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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해요! 여간부님 ~ 육전기신 노스트라다 외전


투고 | V노블

              




1화. 그 여간부, 노브라 
2화. 그 여간부, 성희롱
후기  



1화 그 여간부, 노브라 (4)


금요시 도심에서도 중심지.

그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급 아파트 꼭대기 층 가장 구석진 2501호 문 앞.

습―하.

습―하.

호란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심호흡을 반복한다. 얼마 전 가죽 본디지 차림으로 도시 곳곳을 활보하면서 죄 없이 그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던 때에도 이만큼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좋아. 마지막 체크.”

옆에 맨 백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고는 재차 옷차림을 점검한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불량학생의 복장을 점검하는 학생주임의 눈도 이만큼 엄격하지는 않을 게다.

확실히 호란의 지금 차림새는 무척 단정하고 얌전하다. 몇 시간 전까지의, 다발적인 도착증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듯 보이는 가죽옷 차림새의 세그니아와 동일인물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다.

하얀 셔츠에 캐쥬얼한 정장을 입은 평범한 코디.

아직은 어색함이 묻어나는 사회 초년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중학생에게는 충분히 어른스러워 보일 것이다.

“옷은 좋아. 이제는 머리랑 얼굴.”

거울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얼굴을 비춘다.

호란의 헤어스타일도 역시 세그니아로 분장했을 때와는 달리 사자처럼 흐트러진 산발이 아니라 깔끔하게 뒤에 한줄기로 묶은 말 꼬랑지 머리다. 사자에서 말이라니 양두구육이 아니라 마두사육쯤 되는 위장이다.

또 얼굴 위에 쓴 얇은 안경테 하나가 호란이 변장했을 때와는 달리 본판의 날카로운 눈매를 꽤 둥글둥글하고 선하게 다듬어준다.

화장도 세그니아였을 때 격하게 부담스럽게 진하게 바른 아이섀도나 립스틱 없이 내츄럴하게 보이도록 무척이나 노력한 화장이다.

호란이 지금껏 치러야만 했던 80여 건의 입사면접 중에도 이 정도로 긴장하고 준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좋아. 누른다. 발칵.”

숨 쉬고.

“울칵.”

숨 내뱉고.

“달칵.”

가는 손가락이 옅게 떨리면서 초인종의 버튼을 누른다.

저번에 실수로 외계난민협회의 둠즈데이머신 기동 버튼을 눌러버렸을 때에도 이렇게 긴장하고 있었다면 지옥석사나 총통Z가 그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띵―

동―

벨 소리가 길게도 아파트의 복도 안에 울린다.

아주 잠시만의 침묵.

“선생님이세요?”

“응, 선생님 왔어―!”

선생님이래―!

선생님―!

인터폰을 넘어서 ​들​려​오​는​―​어​디​까​지​나​ 호란의 표현에 따르자면―보드랍게 포개지는 껍질과 촉촉이 녹아드는 크림이 완벽한 비율로 구워진 슈크림과 같은 목소리.

호란이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팔다리를 바동거리자 꽉 끼는 정장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두 가슴도 같이 흔들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이란 말인가.

선생님.

선to the생님.

선to the생님.

초등학교 6년 동안에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3년을 더해 총 12년 동안 언제나 자신의 입으로 불러보았던 그 호칭이건만.

왜 이 아이의 목소리로 들을 때에는 그 단어에 무언가 태고에서부터 내려온 신비한 마법의 주술처럼 심오한 의미가 담긴 듯이 다가오는 걸까.

그렇다. 호란이 악의 조직 여간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배정받은 위장근무는 바로 과외 선생이다. 미대 출신으로서 취직할 길이야 없지만,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 입시 미술의 과외쯤이야 호란으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호란은 과외 선생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쯤 오면 어느 쪽이 본직인지 모를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크, 입꼬리. 입꼬리.’

한가득 올라간 입 끝을 양손으로 잡아 내린다.

호란은 숨을 고르며 그렇지 않아도 그 큰 가슴이 한층 더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주의했다.

“으흠. 흠.”

아까는 목소리가 들떴다. 헛기침으로 목을 다잡는다.

쿨하게. 멋지게. 어른스럽게.

