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헤르만(Herman) - 1
바리스타 연 랭의 카페는 겉으로는 작고 허름했지만 그 속은 대형 커피 체인점을 몰아낼 정도로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이었다. 수도에서 가장 넓다는 펜드래건 강을 낀 이곳은 휴일을 제외하면 항상 손님으로 붐볐다. 젊은 기사들은 창가에서 강을 바라보며 고독을 즐기거나 사랑의 말을 주고받았고, 노신사들은 카운터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함께 지금까지의 인생을 논했다.
처음 왔든 단골이든 상관없이 카페를 찾아온 손님들은 이곳의 주인을 '마스터'라고 불렀다.
세대를 초월한 인기의 비결은 아늑한 분위기도, 서비스로 주는 칵테일도, 사람 대신 종업원으로 일하는 잭 러셀 테리어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연 랭 특유의 형용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40대로 보기 힘든 그녀의 동안을 보러 오는 부류도 있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연 랭이 건네주는 커피와 그 안에 담긴 재치 때문에 가게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 카페엔 결점이 하나 있었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 마스터 랭의 괴악한 작명 센스가 가게 이름에까지 녹아든 것이다. 가게를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 특히 타 지역에서 온 경우엔 간판을 보고 흠칫할 때가 많았다.
카운터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어떤 여성도 이곳의 이름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커피빈의 역습‘이라…… 개성적인 이름이네요, 마스터."
직접 생각해낸 이름인지 덧붙여서 묻고 싶었지만 입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실례라고 생각되는 한편 마스터 랭이 직접 설명해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머리색이 닮았다는 이유로 마스터 랭과 그녀의 관계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여성은 머그컵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희고 고운 손과 절도 있는 자세, 잡티 한 점 없는 피부는 그녀가 고귀한 신분의 영애(令愛)임을 보여주었다. 겉보기에도 부드러울 것 같은 원피스가 등과 하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뻗어 내려갔고, 긴 카디건은 그 위를 부드럽게 덮었다. 조금 헐렁한 소매가 주름을 그리며 팔꿈치로 내려가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성인식을 막 끝낸 풋내기 어른 같았다.
마스터 랭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여성은 옆에 놓아둔 검을 어루만졌다. 기사(騎士)와는 거리가 먼 그녀의 이미지에 괴리감을 형성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지? 그거 생각해내느라고 며칠을 고민했으니까. '손님을 끌어들이는 임팩트가 필요해!'라고 친한 친구가 옛날에 말했거든."
역시, 라고 생각하며 여성은 웃음을 참았다. 아무래도 이곳의 여주인은 친구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도 커피의 맛과 마스터의 서비스가 가게 이름만큼이나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잠시 뒤, 종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카운터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냄새였다. 침묵 속에서 여성은 이 냄새가 궁정 요리사가 항상 갖고 오던 그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신문을 펼친 그녀 앞으로 크로와상(croissant)이 담긴 접시가 다가왔다. 주문한 기억이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커피만 주문했을 텐데요.”
그러자 마스터 랭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한 번밖에 없는 스페셜 서비스라고 생각해. 미스 힐스레스트는 오랜만의 귀한 손님이니까."
여주인의 미소를 보자 미스 힐스레스트는 예의상으로라도 거절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20년의 나이차가 있음에도 마치 몇 살 차이 안 나는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 일상이 매력적으로 변하겠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할 수 없네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손을 뻗어 크로와상을 한 개 집었다. 특별한 손님을 위한 특별한 크로와상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살짝 뜯어보니 하얀 속살과 함께 갓 구운 빵의 향취가 물씬 풍겨왔다. 궁정 요리사가 매일 아침 구워오는 빵보다 맛있어보였다. 한 조각 뜯어 조심스레 입에 넣어본 그녀는 잠시 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예상대로라는 듯 마스터 랭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음에 들었나보네. 우리 가게의 크로와상은 최고급 재료만을 넣어서 만든 고급품이거든. 굳이 말하자면…… 미스 힐스레스트처럼 고귀하다고나 할까?”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요?”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일단 가벼운 립 서비스(lip-service)로 알고 웃어넘겼다. 미스 힐스레스트는 여주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간파당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진짜 신분을 숨긴 채 이곳으로 온 이상,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크로와상을 집은 손가락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쿡쿡, 하고 웃으며 마스터 랭은 설거지를 계속했다. 저것만으로는 여주인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미스 힐스레스트는 궁의 예법이 몸에 자연스럽게 밴 사람 같아. 날계란을 쥐듯이 컵을 잡는다던지,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와 거리를 둔다던지, 상체를 항상 곧게 세운다던지……. 귀족과 평민이 동등해진 요즘 시대에 그런 사람은 찾기 드물거든. 게다가 단골이 아니면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귀족 아가씨는 별로 없어.”
