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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천자 주기로 화를 끊을 것 같습니다. 화수가 많아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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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루벤크렌체(Luvenkrantze) - 4
아르엘의 오른팔에 작은 변형이 일어났다. 전기톱을 연상시키는 칼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손 앞까지 전개되었다.
체인 블레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엘의 근접전용 무장 중 하나다. 특수한 환경 때문에 장병기를 쓰기 어려운 부대에서 자주 운용되고 있었다. 그 위력은 레어메탈 장갑을 일격에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말 그대로 대(對)마도병기를 상정한 실전에선 적합한 선택이다.
그 은색의 칼날을 본 순간 한센은 아연실색했다. 긴장감이 심장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직였다. 다행히 콕핏을 향해 쇄도해오던 체인 블레이드는, 아르엘의 팔이 붙잡히면서 덩달아 진로가 막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기세는 섬뜩할 정도로 살인적이었다.
"죽일 셈이냐, 아유다 루벤크렌체!"
진정으로 항의해봤자 대답은 없다. 이미 몇 번이고 무전을 시도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나마 통신 회선이 아직 열려 있다는 게 위안이자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저편에서 반응이 있을 때까지 통신으로 계속 말을 걸 생각이었다.
전신에 힘을 주면서, 이건 모의전이 아닌, 실전이라고 머릿속에 되뇌었다. 무의식적인 사고의 연쇄는 아유다가 초콜릿을 입에 넣었을 때의 기억으로 그를 이끌었다.
아유다는 체질상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됐다 해도 그녀에겐 카페인이 여전히 독으로 통했다.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체내에서 분해되는 순간 각성제를 능가하는 효과가 나왔다. 이런 상태의 아유다는-한센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그것이 모의전과 연결된다면 상상 가능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문득, 아르엘의 숄더 플레이트에 도장돼 있는 '01' 마크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도 경비대장의 상징인 그 숫자에 헤아릴 수 없는 염증이 느껴졌다.
"사람 말 좀 들어!"
알아먹지도 못할 꾸중을 하면서 왼팔을 끝까지 주욱 밀었다. 콕핏 근처까지 다가온 체인 블레이드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엠프리스의 힘을 아르엘이 버틸 순 없었다. 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르엘의 자세가 점점 무너져갔다.
거의 제압했다 싶었을 때 칼날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그라지는 모터 소리가 새로운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체인 블레이드를 껐다는 건 강구할 다른 수단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카페인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도 아유다의 동물적인 감각은 건재한 것이다. 이마를 찌푸리며 한센은 아르엘의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잡아내려고 애썼다. 아유다와 모의전을 할 때면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그를 몰아세우곤 했다.
마침내 아래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렴풋이 빛나는 은색의 무언가를 보고는,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기체를 뒤로 뺐다. 엠프리스가 있던 자리에 아르엘의 풋 나이프가 길고 부드럽게 대각선을 그으며 허공을 양단했다.
……이거 모의전 맞지? 그렇게 생각하는 한센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수도 경비대의 아르엘엔 날붙이가 많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시가전이 전제되는 만큼 그에 걸맞은 개량이 행해진 탓이다. 도로와 건물이 어지럽게 깔려 있는 도심에선 수납이 용이한 근접 무장이 적절하다는 논리였다. 진위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그들의 마도병기가 근접격투에 특화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에 비해 엠프리스는 비전투형이고, 무장도 없다. 처음부터 이런 사태는 상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내세울 게 있다면 아르엘을 능가하는 힘과 기동력 정도. 오늘 처음 써본 차세대 베르셴코프 엔진의 성능 덕분이었다. 조금이나마 승산은 있겠지만 한센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졸업 이후로 마도병기에 타본 적이 없었기에, 감각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을 터였다.
싸우지 않으려면 도망칠 수밖에 없다. 연격이 날아들기 전에 한센은 페달을 밟아 기체를 상승시켰다. 그를 예상한 듯 돌진해오는 체인 블레이드를 스러스터 기동으로 회피해내고, 잠깐의 틈을 이용해 아르엘의 반대쪽으로 날아 거리를 벌리려 했다.
당연하게도 추격전이 벌어졌다. OD 센서에 'ENEMY'라 표시된 붉은 점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아유다의 행동에 명백한 적의가 있다는 뜻이다. 후방 카메라로 확인해 보니 애프터버너까지 동원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거리는 100미터. 잡히면 반항은 고사하고, 엠프리스에 중상만 입히게 될 것이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붉은 점을 바라보며 한센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생소한 조급함을 맛봤다.
"정신 좀 차려라, 정신 좀 차려라, 정신 좀 차려라……."
