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색 선물
레이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아니, 잊었던 건 아니다. 기억하곤 있었지만, 잊어버린 걸로 쳐뒀던 것뿐이었다. 뭐가 소중한 거냐 하면, 오늘은 밸런타인 데이였다.
수험공부와 실제 시험으로 바빠서 요시노를 위한 초콜릿을 당일에 준비하지 못해, 대신에 교환권을 준비했으니, 밸런타인 그 자체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 하면.
“으으……유, 유키 군에겐, 어떡하지.”
한심한 소리를 내면서, 레이는 홀로 내심으로 우왕좌왕한다.
물론 건네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당일이 될 때 까지 망설이고 있는 건, 그저 저번 데이트때의 약속 때문이다.
‘수험이 끝나면, 만나줬으면 싶다.’
아니, 수험 자체는 끝났으니까 만나도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유키가 말한 건 그것만이 아니라.
‘다음에 만날 때, 전하고 싶은 게 있다.’
라는 말까지.
혹여, 오늘, 초콜릿을 건네기 위해 만났다간, 그 즉시 저번 크리스마스 데이트때부터 생각하고 ‘다음에 만난 순간’이 되는 거다.
‘전하고 싶은 것’이라는 건 뭔지 고민해 봤지만, 그건 역시 ‘고백’이지 않을까. 레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민한다. 유키에게 고백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진정되질 않고, 가슴 고동은 빨라지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릴리안에 다니면서 하급생 여자애들에게 고백받은 적은 있지만, 남자에게서 고백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혹시나 정말로 고백이라면, 게다가 그 상대가 유키라고 생각하면. 어떤 말을 들을지, 그리고 레이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멍해진다.
유키가 한 말의 의미가 고백이라 한다면, 밸런타인 초콜릿을 건네러 만나러 가는 건 레이 쪽에서 고백을 바라고 가는 꼴은 아닐까.
왜 그런 소리를 한 건지, 왜 그런 약속을 한 건지, 딜레마에 빠지며 레이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레이에게 불만을 토한다.
“정말, 왜 수험 끝날 때 까지의 사이에 밸런타인이 있는 걸, 생각 안한 거야!”
거기까지 머리가 도는 것도 좀 싫지만, 이렇게 주고 싶어도 주러 가지 못하는 상황도 답답하다.
“아, 그래도, 딱히 고백 방는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양 뺨을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숙인다.
홀로 멋대로 망상을 꽃피운 결과, 고백도 뭣도 아니라 단순히 다음 데이트의 신청이었거나 하면 무진장 부끄러울 거다. 아니, 그건 그것대로 기쁘겠지만, 멋대로 앞서간 자기 기분에 수치를 느끼겠지. 요시노에게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 그렇지, 그렇게 정해진 것도 아니고……아아 그래도, 혹시나 그게 맞다면 역시, 내 쪽에서 만나러 가는 건, 혼자 기쓰는 것 같이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레이는 홀로 고민의 루프에 빠져 버린 거였다.
고민에 잠긴 채로 릴리안을 뒤로한 레이는, 한 번 집에 돌아가 갈아입은 뒤 하나데라 학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손에 든 가방 안에는 물론 초콜릿이 들어 있다. 아무래도 시간도 그리 많이 들이지 못했기에, 예전에 만든 적 있는 초코 마들렌으로 했다. 이거라면 레시피도 기억하고 있으니, 만들 때 고민할 것도 없으니까. 코코아가 들어간 마들렌에 초콜릿을 데코레이션 한 거고, 부끄럽긴 하지만 역시 밸런타인이기에 하트 모양을 그리기도 했다.
하얀 숨을 내쉬며, 하나데라로 걸음을 옮긴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언제쯤 학교서 나올지도 모르고, 애초에 이미 돌아가 버렸을 가능성도 있으니,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불확정이다.
가령 있었다 해도, 만나면 좋은 건지조차도 아직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지만.
이윽고 하나데라 학원의 정문이 보일 즈음까지 나온 레이는, 놀라서 걸음을 멈춰 버렸다.
정문 앞에는 여자의 모습이 여럿 보였다. 릴리안 교복을 입은 애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학교 애도 있다. 공통적인 건 어느 여자도 조금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한 느낌으로 교문의 안쪽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
목적한 남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건 명확했다. 짝사랑인 건지, 사귀고 있는 상대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일년중 오늘이란 날을 정해 전하려 하고 있는 거다.
