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ut, 새로운 동료 (3)
게임 코너를 벗어나자 이 거대한 쇼핑센터가 그냥 크기만 큰 답답한 건물에 지나지 않아 더 있을 이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에. 슬슬 간식이라도 먹을까 했는데, 왼쪽 주머니에 놔두었던 스키넥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급하게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색 프레임을 살짝 터치하여 화면만 켜고, 메세지를 확인했다. 디시브로부터였다.
[<- CannotFind> 이겼어 ㅋㅋ 아저씨는 질듯ㅋㅋ]
통신체.. 아니. 이정도면 치환문을 아예 안쓴 수준이다. 일단은 이겼다는건가.. 그리고 '더 리치가 바로 전투를 시작했다'고?
[-> CannotFind> 몇퍼 남았냐 ㅋㅋ? 개쎄지않았음?]
'싸우는 도중에, 연락 주라고 했지.' 라는 메세지를 담아 보냈다. 잠깐 서 있자. 바로 메세지가 왔다.
[<- CannotFind> 아저씨는 이기기 힘들것 같은데;; 나도 개고생했다 ㄹㅇ]
'리치가 이어서 전투를 시작했다. 연락은 니가 안받은거잖아.' 게임 코너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상태인데 저게 신경을 건드리네.. 곧장 메세지 목록을 확인해보니. 중간 중간 디시브가 'ㅋㅋ 머하냐' '와 진짜 셈' 'ㄹㅇ 답답' 등등 ..이거야 원. 디시브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전투좀 빨리 걸어두라느니. 다 끝나가는데 걸었나? 왜 응답이 없냐? 등.. 에리카에게 줄 베개를 고르고 있던 사이에 이미 전투는 진행중이었던 모양이다.
[-> CannotFind> 아 나도 빨리 붙고싶다 ㅋㅋ 랭커가 장식은 아닌듯; ㅋㅋㅋ 넌 머하냐?]
'다음엔 내가 신청할테니 리치에게 연락해두고. 유니스 위치는 파악했나?' 라고 보내보았다. 곧, 답장이 왔다.
[<- CannotFind> 님이야말로 머함? 너도 랭커잖아 ㅋㅋ 아 그나저나 배고프다; 밥사주셈]
'그쪽이야말로 유니스 위치는 파악했냐? 난 지금 밥 먹는 중' .. 잘났다 임마.
[-> CannotFind> 학생한테 밥사라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임? 수준 ㅉㅉ]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유니스의 위치는 파악했냐고. 그나저나 어디 있나?'
[<- CannotFind> 그럼 밥대신 학교 끝나고 아저씨랑 2:2 한판 ㅇㅋ?]
'아직 확정짓지 못했다. 리치가 알아내지 않을까. 근처 중학교 앞 중계기 근처이긴 한데. 여기엔 없는 것 같다.'
[-> CannotFind> 싸움밖에 모르는 노답 수준 ㅉㅉ.. 아저씨는 뭐함?]
'알았다. 다음에 내가 전투를 걸테니 리치한테 연락바란다.'
귀찮아졌다. 일단 리치의 현재 상태를 확인해보니 전투 중이다.. 아마 유니스랑 하는 중이겠지. 바로 메세지를 보내보았다.
[-> MoneyPower> ㅎㅇ 겜중이네 ㄷㄷ; 딜각 잘 나옴?]
'여기는 엠퍼러입니다. 위치는 파악했습니까?'
[<- MoneyPower> 전혀. 쟤 좀 센듯; 아까 캐낫은 어떻게 이겼대?]
'전혀 파악되지 않는데. 그나저나 디시브한텐 연락했어?'
[-> MoneyPower> ㅁㄹ; 님도 그렇지만 나도 걔랑 싸울때 고생좀 할듯;]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좀 해줘야겠는데요. 다음 전투는 제가 미리 걸어두겠습니다.
[<- MoneyPower> 유니스 이거 장난아니다; 벌써 실드 다뚫림.. 너도 좀 고생할 듯?]
'슬슬 시간 끌기는 이정도쯤이 한계. 예약할거면 빨리 해둬. 리더, 그나저나 중계기 위치라면 내 근처에 있는 녀석은 아니야.'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냔 말이다.. 'Yunise'.
[-> MoneyPower> ㄴㄴ 님이랑 다름; 내가 님보다 더 높으니까 내가 더셈 ㅋㅋ 유니스 어차피 나보다 아래 아님? ㅇㅈ?]
