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of Sevens (4)
".. 디시브. 너무 늦었다."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모두의 앞에 나타난 붉은 눈동자의 청년. 그가 이 곳에 들어온 시간은 11시 40분.. 예정 집합 시간으로부터 10분이나 더 지나고 나서였다. 체이서한테 들었던 '밥을 먹고 있었다'는 말은 아마 거짓말일테고.. 어디선가 멋대로 트레이닝 룸에 접속해서 '일반인'과의 실전을 즐기고 온 모양인지.. 그 눈동자에 반사되어 얼굴로 떨어지는 붉은 빛을 띠는 땀방울은.. 그 '디시브'라는 닉네임과는 달리 현재 여기 있는 누구의 눈도 속이지 못했다.
바로 이 녀석이, 우리 팀의 두뇌전 담당인 '디시브'.. 후루야마 료스케라는 17살의 남성이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참지 못했는지, 평소에 그다지 말이 없는 '체이서'마저 '늦었다'고 질책했다.
"디시브.. 너무 늦어.. 흐아아암.."
"미안 미안! 엠페러가 아침에 '밥은 일하고 먹자'고 했지만 난 밥부터 먹는 주의니까! 그나저나.. 어이 E2. 너는 잠이나 좀 깨라.. 거기 그만 좀 매달리고. 무거워 보이잖아."
"아니.. 여기가 편해서.. 좋아. 나, 안 무거워.. 그렇지, 리더?"
이 당돌한 금발의 공주.. 아니, 주근깨 아가씨는 여전히 내 등에 업혀있다시피 질질 끌려 여기까지 도착했다는 것이다. 묘하게 팀원들의 시선이 날카로운 것 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분위기를 개선시키기 위해,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내 등에 부드러운 무언가를 얹혀놓고 내 어깨에 매달려있다시피 한 에리카를 향해 나름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
"리더로서 말할게. 바운더리, 엔마이트 에리카. 슬슬 작전 회의에 협조해 줬으면 하는데."
"넌 맨날.. 피곤하냐니.. 뭐니 적어놓고는.."
공문서에 자기 의견을 기입한 걸 갑자기 물고 늘어질 셈이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긴, 거기서 더 파고 들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질 것 같으니.. 에리카에게 뭐라고 하는 건 그만 두도록 할까..
나는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어깨에 매달린 에리카를 무시하고 작전 회의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 물론. 늦은 멤버에 대한 질책은 잊지 말아야지.
"디시브, 후루야마 료스케가 예정 시각보다 10분정도 늦어져서.. 작전 회의는 길게는 못해. 간단하게 설명한다."
"OK."
"미안하다고 했잖아! 엠페러! 닉네임에 맞지 않게 전혀 관대하질 못해 사람이!"
저 녀석이 오퍼레이션 멤버로써의 자각이 부족한 건 아닐거라 생각한다. 아마 자존심에서 우러나온 그나마 할 수 있는 최후의 반항이라는 거겠지. 여기서는 부드럽게 접근하자.
"뭐.. 이 점에 대해 더 따질 생각은 없어. 다만, 스스로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겠지?"
"그야.. 알고 있지. 글쎄 미안하다니까."
"그리고 에리카, 대답은?"
그리고 어깨에 매달려있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잠이 덜 깬 듯 눈을 슬슬 비비며..
"알았..어. 리더."
솔직히 작전 회의라는 상황과, 브리핑 룸이라는 장소만 아니라면 조금 더 이렇게 있어도 괜찮다. 피곤해 보였는데 멤버 지원을 괜히 받아들였나.. 일단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테이블 스크린에 제3 통신지구의 지도를 열어두었다.
"폭심지, 제로 에어리어의 조사가 이번의 주요 임무야. 아침 브리핑때 보았다시피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명백히 적의가 있었다고 판단되는 회전형 물체가 최신예기 2기를 대파시켰고, 무인기였던 1기는 간신히 그 지역으로부터 벗어났어."
"일단.. 아는 내용."
"그래, 여기까지는 모두 알겠지. 거기서 그 다음이야. 우리가 할 일은.. 스페셜리스트 클래스에 지시된 작전이니만큼 위험도는 상당히 높다고 봐도 좋아. 하지만 우선적으로 너희들의 안전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작전의 성공 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래, 난 언제나 진심을 담아 '동료'들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진심에, '동료'들은 잘 따라준다. 테스트 프로그램, '메카 드라이브'가 아니었다면 이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소중한 인연.
"최악의 경우, 최신예기를 차례차례 연락두절로 만들었던 '푸른 빛'하고의 전투도 있을 수 있어. 가능하다면 우리는 현지 조사만 마치고 귀환하는 형태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런 말 하는데 미안해서 말이지.. 우리, 일단은 스페셜리스트 클래스잖아?"
디시브가 저렇게 말하는 걸로 보아, 당연하지만 그 정도의 각오는 되어있다는 거겠지. 이미 모두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고, 내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은 하고 있다는 눈치다. 여기에선.. 뭐. 리더로서 한번에 목표를 정해두지 않으면 안되겠지.
