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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언바운드 윙


01. 헤르만(Herman) - 3


 ‘오늘 오후 1시, 군은 브란덴부르크를 침공한 적대 세력의 정체가 ’검은 마도병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어젯밤 10시, 브란덴부르크 방위군의 레이더에 미확인 신호가 잡혔고, 방위군에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마도병기를 출격시켰지만 배후에서 적의 기습을 받았다고 군은 설명했습니다. 이번 습격으로 마도병기 조종사 3명이 사망하고 일반 군인 84명이 부상당했으며, 다수의 민간 재산 피해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현재 의회에서 급파된 조사대책반이 상황을 확인 중에 있으며 황제 폐하께서 친히 브란덴부르크로 행차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파괴된 군 기지를 배경으로 한 기자가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곳곳이 검은 연기로 가득했고, 기자의 등 뒤로 시체 가방을 든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는 그 광경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상황을 설명하는 기자의 비통한 표정이 밝은 소식만을 전해줄 것 같은 인상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기자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의외의 상황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센은 카운터에 있는 약봉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요즘 세상은 참 흉흉하구나. ‘검은 마도병기’라는 게 다 있고.”




 옆에서 랭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카페 ‘커피빈의 역습’의 주인, 연 랭의 목소리였다. 이틀간에 쌓인 피로에 무너지기 직전인 조카를 위해 약과 물을 건네준 뒤, 자신은 그 대가로 아네모네의 타블렛을 받아 파일을 뒤지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TV 화면에서 눈을 뗀 한센은 깊은 숨을 내쉬며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정제된 알약 특유의 쓴맛이 혀에 퍼지기 전에 재빨리 물을 들이켰다. 가벼운 탄식과 함께 한센이 컵을 내려놓았을 때, 카운터 너머에서 랭 이모가 질문을 던졌다.




 “이 이름이 맞니? ​가​디​언​(​G​u​a​r​d​i​a​n​)​…​…​ 인가 뭔가 하는 이거.”




 그러면서 타블렛 화면을 한센 쪽으로 돌렸다. 파란 원을 중심으로 폴더들이 ​방​사​형​(​放​射​形​)​으​로​ 퍼져 있다. 그중 제국어가 아닌 특이한 이름의 폴더를 랭 이모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알파벳으로 구성됐지만 제국어를 비롯한 어떤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어였다.




 한센은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몰려들어온 피로 속에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였다. 약을 먹었으니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약효가 있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기지개를 쭉 켜며 한센은 옆자리에 쓰러져버린 아유다의 등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꾸벅꾸벅 조는 자신의 모습도 웃기지만, 아유다의 인사불성인 모습도 가관이었다. 힘없이 카운터에 몸을 맡긴 채 아유다는 ‘일하기 싫다아…….’를 연달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건, 체내에 들어간 초콜릿이 이상 반응을 일으킨 탓이다. 이 녀석, 멍청하게도 칵테일을 마실 때 성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헤에,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아르엘처럼 밋밋하지도 않고, 겉으로만 봐도 ‘기사’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드네.”




 아유다를 이렇게 만든 원흉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넘기고 있었다. 도면을 찍은 듯한 몇 장을 제외하면 전부 어떤 마도병기의 모습을 담고 있다. 10인치 모니터 안의 철거인은 흰 갑주를 전신에 두른 채, 전방을 굳게 주시하고 있는 자세를 했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탓에 행거가 철거인을 구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험 기동은 해봤니?”


 아무 말 없이 봐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랭 이모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억지로 눈을 뜬 한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뇨, ​콕​핏​(​c​o​c​k​p​i​t​)​에​ 탑승하지도 못하게 했어요. 어떻게든 밖으로 쫓아내려고 하길래 자료만 회수하고 왔죠.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요.”




 “그러게 한 주만 더 기다려보라고 했잖아. 요즘 행사다 뭐다 해서 모든 비행장이 통제되고 있는데, 군에서 그렇게 쉽게 허가를 내줄 것 같았니? 이모 말대로, 그냥 포기하고 한숨 푹 자는 게 더 편했을 텐데.”




 “일부러 서두른 거에요. 망설였다간 이럴 시간마저도 없어질 테니까.”




 나름 반론을 해봤지만 한센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내키진 않아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비행장이 제국 정규군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유를 부려도 됐을 테지만 한센은 급한 마음에 일부러 고집을 피웠다. 그리고 두 시간도 안 되어 결국 이곳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한센은 착잡한 기분으로 유리컵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 이해되지도 않는 기자의 말이 귀에 억지로 들어왔다.




 ‘……수도에 인접한 도시가 처음으로 기습당한 점을 들어, 제국 정규군의 미흡한 대처 때문에 적대 세력이 수도권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가디언’은 어떤 언어에서 따온 이름이야?”




