 없다.
그날 그렇게 도망친 이후, 자신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좋은 대답을 기다릴게.”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키라를 보며, 순간 쿄타로는 뭔가 떠올랐다.
“아, 아키라씨!”
“응?”
갑작스러운 소년의 부름에, 청년이 그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어느새 소년은 어른스러운 얼굴이 아닌, 그 나이 또래의 소년처럼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까먹을뻔 했네요. 저희 부 애들에게 싸인 좀 해주세요.”
“....”
제3국 You
스가 쿄타로라는 소년은 키요스미 마작부의 소녀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모두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다들 제각기 답이 다를 것이다.
일행의 대표격이라고 할수 있는 히사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직접 부탁한 아이였다.
아직도 소년과 첫 만남만큼은 이상할치 소녀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았다.
2월.
바람이 싸늘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던 때. 타케이 히사는 학생의회장으로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행정적 부분을 제외하고, 학생의 자치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준 만큼, 신입생을 맞이 할 준비로 학생회도 바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방학중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와서 학생회 업무를 보던 그녀는, 학생회를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충고라고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마작부를 폐부 시키고, 학생회에 전념하는게 어떻니?’ 라고.
마작부라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 마작부는 마작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원이라고는 2명.
작년에는 그나마 이름만 올라가 있는 선배들 3명의 이름을 올려, 어떻게든 유지가 가능했지만, 그들은 올해 졸업했다.
실상 히사와 마코 두 명만 남아 있었다.
마코도 집안 일 덕분에 완벽하게 부 활동에 매진하지는 못했다. 자신도 학생회 일이 더 많아 제대로 활동도 못했다. 이대로라면 부는 폐부되어야 한다. 그렇게 꿈꾸던 인터하이는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어찌 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 어느새 잠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황혼이 물든 시간.
문득 잠에서 깨고 핸드폰을 쳐다보니, 부재중인 전화가 몇통. 그 전화의 진원지는 마작부의 고문 선생님 츠치이 선생님. 깜짝 놀라, 히사가 핸드폰을 쳐다보니, 선생님의 메일이 와 있었다.
[타케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애가 한명있는데, 올해로 들어온 신입생. 혹시 괜찮지 않으면 그 아이를 마작부에 넣어주지 않겠니? 일단 마작부 부실에 가 있으라고 열쇠를 맡겨 보냈긴 한데....]
그 메일이 온 시간은 대략 2시간 전이었다. 히사는 한순간에 잠이 깨어버린 느낌이었다. 신입생을, 그것도 부원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귀한 아이를, 놓쳐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소녀는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까지, 그리고 구교사 4층이라는 계단을 한순간에 올라갔다.
돌아갔겠지?
하지만, 그래도...혹시...제발.
수많은 생각을 품고 마작부 부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미닫이 문을 연 순간.
드르르륵-.
한 소년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마치 황혼빛과 같은 금발, 시력이 나쁜지, 아니면 패션인지 모를 가벼운 뿔테안경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생긴것도 미형. 차이나 칼라의 교복만 아니었다면 청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년은 어른스러웠다.
히사는 천천히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여전히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소년을 쳐다보니 패보와 비슷한걸 읽고 있다.
패보지만, 마작에 관련 된 건 아니다.
19개의 가로 새로 직선.
흑과 백의 돌.
“바..둑?”
“아.”
소녀의 목소리에 소년이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케이...선배인가요?”
“아, 내가 타케이인데, 당신이, 그러니까 츠치이 선생님이 말한 신입생?”
히사가 조심스레 말한다. 여전히 소년은 자신보다 연상처럼 보인다. 그러자, 소년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올해 키요스미 1학년이 되는 스가 쿄타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예의 바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는 타케이 히사, 학생 의회장과 마작부 부장이야. 잘 부탁해.”
자신있게 손을 내민 히사를 향해, 소년은 조용히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스가군은 마작에 관심이 있어서? 아, 싸구려 차지만 이거라도 좋다면.”
홍차를 내밀며 히사가 물었다.
“아뇨, 사실은 룰도 몰라요.”
“그럼, 역시 바둑?”
“에?”
히사의 말에 살짝 놀란 듯 쿄타로가 되묻는다.
“그 책, 바둑 기보잖아.”
살짝 눈짓으로 쿄타로가 옆에 치워놓은 바둑 기보를 가리킨다. 순간 동공이 커졌지만, 이내 수습한 소년이 차를 마셨다.
“그냥, 할아버지가 용돈 주신다길래, 장난 삼아서 두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았어요.”
“헤에-.”
소년의 말에 히사는 그렇구나 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상했다. 그때 소년은 장난삼아 한다기에는 너무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있었고, 공부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입 부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녀의 시야에 그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마작은?”
“마작도 그다지 관심없어요. 그냥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 제가 잘 아는 분인데, 제가 중학교때 워낙 귀가부였던지라, 불만 이셨나봐요. 그래서 좀더 청춘을 구사하라며 절 여기에 넣으신 것 같아요.”
“.....”
소년의 말에는 뭔가 의지같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가 시켜서, 그리고 뭔가에 떠밀려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소년의 눈동자. 그 눈동자가 소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년은 어른스럽다. 뭔가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년의 눈동자는 허무하다. 아무런 재미도, 흥미도 못 느끼는 그런 눈동자.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재미없구나.”
“예?”
“스가군, 재미없는 아이네. 뭔가 어른인척하고, 그런 주제에 눈동자는 힘도, 의지도 느껴지지 않고.”
“아...”
