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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그 전까지의 일상 (2)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스키넥'이라는 기계, 그 안에서는 지금 격한 전투가 중계되고 있었다. ​'​E​m​p​e​r​o​r​'​라​는​ 단어가 공중에 붕 떠 있고, 그 아래에 위치한 메카에서 수많은 탄환이 '드라이버 마크-3'라는 단어를 완전히 뒤덮다시피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아래에 위치한 메카는 일방적으로 맞기만 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방어 보조기구의 일종인 '실드 타입-2'를 장비한 상태인 '드라이버 마크-3'는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그대로 막기만 하고 있다.

 스크린에서 중계되고 있는 그러한 공방은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누가 이기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 물었을 때, 백이면 백 누가 봐도 '엠페러'쪽이 훨씬 우세해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적인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걸 보고 '저기 드라이버 마크 어쩌고가 이길 것 같은데?' 라고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좌중의 비웃음을 살게 분명하다. '눈이 삐었냐'며 말이지.
 물론 그 비웃음의 근거는 확실히 존재한다. 이름표 아래에 놓인 상태 게이지를 보면 색깔 바가 줄어들고 있는 쪽이 바로 내 '드라이버 ​마​크​-​3​'​쪽​이​었​으​니​까​.​.​

 왜 자꾸 '드라이버 마크-3'를 강조하냐고 묻는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있게 대답해주겠다.

 멋지잖아? 안 그래?
 아닌가?

 아니 뭐.. 멋이고 뭐고 그런건 사실 중요치 않으니 상관없다.

 지금 방어막의 상태도 간당간당하고 체력 게이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게 맞으니까. 그만큼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쪽이 바로 내 '드라이버 마크-3'이다.. 녀석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옆을 바라보니 지금 당황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쪽은 의외로 아준이 녀석이다.

 "임마, 적당히 좀 하지 그러냐?"

 내 부탁에 녀석은 살짝 화가 난 듯이 대답했다.

 "미쳤냐? 내가 건 싸움에 내가 지게 생겼는데?"

 그렇다. 실질적으로 불리한 쪽은 내가 아닌, ​'​E​m​p​e​r​o​r​'​의​ 드라이버인 손 아준.. 내 친구녀석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걸려들질 않네. 아까 그걸 봐서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속전속결이라고는 하지만, 장기전으로 끌고가면 네가 더 유리하잖아?"
 "그만 좀 약올려라. 너 그거.. 미쳤다 진짜 말을 말자.."

 녀석은 오로지 자기 스키넥의 스크린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단 한번도 눈을 뗄 생각이 없어보인다.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말을 끊다가 잇다가..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과 그렇게까지 집중하는 이유가 뭔지는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다. 그 시선의 끝에 놓인 것은 내 마크3. 머릿속에 오로지 저 실드가 내구도가 다 되어 빨리 깨져야 한다고 그렇게 밖에 생각 안하고 있을 것이다.

 이 자식, 한번도 틈을 보일 생각이 없구만..

 현재는 일방적으로 막는 쪽에 놓여있다 보니 내가 더 위험한건 사실이다.
 나도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말을 그만두고 녀석의 손의 움직임과 게임 화면을 번갈아면서 보기로 했다.

 저 녀석이 가진 탄창이 30발짜리였다고 하면.. 한 전투에 가져갈 수 있는 탄창은 총 10개. 지금도 계속 쏴대고 있다만 자꾸 좌우로 움직이면서 쏘는걸 보니 슬슬 간당간당한 것 같은데.

 버튼을 누르는 손놀림도 격해지고.. 이제 슬슬 반격의 때가 오는건가? 그렇지만 아직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 아직 녀석의 궁극기.. 센스가 의심가는 작명인 '엠페러 쇼크'가 남아있다. 그걸로 딱 끝나게끔 맞추려는건가? 그래서 이렇게 격하게 쉴드를 깎아내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아귀가 맞는다.

 메카 드라이브에 나오는 메카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게이지를 가지고 있다.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상태 게이지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 본인 화면에서만 출력되는 한 가지 게이지. 그 두 가지 게이지 중 위쪽에 위치한 체력을 나타내는 게이지는 당연히 아준이 녀석의 '엠페러'가 더 높았다. 그렇기에 내가 위험해보인다는 거였고.. 아준이가 현재 상태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두번째 게이지에 있었다. 바로 분노 게이지라고 불리는 칸인데. 이 게이지는 한줄이 꽉 차서 100%가 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줄이 쌓일수록 뒤에 스택이 쌓이는데 얼마나 쌓였는지는 편리하게 숫자로 표시된다. 스택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음에 상대에게 입히는 공격력이 강해진다.