'예약은 바로 해둘 예정입니다. 해당 위치에서 더 위로 올라가서 확인하도록 하고. 제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이쪽 중계기엔 잡히지 않습니다. 이상'
[<- MoneyPower> 님 그거 거품인거 다 퍼짐ㅋㅋ 황제는 개뿔ㅋㅋ 캐낫이랑 싸워도 질듯 ㅅㄱ]
'답답하네. 나도 전혀 위치가 안잡히는데. 일단 리더 명령대로 위로 올라가보긴 하겠다만. 디시브하고 연락해봐야겠어.'
프레임을 살짝 힘주어 눌러 화면만 꺼버렸다. 나도 일단 간식이나 먹을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한 손에 베개들을 집어넣은 봉투를 들고, B1에 위치한 푸드코트로 가기로 했다. 사람들 시선이 묘하게 따가운 것 같아 무빙워크를 포기하고 엘레베이터를 이용했다. 간식정도는 먹고 천천히 움직여도 큰 문제는 없겠지.
"2천 시나입니다."
"카드 되나요?"
"네."
레몬에이드 한잔에 2천시나라니. 비싸다. 현재 총 18만 6천 시나를 쓴건가.. 양심상 이번 임무 내내 10만시나 이내로만 쓰려고 했지만.. 에리카에게 줄 베개가 너무 비싼 탓에.. 많이 써버렸다. 초과분은 개인적으로 따로 보내주든가 해야겠다.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 주변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내 앞에 있는 점원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에이드랑 세트로 쿠키를 주문하시면 3천 시나로 드립니다만.."
"아, 그거 주세요."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법. 이건 장사수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점원의 배려에 내심 감동해 바로 질러버렸다. 도합 18만 7천 시나. 쿠키를 담은 종이봉투와 에이드를 플레이트에 올려놓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가기로 했다. 내가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왜. 어째서..
적당히 마음에 드는 쇼파 느낌의 의자가 있어. 자연스레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나에게 쏠렸다. 신경쓰지 않고 쿠키를 반쯤 쪼개, 먹기 시작했다. 초코가 박혀있는 모양인지 꽤 달달한 느낌이. 상큼한 레몬에이드와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러니까 여러분. 신경쓰지 말고 거기 플레이트째로 서 있으면 부딪혀서 사고나니까 빨리 아무 자리에 가서 좀 앉아줬으면 좋겠는데. 신경쓰인다고..
초코 쿠키와 에이드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 나자, 스키넥에서 알람이 울렸다.
['Yunise' 님께서 전투를 신청하셨습니다.]
... 왜 당신이 걸어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고맙기까지 하다. 가볍게 수락하고. 그 자리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어쩌면, '센듯' '좀 센듯'이라는 말이 치환표를 거치지 않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상대는 세다. 거리를 벌리면 벌린 만큼. 좁히면 좁힌 만큼 이동방해요소를 이용하거나. 회피하기 힘든 위치로 유인하거나 하면서 날 괴롭히고 있었다. 과연. 이러니까 '지능전의 대가'라는 소리를 듣는건가.. 내가 'Master of Sevens'의 기록을 썼을 때 보다도 훨씬 더 강해졌다. 그만큼 더 지른 모양인 것 같기도 하고..
실드도 깎을 만큼 깎았지만 생각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와. 그 탓에 다시 자동회복이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전투 방법만 놓고 보면 생 초보가 할만한 잡다한 공격방식인데. 그게 지형을 이용하거나 위치를 이용하거나 하다보니 생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되어버렸다. 이게 지금의 'Yunise'인가.. 디시브가 '이겼다' 라고 보낸 메세지는 아무래도 거짓말인 모양이다. 치환문을 쓴 건가. 디시브..
마침 게이지도 다 차고 해서, 궁극기를 사용.. 다행히도 소리는 꺼둔 상태이다. 소리를 꺼둔 탓에 더 상대하기 힘든 것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나 사람이 많이 모인곳에서 당당하게 전투를 한다든가 하면.. '민폐 끼치는 중년 신사' 등등 해서 갑자기 유명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커뮤니티 페이지는 보통 그런 이슈만으로도 반짝 뜰 수 있는 법이니까.
