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은 후편
식사도 선물도 정말로 기뻐해 준 것 같아서 유키는 만족하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절약을 해왔고, 부모님의 심부름도 했고, 저금도 깼지만,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옆을 레이가 걷고 있다.
유키의 목에는 레이에게서 받은 머플러가 감겨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답받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정말 고마워. 멋진 크리스마스야.”
“아니에요, 저야 말로.”
그건 꾸밈없는 마음.
레이가 오늘 권유에 응해 준 것이야 말로 유키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함께 보내 주는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저기, 유키 군.”
“네.”
들뜬 유키에게, 약간 말투를 바꾼 레이의 말이 날아왔다.
“오늘 나……제대로 여자애처럼 보였……으려나?”
가슴팍까지 늘어뜨린 붙임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조금 불안한 듯 눈동자가 떨리는 레이.
그 말을, 어조를 듣고, 그 표정을 눈으로 보고, 유키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 레이의 모습은 물론 크리스마스 데이트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의식한 거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저번 데이트 때 있었던 일을 질질 끌고 있는 거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저도 모르게 상황이 떠오른다.
마치 남자같은 외모의 자신과 함께 있어서 유키에게 면목 없다든가, 유키가 부끄러운 경험을 하게 하진 않았겠지 등, 홀로 고민하고 있는 레이의 모습이.
레이는 레이를 위해 치장한 것만이 아니라, 유키를 위해서 변신해 온 거다. 그리고 유키를 위해서라곤 해도, 유키에게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라기 보단, 유키와 함께 있어서 부자연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분명 강할 거다.
유키는 레이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고, 그런데 신경을 쓰게 해 버린 자기 자신이 한심했다.
유키가 18년이라는 세월동안 레이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레이는 틀림없이 사랑스러운 여자애라는 자신을 가져줬으면 했다.
그도 그럴게 유키는 ‘미스터 릴리안’이나 ’멋있는 여자“가 아니라, ‘사랑스런 여자’로서 레이에게 끌린 거니까.
“아하하, 이상한 소리 해 버려서 미안해.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잊어 줘.”
대답을 하지 못한 유키를 보곤, 허둥지둥 농담인 듯 얼버무리려 하는 레이.
세련된 말 한 마디 하지 못해, 분한 기분이다.
“저기, 하세쿠라 씨.”
“아, 맞아.”
말하려던 유키의 말을, 레이가 막는다.
빙글 몸을 돌려 유키와 마주본다.
“한 가지, 부탁이라고 할까, 주문이 있는데.”
“예, 어떤 건가요?”
드문 일이었다. 레이 쪽에서 유키에게 뭔가 부탁해 오다니.
무슨 일일까 싶어 마음 준비를 하고 있자,
“……부르는 법.”
“……네?”
“그러니까, 내 호칭. 왜, 계속 ‘하세쿠라 씨’인건가 싶어서.”
“에, 에에에, 예?”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의 화제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유키. 그런 유키를 보고, 레이는 조금 불만스러운 것 같았다.
“그, 그치만, 요시노나 시마코는 이름으로 부르잖아. ‘요시노 양’, ‘시마코 양’이라고. 그런데 나만 계속 ‘하세쿠라 씨’니까.”
“그, 그래도, 그건.”
요시노와 시마코는 유미의 친구고, 유키와는 같은 학년인데, 그에 반해 레이는 상급생이고, 하지만 그런 이유를 입에 담아도 레이는 납득 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유키 군’이라고 부르고 있고.”
삐친 듯 입을 빼죽이는 레이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이렇게나 사랑스런 표정,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걸 레이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게 유키에겐 정말 분한 일이었다.
“그, 그럼, 하세쿠……에에, 뭐라고 부르면 괜찮을까요?”
“엣?”
왠지 의표를 찔린 듯이, 놀란 표정을 짓는 레이.
“그러니까, 하세쿠라 씨가 아니면, 뭐라고.”
“에, 에에, 그건…….”
허둥지둥한다 싶었더니, 조급히 손끝을 맞대고 머뭇머뭇거리곤.
그리고, 꺼낸 대답은.
“그, 그럼……레, ‘레이 쨩’, 이라거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얼굴이 빨개지는 레이.
역시 유키도, 이건 부끄럽다 싶었지만.
“저기, 그럼 저도 한 가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에, 뭐, 뭐야?”
자신이 낸 소리에 동요한 채로, 레이는 안절부절못하며 유키를 바라본다.
유키는 겨울의 조용한 공기를 삼키며, 천천히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 붙임머리를 떼 봐 주실 수 있나요?”
“에? ……그래도.”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만지는 레이.
