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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첫 전투, 첫 승리 (1)


 -"그나저나 시훈이 형."
 -"버거는 먹고 있나?"

 잊고 있었다. 포장을 열어둔 채로 가만히 방치해두고.. 뭘 말하려고 했었는데. 까먹었다. 나중에라도 기억이 나겠지 뭐..

 -"아. 먹을게요. 으아암.. 쩝.. 쩝.. 형."
 -"밥은 먹고 말해라."
 -"마실거나 좀 드릴까요."
 -"됐다. 너나 먹어라."

 싫으면 말라지. 에이드 목록에서 대충 오렌지 에이드를 눌러 마시기로 했다. 1.8L면.. 앞으로 세잔 정도 더 마실 수 있는 양인가. 조만간 오렌지나 좀 구하러 갈까. 그동안엔 다른 에이드나 마시면 되겠지.

 -"형, 오렌지가 다 떨어져 가는데요. 냠.."
 -"그렇다면 내일은 훈련 대신에 일찍 이 근방을 탐사하기로 한다."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쩝.. 쩝."
 -"찾다 보면 나오겠지."
 ​[​O​r​a​n​g​e​a​d​e​ - Done]

 에이드가 완성되어 컵에 가득 담겨져 올라왔다. 컵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 쥔 버거를 한입 물고, 에이드를 마셔가면서 먹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맛있다. 그나저나 이 오렌지에이드는 레몬에이드에 비해 조금 덜 시고 조금 달다는 것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래도 레몬에이드와는 조금 다르다.. 나한텐 레몬에이드보단 오렌지에이드가 더 맞나보다. 이 버거는 어느 메이커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밖에 나가게 되면 여기 메이커의 버거를 한번 사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티도 잘 구워져 있고. 채소도 잘 어우러져 있고.. 토마토도 적당한 위치에서 맛을 더해주고 있고.. 그리고. 소스. 무엇보다도 이 소스가!

 -"소스가!"
 -"맛있나?"

 생각한 게 그대로 말로 튀어나와버렸다. 기분이 좋아 미소가 멈추질 않아.

 -"맛있어요! 이거 장난 아닌데?"
 -"갖고 오길 잘 했군. 체하지 않게 먹어라."

 직접 갖고 온 거였나.. 왠지 뭉클하네. 이런 걸 보면 '적'한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제가 애도 아니고 말이죠."
 -"충분히 어리다. 게다가 나이를 불문하고 먹다가 체하는 일은 있기 마련이지."

 스물 두 살이 열 여섯살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런건가.. 소스에 감탄하면서, 쉴 새 없이 먹어치웠다. 맛있다. 이 패티. 적당하게 구워지고.. 채소랑. 토마토랑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입에서 녹아버리는 것만 같은 이 토마토의 느낌. 아삭아삭한 채소와 같이 씹히는 고기 패티.. 햄버거라는거. 진짜 오랜만에 먹어보는 거지만 너무 맛있다!

 그 날은 다행히도, 아무 녀석들도 오지 않았다. 내심 불안했지만. 시훈이 형도 "신경쓰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둬라" 라고 말해준 덕분에. 간만에 푹 쉬는게 가능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8번쯤 더 보고 난 어느 날. 오늘도 여전히 시훈이 형에게 압도당한 채 그대로 지쳐 쓰러져있던 도중. 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그때 잊고 있었던 것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 그때 이걸 물어보려고 했었지.

 -"형"
 -"뭐냐."
 -"혹시라도 제가 먼저 움직인다면, 또 다시 오라드가 떨어지거나 할까요..?"
 -"이미 오라드를 쏜 것으로 보자면. 네가 여기서 움직여서 스스로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적대행위로 간주되어. 오라드 투하와는 별개로.. 네가 있는 곳마다 지금 이 곳과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될 거다."