선망의 대상이 될 그런 성숙한 성인 여성의 매력으로써 어필할 속셈 때문이다. 

어디 그게 가당키야 하겠냐만.

도도도.

철문 너머로 들려오는 발소리. 그 발소리에 맞춰 호란의 심장 고동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반바지 쇼타가 있었다.

“오셨어요, 선생님?”

이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의 이름은 유은. 남자아이치고는 조금 긴 쇼트커트에 또래에 비하면 약간 작은 키. 그럼에도 살짝 말라 길게 뻗은 팔다리와 앙증맞은 얼굴의 비율이 좋아 아역 배우로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유은도 막 하교한 참이었나 본지 교복 차림이었다. 호란과 유은이 살고 있는 금요시는 항구도시 옆에 매립지를 만들어 세워진 인공도시여서 그런지 유은이 다니고 있는 금요중학교의 교복은 선원제복을 개량한―흔히 쓰는 표현을 빌려오자면 세일러복이었다.

상의로는 넓게 펼쳐진 세일러복 칼라가 유은의 새하얀 목덜미를 더욱 돋보이게 받쳐주고, 하의로는 짧은 반바지와 긴 양말 덕에 가느다란 다리가 아낌없이 노출된다.

“그러엄. 유은이 보고 싶어서 일찍 왔지.”

단 한 톨의 거짓도 없는 선언.

호란이 웃으며 말하자 유은의 눈동자가 빛난다.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 아마 유럽 어딘가의 혼혈이라 어머니로부터 이런 눈동자 색을 물려받았다던가.

유은은 언제나 이렇다. 호란이 올 때마다 막 공을 물고 온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마냥 기뻐하는 모습이다.

언제나 웃고 있고. 언제나 행복하다. 

“들어오세요!”

‘스피츠…?’

“오늘은 몽블랑을 구워봤어요.”

‘웰시코기…?’

“있잖아요! 저번에 너무 단 것은 싫다고 하셨기에 이번엔 설탕을 줄여봤어요!” 

“포메라니안…?”

“네? 포메?”

“아,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몽블랑? 나 그거 진짜 좋아하는데! 하하하. 들어가자!”

제자의 귀여움에 비할만한 강아지의 견종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고민하던 호란은 그만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고 말았다. 이 처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감정 자제를 못 한다. 아니. 애초에 자제할 생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유은이야말로 호란의 인생의 낙이자 의미인 동시에 목적이면서 존재 이유에 도덕과 의무 그리고 빛이었다. 그러니 자칭 우주해적 세그니아단의 지구침략이나 외계난민협회 또 인류의 미래 따위야 어찌 되든 좋을 덤인 게다. 




호란은 유은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정장은 벗고 가볍고 캐쥬얼한 차림으로. 아무래도 그림을 가르치다 보니 뭐가 묻어 지저분해질 때도 잦고 움직이기 불편한 옷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핑계. 그저 호란이 여러 가지 옷을 입어봄으로써 유은에게 자신의 다양한 매력을 어필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가슴이라던가.

“선생님, 여기 이거. 저번에 그리던 그림 끝냈어요.”

거실에 나오니 유은은 이미 화구를 다 갖춰놓았다. 이젤도 내려놓고 그림도 올려놓고. 호란은 한층 가벼운 복장을 한 기쁨에 이리저리 기지개를 펼친 뒤 이젤 앞에 앉아있는 유은의 옆에 섰다.

“어디…저번에 진도 나간 그림은 수채화 정물이었지?”

호란은 고개를 숙여 유은이 그린 그림에 바짝 다가갔다. 아. 유은이 샴푸한 냄새난다. 이런 방향제 같은 아이라니. 

“어떤가요?”

“응? 아! 그림. 좋아. 좋아요.”

이렇다 할 것 없는 수채 정물화. 얼마 전까지는 질감을 그리는 법을 배우도록 물건 하나씩을 그렸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병이니 사과니 이것저것 상 위에 올려놓고 그리는 과제를 주었었다.

이렇다 할 것 없는 수채 정물화라지만. 또 비록 시각보다 후각에 충실한 미술 선생님이기는 하지만 잘 그렸다는 호란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다. 호란은 유은의 그림을 좋아한다. 유럽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가? 빛을 다루는 것이 약간 건조한지라 그만큼 색이 뚜렷하고 강하다.

