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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주인님


투고 | V노블






          

프롤로그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1-2. 쓰레기장의 궁전
1-3. 그녀가 부탁했던 길
에필로그
외전-찌예 이야기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일어나! 벽돌 굼벵이들아!”

더러운 동굴의 구석에서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는데 좀비 감독관이 와서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제기랄. 좀비 주제에 말도 할 수 있는 건가! 이 세계 녀석들, 제법 스펙이 높잖아. 설마 외국어까지 할 수 있는 걸까? 2개 국어를 하면 인간인 내 자존심에 금이 갈지도 모르겠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킬 몸이 아니었다. 허리가 제대로 없으니 뭐….

찰싹!

순간 옆구리에 달군 쇠로 후벼 파듯 격통이 작렬한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성대가 없어 기괴한 신음만이 더러운 입에서 흘러나왔다.

“끼에에엑….”

쳐다보니 아까의 좀비 감독관이 썩은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어서 안 움직여!”

이런, 딴생각을 하다가 큰 실수를 했다. 주변을 보니 벽돌 굼벵이 무리가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아차 싶어 황급히 움직였으나 곧 엉덩짝을 걷어차였다.

“너 지켜보겠어! 이 굼벵이 같은 녀석!”

대체 굼벵이보고 굼벵이라고 하는 게 욕인 건가.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으며 감독관을 무시하고 부지런히 기어갔다. 오늘은 할당량이 많아서 힘을 내야 했다.

나와 나의 동류들은 벽돌 굼벵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기괴하게 생긴 꼴이 굼벵이랑 비슷한데 앞에 붙은 벽돌은 우리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이 지하세계의 던전을 굴착하고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 소모품이어서 필요를 다 하면 죽게 되는 하찮은 존재. 그게 벽돌 굼벵이다.

벽돌 굼벵이는 전제적으로 말랑말랑하지만 딱 하나 상위 존재들도 부럽지 않은 신체부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빨이다.

우리는 이 이빨로 벽면을 갉아먹는 게 일이다. 그렇게 모인 흙이나 돌 부스러기는 벽돌 굼벵이의 몸 안에 쌓여간다. 일을 한참 한 벽돌 굼벵이의 몸은 두 배 이상 부풀어 오르는데, 그러면 그 굼벵이는 정해진 장소에 몸 안에서 뭉친 흙덩이를 토해 놓는다.

이게 마치 벽돌과도 같이 생겼다. 몸 안에서 흙과 돌가루가 특수한 체액과 뒤섞여 뭉쳐진다. 물론 그대로 쓸 수는 없어 필요한 용도에 따라 깎아서 모양을 다듬고, 열기에 굽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이 지하세계의 건축자재 중 하나인 벽돌이 된다.

이렇듯 우리 벽돌 굼벵이들은 참으로 쓸모가 많은 존재다. 이 개미굴보다 복잡한 세상의 새로운 통로를 만들고, 벽돌까지 생산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이런 과정을 거치며 벽돌 굼벵이는 금세 쇠약해져서 속속 죽어간다. 내부에 석회질이 쌓여 말랑거리는 몸이 굳어가거나, 벽돌을 만드는 특수한 체액을 많이 써 기력을 다하는 경우다.

대게 벽돌 굼벵이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된다.

나는 어느새 이 세상에 온 지 넉 달이 된 탓에, 그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언어는 몰랐지만 기이하게도 듣기는 가능했다. 말은 벽돌 굼벵이의 몸이니 어차피 못하고.

왜 그게 가능한지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그냥 차원이동으로 인한 보정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감독관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벽돌 굼벵이가 본연으로 가지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언젠가 의문을 풀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다고 말하고, 읽고, 쓰기도 가능하진 않았다. 오직 듣기만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모든 벽돌 굼벵이가 지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강아지 중에 지능이 뛰어난 푸들이 온다면 이들 사이에서 천재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거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좀비 감독관의 매로 통제되는 무의미한 무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도 벽돌 굼벵이를 생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냥 일을 위한 부품이자 도구라고 해야 할까? 많은 숫자가 죽어가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벽돌 굼벵이들이 이곳의 번영을 위해 태어난다.

대체 이 지하세계는 어떤 곳인가.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살고, 얼마나 넓은 곳일까?

궁금하긴 해도 매일 비슷한 곳만 왕복하며 노역하는 내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아직도 어찌 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의문투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움직여!”

크흑. 제기랄. 다시 한 대 얻어맞았다.

충격으로 살덩이가 흘러내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다시 맞기 싫은지라 나는 달팽이처럼 미끄러져 나아가 벽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위험해. 정말 위험하다고.

이대로라면 고생스럽고 힘든 일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희미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다고 이 통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냥 형벌을 받듯 체념하고는 앞으로 남은 8개월가량의 노역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위에 파낸 흙이 가득 차서 토할 것 같다. 속이 메슥거린다. 몸 안에 석회질이 차 가는 느낌이다.

충분히 땅을 굴착한 탓에 몸이 두 배로 부풀었다. 그래서 이제는 벽돌 공장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이걸 토해놔야 계속 일을 한다.

