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유키 시리즈 레이편

マリみて 祐麒シリーズ


원작 |

역자 | 淸風

바람 속의 액트리스 전편


 약속 장소에 도착한 건 약속시간 10분 전이었지만, 유키 군도 이미 와 있었다. 나는 유키 군의 모습을 보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옆까지 다가갔다.
“미안해, 기다렸어?”
“아뇨, 저도 지금 온 참이니까요.”
“………….”
“에, 무슨 일 있나요?”
“으으응, 아, 아무것도 아냐.”
 곤란해, 곤란해.
 급작스레 전형적인 데이트 대화같은 걸 해 버렸다는 생각이 쓸데없이 들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일단 떨쳐내고, 열심히 웃는다.
“에에, 오늘은 권해 줘서 정말 고마워.”
“저야 말로, 와 주셔서 감사해요.”
“응. 에―, 아―, 그, 그럼 갈까?”
 어째설까. 저번 축제 때처럼 자연스레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역시 의식하고 있는 걸까.
“아, 잠, 잠깐 기다려 주세요.”
 가방을 고쳐매곤 걸음을 옮기려던 참에 유키 군이 불러세웠다. 무슨 일일까 싶어 뒤를 돌아보니, 유키 군은 이쪽에 등을 돌린 채로 뭔가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아뇨, 저기, 아―. 하세쿠라 씨, 스타일 좋고 멋지지요. 그, 깨끗한 흰색도 하세쿠라 씨에게 굉장히 잘 어울려서…….”
“에? 아, 고마……워…….”
 왠지 둘 다 말꼬리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되어 버렸다. 유키 군이 열심히 나를 배려해서 옷을 칭찬해 주려는 건 알겠지만, 말하는 유키군도 그걸 들은 나도 서로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마지막까지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던 거다.
 조금 미묘한 분위기였지만.
“그럼, 갈까요?”
“그렇, 네.”
 간신히 둘의 데이트는 시작된 거였다.


 유키 군이 제비로 뽑은 영화는 여름에 공개되기 전엔 꽤 화제가 되었던 유명한 영화였다. 그런 영화 티켓을 축제의 황폐한 제비뽑기 가게가 잘도 경품으로 삼았다 싶지만, 조사해 보니 그 영화는 흥행에 크게 실패해서 동원 수도 당초 예상의 절반조차 이르지 못했다는 모양이라든가. 그러니 분명 우수리로 남은 티켓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1800엔의 가치가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관에 들어가자 정말 사람의 모습은 드물었다. 스크린이 큰 극장인 만큼, 그 부족한 사람 수가 처량한 느낌을 웅변하고 있다.
 나와 유키 군은 비어 있는 걸 구실로 제일 괜찮아 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진을 쳤다. 시간도 딱 좋아서, 앉자마자 예고편이 시작됐다.
 영화 자체는 대작 러브스토리라는 모양이었지만, 히로인의 성격이 나쁘거나 주인공의 심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거나 무의미하게 수수께끼같은 스토리로 짜여 있는 등, 중간까지 봐도 확실히 영화로선 낙제점이라 흥행수입이 오르지 않는 것도 이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중반부터 후반을 향할 때는 볼만한 장면이 여럿 나온다.
‘왓………….’
 스크린 안에서 나눈 입맞춤, 키스 신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혀 버린다. 연애물을 좋아하고 영화만이 아니라 소설이나 만화에도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유키 군이 있는 탓일까. 묘하게 부끄럽다. 요시노랑 같이 보러 올 때는 그렇게 의식하진 않는데.
 영화도 그런 장면에는 힘이 들어간 모양이라, 좁은 좌석에서 나는 꽤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주인공과 히로인의 끈적끈적한 장면, 요는 베드신이 시작됐다.
‘우왓…………에, 와, 왓, 진짜?! ………….’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 입을 막는다. 그만큼 보고 있는 장면은 격렬하고 선정적이라, 나는 마침내 무심코 유키 군 쪽에 눈길을 옮겨 버렸다. 그런데 유키 군도 역시 동시에 내게 슬쩍 눈길을 향한 순간이라, 눈길이 딱 마주쳐 버렸다.
‘……에에!!’
 허둥지둥 고개를 앞쪽으로 움직이자, 다시 펼쳐지는 베드신. 그렇다고 해서 다시 눈길을 돌릴 수도 없어서, 나는 상기된 얼굴을 계속 스크린에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꾸물거리는 유키 군도 나와 같은 상태에 빠진 게 틀림 없다. 지금 조명을 켰다간 분명 우리 둘은 얼굴이 새빨갛겠지.

