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만남 (2)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사람이 많은 곳이 없을까만 생각하다가.. 저번에 랜서 타입4를 샀던 곳 앞에 도착했다. 가게 간판, [베스트 드라이버]를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손이 가서.. 카드를 꺼내들었다. 개틀링 타입3를. 반짝반짝 빛나는 금박을 보고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마, 거리에 있던 드라이버로 추정된다. 그렇게 하나 둘 스키넥을 들고서는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금박이다!" "성공하면 베스트 감이다!" 등등..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이 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젠 긁지 않을 수도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긁어라! 긁어라!"
혹시나 해서 메카 드라이브의 채팅 메세지 창을 보았다. 채널 1에 자동으로 들어가 있는데.. 슬쩍 보니, 벌써부터 또 난리가 벌어졌다.
이래서 유명인은 괴롭다니까. 후..
크크크. 기분은 좀 좋지만.
-밥은먹고_돌리냐 > 금박가진 놈 실황중계 sknc::102931
-용왕강림 > 실황ㅋㅋ 뭐냐?
-그림그려요 > 어떤놈이 또 그짓함?
-영화제작자 > 아 지루했는데 ㅋㅋ 잘됬네
-헌터_THE > 아 아까 5만넥 날렸는데 저거 보고나면 안지를수가 없겠다
-좀_자라 > 쟤 저번에 그놈인데? 마크3?
아, 난 '마크3'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부르는 꼬라지 하고는..
-기억에없음 > 금빛!
-드라이버A > 돌격!
-섀도우체이서 > 먹어라!! 금빛!
-드림사냥꾼 > 단합ㅋㅋㅋㅋㅋㅋ 미쳤다
-주워온메카 > 나 실시간인데 아 이거 보고있는거 아니냐 쟤?
-노리면쏜다 > 야 빨리 긁어 이자식아! 너 이거 녹화되고 있다 마크3!
-드라이버A > 돌격
-추천받지않은 > 금빛
-크레이지_E > 긁어 임마 마크3 그만보고
-존재감_맥스 > 너 혹시 Gold 읽을 줄 아냐?
이것들이 남의 궁극기를 멋대로 인용하네.
나도 보다못해 한마디 적어넣었다.
-돌격_스트라이크 > 내 카드지 니네 카드냐 아 좀 적당히 못하냐 남의 궁극기 이름갖고 그러지마라 ㅡㅡ 그리고 골드 운운하는놈 뭐냐 ㅡㅡ
-Minimize > ? 아는데 왜 그렇게 지음?
바로 들어오는 미친 답글과 채널 관계없이 모든 플레이어에게 대화내용을 보내는 '대화증폭기'를 연발하는 어떤 정신나간 놈이 있기에. 솔직히 당황했다. 근데 눈에 꽤나 익는 아이디인데.
-ForceOfEmperor > 너ㅋㅋ 이렇게까지 하는데 스키넥만 들여다 볼거냐ㅋㅋ
-[증폭]ForceOfEmperor > 실시간 멍청이 방송 sknc::102931 금박 간다!
어느새 메카 드라이브에 접속했는지, 아준이 녀석이 '야 너 실시간 ㅋㅋ' 이라는 메세지를 나한테 날린 걸로도 모자라 전원에게 실황 주소를 뿌리고 앉아있다.
너 내 친구 맞긴 한거지? 응? 아준이 너 이자식?
-[증폭]돌격_스트라이크 > 황제님 내일 기대하시고. 이제 긁는다
"나, 드라이버 마크 3의 플레이어 신 수혁이 선택한 장비는.. 개틀링 타입 3다!"
멋지게 금박카드를 하늘로 향하고 그대로 스캔했다!
"금박 두개째 나오냐? 나오냐?"
"솔직히 금박 두개면 밸붕이지"
"멋있었다 멍청이!"
오늘은 왠지 운이 좋다 했다. 에라이.. 마을의 드라이버들이 하나둘씩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걸 뒤로 한 채 터덜터덜.. 언덕 위에 위치한 집으로 향했다.
에라이.. 저렇게까지 했는데 상성도 2는 아니지.. 상성도 3부터는 시스템 메세지에 뜨게 되는데, 그 이하는 뜨질 않는다.