쿄타로는 소녀의 지적에 살짝 쓴 웃음을 띄웠다. 초대면의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텐데도 그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게 히사에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이세상은 재미 없는것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에게 외쳤다.
“나의 부원이 되렴. 스가군. 이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너에게 알려줄게. 그 첫 번째로, 너에게 전국의 광경을 보여줄게.”
“전...국?”
소년이 되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활기차게 말했다. 지금껏 어느 무엇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그래, 전국! 나는 올해 동료들을 모아, 인터하이 마작부를 재패할거야.”
“그, 광경이라는게, 좋은건가요?”
소년이 되묻는다. 그리고 소녀는 단언한다.
“분명히 좋을 거야. 왜냐하면.”
소년을 향해, 그리고 앞에 있을 동료들을 향해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6명]이 함께 보게 될, 그런 풍경이니까-!”
소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던, 소년의 표정이 살짝 변한다. 그러더니
“하하...”
소년이 웃었다.
“앞으로, 잘부탁드릴게요. 타케이 선배. 아니 부장.”
그게 소년의 입부였다.
결국 소녀의 약속은 지켜졌다. 그녀들은 도전했고, 이뤄냈다. 그리고 문득 히사는 생각한다.
우리가 본 그 광경이 스가군에게도 즐거웠을까.
모든 싫고 짜증나는 일들을 그에게 미뤄버린 우리를 그는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타케이 히사에 스가 쿄타로는 [동생]이다. 마작부의 모든 부원들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전부 동생 같지만, 쿄타로는 조금 다르다, 쿄타로는 착한 믿음직스러운 동생이다.
큰 누나인 자신이 멋대로 약속하고 , 멋대로 의지해버리고, 그래서 혹시 원망받고 있지 않을까, 그걸 묻는게 무서운 그런 동생.
소메야 마코에게 있어서도 스가 쿄타로는 동생이다. 하지만 히사와 달리 그녀가 느낀 쿄타로는 어딘가 위태로운 동생이었다. 히사의 말과 시작된 전국 재패. 그것을 위해서는 전력으로 서포트 해줄 부원들이 필요하다. 강호교라던가 자금줄이 많은 학교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키요스미와 같은 약소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마작을 제외한 서류작업이라던가, 회계, 쇼핑, 요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담이 한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본래 잡무는 1학년의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잘못하면 원망받아도 이상할게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탈퇴를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해냈다.
히사라던가, 다른 1학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마코에게 그모습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그 일에 빠져버리려는 듯, 그리고 어딘가 도망치고 있는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다 균형을 잃게 된다면, 쿄타로는 더욱더 나락으로 빠져버릴 것이다. 소녀는 감으로 그걸 느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소년에게 참견할 권리가 없었다.
소년의 사정도 몰랐고, 집안 관계도 원만하다고 했다. 도저히 그 나이 또래 소년이 도망치고 싶어하는 일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는 소년을 곁에서 보고만 있기로 했다. 마코에게 있어 소년은 그런 존재이다. 무언가 도망치고 있는 위태로운 동생.
하라무라 노도카에게 있어서, 스가 쿄타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급생이다. 입부한 그 순간부터 시선은 자신의 가슴에 향하고 있었고, 배려라고는 눈꼽마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자상해서, 소녀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는 그런 소년이었다. 그래서 미워할수 없는 그런 소년. 유키도 그러했고, 사키도 그러했으며, 자신도 그러했다.
하라무라 노도카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급생. 그래서 옆에서 잔소리를 하면서, 챙겨주고, 그리고 3학년까지 같이 학교 생활을 보낼 그런 친구였다.
가타오카 유키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오빠였다. 언제나 친남매처럼 자신의 제멋대로인 부탁도 호칭도 웃으면서 들어주는 그런 소년이었다. 가끔 투닥 투닥 거리기도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수 있는 노도카와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년은 자상해서, 자신이 나약해질거 같으면 언제나 옆에서 붙잡아 주고 도와준다. 그래, [오빠]다. 만약 오빠가 있다면 쿄타로와 같을 것이다. 자신과 장난치면서도 어려울때는 의지할수 있는 그런 형제.
미야나가 사키에게 있어 스가 쿄타로는 이정표였다. 언제나 친남매처럼 붙어 있었다. 어렸을때도 항상 자신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성적인 소녀는 언제나 소년의 손을 잡고 세상과 소통했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어느날 소녀에게 말했다. 나, 정말 좋아하는게 생겼어. 그래서 도쿄에 가기로 했어.그 당시 소녀의 가정은 매우 위태로웠던 때였다. 그래서 가장 소년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소년은 소녀의 손을 놓고 가버렸다. 가지말라고 하고 싶었다.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말하지 못했다. 가지 말라면 소년은 분명 자신의 곁에 남아 있어 줬을 텐데.
하지만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다.
결국 소년은 떠났고, 그 이후로 엄마도, 언니도 떠났다. 무척이나 쓸쓸한 중학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소년은 돌아왔다. 소년은 무척이나 지친 얼굴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다녀왔어...라고 말했다.
소녀는 소년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그대신 다시 소년이 자신의 손을 잡고 나아가주길 바랬다. 소녀의 바램대로 소년은 다시 소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는 즐거웠고, 계속 이대로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소년의 과거따위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게 된다면, 다시 쿄타로는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소녀는 소년의 과거를 봉인하기로 했다.
미야나가 사키에게, 스가 쿄타로는 그런 존재였다.
이유는 다르지만, 스가 쿄타로라는 소년은 마작부 소녀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친밀한 동료였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키요스미 마작부에는 스가 쿄타로는 항상 껴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스가 쿄타로에게 있어, 마작부 소녀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