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습니다 OTL..
*총 7일차까지 화자의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 8일차는 화자의 사형당일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점차 현재를 따라잡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37년전 ─ 이제는 시간관념이 너무나도 무뎌졌기에 자세한 정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 그러니까 1792년도에 영국의 브라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꽤 부유한 집안의 규수였던 걸로 압니다. 밤이면 따뜻한 이부자리와 편안한 옷이 몸을 감쌌고, 아마 제 위장은 늘 기름지고 영양가높은 음식들로만 채워져있었겠죠. ─이제는 별로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말입니다.
어릴때부터 제가 마틴 에반스를 만났던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틴을 만난건 대학에 입학한 뒤였어요. 하지만 그건 당시로서는 상당히 먼 훗날의 이야기. 조금 시간을 두도록 합시다. 물론 제게 남은 시간은 촉박하지만, 어린 나날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는것도 감회가 새로울것같거니와, 아마 제 어린시절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소잿감이 될테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제가 태어났던 날은 무척이나 화창했다고 합니다. 저희 집의 부계는 대대로 상인집안이었고, 당연히 귀족적 소양과는 거리가 좀 있었죠. 그래서 상술이나 어떻게하면 잘난 혀롤 꼬아대어 고객을 희롱할까만 연구할 뿐, 이렇다할 교육이라곤 받은 적이 전무했습니다. 상인집안이었지만 연줄도 그다지 미려하진 못해서, 그저 자급자족하면서 밥을 굶지 않고 살아갈정도의 돈만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희집안이 나름대로 돈많은 기득권층으로 발돋움 할 수 있던 계기는 ─제 이야기에서 제 유년기의 부유함의 계기가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만─급격한 산업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을 뒤흔든 대세는 단연 목화와 양모, 그리고 이를 이용한 가공 및 상업활동이었습니다. 영국은 목화를 재배하기보다는 양을 목축하여 털을 채취하는 쪽으로 많이들 노선을 바꾸었고, 제가 태어나기 20여년전쯤에는 이러한 양상이 정착이 되는 시기에 돌입하였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젊은 혈기를 죽이고 장사에 전념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변화인만큼, 당연히 새로운 수단이 돈을 벌어줄거라고 믿었던 것 같았습니다만, 당시에 고식적인 방법을 고집했던 할아버지와는 당연히 충돌이 빚어졌죠. 아버지는 때를 놓쳐버리면 더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고, 벌써 이러한 양상이 정착기에 돌입해버린만큼, 지금이 아니면 영영 흐름을 잡지못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끝내 고집을 굽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손익계산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에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믿었는지, 어느정도 아버지에게 자금을 지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투자"인셈이었죠. 잃어도 그만, 성공해도 그만인 정도의 시작금만을 지불받은 아버지는 집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나와, 땅값이 가장 싼 곳을 골라 최대한 많은 땅을 사둔 뒤, 그곳에서 기를 양들을 준비하여 양모를 생산하는 작업에 전념했고, 이는 상당한 호기를 누려 저희 집안은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노동자 집안의 딸이었던 저희 어머니를 만나 짧은 교제끝에 결혼하여 저를 낳았다는 듯 싶습니다만, 아마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겠죠.
*총 7일차까지 화자의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 8일차는 화자의 사형당일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점차 현재를 따라잡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1일차(1)
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37년전 ─ 이제는 시간관념이 너무나도 무뎌졌기에 자세한 정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 그러니까 1792년도에 영국의 브라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꽤 부유한 집안의 규수였던 걸로 압니다. 밤이면 따뜻한 이부자리와 편안한 옷이 몸을 감쌌고, 아마 제 위장은 늘 기름지고 영양가높은 음식들로만 채워져있었겠죠. ─이제는 별로 상관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말입니다.
어릴때부터 제가 마틴 에반스를 만났던것은 아닙니다. 제가 마틴을 만난건 대학에 입학한 뒤였어요. 하지만 그건 당시로서는 상당히 먼 훗날의 이야기. 조금 시간을 두도록 합시다. 물론 제게 남은 시간은 촉박하지만, 어린 나날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는것도 감회가 새로울것같거니와, 아마 제 어린시절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소잿감이 될테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제가 태어났던 날은 무척이나 화창했다고 합니다. 저희 집의 부계는 대대로 상인집안이었고, 당연히 귀족적 소양과는 거리가 좀 있었죠. 그래서 상술이나 어떻게하면 잘난 혀롤 꼬아대어 고객을 희롱할까만 연구할 뿐, 이렇다할 교육이라곤 받은 적이 전무했습니다. 상인집안이었지만 연줄도 그다지 미려하진 못해서, 그저 자급자족하면서 밥을 굶지 않고 살아갈정도의 돈만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희집안이 나름대로 돈많은 기득권층으로 발돋움 할 수 있던 계기는 ─제 이야기에서 제 유년기의 부유함의 계기가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만─급격한 산업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을 뒤흔든 대세는 단연 목화와 양모, 그리고 이를 이용한 가공 및 상업활동이었습니다. 영국은 목화를 재배하기보다는 양을 목축하여 털을 채취하는 쪽으로 많이들 노선을 바꾸었고, 제가 태어나기 20여년전쯤에는 이러한 양상이 정착이 되는 시기에 돌입하였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젊은 혈기를 죽이고 장사에 전념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변화인만큼, 당연히 새로운 수단이 돈을 벌어줄거라고 믿었던 것 같았습니다만, 당시에 고식적인 방법을 고집했던 할아버지와는 당연히 충돌이 빚어졌죠. 아버지는 때를 놓쳐버리면 더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고, 벌써 이러한 양상이 정착기에 돌입해버린만큼, 지금이 아니면 영영 흐름을 잡지못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끝내 고집을 굽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손익계산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에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믿었는지, 어느정도 아버지에게 자금을 지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투자"인셈이었죠. 잃어도 그만, 성공해도 그만인 정도의 시작금만을 지불받은 아버지는 집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나와, 땅값이 가장 싼 곳을 골라 최대한 많은 땅을 사둔 뒤, 그곳에서 기를 양들을 준비하여 양모를 생산하는 작업에 전념했고, 이는 상당한 호기를 누려 저희 집안은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노동자 집안의 딸이었던 저희 어머니를 만나 짧은 교제끝에 결혼하여 저를 낳았다는 듯 싶습니다만, 아마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