“저기,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 붙임멀이도 정말 어울리고 예뻐요. 붙임머리도 패션의 일부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그, 붙임머리를 안 붙인 순수한……지금의 모습을 보고 싶어졌어요. 그도 그럴게, 베리 숏컷이든 뭐든 당신 자신은 바뀌지 않고, 베리 숏컷인 당신을 보고, 저는 그, 저기, 저거니까요.”
“……저거?”
“어, 어, 어쨌든,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당신을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라고, 무언으로 잇는다.
유키의 말을 듣고, 레이는 한동안 고민했지만, 이윽고 천천히 머리에 손을 댔다.
“자, 잠시 눈을 감아 줄래? 붙임머리 하고 있었으니까,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을테니까.”
레이의 요청에 따라 몸을 돌린다.
등 뒤에선 레이가 붙임머리를 떼고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는 걸까.
레스토랑에서 나온 뒤 조금 산책하듯 걷고 있어서, 어느새 자그만 개울이 흐르는 두렁까지 나와 있었다.
이런 추운 날에 일부러 여기까지 발을 옮길만큼 이상한 사람은 없는 건지, 주위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토한 흰숨과, 검게 빛나는 수면을 바라보면 기다리길 한동안.
“……괜찮아.”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상하지, 않으려나? 역시……부끄러운데.”
짧은 머리카락에 손을 대면서, 수줍은 듯 유키를 바라보는 레이.
베리 숏컷인 머리는, 긴 붙임머리의 끝에 맞췄던 탓인지 확실히 조금 흐트러젼 있지만 결코 부자연스럽진 않았다. 거꾸로, 흐트러진 느낌이 좋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둠에 감싸인 겨울철 거리를 배경으로 선 레이는 어떻게 봐도 여자의 모습이었다. 누구도 불만을 토하지 못할 거고, 설령 누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도 다물게 만들 거다.
“굉장히, 사랑스러워요.”
“………….”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레이.
그래서 유키는 말을 이었다.
“에에……레레, 레, 레이……쨩.”
처음으로 입에 담은 이름은, 크리스마스의 어둠에 녹아들듯 스며들어 갔다.
☆
뭐라고 부르면 좋겠냐는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레이 쨩’같은 걸 입에 담아 버린 건 요시노가 부르는 호칭이었으니까.
붙임머리를 떼고, 허전해진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레이는 옆에서 걷는 유키에게 슬쩍 눈길을 향했다. 그러자 마침 같은 타이밍에 역시 고개를 돌리던 유키와 눈이 마주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걷는 중에 서서히 역에 가까워져, 오가는 사람의 수도 늘어간다. 밤이 되어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아, 어쩐지 신나게 느껴진다.
시계를 보자 곧 저녁 9시를 지나려 하는 참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진 아니지만, 이른 시간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데이트 중에 이렇게 늦어진 적은 없었다.
역을 향하는 중인 것도 있어, 즐거웠던 데이트도 이것도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쓸쓸해 진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는 중에, 갑자기 유키가 일어났다.
“저기, 레, 레, 레, 레이 쨩.”
“왜, 왜?”
부르는 쪽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듣는 쪽도 익숙해지지 않아 서로 어색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바라보고 있자,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유키의 손이 움직이고 뭔가가 덜그럭 덜그럭 맞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들은 순간, 레이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머릿속으로는 미용원에서 유이와 츠무기에게 들은 말을 떠올려 재생하고 있었다.
“――어떡할거야? 밤이 되면 그이가 갑자기 호텔 열쇠를 꺼내서, ‘사실은 방을 잡아 뒀는데요.’같은 말을 한다면?!”
“서, 설마요. 그도 그럴게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저희들.”
“아니, 모른다니까. 요즘 고등학생은. 거기에 남친, 하나데라 애잖아? 알고 있어, 나. 거기, 부잣집 아드님들 학교잖아.”
“그래도, 유키 군은 평범한데요.”
“크리스마스니까 분발해 줄지도 모르잖아.”
“맞아 맞아. 그리고, 여러 가지로 시뮬레이션을 해 둬야 여차했을 때 곤란하지 않다고―.”
“혹시, 그런 흐름이 되면 어떡할래, 어떡할래애?”
“거절할 리 없잖아, 승부속옷도 제대로 입고 온 걸, 그치?”
“아아, 아하하…….”
설마 싶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었지만, 설마 정말 그런 상황이 있는 걸까. 그래도, 역 근처라 건물도 늘었고, 유키의 뒤에 눈을 향하자 유명한 호텔이 치솟아 있는게 눈에 들어와, 레이를 두근거리게 한다.
