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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생일, 그리고 만남 (1)


 으아아아..
 으아암..

 기지개를 켜고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바라보니 7시 30분. 오늘만큼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묘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달력에는 2176, 3, 21이라는 숫자가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D-0이라는 단어가 나타나 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생일. 생일을 왜 기다렸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매년 할아버지가 깜짝 놀랄.. 예상치 못했다는 의미가 아닌 정말로 깜짝 놀라게 하는 무언가를 항상 준비해두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혁아, 일어났니?"

 벨 소리와 동시에 울려퍼지는 고운 목소리. 평소에도 이렇게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만큼은 묘하게 가련하지 않은 소녀.. 소연이가 가장 순해지는 날이다. 연례행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날이다. 난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응답했다.

 -"그래. 소연아 네 덕분이야."

 그래. 소연이 덕분이라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잊어버릴 뻔 했으니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어제도 밤새 새로운 발명품 테스트에 큰 곤욕을 치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뭔가 펑펑 터지고 해서 눈도 돌아가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걸 알기는 하고 계셨던걸까?

 '수혁아! 그만 들어가 자라! 내일도 학교 가야지!'
 '으아.. 학교 갈 생각하니까 또 귀찮아지는데요!'
 '으이구 요 녀석아!'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내 등을 강하게 치셨다. 

 "오늘 힘들었던 만큼, 내일은 더욱 즐겁게 보내라! 항상 즐겁게 사는거다. 수혁아!"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나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해주셨다. 그래. 나 역시 그런 할아버지의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늘 힘들었던 만큼, 내일은 더욱 즐겁게.
 
 할아버지만 즐거워지는 아침식사 시간.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으니 조금 호화로운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서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전기 레인지를 이용해 계란을 다 해서.. 다른 접시에 올려서 테이블에 놓아둔 그 순간에.. 카운트가 들어갔다.
 -'Three, Two, One'
 카운트가 끝나고 빵 2개가 날아왔다. 하나는 손으로 간신히 잡았지만, 그 뜨거운 빵을 손으로 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뜨거워서 바로 놓치게 되었고, 놓친 순간에 빵이 하나 더 날아와서 떨어지는 빵에 크로스 카운터를 먹였다. 그렇게 나중에 날아온 하나는 얼굴에 맞고. 하나는 팔에 맞았다.

 이거야 뭐, 발전이 없구만.. 싶을 정도지만 뭐.. 매일 겪는 일이다. 토스트는 다 준비되었고 이제 미리 삶아놓은 채소만 건져 아침 식사 준비를 마쳤다.

 2인분을 준비했으니, 할아버지도 불렀다.

 "손자 생일에 얻어먹는 것도 나쁘진 않구만!"
 "예 예. 그래요 박사님"

 가끔씩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이런 아침식사도 꽤나 괜찮다. 대충 설거지를 하고는 건조기에 놓고.. 빵 부스러기 범벅이 된 이 옷을 다시 한번 털러 가야겠다.


 그 결과, 가련한 소녀의 온화했던 표정은.. 매우 안좋은 방향으로 바뀌어버리고.. 결국, 학교엔 또 지각했다. 아슬아슬하게 HR시간을 넘겨서 도착했더니 선생님이 웃으면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중간 고사 기대하마 수혁아' 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에 묘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게다가 중간고사라니..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공부는 잊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성적을 빌미로 학생을 협박하는 교사라니! 으으. 분하다. 못된 교사!

 그나저나 오늘은 목요일이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이다. 최고의 생일이 되겠는데? 아준이 녀석도 메카 드라이브를 하면서 "자식, 생일이니까 이 형님이 멋진 장면 만들어준다" 하면서 쿨하게 궁극기를 자기 메카로 받아주기도 했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준이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체육 시간엔 농구하겠지 아마?"
 "이번엔 같은 팀 하자 임마."

 묘하게 아준이 녀석과는 항상 다른 팀에서 서로 싸우게 되는 일이 잦았다. 이 녀석도 신체능력이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 맞상대하면 서로 피곤해지는 스타일이다. 

 "자식, 생일이니까 이 형님이 너한테 공 계속 넘겨준다."
 "야 그래, 모처럼 생일인데 매년 생일때까지 싸우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래 임마, 같은 팀 됬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충 사인을 맞춰갔다. 편 가르기를 할때 그나마 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편가르기 전에 주먹을 높이 내지르면 앞면, 팔을 한바퀴 돌리면 뒷면 손바닥을 내도록.

 "사인까지 맞췄는데 설마 빗나가겠냐."

 체육시간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체육관 안을 한바퀴씩 돌고 나자, 윤이 누나가 "신 수혁 학생, 오늘이 생일이네요. 축하해요!" 하고 외쳐주었다. 저런 아름다운 여성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다니.. 아니, 기억해주는 것도 영광일 따름이다.
 묘하게 남학생 진영에서 열기가 끓어오르는 것 같지만.. 기분은 좋다! 

 편 가르기가 시작되고, 나는 몸 푸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팔을 한바퀴 돌렸다. '뒷면을 내라'는 신호다. 아준이 녀석이 팔을 휘둘러서 OK사인을 보냈다. 그런데. 왜.