이런 귀엽게 생긴 아이가 그림은 박력 있게 그리는 이 격차가 참 좋아…라고 오늘도 침을 질질 흘리는 호란(28세. 여. 지구침략단체 간부).

“색은 잘 잡았다. 그런데 형태가 좀 아쉬워. 여기. 여기. 사과들이 다 살짝 일그러졌잖니. 물병이나 구두는 그렇게 흠잡을 곳은 없이 잡았는데. 사과가 더 그리기 쉽다고 생각해서 간단히 그리려다 실수했니?”

“아…그러네요. 죄…송해요.”

죄―! 송―! 하―! 대―!

죄송하대!

죄! 송하대!

죄송! 하대!

죄송하! 대!

계속 죄송해 했으면 좋겠다…

행복해하는 유은이도 좋지만 혼이 나고는 살짝 풀죽은 유은이도 좋다. 오늘도 다를 바 없이 인간의 도리를 전속력으로 벗어나는 과외 선생님이시다.

침울한 유은의 표정을 만끽하다가 그 뒤에 놓인 그림을 본다. 확실히 빛이 좋다. 거실에 드는 햇볕부터가 따스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은을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이 집에는 어린 아기와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난 뒤의 따스함과도 같은 온기가 가득 차 있었다. 




“박 박사님. 그 유은이라는 학생은 언제 오나요?”

유은을 처음 만난 날. 지금의 아파트에 처음 들어와 유은을 기다리던 때에도 호란은 어색한 정장 차림이었다.

첫 제자와의 첫 만남 날이거니와 진정한 고객이라 할 수 있는 박 박사. 그러니까 유은의 한국생활에서의 보호자이자 외삼촌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교 시간이 되었으니까 곧 올 겁니다. 조카만 오면 저는 곧 연구실로 돌아갈 테니까요.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 박 박사라는 양반은 박사다웠다. 박사 같은 뿔테 안경을 쓰고 박사 같은 백의를 걸친 뒤 그 윗 주머니에는 박사 같은 만년필을 꽂아놓았고 박사 같은 넥타이와 박사 같은 콧수염을 한.

초면일지라도 이 사람을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내츄럴 본 박사였다.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아. 아하하. 염려 마세요.”

지끈지끈 울리는 두통을 가라앉히려 오른쪽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애써 웃는 호란. 그날 호란은 하루 전 새벽까지 마신 술 때문에 숙취로 괴로워하던 차였다.

총통Z가 준비해놓은 세그니아 팜므의 전투복을 처음 보고는 충격 때문에 술을 진탕될 때까지 마시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촉수 고양이…파렴치한 비키니를 입고 뭘 시키려고…기지로 돌아가면 촉수를 끄집어다가 실뜨기를 해버릴 테니까…!’

“지 교수님은 잘 지내시나요?”

“지 교수님이야 뭐. 잘 못 지낼 분도 아니시잖아요.”

여기서 지 교수님이란 지옥 석사를 가리킨다.

박 박사는 지옥석사의 후배다. 이 과외 의뢰도 지옥석사가 박 박사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 부탁해 겨우 받아낸 일자리였다.

호란이 세그니아 팜므의 전투복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지옥석사의 체면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됐든 과외 선생님으로 소개를 해준다고 했으니.

다시 백수생활로 돌아가면 돌아갔지 반라 상태로 도시를 활보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예의는 지킬 셈이었다.

“유은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조카는 누님, 그러니까 어머니를 닮았는지 무척 차분한 아이입니다. 매형이 유럽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유은이도 유럽에서 자랐는지라 한국말도 서투르고 한국문화도 익숙하지는 않을 겁니다.”

돈 많겠네…

하긴. 유은이 지내는 아파트는 아무리 땅값이 어찌 오를지 모르는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남학생이 홀로 자취생활을 하기에는 너무나 고급이다.

“14살이라고 했죠?”

“예. 며칠 전에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어린 나이다. 아무리 부모가 급한 일로 같이 살 수 없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런 어린아이가 홀로 사춘기를 보내도 괜찮을까?

“미술을 공부한 적은 있나요? 아무래도 유럽이랑 한국은 교육법에 차이가 있을 텐데.”