어떡할까, 하지만 여기서 권유를 받았다간 레이로서도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확실히 속옷은 제대로 골라 왔고, 몸도 아름답게 해 뒀다곤 생각하지만, 역시 아직 조금 이른 건 아닐까. 아니,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성경험이 있는 애도 많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되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애초에, 유키하곤――
“저기, 이걸.”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유키는 주머니 안에서 손을 꺼내, 그걸 레이를 향해 건네왔다.
“예, 예! 나나나나, 나, 지, 집에 전화 해야!”
“크리스마스 선물과는 별도로, 받아줬으면 싶은게……전화?”
“그, 그리고 맞아, 사치코에게……어라?”
눈앞에 놓인 유키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는 건, 물색의 자그만 파우치였다. 안에 뭔가가 들어가 있는 모양인지, 모양은 비뚤어져 있다.
파우치와 유키의 얼굴을 번갈아 여러번 바라본 뒤, 조심조심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집고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살피자, 거기엔 푸르고 자그만 돌이 있었다.
둥그런 모양의 것과, 육각형의 것, 두 개.
“수험의, 부적이 됐으면 하고 생각해서.”
그건 라피스라줄리였다. 불교의 칠보 중 하나로 취급되는 유리기도 하며 뇌의 움직임을 활성화 시키고 지혜와 지성을 늘리며, 통찰력이나 직관력을 복둗는다고 하여 수험 부적으로도 자주 보인다.
아까 들었던 소리는 파우치 안에서 돌 두 개가 서로 맞닿는 소리였다는 걸 이해하곤, 터무니없는 지레짐작을 했다는 걸 느끼고 온몸이 끓어오르듯이 뜨거워진다.
“에에, 그리고, 전화라뇨? 그리고, 사치코 씨가 어떻다든가…….”
“모, 모, 몰라! 유키 군 바보!”
얼굴을 보일 수 없어서 몸을 돌리고 걷는다. 유키가 허둥지둥 쫓아오지만, 알까보냐. 어쨌든지 유키가 나쁜 거다.
그래, 그치만 유키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은 거니까.
과연 둘은 어떤 관계인 걸까. 적어도 애인사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혼자서 지레짐작해선 안되는 거다. 들떠있을 상황은 아닌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데이트를 여러번 해 온 것도 사실이고, 더군다나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지금까지랑 다른 데이트라는 건 유키 자신이 증명하고 있다.
영화관에서 커플 시트를 예약했고, 레스토랑에선 크리스마스 디너를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제대로 준비해 줬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 입에 담아주지 않는다.
그야, 레이도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하세쿠라 씨!”
쫓아온 유키에게 팔을 세게 붙잡혀 붙들린다.
떨쳐낼 수도 없어, 멈춰서서 뒤로 돌아 말없이 바라보자,
“아……그, 미, 미안. 레, 레이 쨩.”
착각한 건지, 이름으로 고쳐 불렀다. 덕분에 레이의 독기도 빠져, 동시에 부끄러워진다. 이름을 부르거나 불리거나 할 때마다 이래서야, 어쩔 도리도 없다.
“무슨, 일이니.”
마음을 새로이 하고 입을 연다.
유키는 진지한 눈으로 레이를 올려다보고 있다.
“수험……수험이 끝나면, 다시, 만나 주세요.”
“수험이 끝나면?”
“네. 그렇게 되면, 전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전하고 싶은, 것……?”
한 순간, 가슴이 죄여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키는 끄덕인다.
“지금은, 안되는 거니?”
“혹시나, 레레, 레이 쨩을 혼란에 빠트려 버릴지도 모르니까. 소중한 수험에 영향을 주고 싯지 않아서, 거기에 저도.”
“유키 군도……뭐가?”
“미, 미안해요, 사실은 여러모로 생각해 왔는데, 지금 조금, 잘 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이런 상태라, 좀 죄송해요 제 사정 뿐이라. 그래도, 그래도 다음에는 반드시 전할 수 있을 테니까.”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나 추운데도 아스라이 땀까지 맺힌 채로, 유키는 횡설수설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까놓고 말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고 의미 불명이지만, 그런데도 레이는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레이와 유키는 닮은 거다.
자신의 마음을 서로 잘 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딘지 전해져 오는게 있고,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레이는 웃어 보였다.
“알았어, 유키 군. 괜찮아, 나, 기다릴게, 언제까지든지. 나, 이래 봬도 겁쟁이고 비겁한 여자니까, 아마, 기다릴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제대로 내게 전하러 와 줘. 유키 군이, 내게 전하고 싶은 걸.”
정말로, 비겁한 여자다.
