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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생일, 그리고 만남 (3)


 그것은 점점 내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그냥 거대한 기둥이 교차되어 놓여있는 것 처럼 보였으나.. 그 기둥의 교차점으로 보이는 중앙에 무언가가 튀어나온것 처럼 생겼다. 저게 대체 뭔가.. 를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난 큰 기둥에 놓여진 발판들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았다. 교차점까지 간신히 올라오고 나서야 깨달은 건, 그 위치에 작은 미닫이 문 같은게 있었다는 점이다. 손바닥을 댈만한 공간이 있어 한 손바닥을 갖다대고는 조금 힘을 실어서 밀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강제로 막혀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대체 이건 정말로 뭘까.."

 그 미닫이 문을 밀어올리면, 이 기둥들을 움직일 수 있는 조종석 같은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하지만.. 대체 땅바닥에 널리 퍼져있는 X자 형의 기둥을, 무슨 수로 조종할 수 있을까?

 굉장한 걸 보긴 했지만, 용도도 모르겠고.. 기둥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나 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땅을 울리는 소리가 멎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기둥들의 정체에 대해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기둥의 교차점까지 왔으니, 북서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중간쯤 나아가자, 거기에도 미닫이 문같은게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 위엔 손바닥을 놓을 공간은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열 방법은.. 없는거겠지. 'Dock'라고 단어가 적혀있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데.. 모르겠다. 뭐라고 읽어야 하는거지?
 Do.. 두... 도.. 거기에 c... k.. ck는 뭐라고 읽어야 하는거야 젠장.
 소연이한테 영어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의 끄트머리까지 도착해서 고개를 숙여보았다. 의외로 평면으로 막혀있지가 않았고, 작은 도형들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마치,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는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 대로 중간에서 조종해서 움직이는 걸까.. 

 그 위치에서 반대쪽으로 쭉 나아가봤다. 역시 중간에 Dock라는 녀석이 또 나와있고.. 역시, 손바닥을 대서 밀어볼까 했지만 공간이 없다. 끄트머리까지 도착해서 역시 고개를 숙여봤지만, 똑같다. 그러면.. 팔이 4개? 다리가 4개?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용도는 다리니까.. 다리가 4개라고 생각하는게 옳은 거겠지?

 X자로 뻗은 다리가 4개. 그 중앙에 튀어나온 것은 조종석이라.. 메카인가..

 갑자기 통신이 걸려왔다.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 했다. 떨어뜨렸으면 완전히 조각났겠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누가 걸었는지 확인해봤다.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그러는 수혁이 너야말로 어디냐! 저녁 먹어야지 요 녀석아!"
 -"어.. 할아버지 찾느라.."

 들어와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 문을 열고, 빛이 퍼지는 넓은 공간을 탐사.. 하다가 이상한 교차형 기둥을 발견했다.. 라고는 말하기 좀 그렇다.

 -"밖에 잠깐 나왔었어요! 금방 돌아갈게요!"
 -"그러냐! 어서 돌아와라! 다 식겠다!"

 그래, 할아버지가 돌아오셨나.. 그렇게 찾아도 안보이더니.
 걱정하실 것 같으니 슬 돌아갈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기둥 끄트머리로 내려와서 들어왔던 문을 열었다. 그런데, 들어올때와는 다르게 환한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문 수를 세어가며 뛰어갔다. 다행히도 왔던 방향을 기억하고 있어서, 길을 찾는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들어온 문이 어딘지를 몰라서, 잠금장치가 없는 문은 한번씩 다 열어봤고.. 그때마다 켭켭이 쌓인 먼지들이 날 반겨주었다.
 이러다 밥은 다 식겠구만.

 그러던 와중에 또 통신이 걸려왔다.

 -"예 예 할아버지 거의 다 왔어요! 친구 녀석이랑 이야기좀 하느라"
 -"바깥이 어둡다 이놈아, 빨리 돌아와라!"

 거짓말은 안했다. 이 안에서는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먼지들이랑 쿨럭거리느라 오래 걸리는거니까.

 간신히 밖으로 나왔는데, 부엌에서 뭔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는 건 아마 모를 것 같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서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벗어두고, 대충 옷을 갈아입고는 1층에 내려와 세탁기에 던져놓았다.

 "수혁아! 생일 축하한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건네준 것은 손바닥 크기만한 작은 판이었다. 어디에 써먹는걸까.