참으로 짜증나게도 이 벽돌 굼벵이는 태생 상의 문제로 절대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남들보다 부풀어 오르는 속도가 느리면 그만큼 일을 못 했다는 소리고, 좀비 감독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일이 서툴러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흠…… 생각해 보니 환생은 아닌 것 같군.

처음 눈을 떴을 때, 지금의 육체인 벽돌 굼벵이는 완전히 자라 있었다. 분명히 내 영혼은 이 더러운 몸뚱이 안에 갇힌 것이다. 환생이 아니라.

가만, 그렇다면 8개월이 남았다는 관측 역시 너무 낙관적인 판단은 아니었을까? 내 영혼이 움직이고 있는 이 벽돌 굼벵이가 대체 몇 달이나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 고통이 빨리 끝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겠지.

스으으윽.

몸이 두 배로 부푼 탓에 나아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노면에 다른 굼벵이가 지나간 탓에 미끈거리는 분비물이 남아있어서 편했다. 이 분비물은 우리에게 레일 혹은 잘 닦인 차로나 마찬가지다. 

아침(물론 이곳에 찬란한 태양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마법이나 다른 특별한 빛인 것 같았다)에 일을 출발할 때 선두 쪽에 선 벽돌 굼벵이들은 이 문제로 완전히 죽어난다. 거친 노면 위에 분비물을 토해내며 나아가야하니 수명이 줄 수밖에 없다.

반면 미끄러운 분비물 위로는 달팽이처럼 나아가기 수월했다. 하지만 감독관인 좀비들은 이것을 무척이나 싫어해 혹시라도 우연히 밟으면 주변의 벽돌 굼벵이들을 마구 구타하기 일쑤였다. 

정말 재수 없는 일이다. 썩어가는 시체 주제에 깔끔한 체하는 건가? 어이없는 것도 정도가 있다. 분수를 알아야지.

“꾸에엑.”

내가 들어도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 안에 모은 흙과 돌멩이 부스러기를 토해냈다. 체내의 액으로 인해 잘 뭉쳐진 꼴이 단단해 보였다. 이제 벽돌 공장의 다른 노예들이 깎고 구우면 진짜 벽돌이 된다.

이 세계는 내가 마족이라 명한 상위 존재들이 잔혹한 주인으로 군림하며, 더 약한 종족이 희망 없는 노예로 살아간다. 나는 딱 한 번 마족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 중 말석인 듯했던 그놈이 뿜어낸 기세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 내 하반신에는 물건이 안 달렸긴 하지만, 속된 말로 지려버리겠단 말이 적절한 상대였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똥오줌 못 가리고 정신이 나가버릴 뻔했으니 실로 상위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때 좀비 감독관들 역시 바닥에라도 기어 다니겠다는 의지로 맹렬히 굽실거렸다. 우리한테 그렇게 강하더니 하위 마족에게는 조금의 기도 펴지 못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게 이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힘의 의한 질서가 다스리는 곳, 그게 이 지하세계였다.



***


4개월이 지났다.

몇 번인가 탈출을 시도해봤는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통제는 완벽했고 벽돌 굼벵이가 단독으로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넌센스였다.

100미터정도 기어가다가 곧 쫓아온 좀비 감독관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그 자리에서 곧장 인생이 끝날 뻔했지만 최근 죽은 벽돌 굼벵이가 많아 나를 죽이진 않았다. 

그 탓에 한동안 찍혀서 고생했는데 벽돌 굼벵이들이 생긴 모양이 다 비슷비슷해 좀비 감독관들이 날 괴롭히려 찾는 일 자체가 어려워 다행이었다.

멍청한 것들.

현재 내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곧 폐기될 운명이었다. 몸에 석회질이 차올라, 지방 덩어리 같던 몸이 뻣뻣해져 갔다. 움직임은 당연히 둔해졌고 벽돌은 만드는 일도 힘겨웠다. 근래에는 동료들이 내 주위에 오질 않았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이리라.

괜히 죽어가는 놈과 같이 있어서 좋을 일이 없다. 좀비 감독관들은 죽어가는 벽돌 굼벵이를 미래의 일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매우 싫어한다. 얼마 전에 거의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벽돌 굼벵이를 좀비 감독관이 그 자리에서 부숴버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다만, 그렇게 방치해 둘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달구지에 부서진 몸을 실어 어딘가로 가져갔다. 그 때문에 폐기되는 벽돌 굼벵이가 모처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짜증나는구먼.

내게서 멀어지려 노력하는 벽돌 굼벵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그들과 동료애가 있는 건 아니다. 같은 벽돌 굼벵이일 뿐으로 우리는 지성이 없고,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나처럼 지성을 가진 경우는 극히 예외로 이 거대한 지하세계에서도 같은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터다.

……제길, 죽기 싫다.

처음에는 체념도 했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노역 속에서 오히려 삶을 향한 의지는 강인해졌다. 비록 오토 경처럼 자신이 처한 모든 난관을 돌파하지는 못하겠지만, 비슷하게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 처지가 된 이후 지구에서 권태롭게 살아온 점도 후회가 되었다. 돌아보니 그 시절에는 감사를 모르고 지냈다. 내가 먹던 것들, 입던 것들, 포근한 집, 그 모든 것들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호사이자 사치였다.