“아니요. 그곳에서는 어디까지나 취미로 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누님께서는 조카가 한국식 입시교육을 겪는 것보단 자유롭게 하고픈 일을 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하셔서요.”

흥. 부잣집이나 할 수 있는 말이네. 그래도 뭐. 가정교사 일로는 나쁜 편이 아니다.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 입시라면 가르칠 것도 가정교사가 질 부담도 많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호란은 아이들이 불편했다. 아이란 제멋대로에 쓸데없이 섬세한 데다 자의식으로만 가득 차 어른들을 귀찮게 군다고 생각했다. 뭐 본인이 어렸을 적에 그런 아이였기에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지만.

철컥.

열쇠로 자물쇠의 잠금을 푸는 소리가 났다.

“유은인가 보네요. 잠시 앉아계십시오.”

박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호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만히 앉아 곧 만날 제자를 기다렸고.

“유은. 소개해주기로 했던 과외 선생님이 와계시다. 나는 연구실에서 호출이 와서 급히 가봐야 한다. 네가 선생님 잘 모셔드려. 혼자서도 할 수 있지?”

박 박사는 문 앞에서 유은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넸지만 그 내용 모두 호란의 귀에 들어갔다. 뭐야. 보호자가 벌써 가는 거야? 아이 하나랑 단둘이서 뭘 하면 좋담.

호란이 속으로 이래저래 불평하는 사이 곧 박 박사는 유은을 데리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호란의 머릿속으로 천상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처…천사?’

유은의 처음 만나는 어른에게 아이들이 흔히 지어 보이는 그 수줍은 미소에 그만 호란은 대기권을 돌파하며 추락한 운석이 뒤통수를 강타한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년의 뒤로는 천상에서 내리쬐는 후광이 비쳐 보였다.

눈이 부시다기보다는 그저 따스한. 온기를 가진 빛.

‘진짜 예쁘다…’

또래에 비하면 약간 자그마한 키.

보드라운 머릿결의 살짝 긴 단발.

상냥함이 넘쳐흐를 것 같이 부드럽고 큰 눈.

부끄러움으로 살짝 붉게 상기된 볼.

호의로 가득한 미소만이 담긴 입술.

‘세상에…’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 감정.

호란은 14살짜리 소년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마주하며 28살까지 나이를 먹은 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제껏 겪어온 모든 고통과 절망 그리고 눈물을 전부 용서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저 막연히 언젠가 올지 모른다면서 기다려왔던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이 아이가 유은입니다. 과외 선생 일을 부탁하긴 했지만 제가 집에 들를 처지가 못 되고 이 아이도 한국이 처음이라 의지할 사람이 누구 하나 없으니…이런저런 생활도 같이 돌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맛있겠…아니, 네!”

“그러면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선생님. 제 조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뇨, 아뇨. 저야말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가…가능하다면 펴…평생…”

“예?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하하.”

호란은 박 박사가 미안하지만 연구실로 돌아가야 한다며 인사를 하는 것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연신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배웅했다.

이제 이 집 안에는 호란과 유은 둘만 남았다.

호란은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스물여덟 먹도록 이렇게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었는데.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본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빠지고 말다니.

이것이 사랑이구나.

호란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어 유은의 볼을 잡아당겼다. 기분 좋게 탄력 있게 늘어나는 유은의 볼.

“션섕…니임?”

유은의 발음이 새는 물음.

왜 자기 볼을 꼬집지 않고 옆 학생의 볼을 잡아당기는지 호란 본인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 유은의 볼을 쪼물락거렸다.

핫.

잠깐. 

나 뭐 하는 거야.

호란은 볼의 촉감을 만끽하다 유은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고 그제야 제정신을 차렸다.

안 되지 안 돼.

일단은 내가 어른이니까. 어른스러운 관계를 만들어야지. 아무렇게나 내가 이 아이에게 뭘 막 들이대면 안 된다고. 차분하게. 천천히 친해지는 거야.

호란은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유은의 볼에서 손을 떼고는 최대한 우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신경 쓰며 최대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대화를 고민한 뒤 첫마디를 꺼냈다.

“우리 결혼할까?”

엄마야.

이게 아닌데.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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