다만, 내 대사 "이게 너와 나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다!" 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C버튼을 눌러 커맨드 입력으로 들어가. 내 궁극기 설정인 SKNSKSK>> 그리고 C를 눌러 커맨드 입력을 끝마쳤다. 내가 궁극기를 쓰고 있다는 컷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이 한방이면 10%정도로 만들 수 있겠지?
상대 기체, 'Yunise's Home'을 향해 급격히 날아가는 내 'Emperor'.. 조금 석연찮지만. 애초에 메카에다가 저런 이름을 지은 쪽이 잘못이다. 가라. 엠퍼러. 유니스의 집을 파괴해버려! 크하하하.. 악당이 된 기분이다. 아무 소리도 안들리니 조금 김이 빠지지만.. 엠퍼러 쇼크를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웅장한 볼륨의 효과음이 내 귓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느낌.. 이렇게 상상으로나마 커버해보니 좀 낫다.
내 궁극기, 엠퍼러 쇼크를 맞은 '유니스의 집'은 내 예상대로 10%정도의 HP만 남았다. 그 순간 곧장 '유니스의 집' 쪽에서도 궁극기가 날아왔다. 뭔 집에서 미사일이란 미사일이 다 날아오고. 무슨 집이 저러냐.. 이렇게 딴지를 걸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이게 다 자기 메카에 '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니스라는 드라이버의 탓이겠지. 일단 예전에 모은 데이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저 드라이버가 여성인 건 확실하고.. 대체 어떤 여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좀 귀찮게 하네..
"어라. 이런 곳에서 다 만나네요?"
나에게 한 말인가.
"시밀러 씨. 그는 지금 바쁜 모양인 것 같은데. 저렇게 한쪽 구석에 베개 두개를 놓고 무언가를 두드리고있는 걸 보면.."
몇 시간 전에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 자리에는 보라색 망토를 두른 검은 색의 트윈테일 머리모양을 한 여자아이와 짙은 파랑색의 블레이저를 걸치고 녹색의 넥타이를 한 밝은 갈색 빛이 도는 짧은 머리의 남성이 서 있었다.
"안녕~ 이런 곳에서 그렇게 뭔가 집중하고 있으면, 사람들 시선을 한 곳에 모으게 된다니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하는 그녀. 19살이라고 했던가.. 일단 나보다 연상인 건 확실한데. 이렇게 보니 절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근처에서도 "딸?" "아마 애인일지도"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소리가 좀 흩어져야하기 마련인데. 나에겐 속닥이는 소리까지 잘 들린다.. 이럴 때 마다 청력이 좋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다.
"그건 짐입니까?"
"아, 무슨 일이시죠. 보다시피 제가 좀 바쁩니다.. 저 베개는 가져갈 생각으로 산 것이긴 합니다만"
바빠보이는 걸 알면 좀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는데.. 아! 그래. 셔틀에 미리 실어두라고 해야겠다. 일단 이 전투는 마저 끝내고.. 사람들 속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한마디 들려왔다.
"역시나 최상위 랭커인 만큼 공략이 쉽지는 않은걸.. 음.."
소리가 나는 쪽을 급하게 찾아봤다. 저 엄청난 인파속에서 특정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난 자연스레 스키넥의 볼륨을 높이고. 한발짝씩 움직였다.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시밀러 씨.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루스터. 그건 됐으니까.. 저 신사분에게 밥이나 얻어먹으려던 참이었는데.. 방해하지 말아줘."
"시밀러 씨. 잠깐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식사라면 살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들려왔다. 지금 내 스키넥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와 거의 똑같은 소리가. 이 근처에서.. 내가 움직이자, 사람들이 자연스레 비켜주었다. 지금의 나에겐 그런 오오라같은게 느껴지는건가?.. 아마 변장 탓이겠지만. 덕분에 그녀와 더 빠르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손으로 컨트롤하면서, 양손으로 뭔가를 두드리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확신이 섰다. 관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관전이라면 뭔가를 두드릴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체육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최 윤이. 뭇 남학생들의 관심을 받던 조금 허술해보이는 가드를 가진 여성.. 하지만, 어째서인지 수혁이 그 녀석에게만 관심이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 긴 생머리에 맑은 눈동자.. 그리고 의외로 엄청난 근력을 지닌.. 그 때문에 오히려 가드가 더 단단해진.. 그 선생님이 어째서.. 여기에? 게다가. 저 푸른 빛의 스키넥을 두들기고 있는 이유는 뭐지? 움직임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스키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체력과 실드 게이지가 여유로운 내 엠퍼러는 좌우 이동만 해서 그녀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확신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체 돈을 얼마나 바른거야.. 역시 아직은 이기기 힘든걸까?"