 "감사합니다!"

 일단은 고맙게 받았지만.. 저걸 만들겠다고 또 뭘 가져가신걸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수혁아!"
 "어.. 예 할아버지"
 "오늘 하루는 어땠냐?" 
 "또 생일이라고 이것저것 있었어요. 미인 체육선생님한테서 생일 축하도 받고.. 아준이 녀석한테서 게임에 쓰는 카드도 받고.. 아 그리고 또 농구를 했는데 이것들이 생일인데 좋은 장면은 안 넘겨주고.. 1:9로 농구했다니까요 하하하"

 "그래! 집엔 일찍 돌아왔겠구나. 근데 저녁엔 뭐 하느라 그렇게 늦은거냐?"

 아. 맞다.

 "저녁시간이 다 됬는데 할아버지가 안 계시길래 밖에 나갔나 하고 찾아봤어요"

 더러울거라 생각해서 신발을 신고 갔던게, 정말로 신발이 필요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안 신었으면 그 기둥을 타고 올라갈 생각은 전혀 못했겠지. 맨발로라도 올라갔을지도 모르겠다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변명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뭐 하다 늦은거냐 이녀석"
 "돌아오는데 친구 녀석을 만나서 말이죠.. 이 녀석이 다짜고짜 결투를 신청해서.."

 어디까지나 하교길에 있었던 일이지만 말이다.

 "에잉 이 녀석 내가 친구랑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런데 이상한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다. 결투란.. 메카 드라이브를 말하는 건데 말이다. 난 주머니에서 스키넥을 꺼내서 보여드렸다.

 "이거에요, 이거. 주먹질 하고 그런게 아니라.."
 "그래, 재밌었느냐?"

 당연한 걸 물으시네. 굉장한 걸 봤는데 말이죠.. 기둥이 말이에요.. 크게 교차되어 있는데.. 무슨 다리가 4개.. 이런 건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걸 떠올린 내 표정은 무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당연하죠! 진짜 재밌었다니까요!"
 "그래, 즐거웠으면 됬다! 항상 즐겁게 사는거다, 수혁아!"
 "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하루가 끝나갈 때 마다 이렇게 말하신다. 아마 먼저 들어가 주무시려는 모양이다.

 나도 메카 드라이브나 좀 건들다 자야겠다. 복수전은 치뤄야 하지 않겠어? 2:2로 붙어보자고, 이 자식들아.. 메카 수리비가 부족해서 수리조차 못하도록 부숴주지!


 
 
 대충 정신이 좀 들었다. 코 쪽을 건들어보니 피도 멎은 것 같고 말이지.. 생일날 이후로 결투 신청이 끊이지 않았는데, 내 성격에 그걸 다 거절못하고.. '복수전이다!' '재 복수전이다!' 하면서 일일히 받아주고 다시 걸고 하다보니 어지간히도 피로가 쌓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일어나면 연락하라고 했었던가.. 소연이에게 통신을 걸었다. 쉬는 시간이니 괜찮겠지. 

 -"맞은 데는 좀 괜찮아?"
 -"그래.. 코피도 멎은 것 같은데 머리가 좀 어지러우니까 조퇴할까 하고 말이야."
 -"잘 생각했어. 집까진 갈 수 있겠어? 부축해줄까?"

 안된다. 그러면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거든.

 -"아니, 괜찮아. 천천히 걸어서 가도 되니까! 나 때문에 괜히 수업 빼먹지 말고.."
 -"그래.. 그럼 내일 봐"
 -"어"

 통신을 끊고, 보건실을 나와서 1층 복도 중간쯤에 위치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윤이 누나가.. 아니 선생님이.

 "네.. 몸이 안좋아서 집에 갈까 하고요."
 "그래? 그럼 옷 갈아입고 다시 와"
 "네?"
 
 아니 뭐.. 그래 체육복을 입은 채로 가긴 이상하니 교실로 돌아갔다. 아준이 녀석이 근처에 와서 말을 걸었다.

 '야, 너 전투기록 장난 아니던데.. 설마'
 '쉿, 조용히 해 임마.'
 '너 그거 갖고 약점잡고 그러면 안된다. 임마. 쟤 보기보다 여린 것 같은데.'
 