 다시 타블렛으로 시선을 돌리며 랭 이모가 물었다. 분위기 전환을 하려는 듯 목소리가 어색할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한센은 이모의 팔 너머로 화면을 흘끗 바라보고는, 깊은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서력 시대(Anno Domini Era)의 언어요. ‘수호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니까, 이왕이면 괜찮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고대어 사전을 좀 뒤져봤어요.”




 “수호자란 말이지…… 미묘한 이름이네. 전투용 병기도 아닌데 말이야.”




 “민간구호용도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 똑같아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센은 즉답을 했다.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힘없이 랭 이모의 감상을 들을 뿐이었다. 정신은 맑아졌지만 몸은 아직 피로에 찌들어 있는 탓이었다.




 컵을 앞으로 내민 한센은, ​리​필​(​r​e​f​i​l​l​)​을​ 요구하며 멍하니 자기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디언. 정확한 명칭은 ‘PIOS-01 다목적 민간구호용 병기’. 비(非)전투형 마도병기의 이름 치고는 쓸데없이 거창한 게 특징이다. 최고급의 재료만을 썼고, 아네모네가 개발한 자체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로 영혼을 불어넣었다. 돈 걱정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스폰서가 대준 막대한 지원금으로 해결했다. 뜬금없이 찾아온 행운이어서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사제 마도병기의 제작 및 소유는 기사의 특권이지만, 자금원이 없으면 한센 같은 평민 출신에겐 기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스폰서를 칭한 ‘그녀’는 프로젝트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기에, 아예 한센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나온 것이 비전투형이었고, 랭 이모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제국인들은 서력 시대로부터 ​‘​기​사​(​K​n​i​g​h​t​)​'​라​는​ 개념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런 기사들이 전투 병력으로 생각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신형기에 대한 랭 이모의 복잡한 반응도 분명 거기에서 비롯됐으리라.




 이다음 순간에 이모가 꺼낼 말이 대충 예상되는 한센이었다. 프로젝트의 결과를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심 각오를 다졌지만, 그에게 온 것은 속 빈 칭찬이 아닌, 무언가가 담긴 잔이었다. 우유의 질감을 가진 갈색 액체가 거품과 함께 잔에 담겨 있었다.




 한센이 고개를 들자 오른손엔 타블렛을, 왼손엔 보온병을 들고 있는 랭 이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투용이 아니면 어때. 네가 처음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게 더 중요하지. 이거라도 마시고 기운 내.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헤일리스 ​밀​크​(​H​a​i​l​e​y​'​s​ Milk)야.”




 알코올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술의 일종인 모양이었다. 칵테일이던가, 아유다를 뻗게 만든 종류와 거의 비슷하다. 이모의 의도는 아직 파악할 수 없었지만,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던 한센은 난처한 반응을 보였다.




 “약을 먹은 사람한테 바로 술을 권하시면 안 되죠.”




 “아, 그랬구나. 미안해.”




 랭 이모도 마찬가지로 곤란한 미소와 함께 허둥지둥 잔을 거뒀다. 한센은 이모가 직접 마시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술은 보온병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마셔도 별 문제 없었을 텐데, 라고 혼자 생각하며 한센은 벽에 걸린 TV로 시선을 돌렸다.




 “아깝다는 생각 안 드세요?”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리며 한센은 랭 이모에게 나직이 물어보았다.




 “응? 뭐가?”




 “신형 마도병기요. 극비 프로젝트라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비전투형이 튀어나와서 실망했다던지……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해보셨어요?”




 “비전투형이면 실망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니?”




 “아뇨, 그건 아니지만…….”




 의외의 반응에 한센은 말끝을 흐렸다. 상식적으로 봤을 땐 재능을 엉뚱한 데에 썼다느니, 돈을 하수구에 버렸다느니 같은 부정적인 평이 나올 법했다. 상식을 깨는 건 자유지만 그 후폭풍을 견뎌내는 건 의무라고, 프로젝트 초기에 메르겔이 조언해준 바 있었다. 그래서 여차할 때를 대비해 해명할 말까지 미리 준비해둔 한센이었다.




 의문이 담긴 조카의 시선을 받아내며 랭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아쉽긴 해. 내가 후보생이었을 시절엔 군의 마도병기에 타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이었거든. 그렇게 높았던 문턱이 20년도 안 돼서 여기까지 낮아졌잖아. 너희들 세대에겐 많이 쉬워졌겠지만, 그래도 비전투형을 만드는 건 기사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




 그러면서 찬장을 열었다. 한센은 새 컵을 꺼내는 랭 이모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랭 이모도 한때 기사단원을 목표로 했다는 말을 모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하고, 가수로서도 성공하지 못해 결국 바리스타의 길을 걸었다지.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그가 대신 이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내심 있었을 것이다. 소원대로 됐는지는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한센의 주의를 일깨우려는 듯 랭 이모는 카운터를 몇 번 두드렸다. 이번엔 칵테일이 아닌 차가운 물을 내놓으며, 나긋나긋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아쉽다고만 했지, 아깝다고는 안 했어. 너는 원래부터 목표가 확실한 아이였으니까, 어떤 걸 만들었든 대단한 일을 해낼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마. 실망 같은 건 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단순한 의견 같아보이진 않은데.”