긁고나서 채팅창을 슬쩍 봤더니..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놈들이 별 말 다하고 앉아있었다.
-십자_드라이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놈만_잡는다 > ㅋㅋㅋㅋㅋㅋ 22장간다 ㅋㅋㅋㅋㅋㅋㅋ
-섀도우헌터 > ? 뭐냐 쟤 긁은거맞지? 그런데 왜 시스템에 아무것도 안뜸? 설마? 2이하??
-1011_생일 > ㅋㅋㅋㅋㅋㅋ 1나온거아니냐?
2거든. 임마.
-총쏘는_화가 > ㅋㅋㅋㅋ 아 진짜 벙쪄있는거ㅋㅋㅋ 베스트감이다
-아직움직이네 > 용자 ㅋㅋㅋㅋ 신ㅋㅋㅋㅋㅋ수혁ㅋㅋㅋㅋㅋㅋ
-오렌지맛포도 > 신XX : 금빛!!! 돌!! 격!!! (쓰러진다)
-쉬팍스 > 수혁 : ㅋㅋㅋㅋ 돌!!격!! (풀썩
-돌격_스트라이크 > ㅡㅡ 니네 네임 다 기억했다 한놈씩 잡아준다 ㅡㅡ
-섀도우체이서 > 금빛!
-좀하는놈같다 > 금
-오류유발자 > 돌격!
-돌격_스트라이크 > 랭커 놀려먹는 놈들 인성 진짜 ㅡㅡ 너네 맥스 하나는 갖고있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내 스키넥 붙잡고 나 비웃는 놈들이랑 말로 싸웠다.
"다녀왔습니다!"
스키넥 전원이 다 되어서 '야 나 전원다됨' 하고 나가려는데 녀석들이 또 '보조배터리에 돌격!ㅋㅋㅋ' '금빛! 배터리!' '네 스키넥은 금ㅋㅋ빛ㅋㅋ으로' 이라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해대길래 '아 진짜 전원 1%임' 하고 게임을 껐다.
와 진짜 유명인은 더럽게 힘드네.. 정신력이 부족하면 금방 휘말리겠다 싶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꺼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나마 좀 화난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생일인데 이것들이 기분 안좋게 만드네. 랭크를 채팅으로 올린거같은 놈들도 몇 있었는데 뭐 그건 그거고..
집에 들어왔는데 항상 보이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보였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할아버지는 어디 가신건지.. 1층을 일단 뒤적여봤다.
우리 집의 구조는 대충 이렇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정면에 부엌으로 가는 길과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부엌 바로 옆에는 할아버지의 작은 공방이 있어서.. 그 곳에서 항상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작은 문이 있는데 그 안은 창고로 쓰고 있다. 거기는 뭐.. 들어가본 적이 없다. 들어갈 일도 없었고 말이지. 아마 할아버지의 발명품들이 뒤죽박죽 쌓여있을게 뻔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멀찌감치 떨어져서 TV가 위치한 거실을 바라봤다. 거실은 부엌에서 왼쪽으로 90도쯤 꺾으면 넓게 위치해있다. 그쪽으로 햇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서, 거실에서 자게 되면 어지간히 깊게 곯아 떨어지지 않은 이상은 해가 뜨는 순간 잠을 깰 수밖에 없다.
햇빛이 들어와서 기지개를 켰는데 새벽 6시 30분이라는 그런 슬픈 상황이.. 일어나게 되면, 더 잠도 못자는 애매한 시간이라 씻고나면 1시간이 남아버린다. 그렇다고 바깥을 한바퀴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멍청한 짓인게, 그러고 나면 피곤해서 학교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다가, 학교에서는 코까지 골면서 자는 상황이 전개된다.
물론, 난 항상 학교에서 깊게 잠들지만 말이다.. 자랑이 아닌건 충분히 잘 알고있다..
알고 있다니까.
요 근처 잠깐 나가셨으면 곧 돌아오시겠지.. 싶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내 방과 할아버지 방 그리고 손님방이 있다. 손님방이 왜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여태 찾아온 사람이라곤.. 3명 정도? 그것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냥 '할아버지의 지인'이 왔다 갔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메카 드라이브나 하고 있어야겠다. 아까 나 놀려먹은 녀석들 닉네임 다 기억하고 있다.. 가만 안둘테다..