즉, 이라고 그녀가 덧붙이자 미스 힐스레스트는 더욱 긴장했다. 푸근하고 느긋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의외의 날카로움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 가게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미스테리어스(mysterious)한 고급 귀족의 영애려나?"
……오답이다. 추측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틀렸습니다. 제 아버지는 하급 귀족과 평민의 혼혈이세요. 궁의 예법을 따르는 건 황실…… 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잘못 짚으셨네요."
"그런 거였구나. 아쉽네."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일단 미스 힐스레스트는 조용히 웃었다.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오답을 지적해주는 선에서만 끝내도 될 것 같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미리 식은 크로와상을 다시 뜯었다. 서민처럼 커피를 마시는 방법을 공부해올 필요성을 느꼈다.
미스터리는 결국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마스터 랭을 포함한 카페 내의 모든 사람들과 즉시 거리를 둬야 했다. 일부러 ‘알리사 힐스레스트’라는 가명을 쓰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는, 인연이 있는 한 남자에게 초대장을 전달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재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람을 시켜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나이는 동갑(20살), 생일은 자기보다 두 달 늦은 5월 24일. 신분은 3급 기사이며 몇 달 전에 기사학교를 졸업했다. 커피빈의 역습에서 높은 월급을 받고 일하지만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아르바이트가 어떤 직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커피를 만드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알리사가 그의 스폰서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의 프로젝트에 금전적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듣고 축하의 인사도 할 겸, 초대장을 건네면서 서프라이즈(surprise)를 일으킬 생각이었지만…….
"오늘은 안 나온 건가."
어딜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마스터 랭 이외에 일하고 있는 점원-동물도 점원에 포함될 수 있다면-이라곤 메뉴판과 영수증을 열심히 물어다 나르는 천재 강아지뿐이었다. 아까부터 저 강아지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정작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본인에게 초대장을 직접 전달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45분. 시간이야 넘치지만 가게에 오래 눌러앉아 있으면 실례일 테고, 바깥에서 기다리는 건 더운 날씨에 고역이다. 이렇게 되면 익숙하지도 않은 커피하우스에 무리하게 찾아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 사람이 왜 안 오는지 궁금했다. 마스터 랭이 주문을 받고 카운터로 돌아오자마자 알리사는 질문을 던졌다.
"마스터, 혹시 이 가게에 저 강아지 말고 다른 점원은 없나요?"
"왜? 러셀 씨에게 불만이라도 있니?"
잭 러셀 테리어로 보이는 저 강아지의 이름이 '러셀 씨(Mr. Russel)'인 모양이었다. 의문이 하나 풀렸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뇨, 이곳에서 일하는 남자 점원이 있다고 들어서…….”
마스터 랭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질문엔 제대로 대답해주었다.
"정직원은 없지만, 아르바이트생은 남녀 합해서 네 명 있어. 자식처럼 키워온 아이들이라서 생활비라도 벌게 해주려고 일을 시키고 있긴 한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관심 있는 애라도 있어?"
당황한 알리사는 급히 해명에 들어갔다.
"그, 그런 건 아니고요, 어떤 기사분께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데 그분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요. 여기에 온 이유도 그분을 만나서 은혜를 갚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계시는 것 같네요."
“흐음, 다들 자기 일이 바빠서 말이지. 신형 마도병기가 완성됐다고 그거 보러 나갔어.”
그 사람의 프로젝트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최종 보고서를 올리기 전에 신형 마도병기의 성능 테스트를 시행하려는 것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굳이 찾아올 필요도 없었을 테다. 일정을 제대로 조사해두지 않은 게 탈이었다.
다만 이렇게 좋은 인연이 생긴다면 가끔씩은 서민의 커피를 맛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깥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온실 속 화초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이런 경험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한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왠지 부러워지기도 했다.
“저기, 있잖아.”
언제 말을 건 것일까. 알리사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마스터 랭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5시에 문을 닫으려고 해. 그 아이들의 일이 성공한 것 같아서 맥주 파티라도 열까 하거든. 용무가 있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오지 않을래?"
"맥주 파티요?"
알리사의 눈동자가 한순간 망설임으로 흔들렸다. 마스터 랭의 배려인지는 둘째치고, 파티에 참석한다면 그 사람에게 초대장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 안에 이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참석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온다고 할 줄 알았는데, 왜?"