그런 광경을 보고, 레이의 발은 굳어 버렸다.
별로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레이는 황장미님이고, 릴리안에선 유명인이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왔다고 해서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다른 학생이 보고 있는 앞에서 초콜릿을 건네다니, 너무 부끄러워서 레이가 할 수 있을만한 일이 아니었다.
기세가 꺾여 돌아가려는 참에, 여자들에게서 움직임이 보였다.
여자 몇 명 정도가 거의 동시에 정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왜 그렇게 동시에 움직이지 싶어 의문을 품는다. 남자 쪽도 여럿이 같이 나온 건가, 아니면 어지간히 인기 있는 남학생이라도 목표로 했던 건가.
레이는 몸을 돌려 돌아가려 했었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이다 보니 뒤돌아 상황을 봐 봤지만.
“에……어라, 유, 유키 군?”
여자 여럿에게 둘러싸여 있는 남학생의 모습이 보였는데, 틀림없이 유키였다. 곤혹스런 표정으로 여자들을 보고 있지만, 순서대로 초콜릿을 건네는 여자들을 상대로 성실하게 받고선,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 멋쩍은 듯한, 수줍은 듯한, 그러면서도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레이는 망연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분노가 솟아오르고 계속 보고 있을 수 없게 되어 종종걸음으로 그 자리서 멀어진다.
‘……뭐, 뭐야, 저렇게 헤벌레 해가지고선!’
입을 빼죽이며, 내심 여러모로 불만을 토하며 계속 걷는다.
하지만 처음에는 기세 좋게 토해내던 불만도, 걸음 수가 늘어감에 따라 기세를 잃어, 시들어 가고, 오히려 불안의 폭이 커져간다.
유키는 하나데라의 학생회장이고, 릴리안 학원축제 연극에 출연해서 얼굴도 잘 알려져 있는데다 인기도 많다. 팬인 여자애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눈에 볼 때 까진 진심으로 믿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현실로서 목격하고 나니, 정말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들이밀어온 느낌이라 충격을 받고 있었다.
순식간에 자신이 사라져 간다.
이런, 남자 같고, 크고, 구구하게 고민하면서 스스로 행동도 별로 못하는 여자보다, 아까처럼 적극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여자 쪽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을까.
데이트를 했다곤 해도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안 했고, 명확한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고백 받은 것도 한 것도 아니다.
“……뭐야, 아무것도, 안 했구나…….”
중얼이곤 하늘을 올려본다.
불만을 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거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 만족하고 있던 건 레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유키를 탓하거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거다. “아―, 나도 참, 얼간이구나아.”
요즘 요시노에게 자주 듣는 소리다. 그건 요시노에 대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가지고 하는 소리였지만, 요시노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도 한심해, 터벅터벅 걷는 중에 낯익은 곳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릴리한 여대의 부지 안이었다.
2월도 중순이어서 이미 방학에 들어간 건지, 학생 수는 적고 사복인 레이가 걷고 있는 모습에 눈길을 멈추는 사람도 없었다.
레이는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던 벤치에 걸터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찔러, 저도 모르게 몸을 끌어안듯 움츠린다.
자신은 앞으로 어떡할지, 뭘 할지,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건지,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건지,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믿을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하지도 세상을 모르지도 않았다.
“아―……언제까지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건 난데…….”
여기는 순정 만화의 세계는 아닌 거다.
기다리고 있으면 바라던 왕자님이 나타나, 모셔가 주거나 하는 일은 없다. 더군다나, 왕자님보다도 큰 공주님이라니.
정말 이대로 돌아가 버릴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홀로 한심하게 우수에 젖으며, 대학 구내를 걸어다니는 학생들을 생각없이 바라보는 중에 문득 낯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와, 눈을 깜빡인다.
“어라, 유미 쨩?”
자그맣게 소리를 낸다.
교사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릴리안 교복에다 친숙한 트윈테일을 한 유미가 분명했다.
거리도 떨어져 있었으니 레이의 소리가 들린 건 아니겠지만, 유미도 레이를 알아본 듯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레이 님,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세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유미 쨩이야 말로 어째서 대학에?”
“에헤헤, 오늘은 밸런타인이라서, 초콜릿을 주러 왔어요.”
“초코……아아, 혹시나, 세이 님?”
“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올해도 이래저래 신세를 진 일도 있고요.”