 "OK! 신수혁, 김진석, 윤주훈, 이도선, 전수현 1팀, 나머지 5명은 2팀!"

 야, 말이 다르잖아 이 자식아. 너 이러는거 아니지! 아준이를 향해 보라는 듯 양 팔을 붕붕 돌렸다. "야, 뒷면 내랬잖아!" 라고. 이 모습은 주위에서 보면 당연히 몸 풀기로밖에 안 보일거다.. 그 행동에 아준이 녀석이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좋았으! 네 생일 기념으로 한판 붙자, 수혁아!"

 ... 내 이 자식 가만 두지 않으리라.

 아까 기분 좋았던 걸 모조리 날려버릴 기세로 이 놈들은.. 농구를 하는데 나한테 공을 전혀 주질 않는다. 어쩌다 공을 뺏어서, 패스하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받질 않고.. 슛을 하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한번에 슛하기 좋은 위치로 가서, 패스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공이 오질 않는다. 4:5를 하는 느낌인데.. "패스! 패스!" 외쳐도 전혀 응답이 없다. 이 자식들 뭔가 작정하고 뭘 꾸몄나?

 골대에서 튕겨져 나온 공을 잡아서 슛을 하려고 하는데, 같은 편의 진석이가 나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공을 뺏었다.
 
 "나이스 김진석!"

 상대편이 아니라 같은 편에서 나온 소리다. 이 자식들이? 아준이는 상대편에 있었고, 무언가 불이라도 켠 듯이 나에게 공이 들어오면 바람같이 스쳐지나가면서 드리블을 시도하는 족족 나에게서 공을 뺏어서 갔고..

 "아준이 너 이 자식!"
 "나이스 손아준!"

 내 분노에 찬 외침을 뒤로 한 채 아준이는 "아직 15번 남았다." 하고 지나갔다.
 분명 농구는 한 팀에 5명으로 총 10명이서 하는 경기고, 5:5 구도가 되어야 정상인데.. 나에게 공을 안줘서 내가 계속 공을 쫓아가야했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슈팅을 하기 위해서 아군의 공까지 뺏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게 어딜 봐서 농구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객석을 슬쩍 돌아보니. 거기 앉은 남학생들마저 "나이스 손아준!" 을 외치고 "신수혁따위 제쳐버려라!" 하는 소리가 우리 팀에서 들린다. 야, 뭐야 이 자식들. 묘하게 전투력이 높아졌어. 왜 그러는거냐? 아준이 녀석이 편 가르기를 할때 상대편으로 가자 "좋았으!" 하고 외치던 게 갑자기 스쳐지나갔다. 이 자식은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나..!

 "수혁이 너, 체육 시간때면 날아다니더니 오늘 뭐하는거야!" 

 소연이가 격려인지 험담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알고 있어. 그런데 1:9잖아 이건!

 "그래, 체육 시간이 제일 좋다고 그랬잖아! 멋지게 슈팅 한번 해봐 수혁아!"

 윤이 누나의 목소리가 나에게 힘을 주는 것만 같다. 그래. 신수혁 오늘 신나게 날아서 그림 한번 만들어 보자! 그 뒤로 묘하게 전투력이 더 강해진 9명(아군+적군) 때문에.. 결국 자력으로 아군에게서까지 볼을 필사적으로 뺏어서 겨우 두번 정도 집어넣어 5점은 얻었다. 결과는 31:27로 1팀.. 우리 팀의 승리긴 했지만.. 체육 시간이 끝나고 나만 빼고 9명이 모여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한번도 공을 못 쥐게 했어야 했는데 저 부러운 자식! 학교 제일의 미인에게서 생일 축하나 받고 말이야!"
 "야 저거 진짜 이미 마누라가 있는데 저런 미인한테까지 응원받고 반칙 아니냐"
 "누가 마누라야!"

 이놈들아,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맞지? 반칙 운운하는 놈은 아준이다. 소연이가 '마누라'라는 소리에 발끈해서 종목이 ​수​건​(​폭​탄​)​돌​리​기​로​ 바뀌어버렸다. 배신감 느끼게 만드는구만. 울컥해서 아준이를 뒤쫓았다. 이 자식 잡히면 가만 안둔다!

 "수혁아! 여기!"

 소연이가 내 목표를 용케 알아채고, 체육관 구석으로 아준이 녀석을 몰았다. 곧장 달려가 잡아서 헤드락을 걸어버렸다. 생일에 다굴맞은 인간의 분노다 이 자식아.

 "수고했어"
 "얘들아 그만해! 수혁이 불쌍하지도 않니!"

 뒤이어 이어진 날 동정하는 윤이 누나의 말에 도망치던 애들이 공세전환으로 바꾸어 아준이 녀석부터 헤드락을 걸어왔다. 야, 아프다고. 아파 이자식아. 야!

 "항복이다 항복 임마 그만좀 해!"

 꿈쩍도 않는다. 계속 날 노려보고 있네? 너무하는구만 이 자식 이거!