자기도 모르게 말을 중얼거리듯 반복하고 있었다. 아유다가 그것을 들었는지는 미지수였다.
당장이라도 엠프리스를 따라잡을 듯했던 아르엘은, 도중에 방향을 바꿔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붉은 점의 진로가 틀어지자 한센은 한쪽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전방위 모니터의 우측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8할이 구름이었다. 저곳으로 들어가봤자 시야만 가려질 뿐, 전술적인 이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 행동에 껄끄러운 예감이 든 건 사실이었기에, 한센은 언짢은 표정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단 구름에서 최대한 멀어지기로 했다. 개방돼 있는 곳으로 물러나면서 구름 낀 부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째서인지 그 속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솜사탕 같은 것이 찢어지거나 흩어져야 하는 게 정상일 테다. 오히려 이변도 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에 숨었을까 싶어 OD 센서의 레이더 위젯을 확인했다.
'ENEMY' 표식이 사라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한센은 눈을 크게 떴다. 오작동일까 싶었지만, 레이더에 그런 낌새는 없었다. 적 반응이 사라진 것에 맞춰 주변이 점점 조용해져갔다. 엠프리스의 엔진 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자 침묵은 불안이 되어 한센을 엄습해왔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려는 듯 메인 카메라로 주위를 빠짐없이 살폈다.
그럼에도 아르엘은 찾을 수 없었다.
"아유다? 살아 있으면 응답 좀 해줘."
이번엔 무전으로 아유다의 상태를 확인했다. 신호가 불안정한지, 이어피스에서 들리는 건 대부분 지직거리는 잡음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뚝 끊겼다. 일어날 게 일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느낌이 다분했다. 몇 번 이어피스를 두들긴 한센은, 이내 질렸다는 표정으로 통신을 포기했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다. 이것도 아유다가 일으킨 한 변수라고 생각하니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사냥당한다는 불쾌감이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적 발견을 외치는 알람과 함께 붉은 점이 레이더에 다시 나타났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1미터. 그 한 자리의 숫자를 인지한 순간, 격렬한 충격에 몸이 휩싸였다.
세상이 뒤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지를 유린하는 진동은 슈트를 입었다고 해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쓸 수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내며, 한센은 억지로 엠프리스의 몸을 돌렸다. 메인 카메라에 아르엘의 머리가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잡혀 있었다. 시뻘건 안광으로 당장이라도 잡아 죽일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게 거슬렸다.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전혀 모르겠다. 커다란 구름 한가운데에 빠져들자마자 떠오른 첫 생각이었다. 차원 이동이라도 했는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진 그냥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다. 이런 기습이 없었다면 아유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기지로 돌아갔으리라고 속단했을 테다. 신비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잠시 뒤, 아르엘의 장갑 표면에 흐르는 푸른 입자를 확인하면서 환상이 깨졌다.
눈에 익은 그것은 베르셴코프 입자. 아유다는 은폐장으로 기체를 감춘 것이다.
일부러 구름 속으로 들어간 다음 은폐장을 켜고 구름 아래로 빠진다. 통신을 끊어 위치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고 크게 선회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목표물과 직접 접촉하면 은폐장이 풀릴 테니, 아예 지근거리에서 나타나 기습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놀란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투불능까지 밀어붙인다.
이것이 아유다가 카페인의 폭주 속에서 세운 사냥 계획이었다. 아유다 주제에 머리를 쓰다니, 상당히 건방지지 않은가. 시급히 대책을 구상하던 한센에게 갑작스레 복구된 회선을 통해, 그녀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이대로 기체를 바다에 처박을 거야. 고장 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해.」
"성능을 보고 싶다면서 망가뜨려버릴 셈?"
「그 전에 네가 뭐든 하겠지. 그냥 손 놓고 있으면 바보인 거고. 그래도 설마 내가 봐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쳇."
한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유다의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지 않은 듯했다. 카페인이 그녀의 판단력만은 높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구름과 은폐장을 활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해가 갔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빌어먹을 사실 하나였다.
중력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유다는 부스터로 낙하 속력을 더했다. 엠프리스를 끌어안은 채 정말 동반자살이라도 할 것 같았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불쾌한 감각 속에서 한센은 살기 위해 사고를 가속시켰다. 그것이 언제 본능으로 나타났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위로 올라간 엠프리스의 손이 이윽고 아르엘의 보조 비행 유닛을 붙잡았다. 전투기의 몸체와 비슷한 그것은 역시 며칠 전의 그 신형 장비였다.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한센은 미묘한 웃음과 함께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멜리아 선배를 엿먹여버릴 수 있겠는가.
"경위서나 실컷 쓰라지."