"조사 중, '적의'를 가진 물체하고의 전투가 발생할 경우, 작전 지휘관의 권한으로 허락한다. 전투 돌입 시에 기본 포메이션은 포커싱 크로스로. 자.. 그럼. 마음대로, 신나게 날뛰고 오자!"
".. 알았다."
"리..더. 오케이. 나, 힘낼게.."
"자, 허락도 떨어졌으니 여차하면 신나게 날뛰어도 되겠지? 아까 전부터 한판 뛰고 와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고!"
후루야마의 그 말에, 전원이 동시에 디시브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쏘았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후루야마.
"아.. 아니 뭐, 밥 정도야.. 끝나고 먹으면 되지."
이미 말 안해도, 다 안다 후루야마.. 아마, 널 제외하고 여기 있는 모두가.
"스클리스 1으로부터 본부에, 지금부터 작전 이행을 위해 필요한 권한을 요구합니다. 작전지휘자 스클리스 1, 탑승예정자 스클리스 1, 스클리스 3, 스클리스 5, 스클리스 9. 총원 4명에 대한 탑승 권한, 제어 권한, 통신 권한, 출격 권한을."
출격시마다 자주 들었던, 일정한 금속음이 잠깐 들려오고, 곧. 권한이 부여됬음을 의미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Access Complete'
-'Authorization Installed'
"자, 준비는 된 모양이야."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엠페러. 너 나이 속이고 있는 거 아니냐? 실제로는 한 20대 중반쯤 된다던가."
후루야마 저 녀석까지 왜 저럴까. 오히려 속이고 있는 쪽은 네 쪽이라고. 너, 실제 나이 21인거 난 알고 있으니까.. 겉으로는 17살인 척 하지만, 사실 하는 행동만 놓고보면 13살에서 15살.. 그 언저리. 물론, 이런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망칠 만큼 정신 나간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런 잡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여기선 오히려 활짝 웃어줘야겠다.
"하하, 농담도 심하네. 디시브.. 어딜 봐서 내가 20대야."
20대는 너잖아 임마.
각자 준비 장소로 향했다. 그 장소에는 탈의실이 있기에 그 안에서 슈츠로 다 갈아입고 난 뒤, 이동 버튼을 누르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조종기로 이동하게 된다.
저번에 입었던 슈츠가 아직 덜 복구되어, 이번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어깨 보호구가 빠진 형태의 슈츠다. 어쩔 수 없나..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갈아입고. 이 통로의 끝에 있는 캡슐 타입의 탑승기를 향해 갔다. 'Open'을 누르고, 그 안으로 들어가, 'Ready'를 탭하고 나면 각자의 메카에 탑승하게 되며.
그 순간부터 각자 한 명의 '드라이버'가 된다.
-"스클리스 1(One), 엠페러. 출격합니다."
-"스클리스 3(Three), 섀도우 체이서. 출격한다."
-"스클리스 5(Five), 디시브. 날뛰러 간다!"
-"스클리스.. 9(Nine). 바운더리. 다녀오겠습니다."
일제히 각자의 사출구에서 출격하는 드라이버들은 출격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진정으로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와 마주하게 된다.
푸른 빛을 띠는 하늘을 가만히 날다 보니, 서서히 하늘의 색깔이 어두워졌고, 그것은 다시 기분이 나빠질 정도의 흙색으로 바뀌어갔다. 폭심지, 'Exploded Zero Area(익스플로디드 제로 에어리어)', 통칭 '제로 에어리어'에 도달해가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었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스클리스 3에. 애널라이저의 가동 준비를."
-"스클리스 3에서 1에.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스클리스.. 9.. 3에. 내 능력을 이용하면. 가능해. 흐아아암.."
.. 스클리스 9, 바운더리가 피곤해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긴 했구나.
-"스클리스 1으로부터 스클리스 9에. 이번 작전이 끝나면 좀 쉬게 해 줄테니까. 잘 부탁할게."
-"스클..리스.. 9. .. 1에. 알았어."
바운더리의 특수 기술, 'Untouchable Boundary' 언터쳐블 바운더리. 원리는 '전자기장'. 고정된 공간에 전기를 흘려보내, 그 중심으로부터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하는 기능이다. 'Unmagnetic Coating(언마그네틱 코팅)'이 되어있는 '메카'의 특성 상 큰 영향은 받지 않지만, 그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금속기 계통의 공격이 불가능하여. 통상은 방어의 용도로 사용된다. 인력과 척력을 활용하여 주변의 동료의 위기까지 구할 수 있는 최강의 '영역'.. 그 출력부에 '섀도우 체이서'의 애널라이저를 달아두어 척력을 발생시키면, 빠른 속도로 목표지점까지 나아가, 직접 근처까지 날아가서 사출하는 것 보다 분석 목표 지점 도달까지의 시간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섀도우 체이서의 전용 기능인 '애널라이저'. 이 장비는 광범위한 지역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에 주로 쓰인다. 다만, 광범위에 해당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 조종기에 달아두면 열의 흐름같은 세세한 변화를 확인할 수도 있으며, 게다가 발신 기능까지 달려있기에 말 그대로 '그림자의 추적자'에 어울리는 장비다. 심지어, 그 기체가 있던 자리를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대충 타겟의 다음 이동 위치 후보군을 정리하는 게 가능하여 어떤 의미로든 '최강'인 분석능력을 자랑하는 장비이다.
