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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변조종기 엑사베리온


투고 | alphase

강해지기 위해 (3)


 막연히 강해져야 겠다고 생각했었던 게 확실한 목표가 생긴 뒤로는, 그 목표를 따라잡기 위한 훈련이 너무나도 재밌어졌다. 세 발 밖에 날아오지 않는 푸른 화살.. 어떻게 날아올지, 내가 그라면 세 발을 어떻게 쏠지..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상대는 겉보기에 원거리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 그리고 급속하게 거리를 좁혀온다. 그렇다면 당연히 세 발을 모두 맞추기는 쉽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가오는 적에게 세 발을 모두 정면으로 쏴서 맞히는 것. 하지만 상대가 단순하게 정면으로 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오는 방향을 예측해서 쏜다.
 하지만, 그러기엔 3발은 너무나 적다. 

 그러면.. 방향을 유도하도록 쏘는 건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 형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니지, 내가 시훈이 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였지.. 그렇다면 가능하다. 그 형이 제대로 싸우는 걸 본 적이 여러번 있긴 한데.. 그게 기본적인 패턴이라고는 솔직히 생각하기 힘들다. 게다가, 여기 오기 몇일 전까지는 변형된 패턴으로만 상대했었기 때문에.. 솔직히 어떻게 나올지 감이 안잡힌다.
 
 "아.. 머리 아파."

 너무 머리를 굴렸나? 매트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할 내용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움직이는 건.. 한번 따라해볼까? 이럴땐 가만히 생각하는 것 보다 실제로 해보는 게 좋지.
 그때를 떠올리며.. 3기의 적이 나타났다고 가정하고, 나는.. 음, 저쪽에 있었고. 칼로베리프가 어디에 서 있었냐 하면.. 대충, 이 언저리에 있었을까.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 탓에, 현재 나는 매트 위에서 내려와있다. 그리고, 엑사베리온이 있던 위치를 가정하고, 거기 있는 녀석들을 향해.. 여기서 일단 손(단궁)을 올려 한발을 쏜다. 그러자 두 기가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이어서, 근접하면서 한 발을 더.. 손을 올려서 이렇게 쏘고 나면, 이동을 못하는 녀석이 생긴다. 그 녀석을 무시하고..

 손에 그 몽둥이가 들려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위로 붕 휘둘러서 한 대를 격파, 도망치던 녀석이 거리를 벌리면서 적이 무언가를 발사하지만, 기능 정지된 녀석 쪽으로 빠지면서.. 그 뒤로 들어가, 살짝 날아올라서 화살을 쏜다.. 는 느낌이었나? 실제로, 적의 원거리 공격에 기능 정지된 첫번째 조종기가 다 맞아서 무너져버렸었고.. 아니, 이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옆으로 돌아나와.. 이동하면서 손을 올려 세발을 이렇게, 이동부에 한발씩 쏘고, 이어 못 움직이게 된 녀석을 대파시켰다.

 라는 건데.. 직접 움직이면서 해봐도 말이지.. 영 감이 안잡힌다.

 -"미스토, 슬슬 시간이야."
 -"아, 라이아나 누나."

 크게 한숨을 내쉬고, 방문을 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가버려, 그 날이 되었다. 306호가 가까워 질 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만 같다.

 이길 수 있을까? 승리 조건은 뭐가 될까. 일단 한대 맞는 쪽이 지는 걸로 예상해서 연습했었다. 하지만 사실상 그랬다간 10초.. 15초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 마다, 두근거림이 커지는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시훈이 형을 향해 도전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거니까 말이다. 처음이다.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기지 못하더라도 닿을 수라도 있을까? 아니다. 이기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안된다.

 10:1, 20:1... 등등을 가정해서 몇분 이내로 버틸 수 있는지 생각해봤지만 큰 차이는 없다. 날아오는 화살을 내가 피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않으니까.

 '음, 항상 레지에랑 시훈씨는 원샷 원히트로 조건을 걸고 하니까.. 기능 정지 라는 효과가 그 투사체에 붙어있을지 잘 모르겠어.'
 
 라이아나 누나가 저렇게 말했으니, 몸으로 붙어볼 수 밖에 없지. 막을 수 없다면, 다 맞고서 돌진할 뿐이다. 아니면 다리 부분의 아머에 달아놓은 원거리 무기로 상쇄시켜서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어디로 쏠 지만 알면.. 승산은 있다. 정확히는 한대 때리는 거지만.

 "이제 들어가볼까.."

 가슴팍에 넣어둔 내 아크를 꺼내 306호 앞의 인식장치에 갖다댔다. 문이 열리고.. 3명이 거기 있었다. 핑크색 머리의 소녀(32살), 레지에 카첸나. 그리고 푸른색의 단발 머리의 키가 큰 22살의 청년, 진 시훈. 그와 비슷한 키의 갈색의 긴 머리를 찰랑이는 여성, 20살의 라이아나..