 내가 예상한 답변이다. '적대행위' 라는 인식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엑사베리온의 파괴'만을 목적으로 오라드를 날린거라면.. 내가 가는 곳마다 폐허가 되어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훈이 형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그렇겠군요."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갑작스레 움직이는 것 보다는, 아무런 정보를 못 얻어가게 하면서 막아내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만간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 기간 동안 네 손으로 저것들과 직접 싸워 이길 방법을 생각해보는 게 더 나을거라 생각한다만."
 -"그야 그렇죠. 하지만 아직은 무리입니다. 아직은 말이죠."

 the Top. 팽이라는 뜻을 가진 변신 형태. 시도조차 해 본적 없기에 그 상태로 변하고 나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기본 형태인 the Tower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우선 이동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아 속도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무리고. 그저 '어떠한 물리적 충격에도 손상되지 않는 금속' 정도. 갖가지 도구가 내 엑사베리온에 부딪히고 하는 걸 다 봤기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다만, 저 변신 형태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인간 팽이'처럼 이동하는 거라면.. 기습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기본형으로는 할 수 없는 날렵한 동작을 할 수 있다. 아마. 오늘은 시훈이 형이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못 챙겨왔다고 해서, 조금 시무룩한 채 'Bread'를 선택해 15분간 기다린 끝에. 빵을 손에 넣었다. 저번에 받은 버거의 답례로, 시훈이 형에게 해치를 열어달라고 하고. 칼로베리프가 있는 곳 까지 넘어가서 전해주고 왔다. 전해주고 오는 순간에 "에이드는?" 이라는 날카로운 한마디에 마실것을 들고 오는 걸 까먹고 있었음을 깨닫고. 다시 또 10분정도를 써서 갖다주고 돌아오고.. 더 배가 고파져서, 그제서야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체하겠다."
 -"헥.. 헥.. 에이드 찾으면서 사람 고생시켜놓고는."
 -"네가 빼먹은게 잘못이다. 수혁."
 
 빵을 대충 먹어치우고. 컵과 플레이트를 수거함에 집어넣은 뒤에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형"
 -"뭐냐"
 -"다 마시고 나면 컵은 좀 갖다주세요."

 식사용 테이블에 붙어있는 작은 컨트롤 패널에 남은 컵 수량을 표기하는 부분이 현저하게 줄어있었다. 분명 20까지 채워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10까지 줄어있는 걸 보면.. 난 항상 수거함에 집어넣는데. 내가 직접 회수하러 가지 않는 이상 시훈이 형이 먼저 갖다준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미안하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좀.."

 화면 너머로 시훈이 형이 자리를 뜨더니, 곧 바깥에서 "나와라"라는 소리가 들려와 해치를 열고 나가보았다. 가면을 쓴 시훈이 형이 한손 가득 컵 몇개를 들고 있었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5개쯤인가..

 "앞으로는 좀.."
 "미안하다니까."

 5개를 받아 수거함에 집어넣었다. 저건 자동으로 세척하는데에 조금 걸리겠다.. 자동 수복도 완료된 상태에서 잠깐 쉬고 있자, 시훈이 형의 말투가 바뀌어, 뭔가 급하게 전달할 사항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때마침, 스크린 하단의 레이더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어 나 역시 의문이 들던 참이었다.

 -"수혁. 소속불명의 조종기 3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쩌면 나 혼자로 벅찰 수도 있다. 갑작스럽지만 전투 준비는 되어있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해봐야죠."
 -"자동 수복은 완료되어있나?"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 'The top'이 떠올랐다. 팽이. 한번 변신해보고도 싶었는데.. 좋은 기회다.

 -"되어 있습니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죠."
 -"원거리 특화기로 보이는 1기는 내가 상대하겠다. 나머지 근접특화기로 추정되는 2기가 오기 전까지. 전투 준비를 마쳐둬라. 지금부터 재밍 기능을 사용해서 통신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적의 전멸, 혹은 현 지역 이탈을 확인한 후에 재밍을 해제하겠다.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연연하지 마라. 그만큼 저쪽의 정보를 얻어오면 되는 거니까."
 -"아마 저것들은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실전용으로 하나 준비해둔 게 있거든요."
 
 시훈이 형은 가면을 쓰고 있기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말투가 밝아진 것 같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만큼 내가 하이텐션인 걸지도 모르겠다..

 -"재밍을 발동한다. 건투를 빌지. 수혁."
 -"그러는 시훈이 형이야말로요. 이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T​r​a​n​s​f​o​r​m​a​t​i​o​n​ - Default]
 'Default' 표기부분을 누르자, 물음표 세개가 가득한 목록이 펼쳐졌다. 'The top'이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메세지가 떴다. 확인할 틈따위는 없다. OK를 눌러 확인. 붕 뜬 상태로. 무언가가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T​r​a​n​s​f​o​r​m​a​t​i​o​n​ - the Top]
 언제까지나 샌드백처럼 맞아주지만은 않을거다. 똑똑히 기억해둬라!
 [Type - Rotate]
 시훈이 형하고 전투 훈련을 할 때는 부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기에, 기본 폼에 최소한의 무장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바로 그 시훈이 형이 말한 '실전'.. 그것도 스스로 하겠다고 했다. 언제까지 맞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실전에 앞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맥박이 느껴진다. 한번은 죽을 위기에도 놓여 있던 나, 신수혁.. 천재 신우혁 박사의 손자이며, 그가 단순히 내가 '변신 로봇을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선물해 줬던 이 '엑사베리온'을 가지려고 수없이 많은 적들이 덤볐고, 결국엔 부수기 위해 미사일까지 날아왔다.