 에어컨이 충분히 센 영화관 안인데, 순식간에 더워진다.

 결국 그 뒤로 클라이맥스까지 영화의 내용은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영이 끝난 뒤 볼일도 마치고, 유키 군과 다시 합류한다.
“항간에선 꽤 혹평받고 있는 모양인데, 의외로 즐거웠어.”
“그렇, 네요.”
“그래도 꼽아 말하자면 진지하게 하고 있는 개그 같은 느낌으로 재밌었던 거지만.”
“아하하, 그거 칭찬이 아니잖아요.”
 웃는 유키군을 보고 안도한다. 영화 종반에 묘하게 의식해 버린 뒤로 불안했었지만, 나도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유키 군도 거의 자연스런 느낌으로 접해주고 있다. 딱 그 축제 밤 같은 느낌으로.
 그런 느낌으로 방금 본 영화 내용을 이야깃거리로 삼으며 영화관을 나섰다.
“이 뒤로 어떡할까?”
“에에, 이 뒤에는.”
 하고 유키 군이 말을 걸려 했을 때?
“실례합니다―.”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눈길을 돌려보자 젊은 여성 둘이 싱글벙글한 미소로 다가왔다. 연령적으론 비슷하려나. 안 사람은 다갈색 머리카락을 스트레이트로 뻗은 가냘픈 여자애. 다른 하나는 붉은기 도는 머리카락을 스카프로 묶고 있는 여자애. 둘 다 스타일도 좋고 화려해서, 요즘 여자애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누굴까. 이런 자림인데 사실은 릴리안생인 걸까. 그렇다고 해도,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유키 군의 모습을 바라봐도,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기, 두 명인가요?”
“예, 뭐어.”
 급작스런 물음에 저도 모르게 수긍한다.
“저희도 둘인데, 한가하다면 어디 같이 놀러 가지 않을래요―?”
“응 응. 모처럼 여름방학인데, 서로 남자끼리, 여자끼리면 쓸쓸하잖아요―.”
 우와, 그랬나.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요는 이건, 역 헌팅이다.
“그쪽 분은 혹시나 모델같은 건가요? 무진장 멋진데―.”
“나는 네가 귀여워서 좋은데~.”
 눈앞의 여자 둘은 당당히 나와 유키 군을 품평하고 있다. 일단 칭찬하고 있는 거겠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유키 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에에, 미안. 오늘은 둘이서 약속이니까.”
“에―, 별로 상관 없잖아요~. 즐거운 곳 알고 있어요~.”
 여자애는 가슴 계곡이나 보디라인을 강조하며 다가오지만, 여자인 내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으, 유키 군도 참, 어디에 눈길을 향하고 있는 걸까. 나랑 함께 있는데.
“어쨌든, 함께 갈 생각은 없으니까. 미안하지만 다른 곳을 찾아줘.”
“엣―, 뭐야, 쫌생이―!”
 무시하고 확확 나아간다. 유키 군도 허둥지둥 따라온다.
 뒤쪽에서,
“뭐야, 조금 멋있다고 해서.”
“아니, 저건 조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나 저 둘, 탐미? BL?”
 같은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
“―――아아, 깜짝 놀랐네. 지금 거 뭐였으려나요.”
 여자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유키 군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역 헌팅이잖아? 아무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만. 요시노랑 같이 있으면 커플로 착각되는 건 흔히 있었지만.”
 확실히 오늘도 팬츠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남자애는 이런 차림은 안 하지 않을까. 거기에 주의 깊게 발밑을 바라보면, 신고 있는 건 분명히 여자용 샌들이고.
“그, 그런 거였나요?”
“응, 봐 그, 겉모습이 겉모습인 만큼, 남자로 착각 당한 거야. 정말, 어쩔 수 없으려나.”
“음―…….”
 솔직히 그쪽이 사정이 좋을 때도 많고. 이상한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고, 요시노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안 나오고.
“자, 그보다 앞으로는 어떡할까?”
“아, 예. 에에, 괜찮으시다면 점심 드실래요?”
 시계를 바라보자, 점심 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응, 그렇네.”
“하세쿠라 씨, 드시고 싶은 것 같은 것 있나요? 어디 가고싶은 곳이라거나.”
“아―, 있다고 하면 있으, 려나.”
“?”
 유키 군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어깨에 걸고 있던 가방을 고쳐들곤, 들어 보였다.
“에에……도시락, 만들어 ​왔​는​데​…​…​괜​찮​다​면​,​ 먹지 않을래?”