유키 군이 전하고자 하는 건 상상이 가고, 분명 틀리지 않았을 거다. 레이 자신의 마음도 알고 있다. 그보다, 아무 생각도 없이 몇 번이고 데이트에 응하진 않는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데이트에 응할 리도 없다. 유키는 그걸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레이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리기밖에 못하는 거다.
겁쟁이인 것도 틀림 없다. 하지만 동시에,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기다릴 수 있는 거다. 역시,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유키는.
“예, 예. 반드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대답한다.
미안해, 하고 마음 속으로 작게 혀를 내밀며 사과하는 레이.
하지만 실제로 입에 담은 말은 전혀 달랐다.
“유키 군, 슬슬 놓아 주지 않을래? 아무리 그래도, 조금 아픈데.”
아까 전부터 계속 잡혀 있던 팔에 눈을 향하며, 미간을 찌푸려 보인다.
죄송해요, 하고 사과하면서 허둥지둥 손을 떼는 유키를 보고 레이는.
그래도, 그렇게 간단히는 손을 놓지 말아 달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지었다.
“다녀왔습니다.”
유키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밤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중에 전화로 연락을 했으니까 부모님도 걱정은 하지 않으셨겠지만, 현관을 열자마자 바로 어머니가 마중나왔다.
“어서오렴, 빨랐네.”
“안 빨랐어, 이미 11시라고.”
손목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잘못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웃고 있다.
“그치만 나, 혹시나 오늘은 묵고 오는 걸지 고민하고 있었는 걸.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할까, 이래저래 고민해 뒀는데.”
“저기, 어머니, 그럴 리 없잖아.”
“그래?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사랑스런 차림이잖아. 집을 나설 때랑은 전혀 다른데?”
“아, 이, 이건!”
지적받고, 옷을 갈아입지 않았던 걸 깨달았다.
“화장까지 하곤, 게다가 그거, 프로가 한 메이크지? 어머머, 어머어머, 굉장히 기합이 들어 있구나―. 상대는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이지, 어땠어?”
“으, 으, 아, 아닌 걸.”
말을 더듬으며, 새빨개진 채로 부정한다고 해봐야 설득력은 전혀 없겠지. 신발을 벗고, 어머니의 옆을 지나 그대로 2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지만, 어머니도 뒤에서 따라온다.
그리고, 계단을 다 오른 참에 레이의 손을 잡았다.
“레이, 중요한 일이야, 제대로 말하렴. 제대로 피임도구는 썼어?”
“아……지, 지갑에 넣었어, 어머니”
“그이가 쓰기 싫다고 해도, 제대로 써야 해. 그리고…….”
“그, 그러니까, 그런 거 안 했으니까!”
“쉿―, 아버지 깨시겠어.”
검지손가락을 세우며, 손으로 입가를 누른다.
두 세 번 기침을 하곤, 일단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입을 연다.
“애초에 어머니, 왜 그……보통, 반대로 걱정 하는 거 아냐?”
“그건 아버지야. 거기에, 레이가 고른 상대니까 분명 괜찮을 거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연애를 하고, 몸을 겹치는 건 평범한 일이야. 단지, 몸을 다치거나, 잘못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싶어서.”
“그, 그러니까, 그그, 그런 거, 아, 안한다니까.”
“그건 그렇고, 너무 늦된 것도 걱정이네. 교제는 여름 부터였지?”
“이, 이제 됐으니까아.”
반쯤 억지로 어머니를 떼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피로감이 밀어닥쳐와서 다리 힘이 풀리면서 침대에 앉아, 그대로 힘 없이 쓰러져 버렸다.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이 되어 봐도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저도 모르게 베개를 감싸안고 “으~~”하고 신음소리를 내 버렸다.
“………….”
그대로 누워 있으면 잠들어 버릴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긁으며, 책상 위의 탁상 달력을 바라본다.
수험이 끝나는 건, 결과 발표까지 기다리면 2달 이상 남았다.
“……유키 군, 얼간이.”
소리를 내서 불만을 토해 본다.
수험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런 어중간한 상태인 것도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잖아. 어중간하게 기대하게 하곤.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서, 옷을 벗는다.
문득,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눈이 멈춘다.
옅게 한 메이크는 아직 남아 있다.
요염하게 윤기나는 입술은, 결국, 어디도 닿지 않았고.
“정말로 다음까지 기다리면, 괜찮아?”
책상 위를 구르는 파란 돌에게 물어봐도, 물런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약속대로 다음에 만날 때는 네클리스를 하고 가자.
그리고.
“――여, 역시 조금, 이 속옷은, 너, 너무 대담하지? 다, 다음에는 다른 걸로 하자…….”
거울에 비친 속옷차림의 자신을 침착히 바라보곤, 그렇게 생각한 거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