 그럼에도 난 살아남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전투 훈련을 하면서 이를 갈았다.
 예전에 시훈이 형도 말했었다.

 '이건 너만이 조종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강해져야 한다'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지금 이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엑사베리온을 지키기 위해 내가 받은 모든 걸.. 반드시 열 배, 백 배, 천 배로 되갚아주고야 말겠다..

 "어디에서든 덤벼봐라!!"

 진행상황은 스크린에 별도의 화면이 하나 더 띄워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번째 다리가 축, 첫번째와 두번째 다리가 삼각으로 접혀서 날개의 역할을 하고, 네번째 다리는 하늘로 솟아 중심을 잡은 그 중앙에 조종석이 위치해 있는 형태. 겉에서 보면 조종석을 둘러싼 요새라는 느낌과도 가까운.. 거대한 팽이가 되는 변신 형태, 'The top'. 첫 실전은. 결국 이 새로운 변신형태로 하게 되었다.

 [Top Spin - Ready]
 [Blast Bullet - Ready]

 소속 불명의 조종기들이 근접하는 것을 확인했다. 서서히 먼지더미인 땅 위에서 방향을 돌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니놈들에게 부서지지 않는 거대한 팽이의 맛을 보여주지. 시훈이 형이 1기와 전투중인 사이에, 다른 2기는 내가 해치워주겠어!

 "간다!"

 회전중인 상태지만, 의외로 조종은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방향을 잡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보았다. 예전에 소연이에게 들은 바로는 회전력이 높을수록 방향전환에 걸리는 시간과 그만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만화에서 본 것처럼 멈췄다가 갑자기 돌진! 같은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팽이를 안에서 조종할 수 있다면 아마 지금과도 같이 자유로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아니. 결론이 나왔다기보다 실제로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생각보다 자유로운 움직임. 이러한 기능을 탑재해줬을 할아버지한테 이 광경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일단은 저 2기를 해치우는 것만 생각하자.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슬슬 1기가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아마 '어디서 돌덩이가 굴러오나' 싶겠지만, 아쉽게도 돌덩이가 아니라 폭발하는 탄환을 난사하는 팽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하겠지. 스크린에는 시훈이 형의 푸른 조종기, 칼로베리프가 그 모습을 먼저 드러냈다. 상대하고 있는 검은 색의 인간형 타입의 조종기는 한쪽 손에는 블래스터로 추정되는 폭발력이 강한 원거리 무기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 손에는 방패와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여태 습격해온 적들과 비교해보자면 이 녀석들은 아마 사격기 1, 근접기 2로 구성되어있을 텐데, 그 중 사격기가 하필 근접전에 강한 칼로베리프와 맞닿게 되었으니 상당히 운이 없다고 볼 수 있겠다.

 '하필 만나도.. 참 운도 없군'

 원래대로라면 시훈이 형이 1:3의 상황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멋진 전투를 펼치고, 그 가운데서 투명화가 해제된 상태의 내 엑사베리온은 나는 탱커아닌 탱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소속 불명의 조종기를 꺼내준 만큼, VIP만의 특권. 무적의 팽이와 일전을 겨룰 수 있는 영광을 안겨주도록 하지. 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물론, 그 결과 둘은 완전히 대파될테지만 말이다. 그 일은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니까..

 시훈이 형이 조종하는 칼로베리프의 움직임은 언제 봐도 깔끔하다. 언제나 나에게는 같은 패턴으로 들어오기에 나 역시 그 파훼법을 나름대로는 익혀서 쓴다고 쓰지만, 항상 그 다음의 수를 읽지 못하고 그대로 프리즈되거나, 오토 리커버리 상태에 들어가버려서 결국 고철덩이가 되어버릴 뿐이다. 최근에는 다른 패턴으로 치고 들어오는 탓에 좀 상대하기 귀찮아졌지만.