 나와 유키 군은 조금 걸어 공원으로 옮겨갔다. 지금 시기에 공원 같은 데서 식사를 하면 더워서 힘들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큰 나무 그늘 아래엔 강렬한 태양 빛도 직접 닿지 않고, 또 오늘은 적당히 바람도 불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면에 집에서 가져온 시트를 펼치고 그 위에 앉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분수에서 물장난을 하거나, 아이들이 더위에도 지지 않고 건강하게 공놀이를 하거나 해서 마음이 풀어진다.
 온화한 광경을 뒤로 하고 시트 위에 만들어둔 점심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오늘 만들어서 가져온 도시락은 별로 특별한 게 아니다. 주먹밥의 속은 매실 장아찌, 가다랑어 포, 다시마 등이고, 김은 따로 먹을 때 감는 걸로 했다. 반찬은 강낭콩과 당근이 든 돼지고기 롤, 파가 들어간 계란말이, 썬 무 볶음, 밴댕이 조림, 미니토마토, 그리고 남은 당근과 가다랑어 샐러드. 이 시기엔 식재도 상하기 쉬워서, 보온이 되는 도시락통에 넣어 가져왔다. 집을 나온 뒤로 그리 시간이 지나기 전에 에어컨이 있는 영화관에 들어갔으니 괜찮다곤 생각하지만.
 남은 건, 물통에 넣어둔 차가운 차.
“자……어라?”
 바라보자, 유키 군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이거, 전부 하세쿠라 씨가 만든 건가요?”
“응, 그래.”
“대, 대단하잖아요!”
“익숙해지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거기에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자, 그보다 빨리 먹어 버리자.”
 솔직히 나도 꽤 배가 고프고.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같이 식사를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유키 군의 반응이 신경쓰이다 보니 주먹밥을 먹으면서도 슬쩍슬쩍 모습을 살펴 버린다. 자신의 요리를 남에게 대접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남자에게는 처음일지도 모른다. 밸런타인 때 도장 애들에게 과자를 준 거랑은 다르고.
“에에, 어떠려나? 입에 맞으면 좋겠는데.”
 안되겠다. 결국 버틸 수 없어서, 스스로 먼저 물어 버렸다.
“저기, 굉장히 맛있어요. 정말로. 이것도 먹어도 괜찮나요?”
“물론. 아아, 다행이다. 자, 맛있게 먹어줘.”
 역시 자기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면 굉장히 기쁘다. 나는 웃으며 추가로 반찬을 내밀었다.
 남자애여서기도 하겠지. 유키 군은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잘 먹어 주었다. 만든 입장에선 이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정도의 모습이라, 이야기도 무심코 내 요리 이야기만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유키 군은 제대로 대답해 주었다.
 잔뜩 만들었다고 생각한 도시락도 거의 다 빌 즈음, 나는 배가 가득 차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야, 맛있었어요. 이렇게 맜있는 도시락을 먹은 거, 처음이에요.”
“과장이야. 그래도, 즐겨준 모양이라 다행이야.”