애널라이저는 언터쳐블 바운더리의 영향으로 빠르게 폭심지로 나아갔다. 머지 않아, 곧 소식이 들려오겠지.
-"스클리스 1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여차할 때를 대비하여, '바운더리 디펜스' 진형으로 제로 에어리어를 향해 접근한다. 애널라이저의 분석 및 회수가 끝남과 동시에.."
말을 하던 중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는 지,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스클리스 3에서 1에. 애널라이저와의 통신이 끊겼다."
-"리스..9에서 1..에. 문제가 발생했어. 파장이.. 중지된 것. 같아."
일단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 예상이 분석 단계에서 일어날 줄이야.. 생각 외로 꼬여버렸다고 판단되니까,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지금부터 제로 에어리어를 향해, 크로싱 포커스 진형으로 접근한다. 스클리스 9의 특수기 사용이 종료됨과 동시에, 각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속도로 강하한다."
-"OK! 역시 한번 왔으면 날뛰어 줘야지!"
코드명을 말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지껄이는 조금 즐거워보이는 듯한 조금 붕 떠있는 듯한 굵은 음색의 정체는.. 스클리스 5. 디시브가 확실하다. 당연히 녀석밖에 없다.
-"스클리스 3에서 멤버 전원에. 통신이 재연결되어 긴급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푸른 빛'의 출현 가능성 존재.. 전원. 영상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려 각자 유의바람."
-"스클리스 1. OK. 3의 의견에 덧붙여 동일 조종기일 경우 기능정지 혹은 통신두절의 효과를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
-"스클리스.. 9. OK"
-"5, OK라고! 한번 날뛰어보자 이거야!"
저런 세세한 것에 신경 쓸 이유는 없지만, 나중에 크게 한번 주의를 줘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시체계가 흐트러지면, 타 클래스와의 합동작전 같은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니까.
시야에 'OR'이라고 적힌 물체의 파편을 확인하고, 지상에 안착했다. 그래.. 저게 바로, 이 지역에 떨어진 초광역범위 파괴 미사일(Over-Range Area Destroyer Missile). 오라드 미사일의 파편이다.. 지상에 안착한 순간 불어오른 흙먼지가, 내 조종기 엠페러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하아.. 솔직히 시야가 가려진 것 보다도 검게 빛나는 내 '엠페러'가 흙먼지로 인해 더럽혀졌을 걸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안좋아졌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스클리스 1은 지상에 안착하는데에 성공했다. 안착 시 먼지가 튀어오르는 것에 주의하도록. 현재 진형은 가능한 한 유지한다."
곧,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듣고 싶지 않은 통신이 들려오는 것을 확인했다.
-"스클.. 리스. 9.. 멤버 전원에.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기체를 확인. 현재 위치는 작전지역으로부터 100, 80, 0"
-"나이스 E2! 자 자, 디시브님이 먼저 나가신다아!"
아까 통신하는 내용에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디시브는 전투할 때의 성격으로 전환되어버린 듯 하다. 두뇌전을 펼쳐야 하는 놈이 말이야.. 하.
-"스클리스 1으로부터 3,9에. 디시브를 선단으로 크로싱 포커스 진형으로 '푸른 빛'을 포위한다."
일단, 푸른 빛을 뿜는다는 점은 에리카의 통신내용과 일치했다. 다만.. 그. 영상에서 봤던 '압도'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저 1체보다 강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일단은, '미지수'의 전력을 지닌 조종기니까.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서 방심은 곧 눈 앞에 있는 적을 도와주는 최악의 서포터 역할을 할 뿐이다..
-"디시브, 전투 행동에 돌입한다!"
하필 이럴 때.. 지능전을 펼쳐야 하는 녀석이 불타고 있다니.. 정말이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오. 후루야마 저 자식을 데려오는게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위기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리더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스클리스 1으로부터 멤버 전원에. 디시브를 필두로 한 원 온 트라이앵글 진형으로 포위한다. 9은 서포트에. 3는 분석에 집중 바란다."
원 온 트라이앵글은 3기가 타겟을 포위한 상태에서, 남은 한 기가 공중에서 내려와 전투를 치르게 될 경우 사용하는 진형이다. 다만, 지금은 그 남은 한 기가 멋대로 크로싱 포커스의 선단을 벗어나 자유행동에 돌입했기 때문에 급하게 변경하게 된 거지만.
-"스클리스 3. OK."
-"리스.. 9. OK."
체이서와 바운더리가 응답함과 동시에, 푸른 빛을 뿜고 있는, 도저히 우리와는 비슷한 타입으로 보이지 않는 금색의 기체를 향해 디시브가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 푸른 빛을 뿜는 상대가 '적의'가 있는 지의 여부는 확인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