 시훈이 형을 맞상대하지 못하고 피탄하게 된 것과, 오늘도 반격에 실패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 그리고 하나뿐인 집을 잃어버린 분노와 슬픔을 뱅뱅 도는 팽이에 실어 니 녀석들에게 선사해주도록 하겠다. 자, 레이더에 없던 물체가 갑자기 등장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I​n​v​i​s​i​b​l​e​ Cloak - Disuse]

 불가시화 기능을 해제하였다. 자 이제 돌격만이 남았다! 

 [Spinning Boost - Speed : 2]
 [Jump]

 점프 후에 공중에 붕 뜬 감각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기에 나도 모르게 그대로 공중에서 난사를 할 뻔 했지만, 시야에 칼로베리프가 보이기에 다행히도 이성을 되찾았다. 뭐, 시훈이 형의 말을 빌리자면 이대로 붕 떠서 난사해봤자 적에게 포착된 뒤 '좋은 타겟'이 될 뿐이니까. 아마.

 공중에 붕 떠서 보니까, 역시 근접기 둘이 확실하다. 다만 하나는 거대한 브레이커 타입의 장비를 양손에 끼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거대 방패와 랜스 타입의 장비를 각각 한 손에 끼고 준비하고 있었다. 저 무식하게 무거워보이는 브레이커 타입의 무기를 든 녀석부터 제압하기로 할까.

 [Spinning Boost - Speed : 4]

 지면에 닿자마자 부스트의 속도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자, 이대로 충돌한다면 쿠션 효과로 랜스 타입의 적기까지 완벽하게 대파할 수 있겠지만..

 "이게 빠지면 섭하지."
 [Blast Bullet - ​A​c​t​i​v​a​t​e​d​]​
 
 폭발하는 탄환을 쏘면서 급격하게 들어가는 이 상식밖의 정체모를 물체를 향해 상대방은 당황하다가 일단 움직임을 멈추려는 듯 두발의 탄환을 위에 삐죽 솟아있는 4번째 다리를 향해 발사했다. 물론,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Damaged, Leg 4 : 1%]
 다소 미미한 피해는 발생한 모양이다. 저정도면 전혀 신경 쓸 정도가 아니지만. 적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눈에 역력하다. 그 두 발에 균형을 잃기는 커녕 전혀 속도가 줄지 않고 다가오고 있으니까. 급하게 뒤로 도망치려고는 하는데..

 "바라던 바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고속으로 돌진하는 팽이를 그 무식한 브레이커로 받아칠 의향이 있으면 내 손수 받아주도록 하지! 뒤로 쭉 빠지던 녀석은, 조금 높은 고지를 점령한 뒤에 손을 쭉 뻗은 자세를 하더니 그대로 브레이커를 내려쳤다. 브레이커라는 이름이 붙은 무기인 만큼, 본래는 저러한 주력 기술에 보통의 조종기라면 대파, 혹은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어야 정상이지만.. 난 그렇지 않다. 이게 바로 니놈들이 어제까지 샌드백 취급하며 빵빵 쏘고 내리치고 했던 바로 그 녀석이다. 이게 바로 그 엑사베리온이다! 그 진가를 톡톡히 발휘해주겠어!

 [Damaged, Leg 2 : 20%]

 저정도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라 신경 쓸 정도가 안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브레이커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파괴력만큼은 확실하다 이건가..? 브레이커는 팽이에 부딪히자 마자 두 동강이 났고, 그 뒤에 발사한 폭발탄에 의해 완전히 공중에서 폭파되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윽고 손이 가벼워진 것을 눈치 챘을 녀석은 재빠르게 뒤로 달아나려고 시도했다. 가벼워진 만큼 속도 역시 빨라졌지만 추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정도 고지는 그대로 뚫고 지나가면 될 뿐이라 큰 문제는 없다.

 "살아나갈 수 있다면, 트라우마를 심어주겠어!"

 상대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상황이리라. 주 무기도 파괴되었고, 보조 장비를 꺼내봤자 브레이커를 두 동강 낸 무지막지한 내구도의 팽이를 향해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고 판단했을테니, 그저 도망치는게 최우선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호기심이든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든 앞으로 이 곳에서 날 건드린 놈들은 결코 제 상태로는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 반격 앞에 놈들의 퇴로는 없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6개월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니라고, 이 자식들아! 내 소중한 조종기를 샌드백 취급한 각오는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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