 한센이 어색한 미소를 짓자 랭 이모도 따라서 웃고는, 컵 안에 얼음 두 조각을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물을 그냥 마시든, 빨대를 쓰든, 숟가락으로 떠먹든 목적 자체는 변하지 않잖니? ‘민간구호용도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 똑같다’고 말한 건 누구였더라?”




 “그야 제가 한 말이죠. 반복하다 보니 습관이 되긴 했지만.”




 퐁, 하는 소리를 내며 얼음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약이 듣기 시작하는지, 유리컵에 서린 김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였다. 한센이 컵을 집으려 하자 랭 이모는 컵의 테두리를 눌러 그의 손을 막았다. 빠진 게 있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우직하게 나아가야 하는 법이야. 신형기를 완성시켰다는 건, 네 주관이나 의도가 끝까지 관철됐다는 의미도 되겠지. 거기에 마지막으로 더해야 하는 건…… 바로 너의 목적. 한센은 자기 작품을 어디에다 쓰고 싶어?”




 말하던 도중, 랭 이모는 작은 레몬 조각을 얼음 위에 올렸다. 그것을 본 한센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 맛도 없는 물에 레몬을 올려놓으면, 물과 즙이 서로 섞이면서 신맛과 쓴맛의 중간에 있는 맛이 나오게 된다. 테두리의 구속이 풀리자 한센은 컵을 들고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의 조화를 살펴보았다.




 물에 레몬을 넣는 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뭔가 맛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가급적이면 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쓰고 싶어요. 민간구호용이니까, 물품 보급이나 잔해 철거 같은, 후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요. 그렇지만 막연하게 정해둔 거라서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난민들이라면, 저기 TV에 나오는 저 사람들?”




 카운터 안쪽의 TV를 가리키며 랭 이모가 물었다. 뉴스는 끝난 지 오래였고, ‘검은 마도병기,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를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때마침 파괴된 시가지를 보며 아연실색하고 있는 한 시민의 영상이 나타났다. 전신이 재 같은 것으로 뒤덮여져 있어 말 그대로 난민이라 불릴 만했다.




 뉘앙스가 너무 가벼운 것 같았지만, 어쨌든 한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보통 ‘난민이 되었다’고 표현하곤 하니까. TV에 나온 저 시민을 포함한 모두가 난민이 되어 있었다. 수수께끼의 적에게 공격당해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다. 기사는 무력으로 시민을 지킨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한센은 그저 상식에 조금 어긋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돕고 싶을 뿐이었다.




 TV를 바라보는 한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포착한 랭 이모는 미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나 있구나?”




 “네? 화가 나 있다뇨?”




 당황한 한센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랭 이모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눈을 보면 알아. 확신할 순 없지만, ‘무력감’ 같은 게 느껴졌어. 저 영상을 보고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럴 리가요. 잠깐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에요.”




 “헤에,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모한테 말해줄 수 있어?”




 랭 이모는 타블렛을 내려놓은 뒤, 카운터에 살짝 몸을 기댔다. 두 팔을 올리고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친다. 한센은 이모의 저 자세에 어떤 기묘한 마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42세의 나이에도 저토록 동안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하며, 한센은 심호흡으로 뺨에 도는 온기를 식혔다. 다시 눈을 마주치니 랭 이모는 여유 있게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하기엔 좀 곤란한데요…….”




 그 뒤에 붙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종소리와 함께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랭 이모는 빠르게 자세를 고쳤고, 한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타블렛을 재빨리 회수했다. 여어, 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메르겔이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풀이 죽어 있는 걸 보니 아네모네에게 된통 혼나고 온 모양이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메르겔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한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찌뿌듯했지만 한 바퀴 걷는 것으로 피로를 풀기로 했다. 타블렛을 한 손으로 든 채, 창밖에 있는 아네모네를 응시했다. 금발의 소녀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피곤한데 또 어딜 나가려고? 물도 안 마시고.”




 랭 이모가 다급히 멈춰 세웠지만, 그는 이미 가게 문 앞에 있었다. 카운터를 향해 타블렛을 흔들어 보이며 한센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여동생이랑 데이트 좀 하고 올게요. 예상했던 문제가 터진 것 같아서.”






 그리고 ‘아네모네 좀 빌린다’, 라는 말과 함께 가게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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