 다만, 현재 스택을 표기해주는 숫자는 플레이어밖에 확인할 수 없으며, 상대에게는 숫자 대신에 자릿수에 물음표가 표기된다. 다시 말해, 0~9까지는 ?로 보이고, 10부터는 ??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쌓인 분노 게이지는, 공격을 시도하는 순간 소모되기 시작하며 총 5초에 걸쳐 줄어든다. 얼마나 많이 쌓였느냐에 관계 없이 무조건 5초가 되면 스택 0에 0.00%가 되고.. 그 동안에 게이지가 줄어들면서 상승한 강화 효과도 줄어든다.
 여기서 심리전이 걸린다. 
 고수들은 의도적으로 물음표 하나가 뜨는 일의 자리 스택을 유지하여 상대방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먹이고자 하는 전술을 사용하는데, 물음표 두개가 표기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최소 10스택 이상 쌓였다는 말이니까 굳이 맞상대할 필요 없이 5초가 끝날 때까지 거리를 벌리기만 하면 된다.
 지금 아준이 녀석이 지금 두려워하는것은 바로 ??가 표기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점이다.

 세번째 게이지는 '실드 게이지'라고 칭한다. 이 게이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회복되며.. 메카의 상태에 따라 초기치가 달라진다.

 실드 게이지는 원거리의 상대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업데이트 된 시스템으로, 근접 공격도 막아내긴 하지만, 그 일부는 적 메카의 HP에 손상을 입힌다.
 실드의 초기치는 메카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고, 기본적인 강화로는 회복속도밖에 올리지 못한다. 
 실드의 초기치를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개조'가 있다. 다만 성공할 확률이 엄청나게 적고, 랜덤으로 한 종류의 장비 상성을 바꿔버리기 때문에.. 거의 하질 않는다. 게임 내에서는 이것을 '마개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상대 HP를 깎기 위한 실드 관통 효과를 지닌 탄환도 존재한다. 지금도 계속 아준이 녀석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탄환이.
 다만 이 탄환은 상대 메카의 남은 HP의 3%만큼 현재 HP를 깎아내는 옵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HP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감소양이 천천히 줄어든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어디까지나 탄환. 당연히 수는 줄어들고 한계가 있다.

 '실드' 계통의 보조 기구를 장비하여 최대한의 물리 피해량을 줄이면서.. 효율적으로 분노 게이지를 쌓는 탱크 전술이다.

 아까 녀석이 화를 낸 가장 큰 이유..

 지금 녀석이 상대하는 '마크3'의 실드 개조치는.. 3단계. 마지막 단계인 4단계 이전이다. 추가치는 +175%.. 회복률도 꽤나 올려놔서. 뚫기 힘들게 해놨다는 점이다.

 참고로, 궁극기는 절대 데미지 판정으로 HP와 실드에 데미지를 입힌다. 
 강화 효과는 다른 보조기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분노 게이지에만 영향을 받는다.

 그 탓에 녀석은 지금도 열심히 내 HP를 바닥으로 만들기 위해 고생중인 것이다. 잠깐이라도 틈을 놓치면 실드 게이지가 회복되면서 HP를 깎아놓은게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 물론, 나 역시 그렇게 맞고만 있는 이유가 있다. 녀석의 궁극기에 결코 밀리지 않을 최강의 한방
 바로, '금빛 돌격!'

 어떠냐, 이름에서부터 흐르는 차원이 다른 품격이.. 아준이 녀석의 '엠페러 쇼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뭐 네이밍 센스 자랑은 이 정도로 해두고.. 나 역시 그리 편치는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퍼센트가 줄어든다 해도 최소 데미지는 입기 때문에 결코 그 수치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0.0001%에도 게임이 뒤집어지는게 바로 이 메카 드라이브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묘미이다.
 그러니까 이걸 그만 둘 수가 없어! 모두들 한번 플레이하면 빠지게 되어버리는거지.

 현재 쌓인 게이지는 40.. 슬슬 녀석이 거리를 벌릴 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금빛 돌격이라도 맞았다간 녀석은 그대로 현재 HP를 절반 이상이나 잃어버리게 되니까 상당히 손해보는 장사다. 보통은. 하지만 네가 받을 피해를 고작 절반 이상으로 끝낼 순 없지. 한 방에 보낼거다. 99 근처까지 쌓아주마. 있는 탄환 다 써먹어라. 원래는 한 두대씩 반격하면서 할 생각이었지만..