"하.. 너무한 거 아니냐"
충전 단자에 꽂아둔 스키넥을 붙잡고 한참 씨름을 하다 보니, 벌써 2시간이나 플레이 했음을 알리는 개인 메세지가 날아왔다. 뭐, 그 메세지가 날아온건 둘째치고.. 아까 거리에서의 일로 '마크3'는 완전히 유명인사가 되어.. 결투신청이 계속 날아왔다.
-'섀도우체이서'님이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8패중이다. 오기로라도 내가 이 개틀링 타입3갖고 니놈들 다 잡아버리고야 만다.. 는 생각으로, 계속 붙잡고 있는 것.. 방에 들어오자마자 메카 드라이브에 접속해서 복수하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전투 예약 대기열이 가득 차버려서. 한명씩 신청받아서 대결중인 것이었다.
개틀링 타입3이 상성2여도 내가 니 녀석들은 잡는다.. 는 생각으로.
그리하여 그 결과 이번에도 5%정도만 남겨놓고 패배해버린 것이다. 후반에 거의 다 궁극기만 쓰려고 드는데 어하나같이 내 금빛 돌격에 당하기 싫어서 원거리형 궁극기만 세팅하고 온 모양이다. 의도적으로 짜맞추고 온건지도 모르지.. 음.
오후 6시라 밥 먹을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 저녁 시간입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식사 당번을 하실 차례다. 뭐라고 부르면 뭐라고 답을 하실텐데 묘하게 조용하길래 좀 답답해서 공방을 벌컥 열었다. 공방을 열었는데도 아무도 안보인다.
대체 어디 가신거지?
그러던 중,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우우웅 하고 울려왔다. 소리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바닥까지 진동이 느껴진다.
소리의 원천을 따라가봤다. 익숙한 문이 그 앞에 있었다.. 평소엔 들어가기 좀 꺼려지는 창고. 거기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발명품 시리즈에 항상 곤욕을 치뤘던 걸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니 들어가기가 참..
그렇다고 배를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할아버지도 저녁을 드셔야 하니까.. 일단은 수상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일단 혹시나 해서 그 앞에서 통신을 걸어봤지만, 신호만 갈 뿐 아무도 받질 않는다.
어쩔 수 없구만. 들어가 보는 수 밖에..
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확 불었다.
뭐야 이게. 단순히 창고라고만 생각했는데 안에 계단같은게 놓여있다. 아.. 저 계단을 따라가면 그 안에 엄청나게 많은 잔해들이 쌓여있을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자, 돌아가고 싶어졌다. 일단 플래시 기능을 이용해서 주위를 밝히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한참을 걸어갔다고 생각할 무렵, 문 같은게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 너머로 바람소리가 불어오는 걸 보니..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더 길거나, 깊은 길이 숨어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됬다. 문을 열었더니 플래시의 빛이 멀리까지 퍼진다.
이 곳이 우리 집이 맞긴 한가. 어떻게 이런 넓은 공간이? 내가 지나온 길을 생각해본다면, 집으로 오는 언덕길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소리인데..
일단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나서야 움직일 마음이 들었다. 상상 이상으로 넓어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땅을 울리는 듯한 소리는 일단 확실히 더 크게 들려왔다. 그 근원지에 가까워져가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주위를 둘러보면서 걸어갔다. 무슨 미닫이 문 같은 것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개별의 문들 옆에는 잠금장치도 확실히 걸려있어서, 쉽게 열 수가 없다.
대체 여긴 어딜까?
우리 집하고는 왜 연결되어있지?
머릿속에 품은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어느새 할아버지를 찾겠다는 목적은 잊어버린 채, 탐사하는 데에 재미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기 위해, 귀를 기울인 채.. 천천히.
"막다른 길인가?"
일단 눈 앞에 있는게 목적지인 것은 확실하다. 울려오는 소리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하다. 살짝.. 열자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빛이 새어들어왔다. 그리고 눈 앞에는..
뭐야.. 이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부터 말하자면.. 일단, 엘레베이터 같은게 있었다. 무슨 200이니 150이니 하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대체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래, 그런걸 다 떠나서..
그 앞에는 그런 것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게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무언가가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