 "룰은 500대 1. 내가 500대를 맞추는 동안 1대라도 맞추면 너의 승리다."

 사람을 얕봐도 정도가 있지.. 500:1? 저렇게까지 얕보이는 줄은 몰랐는데.. 이거야 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500:1? 얕보는 겁니까?"
 "이 룰은, 여기 있는 전원이 결정한 룰이다."

 나머지 두명의 여성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레지에 누나가 엄지를 척 들고, 라이아나 누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한방 시원하게 먹이라고! 꼬맹이!"
 "열심히 했잖아? 노력한 만큼 다 보여줘!"

 "500대 1이든 1000대 1이든.. 상관 없다."
 "반드시 한방 먹여주겠어!"

 -'3'
 
 내 장비를 확인한다. 다리 부분에 달린 원거리 무기는, 일단은 제한이 없으나 이동하는 만큼 거리에 비례해서 장탄이 된다. 장탄수에는 제한이 없는 방식으로. 내가 손에 쥔 녀석, 브레이커를 본따서 만든 이걸 휘둘러 맞췄을 때 나오는 소리가 매우 마음에 든다. 더미를 상대로 몇번 휘둘러봤는데.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쌓인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지.
 
 -'2'

 어차피 반쯤 고정되어있는 형태니까, 손잡이 바로 아래에 발사 버튼을 달아놓아 언제라도 쉽게 발사가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1'

 정면을 본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그 녀석이 있다. 목표가. 10초 정도 이동하면 금새 닿을 만한 거리에.. 500대 1.. 사람을 얕봐도 정도가 있지. 그렇다면 다 맞아주면서 들어가도 되겠구만!

 -'Go'

 ​"​간​다​아​아​아​아​아​!​!​"​

 복잡하게 생각하느니, 한번에 뚫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아직도 계속 할거냐?"

 ... 우와. 이건 말도 안된다.

 "아직, 한번 더. 한번 더 부탁합니다!"

 쓰러질 뻔한 몸을 겨우 버티고 일어나, 다시 한번 시도하기로 했다. 몇번이나 지고 있는걸까. 솔직히 세기조차 힘들다. 시작하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3발은 무슨! 저 인간도 수없이 쏴대잖아! 잠깐, 설마 이렇게 될 줄 알고 장비를 바꿨다든가.. 확실히, 활처럼 보이진 않았지. 겨우 근접했는데.. 거기서 또 종료. 거의 근접하면 또 종료.

 "시훈, 비겁하다! 자질이 없다고 말한 놈을 상대로 그정도까지 하냐!"
 "저런 단세포는 다 맞으면서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러니까 상대의 타입에 맞춰 무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

 사실이다. 완전히 읽히다 못해 그냥 내가 어떻게 할 지까지 다 알고 있었단 소리잖아. 정말이지.. 괴물같은 인간이야. 정말로 한대 시원하게 패고 싶어졌어.. 정정당당하게 말이지.

 "미스토, 아마 이제는 몸으로 이해하고 있겠지만.. 내가 장착한 무기는, 브레이커를 사용하는 적에게 가장 효율적인 산탄형의 무기다."
 "그것도.. 설마하니 그 몽둥이를 꽉 쥐면 한번에 5발씩 나올줄은 몰랐지만 말이죠."
 "그리고.. 어디까지나 실전에 입각한 훈련이다. 100발씩 쌓일수록 가장 많이 맞은 부분이 통증을 유발하도록 설정해뒀다."

 완벽한 계산 미스.. 아니, 애초에 무기를 바꿔올 거라고 생각조차 안했으니까 상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가볍게 느끼고 있었던 걸까. 시훈이 형은 단 한번도 그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오로지 컨트롤러로써의 기능만 하고 있었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드라이버 마크-3'의 궁극기, '금빛 돌격'을 토대로 생각해본 전법이었지만.. 그래. 그건 게임이고. 이건 어디까지나 실전에 입각한 훈련이다. 될 리가 없었던 거지.. 잠깐, 이거 생각해보니 훈련때는 아니더라도 실전에선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쳐들어온 녀석들, 본체에 한번도 손상을 낸 적이 없었잖아?
 
 어쩌면, 엑사베리온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 시훈이 형이 시간이 날 때 마다 내가 도전하는 방식으로 계속 훈련했지만, 여전히 한대도 치지 못했다. 그런데 난이도는 더 높아져.. 300:1까지.. 나 강해지고 있는 거.. 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 대를..

 여기 온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시훈이 형한테서 아크를 통해 연락이 왔다.

 -"미스토. 잠깐 204호로 와라."
 -"아, 네."

 204호라면 시훈이 형 방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으로 오라는 호출은 처음 받는다.

 "들어갑니다."
 "편하게 앉아있어라."

 204호는 내 방으로 쓰고 있는 207호와 외형적으로는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눈앞에 앉기 좋은 의자가 여러개 있어, 적당히 아무데나 앉아서 형을 기다렸다. 그런데, 침대 쪽에 이상한 사진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비젼. 예전 내 방에 있던 액자에 꽂힌 진짜 사진이 아닌, 비젼이 띄워져 있는 액자.