아니, 단순 의식주 문제가 아니다.

그때는 자유가 있었다.

가능성이 있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노예로서 억압받지 않았다.

그런 훌륭한, 감사해야 할 처지에 있었으면서도 소중함을 몰랐던 자신이 어리석다 생각됐다.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언제나 후회를 할 땐 이미 늦는 법인 듯했다. 

그러나 회한만 가득한 굼벵이 몸이 되었어도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암울하고 무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었다. 

실로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인간으로서, 인간이 아닌 존재와 만나볼 수 있다니.

누가 이런 경험을 할까. 어느 우주 과학자가 그랬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족하고만 소통하며 살아가기에 그렇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뼛속 깊이 동감한다.

SF 영화나 판타지 소설에 보면 수없이 많은 다채로운 종족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 이방인들은 인류에게 심대한 위협이기도 하고, 사랑이나 우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모습이 다양한 색유리로 장식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근사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동경하던 체험을 해볼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긴 싫었다.

한데도 방법이 없다.

내 머리는 나쁜 편은 아니다.

오히려 평균보다는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난국을 극복할 지략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이 상황은 제갈공명이 살아와도 마땅한 수가 없지 않을까?

완벽히 통제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다. 마치 작은 수조 안에 들어간 뚱뚱한 금붕어 같은 모습이다. 산소 공급기는 고장이 나 죽음만 기다리는 상황에, 설령 수면을 튀어 오른다고 해도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혜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민스럽다. 모처럼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역시 후회하면 늦은 건가?



***


한 달 뒤. 

나는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내 인생.

아니, 벽돌 굼벵이의 삶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이동했다. 원래 세상에 있을 때 이런 식의 이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버스 카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했다. 

지금 나는 달구지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달구지에는 비슷한 처지의, 석회 동굴을 뚫느라 석회질을 너무 먹어 나무토막처럼 굳어진 벽돌 굼벵이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이 달구지는 거대한 거미가 끌고 가는 중이었다. 

아직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이 지하세계에서 거대 거미는 무척 유용한 생물로 보였다. 특히 벽면이나 천장을 오르기 위해서는 도마뱀이나 거미 같은 탈것이 필수였다. 아니면 선천적으로 등반 능력이 있던가. 모르긴 몰라도 저 높은 공동의 위쪽에 붙어사는 존재들도 있으리라.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이나 천장이 좋은 피난처일 테니까.

아무튼, 나는 그런 이유로 모처럼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옆에 섹시한 미녀 대신에 기괴하게 굳어 있는 벽돌 굼벵이 투성이란 점이었지만.

그렇다고 뭐라 말하기도 힘든 게, 내 꼴 역시 눈물만 흐를 정도로 불쌍했다. 아까부터 입에서는 못 들어줄 신음을 조금씩 흘려내는 중이다.

이대로 끝인가.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옛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우리를 태운 달구지는 곧 높은 절벽 쪽에 멈췄다.

아래로 던지려고 하나 보다.

이곳은 아마 쓰레기장인 것 같았다.

문제는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즉사라는 점이다.

구질구질하게 쓰레기장 밑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좋긴 한데 말이야.

지금 나와 동료들의 육체는 석회질로 인해 무척 딱딱해져 있는 상태다. 낙하의 충격을 견뎌낼 리가 없다.

나오지도 않는 한숨을 내며, 눈을 감아보려 했다. 물론 눈꺼풀 같은 건 없다. 이것 때문에 그동안 잠 잘 때 얼마나 불편하고 안정이 안 되던지. 뜬 눈으로 동굴에 웅크려 있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자, 이 녀석들 다 던져 버려! 후딱 치우고 가자고!”

달구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비 감독관 녀석들이 그대로 우리 모두를 절벽 아래로 부어 버리려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굳은 몸에도 불구하고 가늘게 떨어댔다.

아, 이들 역시 감정이 있었구나!

그간 뭔가를 어필하는 걸 보지 못해 같은 벽돌 굼벵이면서 이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고 뭔가 올라왔다.

제길! 결국 어쩌지도 못 하고 끝나는구나. 

이대로 죽긴 원통하지만 벽돌 굼벵이랑 좀비를 구경한 것에 만족하도록 하자. 몇 개월 동안 고생도 심했으니 이제 눈을 감아도 좋겠지.

마음을 비운 그 순간, 시커멓고 깊은 절벽 아래로 동료들과 떨어졌다.

“끼이이엑!”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며 낙하했다. 상당히 높은 곳이었던지라 몇 초 뒤면 내 몸은 산산조각나리라. 

인생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안녕――

안녕, 보잘 것 없던 내 인생아.

….

…….

퍼억!

그리고 나는 거대한 똥 덩어리 위에 안착해 목숨을 부지했다.

아니, 대체 이게 뭐야.

내 인생은 정말 어디까지 꼬이려는 거지?

그리고 누가 이렇게 거대한 똥을 싸는 거야!

냄새도 지독해.

으아아악! 입에 들어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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