의외라는 듯 마스터 랭은 이마를 살짝 치켜떴다. 상체를 기울인 그녀는 두 팔을 카운터에 올린 뒤 반쯤 주먹 쥔 왼손으로 얼굴을 받쳤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을 때 나오는 버릇으로, 걸리는 사람마다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다.
여주인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 알리사는 양쪽 뺨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나이를 초월한 그 미모는 여자인 그녀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재촉하지 않는 것이 긴장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이 사람은 손님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여자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로 너무 오래 있으면 부담스러워질 것 같았다.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만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게…… 아직 그분께 저의 얼굴을 보일 순 없으니까요."
"나한테 보여주는 건 괜찮고?"
마스터 랭이 웃으며 반문했다. 그녀의 말대로 알리사는 맨얼굴을 드러낸 채 대화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베일(veil)을 너무 쉽게 벗어버렸다. 그것도 처음 본 사람 앞에서 말이다. 얼굴 가리기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거나 만나야 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지 않으면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의 감이랄까, 초면이긴 하지만 마스터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같아서요."
좀 전과는 달리 알리사의 태도에 여유가 배어나왔다. 마스터 랭은 재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봐준다면 고맙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손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행동은 절대 안 하니까. 미스 힐스레스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둘게."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을 하나 드릴까 하는데……."
"부탁?"
신문을 들춘 알리사는 그 밑에 숨겨둔 편지를 꺼냈다. 구겨짐 하나 없이 희고 깨끗한 봉투의 입구는 특이하게도 촛농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풀을 사용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고전적이면서도 격식 있는 선택이었다. 고풍스러운 문장(紋章)이 촛농 위에 음각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카운터에 편지를 올려놓은 뒤, 마스터 랭이 있는 방향으로 소리 없이 밀었다. ‘검은 마도병기의 또 다른 습격…… 넓어지는 활동범위’라고 적힌 신문의 헤드라인이 편지에 의해 반쯤 가려졌다.
“이 초대장을 그분께 대신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레 저녁, 7시에 이걸 들고 오라고, 또 친구분들을 데리고 와도 상관없다고 전해주세요. 알리사 힐스레스트가 보냈다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내가 대신 전달해줘도 괜찮겠어? 직접 만나고 싶어했잖아.”
알리사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카디건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꺼낸 뒤 그 속에 있는 안경 같은 것을 빼냈다. 렌즈 없는 무테안경 아래에 흰색 천을 달아놓은 것 같은 이 이상한 물건은 귀부인들이 얼굴을 가릴 때 사용하는 흰색 베일(veil)이었다.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동시에 휴대가 간편하도록 만들어진 개량형이었다.
안경 쓰듯이 베일을 걸친 뒤 머리를 정리하고 나서야 알리사는 입을 열었다.
"친한 사람이 주면 경계심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실 테죠. 그분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아직 없는 것 같네요. 자, 그럼 할 일도 끝났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커피값이라는 건 어떻게 내야……."
"아, 커피값은 안 내도 돼. 어차피 한 잔밖에 안 마셨고, 서비스로 치면 되니까. 그 대신 가게에 한 번 더 와줬으면 좋겠어. 그 아이와 만나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들려줘."
그렇게 해주면 커피 한 잔 또 서비스로 줄게, 라고 마스터 랭은 덧붙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리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 뒤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소를 짓고 있음이 분명했다.
등을 돌린 알리사는 사뿐한 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계단 앞에 멈춰 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차량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정장 차림의 심복 세 명이 차에서 내린 뒤 주군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를 차에 태우더니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검은 두고 갔지만.
"어른 흉내를 내는 아가씨네.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가버리고."
카운터를 나온 마스터 랭은 한숨을 내쉬며 알리사가 두고 간 검을 집어 들었다. 검집에 새겨진 문양과 손잡이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날의 재질은 마도병기 장갑을 만드는 데 쓰이는 레어메탈(rare metal). 고급 귀족도, 부르주아도 살 수 없는 아주 희귀한 검이었다.
기사학교를 졸업한 보람이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미묘한 표정과 함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뭐랬어. 고귀한 영애라고 했잖아.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이 아이와 엮이다니 대단한걸."
네 명의 조카들 중 남자아이는 두 명이었다. 둘 중에 어느 쪽일까 궁금해하며 카운터 위에 있는 알리사의 초대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봉투의 표면엔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To: Sir Hansen H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