“정말이라니까요. 정말, 하세쿠라 씨가 매일 저를 위해서 밥을 만들어 줬으면 싶을 정도예요.”
“아하하, 괜찮아, 그 정도는.”
“그러면 매일 식사가 즐거울 텐데~.”
“――――.”
 어라.
 왠지 둘이 시원스레 흘려 버린 것 같지만.
 지금 굉장히 부끄러운 소리를 말하지 않았었나. 그건 프로포즈같을 때 말할 것 같은 말이고, 게다가 나는 그걸 자연스레 받아들여 버려서.
​“​―​―​―​―​―​―​에​?​!​”​
 갑자기 수치심이 솟구쳐 오른다. 아니, 유키 군은 그런 생각으로 말한 게 아닐 거고, 나도 의식해서 대답한 건 아니다. 하지만 침착히 생각해 보면,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서로 나눈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마 똑같은 걸 떠올린 모양인지, 유키군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얼버무리듯 마지막 미니토마토를 먹으려고 손을 뻗고―――
“앗.”
 서두른 건지 손이 미끄러진 건지, 미니토마토는 유키 군의 손에서 떨어져 허공을 춤췄다.
“아차.”
 유키 군은 허둥지둥 손을 뻗어 미니토마토를 잡으려 했다.
“앗.”
“꺄악?!”
 어떻게든 잡았다 싶었지만, 미니토마토는 내 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고, 유키 군이 잡은 순간 힘을 너무 넣은 건지 미니토마토는 멋지게 유키 군의 손가락에 으깨져 멋지게 흩날렸다. 주로 내 쪽으로.
“아, 아아, 죄송해요!”
“아, 잠, 잠깐 기다려.”
 멈추려 했지만 늦어 버렸다. 동요한 유키 군은 내 옷에 흩날린 미니토마토의 잔해를 손수건으로 ​닦​으​려​다​―​―​결​과​적​으​로​ 피해를 넓혀 버렸다.
“죄죄죄, 죄송해요.”
“괜찮아, 그보다 봐, 유키 군의 손도 닦아야지.”
 나는 유키 군의 손을 잡고, 붙어버린 미니토마토를 닦아 주었다.
“죄송해요…….”
 다시금 유키 군은 사과했다.
 나는 웃으며 유키 군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하얀 옷인 만큼 더러운 부분이 눈에 잘 띄었다. 더러움 만이라면 몰라도, 냄새도 신경 쓰인다.
 하지만 여름인 만큼 이걸 벗을 수도 없다. 얇게 입었으니까.
 그런데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자,
“하, 하세쿠라 씨!”
“예?”
 갑자기 유키 군이 벌떡 일어났다.
“저기, 옷, 사러 가죠!”
“…………에?”
 기합을 담아 말을 꺼낸 유키 군을,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올려다 봤다.


중편에 계속


~추신~
 데이트편 시작입니닷. 이 둘이라면 어떤 데이트가 될지 고민했지만 멋진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분명 왕도노선으로 가겠지 싶어서.
 그래도, 역 헌팅 같은 게 있겠냐?! 나무 그늘이라도 덥겠지! 아니, 찌잖아!
 ……등등 내용적으론 조금 억지스런 부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걸로 가기로 했어요……!!

 ​타​이​틀​은​…​…​마​리​미​테​ 최신간? 새콤오렌?

역자의 말:
 평안하세요, 淸風입니다.
 보통 마리미테 그림이 순정풍으로 그려져서 잘 인식이 안될 때가 많지만, 레이님이 얼굴만 놓고 보면 정말 미소년처럼 생기긴 했죠. 이 작가분께서도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역 헌팅은 ㅜㅜ. 
 그럼, 다음 화에 뵙겠습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