유미에게 이야기를 듣기론, 얼마 전에 연락을 해서 이미 방학에 들어갔는데 일부러 대학까지 오게 했다는 모양이다. 유미는 면목 없으니까 집까지 가겠다 신청했지만, 대학 도서관 책을 반납할 볼일도 있어서 세이 쪽이 나왔다는 모양.
세이라면 설령 거짓말이라도 그 수준으로 말하겠지 싶었다.
“어라, 그래도 유미 쨩, 지금 대학교 건물 안에서 나온 것 같았는데.”
“아, 그건 말예요. 밖은 추워서, 안에서 차를 마셨었어요.”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인 참에, 건물 안에서 바로 그 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유미 쨩, 돌아간 거 아니었니? 그보다, 레이까지 있잖아.”
“오랜만이에요, 세이 님.”
“무슨 일이니, 아, 레이도 초콜릿? 아니― 곤란하네. 내게는 이 카토 양이라는 애인이 있어서.”
“하아?! 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세이의 말에 옆에서 걷고 있던 안경미녀가 기막히다는 듯이 말한다.
“수줍어 안 해도 괜찮잖아, 어제는 그렇게 초콜릿 플레이를.”
“너너너너너너너는 무슨 말을 흘리는 거야!”
얼굴을 붉히며 세이의 폭주를 멈추려 하고 있다.
그녀는 카토 케이, 대학에서 알게 된 세이의 친구라고 한다.
유미도 더해 사이 좋은 듯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레이의 얼굴도 풀어진다.
“……저기, 괜찮다면 같이 안 드실래요?”
“에, 정말 가져와 준 거야? 그럼 밖이면 추우니 안에 돌아갈까.”
그렇게 되어, 넷이 함께 대학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학중이기도 하다보니 학생식당은 휴업 중이었지만, 공간 자체는 개방되어 있기에 적당한 테이블에 앉는다.
“우와―, 맛있어 보여!”
래핑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마들렌을 보고, 유미가 말했다.
“레이의 과자도 오랜만이니까, 응, 기대돼! 카토 양은 처음이지? 이거 먹으면, 보통 파는 과자론 만족 못하는 몸이 되어 버릴지도.”
“헤에, 대단해, 이거 가게서 파는 게 아니었구나. 맛있어 보여……그래도, 나 같은 게 먹어 버려도 괜찮은 거려나?”
“부디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아, 저, 뭐 마실거 사러 다녀올게요.”
일어나서 입구쪽 자판기를 향한다.
쓸쓸한 기분도 당연히 있지만, 이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기쁘게 먹어 준다면 그걸로 좋지 않은가. 어차피 유키는 다른 수많은 여자에게서 초콜릿을 받아서, 배가 터질 지경일 거고.
따뜻한 음료를 적당히 사서 테이블쪽으로 돌아간다.
“땡큐, 레이. 아니, 이것저것 대접받아서 미안하네. 자, 이거 음료수값.”
“에, 그런거 괜찮아요.”
“저 말야, 초콜릿도 받고, 음료수까지 쏘게 하면 선배 체면이 엉망이잖아? 괜찮으니까 받아 두렴.”
“대단해, 정말 굉장히 맛있어! 하세쿠라 씨, 저, 감동하고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자기가 만든 걸 맛있게 먹어 주면 정말 기쁘다.
유미가, 세이가, 케이가, 맛있다고 입을 모으고 웃으며 먹어 주는 걸 보곤, 레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도 혹시 이걸 유키가 먹어 줬다면――.
그런 생각이 들 것만 같아, 허둥지둥 마음속에서 고개를 흔든다.
“……왜 그러니, 레이. 무슨 일 있었어?”
“엣? 뭐가 말인가요, 아무것도 없어요.”
무의식중에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 버린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아도 세이는 날카로우니까 사소한 변화로 깨달은 걸지도 모른다.
레이는 애써 아무것도 아닌 척 한다. 아무리 세이가 날카롭다 해도, 레이와의 연이 그렇게까지 깊은 건 아니다. 그 이상 추궁하진 않고, 세이는 캔 커피에 입을 댄다.
“저기, 레이 님. 한입 더 먹어도 괜찮아요? 정말로 진짜 맛있어서!”
“하하, 사양 안 하고 먹어도 괜찮아, 유미 쨩.”