분사염을 뿜어내는 회색 철덩어리가 팔 움직임에 따라 양쪽으로 갈라져갔다. 끝없이 깊은 구름 속에서, 엠프리스는 아르엘의 날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체인 블레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엘의 근접전용 무장 중 하나다. 특수한 환경 때문에 장병기를 쓰기 어려운 부대에서 자주 운용되고 있었다. 그 위력은 레어메탈 장갑을 일격에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말 그대로 대(對)마도병기를 상정한 실전에선 적합한 선택이다.
그 은색의 칼날을 본 순간 한센은 아연실색했다. 긴장감이 심장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직였다. 다행히 콕핏을 향해 쇄도해오던 체인 블레이드는, 아르엘의 팔이 붙잡히면서 덩달아 진로가 막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기세는 섬뜩할 정도로 살인적이었다.
"죽일 셈이냐, 아유다 루벤크렌체!"
진정으로 항의해봤자 대답은 없다. 이미 몇 번이고 무전을 시도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나마 통신 회선이 아직 열려 있다는 게 위안이자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저편에서 반응이 있을 때까지 통신으로 계속 말을 걸 생각이었다.
전신에 힘을 주면서, 이건 모의전이 아닌, 실전이라고 머릿속에 되뇌었다. 무의식적인 사고의 연쇄는 아유다가 초콜릿을 입에 넣었을 때의 기억으로 그를 이끌었다.
아유다는 체질상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됐다 해도 그녀에겐 카페인이 여전히 독으로 통했다.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체내에서 분해되는 순간 각성제를 능가하는 효과가 나왔다. 이런 상태의 아유다는-한센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그것이 모의전과 연결된다면 상상 가능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문득, 아르엘의 숄더 플레이트에 도장돼 있는 '01' 마크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도 경비대장의 상징인 그 숫자에 헤아릴 수 없는 염증이 느껴졌다.
"사람 말 좀 들어!"
알아먹지도 못할 꾸중을 하면서 왼팔을 끝까지 주욱 밀었다. 콕핏 근처까지 다가온 체인 블레이드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엠프리스의 힘을 아르엘이 버틸 순 없었다. 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르엘의 자세가 점점 무너져갔다.
거의 제압했다 싶었을 때 칼날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그라지는 모터 소리가 새로운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체인 블레이드를 껐다는 건 강구할 다른 수단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카페인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도 아유다의 동물적인 감각은 건재한 것이다. 이마를 찌푸리며 한센은 아르엘의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잡아내려고 애썼다. 아유다와 모의전을 할 때면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그를 몰아세우곤 했다.
마침내 아래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렴풋이 빛나는 은색의 무언가를 보고는,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기체를 뒤로 뺐다. 엠프리스가 있던 자리에 아르엘의 풋 나이프가 길고 부드럽게 대각선을 그으며 허공을 양단했다.
……이거 모의전 맞지? 그렇게 생각하는 한센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수도 경비대의 아르엘엔 날붙이가 많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 시가전이 전제되는 만큼 그에 걸맞은 개량이 행해진 탓이다. 도로와 건물이 어지럽게 깔려 있는 도심에선 수납이 용이한 근접 무장이 적절하다는 논리였다. 진위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그들의 마도병기가 근접격투에 특화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에 비해 엠프리스는 비전투형이고, 무장도 없다. 처음부터 이런 사태는 상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내세울 게 있다면 아르엘을 능가하는 힘과 기동력 정도. 오늘 처음 써본 차세대 베르셴코프 엔진의 성능 덕분이었다. 조금이나마 승산은 있겠지만 한센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졸업 이후로 마도병기에 타본 적이 없었기에, 감각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을 터였다.
싸우지 않으려면 도망칠 수밖에 없다. 연격이 날아들기 전에 한센은 페달을 밟아 기체를 상승시켰다. 그를 예상한 듯 돌진해오는 체인 블레이드를 스러스터 기동으로 회피해내고, 잠깐의 틈을 이용해 아르엘의 반대쪽으로 날아 거리를 벌리려 했다.
당연하게도 추격전이 벌어졌다. OD 센서에 'ENEMY'라 표시된 붉은 점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아유다의 행동에 명백한 적의가 있다는 뜻이다. 후방 카메라로 확인해 보니 애프터버너까지 동원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거리는 100미터. 잡히면 반항은 고사하고, 엠프리스에 중상만 입히게 될 것이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붉은 점을 바라보며 한센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생소한 조급함을 맛봤다.
"정신 좀 차려라, 정신 좀 차려라, 정신 좀 차려라……."
자기도 모르게 말을 중얼거리듯 반복하고 있었다. 아유다가 그것을 들었는지는 미지수였다.