그녀 근처에서, 가볍게 버튼을 조작해 얼마 안남은 체력 게이지를 줄여. 깔끔하게 마무리시켰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니.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꽤 강하신데요."
그녀가 왜 여기 있는지. 어째서 중계기에 걸리지 않았는지.. 물어볼 것은 태산같이 많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질문하는 건 이쪽이 의심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시간을 좀 들여서, 대체 어떻게 메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는지부터 알아내볼까.
내가 건넨 말에. 그녀가 날 향해 바라보았다. 저 빛나는 눈동자. 가느다란 턱선.. 조금 붉은 빛이 감도는 입술. 확실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선생님의 모습과 일치한다. 당황한 모양인지. 스키넥을 보다가, 날 보다가 하면서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
"엠.. 퍼러의 드라이버?"
"아, 그렇습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포스 오브 엠퍼러'라고 합니다."
"그럴리가.. 궁극기 보이스는.."
상대 역시, 날 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황한 탓인지 내가 누군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어조를 가능한 한 차분하게 유지하면서 말을 건넸다.
"자, 여기 서 있는것도 이 분들에게 실례니까. 어디 조용한 곳이라도 갈까요. 시밀러 그리고 루스터 씨 였던가요. 이 숙녀분과 같이 동행해주시겠습니까?"
내가 한 말이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신사가 할만한 대사'다. 트윈테일을 하고서 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 저기.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시죠.
"혹시, 안 들리셨습니까?"
"아. 아아! 네. 같이 가죠!"
"죄송합니다. 엠퍼러. 막무가내라.."
"저기.. 엠.. 퍼러? 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나저나 일행이 있으신 모양인데.."
"아. 아닙니다. 당신에게 용무가 있어서 말이죠. 단 둘이 불편하시다면, 이 분들과 같이 식사라도 어떠십니까? 이른 저녁이라는 느낌으로.."
그녀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특유의 미소. 학교를 다녔을 때. 남학생들을 두근거리게 만든 저 미소..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을 줄이야. 멍청해보이는 표정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지금 난, 중년의 신사.. 신사.. 젊은 사장.. 성공한 사업가.. 그러니까 헛점을 보여서는 안된다..
"역시, 드라이브 한 판 하고 나면 배가 고픈건 다 같은가봐요?"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인데. 흐트러지려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 뭐 그런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이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건 다른 분들에게도 실례니까.. 그나저나 제가 이겼으니. 식사는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시밀러 양이라고 했던가요?"
"음. 괜찮네요. '엠퍼러'.. 황제. 닉네임에 어울리는 드라이버도 있는 법이네요? 후후.."
변장을 풀고 나면. 서로 엄청 놀랄만한 대화가 오고갔다. 지금은 신경쓰지 말자. 지금의 난 중년 신사니까. 시밀러 씨, 루스터 씨, 나, 그리고 '유니스'.. 이렇게 4명. 한명은 트윈테일에 보라색 망토를 두른.. 겉보기엔 영락없는 꼬맹이. 한명은 집사 느낌의 옷차림을 한 소년. 한명은 포장된 두개의 베개를 봉투에 넣어 들고 있는 '신사'. 나머지 한명은. 상쾌한 원피스 차림의 '숙녀'.
이렇게 뭔가 불일치하는 점이 많아보이는 4인조가. 에스컬레이터를 타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다... 목적지는 9층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더 리치. 앞으로 10만 시나 정도가 더 나갈 것 같아. 이해좀 해 주길 바란다.. 미안하다는 자각은 있으니까.. 마음속으로 그렇게 굳게 사과해두었다. 걱정 마. 초과분은 갚는다니까. 진짜로.
9층에 도착해. 당당하게 패밀리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짤랑이는 소리가 나자. 자연스레 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아. 제발.. 이 원흉인 트윈테일의 19살의 '여자 아이'를 슬쩍 노려보았다. 그러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라고 반문할 뿐인 저 여자 아이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뭐 영락없이 '젊은 사장이 중학생 여자아이를 시선으로 내리누르는' 뭔가 겉보기에 안좋은 그림.. 무시하고. 안쪽에 5명이 앉을만한 자리가 보여 그쪽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