수줍은 듯, 그러면서도 조금 기대를 담아 부탁하는 유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하핫, 유미 쨩은 정말로 단 걸 좋아하는 구나.”
“괜잖잖아요, 맛있으니까……응?”
마들렌을 하나 더 집으려던 유미의 손이 멈췄다.
“뭐가 떨어졌어요”
유미가 집어 든 건, 한 장의 자그만 카드였다.
케이와 이야기를 하던 레이는, 카드를 본 순간에 움직임이 굳었다.
“아, 그, 그거!”
허둥지둥 손을 뻗으려 했지만, 유미는 공교롭게도 테이블 건너편에 있어, 멈추기 전에 카드 쪽에 눈을 향했다.
“에에……에……에엣?!”
“응, 뭐야뭐야, 왜 그래 유미 쨩……헤에에, 이건 과연.”
“뭐야, 왜 그래 대체……어머.”
유미부터 세이, 그리고 케이 순서로 넘겨지는 카드. 마지막에 카드를 본 케이가 슬쩍 레이에게 눈길을 향한다.
“아으아으.”
레이는 홀로 허둥거리고 있다.
“하세쿠라 씨, 이거, 우리같은 게 먹으면 안됐던 거 아냐? 이 ‘유키’ 씨라는 사람에게 건네줄 물건이잖아.”
“아, 아우우우~.”
이름이 소리내 읽혀, 단숨에 새빨개진 얼굴을 양 손으로 누르는 레이.
깜빡 했었는데, 유키에게 보낸 메시지 카드를 안에 넣어 뒀던 거다. 그걸 보여져 버렸다. 게다가 셋에게. 거기다 그 중 한 사람은.
“레레레레이님이, 유, 유키랑?!”
눈을 크게 뜨고 레이를 바라보는 유미에게, 레이는 더더욱 얼굴을 붉히곤 몸을 움츠린다.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 아냐, 딱히 아직 사귀고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움츠린 채로, 일단 그 소리만을 자아내듯 말한다.
“헤에, 유키를. 깜짝 놀랐지만, 괜찮잖아.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속이려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굉장히 상냥한 눈빛과 말투로 세이가 말을 해왔지만, 더더욱 부끄러워져서 참을 수 없다.
“유키에게 레이 님이라니, 너무 아까워요, 오히려.”
“아아, 유키 씨라는 건, 유미 쨩의 형제였어? 그래도, 어째서 유키 씨에게 안 건네고 이런데서…….”
“혹시나 유키 녀석, 받는 걸 거절하거나 한 거예요?! 유키도 참, 무슨 벌받을 짓을!”
“아, 아냐, 아니니까 유미 쨩!”
울분을 풀 길이 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유미를 허둥지둥 말린다.
“그냥, 주지 못했 던 것 뿐이야. 유키 군, 팬인 여자들에게서 잔뜩, 초콜릿 받고 있었으니까.”
말을 하면서 창피해져서, 추욱 풀이 죽어 테이블에 얼굴을 묻는다.
“아아, 그래서 레이, 질투나서 돌아온 거구나. 귀엽네에~, 정말.”
세이가 히죽이죽거리고 있다.
옆의 케이도 역시, 성모가 지켜보는 듯한 미소를 향해온다.
그리고, 한편 유미는.
“맡겨 주세요, 레이 님! 이건 반드시 제가 유키에게 건네 줄테니까요. 그리고, 설교도 해 둘테니까요. 레이 님이라는 상대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정신을 잃다니, 창피를 모르는데도 정도가 있어요.”
왠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벌써 열어버렸고, 이런 상태로 건네주기엔.”
“포장 다시 하면 문제없잖아, 수제니까. 마침 나, 집에 남아있는 거 있으니까 이걸 쓰면 괜찮아. 크기도 맞을 거고.”
“그렇다면, 역시 레이가 직접 건네주는게 좋지 않아?”
“그렇네요, 저, 유키를 불러 올까요?”
레이 일인데, 레이를 빼놓고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TV를 보면서도 유키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오늘은 밸런타인 데이. 예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학교 교문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놀랍게도 여자 네명에게서나 선물을 받았다. 그 공전의 사건에 물론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들뜰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건 오로지, 정말로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가 오직 한 명 이었으니까.
방에는 아직 뜯지 않은 넷의 선물이 놓여 있다. 감사히 받았고, 제대로 화이트데이에 답례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레이가 신경쓰이는 거다.