 "야야 오늘 내 생일이고 놀아주는 건 기분 좋다 이거야. 그런데 내가 뭐 잘못한거 있냐?"
 "수혁아.. 엄연히 따지자면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뭘 잘못했는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친구로써 진심으로 충고한다. 일단 한 대만 맞고 이야기하자."
 "그래, 일단 한 대만 좀 맞자."
 "어, 나도."
 "진석이 임마 넌 내 공 뺏었잖아!"
 "시끄러. 일단 맞고 이야기하자 수혁아."

 한 대만 맞고 이야기하자는 아준이의 제안을 듣고 어느새 내 근처를 둘러싼 9명의 친구들.. 아니. 망할 녀석들에 의해 나는 강렬한 타격을 한대씩 얻어맞았다. 아파 이놈들아! 뭔가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 하려는 윤이 누나를 향해 소연이가 다가가는 걸 끝으로, 내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다. 아프다니까 이 자식들아! 나도 가만히 안 있는다! 한대씩 먹인 만큼 두대씩은 돌려주마!

 결국 농구 경기가 끝나고 다들 지쳐있는데도 때 아닌 난투극이 벌어졌다. 10명 전원이 땀 범벅이 되어 교실에 돌아와.. 하교시간이 되자, 집에 가려는 데 아준이 녀석이 카드 한장을 건넸다.
 
 "생일 축하하고, 고생 많았다 임마!"

 금박에.. 총이 그려져있고 그 아래에 쓰여진 ​G​a​t​t​l​i​n​g​.​.​ 그리고 최상단에는 3라고 적혀있다. 내가 갖고싶다고 말했던 바로 그것. 개틀링 파트 3 카드다. 이야.. 기억해준거냐. 고마워서 울겠다 임마. 그리고 니가 가장 세게 때렸다 임마.. 뒤이어 포니테일을 살랑이며 다가온 소연이가 작은 선물상자를 들고 왔다.

 "수혁아. 생일 축하하고. 이건 내 선물."

 내 손 위에 작은 선물상자를 올리고는 홱 뒤돌아섰다. 여전히 차갑구만.. 이 녀석. 아준이 녀석이 그걸 보고 이마에 손을 올렸다. 뭐냐. 뭘 또 고민하고 있는거냐. 그 표정은 뭔데. 야. 보는 내가 다 답답하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잠깐 우물쭈물하더니..

 "좋아, 소연이는 인정한다."
 "뭘 인정해, 이 자식아!"

 그 뒤에 반 전체의 남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그래 그래 마누라니까 인정해준다"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소연이가 가방을 붕붕 휘두르면서 다가갔다. 난 남은 힘이 없어서 도저히 반격을 못하겠기에, 그냥 그 광경을 보면서 소리내어 웃기만 했다. 소연이가 얼굴을 붉히고 그 가녀리지 않은 회전력으로 가방을 휘두르고 다니는 게.. 그냥 웃겼다. 평소에 내가 당하던 걸 녀석들이 당하는 걸 보니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소연이 넌 어디서 그런 힘이 남은거냐? 참. 일단 집에 가면서 개틀링 파트3나 긁어봐야 겠다. 이 흐름이라면 이거도 상성도 맥스 나올거 같고, 내일은 아준이 녀석이랑 호각으로 싸울 수 있겠지.

 "소연아 너도 그만해. 안 피곤하냐?"
 "어.. 어어.. 그래."
 "캬, 수혁이 카리스마 장난 아니네!"
 "뭐가 어쨌다고 카리스마를 운운하냐 이 자식들아! 소연아. 슬슬 가자."

 가방을 휘두르지 않는 한쪽 손을 잡고 교실을 떠났다. 후우.. 하여간 저 멍청이들 상대하다간 끝도 없겠다! "캬 관리하는거 봐라", "저 둘은 인정한다!" "반 공인 커플"..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소연이 너는 왜 또 얼굴을 붉히는건데.. 그러더니 손을 쏙 뺀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저 소연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입을 살짝 열더니 말했다.

 "아.. 아니. 난 따로 갈게."
 "그.. 그래? 그럼 난 먼저 들를데가 있으니 먼저 간다! 내일 보자 소연아!"

 손을 가볍게 붕붕 휘두르고 교문쪽으로 달려나갔다. 2반 녀석들 신경 쓰이게 쓰잘데기 없는 말이나 해대다니..

 "수혁이 저거, 1분도 안 돼서 차였구만!"
 "시끄러워! 차이긴 뭘 차여 이것들아! 너네들은 여기엔 왜 서있냐. 집에 안가냐?"
 "좋은 구경거리는 보고 가야지!"
 
 3학년 2반 이 자식들.. 하여간, 더럽게 유쾌한 놈들이다.

 "난 간다! 구경거리 끝났으니까 니들도 집에나 가!"
 "그래 수혁아. 내일 보자!"

 오늘은 정말 유쾌하고 즐겁고 더럽게 힘든 학교 생활이었다. 생일인데 말이야. 아준이 녀석에게 선물받은 코드는 오늘 당장 뜯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사람이 없을만한 곳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 문장을 또 외칠 예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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