당장이라도 엠프리스를 따라잡을 듯했던 아르엘은, 도중에 방향을 바꿔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붉은 점의 진로가 틀어지자 한센은 한쪽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전방위 모니터의 우측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8할이 구름이었다. 저곳으로 들어가봤자 시야만 가려질 뿐, 전술적인 이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 행동에 껄끄러운 예감이 든 건 사실이었기에, 한센은 언짢은 표정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단 구름에서 최대한 멀어지기로 했다. 개방돼 있는 곳으로 물러나면서 구름 낀 부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째서인지 그 속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솜사탕 같은 것이 찢어지거나 흩어져야 하는 게 정상일 테다. 오히려 이변도 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에 숨었을까 싶어 OD 센서의 레이더 위젯을 확인했다.
'ENEMY' 표식이 사라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한센은 눈을 크게 떴다. 오작동일까 싶었지만, 레이더에 그런 낌새는 없었다. 적 반응이 사라진 것에 맞춰 주변이 점점 조용해져갔다. 엠프리스의 엔진 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자 침묵은 불안이 되어 한센을 엄습해왔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려는 듯 메인 카메라로 주위를 빠짐없이 살폈다.
그럼에도 아르엘은 찾을 수 없었다.
"아유다? 살아 있으면 응답 좀 해줘."
이번엔 무전으로 아유다의 상태를 확인했다. 신호가 불안정한지, 이어피스에서 들리는 건 대부분 지직거리는 잡음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뚝 끊겼다. 일어날 게 일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느낌이 다분했다. 몇 번 이어피스를 두들긴 한센은, 이내 질렸다는 표정으로 통신을 포기했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다. 이것도 아유다가 일으킨 한 변수라고 생각하니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사냥당한다는 불쾌감이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적 발견을 외치는 알람과 함께 붉은 점이 레이더에 다시 나타났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1미터. 그 한 자리의 숫자를 인지한 순간, 격렬한 충격에 몸이 휩싸였다.
세상이 뒤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지를 유린하는 진동은 슈트를 입었다고 해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쓸 수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내며, 한센은 억지로 엠프리스의 몸을 돌렸다. 메인 카메라에 아르엘의 머리가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잡혀 있었다. 시뻘건 안광으로 당장이라도 잡아 죽일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게 거슬렸다.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전혀 모르겠다. 커다란 구름 한가운데에 빠져들자마자 떠오른 첫 생각이었다. 차원 이동이라도 했는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진 그냥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다. 이런 기습이 없었다면 아유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기지로 돌아갔으리라고 속단했을 테다. 신비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잠시 뒤, 아르엘의 장갑 표면에 흐르는 푸른 입자를 확인하면서 환상이 깨졌다.
눈에 익은 그것은 베르셴코프 입자. 아유다는 은폐장으로 기체를 감춘 것이다.
일부러 구름 속으로 들어간 다음 은폐장을 켜고 구름 아래로 빠진다. 통신을 끊어 위치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고 크게 선회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목표물과 직접 접촉하면 은폐장이 풀릴 테니, 아예 지근거리에서 나타나 기습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놀란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투불능까지 밀어붙인다.
이것이 아유다가 카페인의 폭주 속에서 세운 사냥 계획이었다. 아유다 주제에 머리를 쓰다니, 상당히 건방지지 않은가. 시급히 대책을 구상하던 한센에게 갑작스레 복구된 회선을 통해, 그녀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이대로 기체를 바다에 처박을 거야. 고장 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해.」
"성능을 보고 싶다면서 망가뜨려버릴 셈?"
「그 전에 네가 뭐든 하겠지. 그냥 손 놓고 있으면 바보인 거고. 그래도 설마 내가 봐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쳇."
한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유다의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지 않은 듯했다. 카페인이 그녀의 판단력만은 높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구름과 은폐장을 활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해가 갔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빌어먹을 사실 하나였다.
중력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유다는 부스터로 낙하 속력을 더했다. 엠프리스를 끌어안은 채 정말 동반자살이라도 할 것 같았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불쾌한 감각 속에서 한센은 살기 위해 사고를 가속시켰다. 그것이 언제 본능으로 나타났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위로 올라간 엠프리스의 손이 이윽고 아르엘의 보조 비행 유닛을 붙잡았다. 전투기의 몸체와 비슷한 그것은 역시 며칠 전의 그 신형 장비였다.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한센은 미묘한 웃음과 함께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멜리아 선배를 엿먹여버릴 수 있겠는가.
"경위서나 실컷 쓰라지."
분사염을 뿜어내는 회색 철덩어리가 팔 움직임에 따라 양쪽으로 갈라져갔다. 끝없이 깊은 구름 속에서, 엠프리스는 아르엘의 날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