받을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기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어서도 아무 일도 없다는 건 꽝이었던 거겠지. 수험생이고,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험이 끝날 때 까지 안 만난다고 한 건 자기 자신이니, 어쩔 수 없다곤 생각하고 있지만 역시 낙담은 한다.
“유키, 잠깐 괜찮아?”
방에 들어가 있던 유미가 나와서, 유키 앞에 선다.
“유키, 오늘은 여자에게서 초콜릿 잔뜩 받아서 신나하고 있다면서?”
“누구한테서 들은 거야, 그런 이야기. 거기에, 별로 신나거나 하진 않고.”
“진짜려나~, 이거, 주는 거 그만둘까?”
수상쩍은 눈길을 향하며, 몸 뒤에 숨기고 있던 걸 보여준다.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건 유미가 주는 밸런타인 초콜릿일까.
“뭐야, 모처럼이니 고맙게 받을게.”
“그런 태도의 사람에겐 안 줍니다~.”
받으려 했지만, 유미는 손을 들어서 일부러 피했다. 뭘 기분나빠 하고 있는 거야. 설마 남동생이 여자에게서 초콜릿을 받았다고 질투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런 누나는 아니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유미의 손에 향하자,
“에, 아, 너, 그거?!”
슬쩍 보인, 포장에 붙어있던 카드. 내용까지는 안 보였지만, 오른쪽 아래에 서명같은 게 있었고, 그 제일 구석에는 틀림없이 ‘레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눈치챘어? 맞아, 이거 황장미님 밸런타인 초코.”
어째서 유미가 레이의 초콜릿을 가지고 있는 걸까. 설마, 레이는 유미를 끼워넣어 건네주는 건가. 초콜릿은 기쁘지만, 그래서는 둘의 관계, 라고 해도 아직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걸 들켜 버리지 않은가. 아니면 단순히, 의리 초콜릿이라고 하면서 건네준 건가.
“유키는 여자들한테 잔뜩 초콜릿을 받아서 기쁜 모양이니, 필요 없으면 내가 받아버려도 된다고 레이 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바, 바보! 내가 가지고 싶은 건 초콜릿 잔뜩이 아니라, 그거 하나 뿐이라고!!”
유미의 말에 순간적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우와아.”
들은 유미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유키도 깜짝 놀랐다.
“들은 내가 다 부끄러워…….”
“바보, 내 쪽이 분명 더 부끄럽다고.”
하지만 물러설 순 없었다. 유미의 손에 들려있는 게, 레이가 주는 초콜릿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에에……유키랑 레이 님은, 정말로? 에, 어, 언제부터?”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럼 뭐야, 유키는 레이 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좋아하”
“그만둬, 말하지 마! 그건, 내가, 나 자신이 그 사람한테 처음으로 전할 거니까!”
심장이 쿵덕쿵덕거리고 있다.
지금은 거울을 볼 수 없을만한 얼굴이 되었을 건 틀림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유미에게 거짓말을 했다간 그게 레이에게 전해져 버린다. 쓸데없는 고집으로 레이를 슬프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하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게 훨씬 낫다.
“……그런가. 응, 유키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네, 다행이다.”
갑자기 유미가 끄덕이곤, 손에 들고 있던 포장을 유키에게 슬며시 건네왔다.
그걸 받자, 상냥한 무게가 손바닥에 전해져 온다.
“레이님에게 답례, 하라고. 그리고, 제대로 어디서 이야기 한 다음, 가르쳐 줘.”
“아, 아아.”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가 되었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레이에게서 밸런타인 초콜릿을 받을 수가 있었다.
메시지 카드를 다시금 바라본다. 레이의 글자로 쓰인 간소한 메시지 중에서도, 담겨있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쓰여 있는 건 별로 특별한 건 아닌데, 그런데도 어딘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아서.
곧 봄이 온다. 그 뒤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뿐――
결의도 새로이 하고, 손에 든 포장을 바라보고 있자.
“아아, 드디어 끝났어? 그래서, 이게 유키의 진짜 상대에게 받은 선물?”
주방에서 어머니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왔다.
“어, 어머니?!”
“유키가 그렇게 정열적인 소릴 하다니, 어떤 애야, 유미 쨩?”
“으음―.”
“우와, 그만둬 바보, 부끄럽잖아! 엄마도 뭘 듣고 있는 거야!”
소란스런 밸런타인 밤.
만나진 못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은 깊어져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