 에이, 무슨 소릴.. 그야 부축해주기도 했고 그렇긴 했지만.. 아니. 난 또 뭘 생각하는거냐.. 정신도 차릴 겸,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인 아준이의 등을 툭 쳤다.

 '전혀. 저 도전적인 성격에 무슨.. 나랑 맨날 싸우는거 보고도 뭐 느끼는 거 없냐?'
 '부부'

 이 자식이! 그렇다고 지금 이녀석을 한대 때리기라도 했다간 '친구끼리 싸우지 마'라느니 하면서 또 끼어들게 분명한 상황이었기에,

 '말을 말자. 임마'



 옷을 다 갈아입고 교무실로 가자, 윤이 선생님이 따라오라길래 따라갔다. 어느새 겉옷을 걸치고 계신 걸 보니 어디 가시려는 모양인가?

 "타. 집 앞까지는 데려다줄게. 이래뵈도 면허는 있다니까?"

 싱긋 웃으면서 타라고 한다. 그래서 나갈 채비를 하셨나.. 그걸 거절할 남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 역시 거절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남학생이었기에.. 탔다.
 항상 열차로만 다녀서 잘 몰랐는데..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옆을 슬쩍 바라보니 역시나.. 상당히 미인이시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윤이 선생님이 말을 걸어왔다.

 "수혁아, 너 어제도 이거 했지?"

 뭘 말하는지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하늘색 케이스의 익숙한 스크린.. 그 옆의 S K N C 버튼. 스키넥이었다. 놀라서 안쪽 주머니를 만져보니.. 내 건 그대로인 것 같고.

 "어, 선생님도 산거에요?" 
 "이거지? 요즘 너네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게."

 그리고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개틀링 카드를 긁으려고 하는 그 순간이.. 으악. 상성도 2..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거리에서 이러고 있으면.. 눈에 띄어. 그 날 생일이라고 너무 들뜬거 아니니?"
 "아.. 그게 그러니까.. 그.. 그게 말이죠.."

 '상성도 맥스의 카드를 얻기 위해서 커뮤니티에 나온 방법을 토대로.. 했는데 상성도 2가 나와서 망했어요..' 같은 소릴 할 수 있겠냐..결국 가는 내내 훈계를 들어야 했다. 윤이 누나가 스키넥을 왜 들고 있는지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집 앞에 내려서는 프닉. 프렌드 닉네임까지 등록하게 되었다.. Yunise.. 뭐라고 읽는건지 모르겠지만. 여성스러운 닉네임?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각해본다면.. 이런 닉네임을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주인이 여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겠지.

 아니. 이게 아니라.

 "들어가서 쉬어. 너. 또 전투하다가 쓰러지고 그러면 안된다?"
 "아. 알았어요. 바로 쉴거에요.. 그럼 내일 뵈요 선생님"
 "그래."

 그리고 돌아서서 가려는데..

 "바로 자!"
 "알았어요!"

 그럴 수야 없지. 내가 왜 굳이 조퇴까지 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계신지 일단 집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확인해봤다. 어디.. 1층에는 안보이고. 2층에는.. 할아버지 방문이 잠겨있네. 주.. 주무시는건가?

 그래,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심.. 혹시나 주무시고 계실 지 모르니까 깨지 않게 살금 살금 밟고 내려갔다. 거의 다 와서 나무판이 소리를 내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깜짝 놀랐네.

 1층까지는 도착했고.. 이제 저 한기가 느껴지는 창고문을 열고 내려가서.. 계단을 타고.. 거기까지 내려가면 천천히 걷지 않아도 괜찮겠지.

 신발을 손으로 들고, 창고 문 앞까지 다가갔다. 살짝 손잡이를 잡고..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천천히.. 돌려서, 잡아당겼는데 또 소리가 났다.
 내가 서 있는 땅이 울리는 것만 같다.. 창고 문을 여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날 리 없잖아. 아무래도 주변이 조용하다보니 그런거겠지.
 문을 여는 소리에 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신발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랬다간 완전히 망한다. 내 탐사계획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신발을 신고.. 문을 닫았다.

 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창고문을 살짝 밀어서 닫았다. 닫히면서 나는 소리에 또 깜짝 놀랐다. 신수혁 임마.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이 한가득이냐. 정신차리자. 거의 다 왔으니까..


 이제 계단만 타고 내려가면 소리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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