 상당히 어려보이는 비젼 속의 남자아이 옆에는, 한명의 여성과 두명의 소년이 같이 찍혀있었다. 그 옆에 있는 주황빛의 머리를 띤 소년은 검은색 머리를 한 어린 남자아이의 목을 팔로 감싸안고 있었고.. 푸른색의 단발머리를 한 소년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 길이의 여성은,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 옆에서 몸을 살짝 숙여 손가락으로 V 표시를 하고 정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데 저 여자의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저 사진을 보고 있던건가.."
 "저건.. 윤이.. 누나?"

 다만, 내가 알던 윤이 누나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꿈에서 본적이 있던.. 그 여성과 매우 비슷했다. 내가 말을 끝내자, "뭐?" 라고 말하는 시훈이 형의 동공이 잠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유니스를 기억하고 있나?"
 "유니스?"

 유니스.. 라고 하면, 윤이 누나의 액세스 네임.. 으로 추정되는 녀석이다. 지금에서야 액세스 네임이라는 개념을 알았으니 이렇게 정리가 되는 거지만 말이다. 확실히, ​'​Y​u​n​i​s​e​'​였​던​가​?​

 "제가 아는 누나와.. 상당히 비슷해서, 무심코.. 아,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형."
 
 그 액세스 네임을 함부로 알려줘야 할 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침묵이 서서히 흐르다, 시훈이 형이 입을 떼었다.

 "아르카."
 "아르..카?"
 "내 이름이다."
 "아.. 아 그렇군요."

 근처에서 보기 힘든 얼굴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푸른색의 단발머리라는건.. 역시, 어딘가 외국에서 온 사람이었나.. 그 뒤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신 수혁. 이게 네 이름이 맞나?"
 "네?"
 "... 아니다."

 그러고서는 형은 고개를 돌리고 침대쪽으로 돌아가 앉았다. 뭔가 기운이 없어보이는 느낌도 들지만. 저 형에 한해서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저 사진에 있는 푸른 단발머리 소년.. 시훈이 형입니까?"
 "아르카로도 상관없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그럼 아르카 형이라고 부르죠.. 그나저나, 저때는 활짝 웃기도 했네요."

 그는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답했다.

 "그래. 그랬었지."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찍은 한 장의 추억이다."

 소중한.. 사람들인가. 자연스레 비젼에 나와있는 검은 머리의 여성쪽으로 눈길이 갔다. 정말 비슷하다.. 꿈에서 봤던 그 여자랑..

 ".. 저 여자는.."
 "아무래도 유니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보군."

 역시, 속일 수 없었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뭐 그런 걸까.

 "네.. 할아버지를 도와 엑사베리온을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줬던.. 제가 아는 누나랑 많이 닮아서 말이죠."

 울컥해져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등빛이 조금씩 흐려보인다.

 "..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유니스.. 여기로 왔었던 건가.."

 여기로.. 왔었다?

 "... 아르카 형, 괜찮으시다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 그만. 더 들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다."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르카 형에게 있어서는.. 그 '유니스'라는 여성은 '소중한 사람들'의 일부였고.. 어떤 이유에선지, 여기에 홀로 떨어지게 되었다.. 뭐 그런 거겠지.

 "제가 말한 윤이 누나.. '유니스'라고.. 저희 할아버지가 그렇게 불렀었습니다. 아마, 우연이겠지만요."
 "그래.. 그 누나를 위해서라도 강해지려고 하는 거였나. 찾기 위해서?"
 "예.. 뭐 그런 셈이죠. 할아버지도 찾아야 하고.. 소꿉 친구 녀석도.. 친구 녀석도."
 ".. 괜히 미안하군.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 아 네."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있었지. 눈가를 대충 비벼 시야를 밝히고, 시훈이 형을 바라보았다.

 "레지에가, 네 전용 커스텀기를 만들었다."
 "역시 대단하네요.. 그 누나."
 "그리고.. 놈들이, 그 '엑사베리온'이 여기에 있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놈들.. 이라면?"
 "널 노리고, 정확히는 '엑사베리온'을 노리고 왔던 모든 놈들."
 ".. 어째서.."
 "그러니까, 레지에가 만들어 준 커스텀기에 탑승해라. 엑사베리온을 타게 되면.. 아마 그때처럼.."
 "최악의 경우엔, 오라드가 날아올 수 있다?"

 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선 너도.. 슬슬, 수동 조종을 시작해야겠지. 훈련 내용도 바꾼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 당장 시작한다. 커스텀기에 대해서는 조만간 레지에가 따로 알려줄거다."

 그 자식들.. 결국 여기까지 알아낸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복수를 할 수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강해져서 상대해주마. 무력하게 당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내가 박살냈던 'Domine expand'처럼 산산조각을 만들어주지..! 아니, 그때보다 더 강해져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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