 주변에 이 대결을 지켜보는 아이들이 꽤나 많아졌는지, 주변의 밝기가 어두워져서, 밤 모드가 발동되었다. 마크3 궁극기가 발동되면 금빛이 교실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스크린 밝기가 밝아져버렸다. 스키넥을 가진 녀석들은 공지 메세지에 뜬 내 닉네임을 확인하고 거기서 관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공지 메세지에 왜 내 닉네임이 떴는지는 일단 제쳐두자.
 
 잘 모르는 녀석들은 시끄럽다. 아준이가 꽤 하냐는 둥, 수혁이 너는 왜 맞고만 있냐는 둥.. 너 같으면 내 작전을 밝히겠냐? 물론 아준이 녀석도 슬슬 눈치채는 것 같지만 말이지. 이미 방패로 경감할 수 있는 피해량과, 방패 없이 맞는 피해량이 같아진 걸 확인하고 나서.. 이대로는 그저 녀석에게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 타이밍을 잡기로 하자.

 스키넥 좌측의 C 버튼을 누르고, 커맨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위 방향버튼을 두번 눌러 고속 2단 점프를 하고 그 뒤에 다시 C버튼을 눌러서 커맨드 입력 모드를 다시 발동시켜, 내 궁극기 커맨드인  C, S, →, →, N, → 를 빠르게 입력하고 다시 C를 눌러서 마무리! 80스택의 금빛 돌격이 들어가게 되면 녀석은 한방에 파괴될 게 분명하다.

 궁극기 컷인이 들어갔다. 해당 드라이버의 메카의 현재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인데. 카메라가 회전하면서 보여주듯이.. 그리고, 내 목소리가!

 -'이게 너와 나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다!'

 이 익숙한 목소리는.. 아준이 녀석이 먼저 발동시킨건가! 
 
 -'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아니, 내 메카에서도 대사가 나온다. 이, 이건.. 설마? 스크린에는 가운데에 작은 금을 두고, 두 메카의 화면이 동시에 나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크로스 ​울​티​메​이​트​라​는​건​가​.​.​ 오늘의 베스트 영상에서밖에 못보던 그게 눈 앞에 펼쳐질 줄이야..!
 주위에서 열광하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긴장된다. 두근거린다. 특히 스키넥을 들고서 관전중이던 녀석들은 아주 그냥 악을 쓰다 시피 괴성을 질러대고 있다.
 
 "우와! 수혁아.. 우리 이거.."
 "어, 영상으로 밖에 못 본건데.. 미쳤다 와 연출 진짜.."

 어느새 우리 둘은 승부따윈 잊어버리고 그저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 금빛 돌격은 시전 시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데미지가 늘어나는 초근접형 궁극기다. 이걸 거리를 벌리는 용도로도 쓸 수 있어, 쓰고난 뒤 빠르게 뒤를 잡아 연속으로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가능한.. 반면, 아준이의 엠페러 쇼크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위력이 높아지는 타입의 궁극기기다. 이 녀석도 끝내기는 역시 돌격이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여기까지 왔으면 더 이상 플레이어가 손 쓸 도리는 없다. 크로스 울티메이트가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철저한 게임 내 연산 결과에 따라 모든게 갈린다. 이 상황이 일어난 뒤에는.. 해당 게임은 반드시 승패가 결정된다. 그런걸 우리가 알아낼 방법은 없고, 사실상 운인거다.

 내 랜스 타입 4가 먼저 닿느냐, 녀석의 엠페러 쇼크가 먼저 내 실드에 부딪히느냐! 주변에 들려오던 각종 말소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사라져 순식간에 정적이 흐르고, 교실에는 두 메카가 서로의 궁극기를 맞부딪히기 위해 공기를 가르는 듯한 웅장한 효과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효과음이 고요한 교실을 완전히 장악했다.. 서서히 겹치는 두 화면의 배경.. 타격음이 울려퍼지고 나면 어느쪽에서든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퍼질 것이다. 그 분위기를 예상해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올린 녀석이든, 한 녀석이든.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겠구만. 이거야 원..
 
 상성도 맥스의 무기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기에, 유저 전체가 볼 수 있는 시스템 알림창에 뜬 나의 닉네임... 그리고 관전 중인 누군가는 이미 녹화기능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저장하고 있을 이 전투. 게다가 크로스 울티메이트까지 일어난 상황. 솔직히 이쯤 되면 승패따윈 큰 의미가 없지만, 이왕 이렇게까지 온 거 사실 진짜로 이기고싶다. 아무리 조종 불가능한 상황.. 결과를 기다릴 뿐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이기든 지든. 이번 전투는 반드시 녹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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