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사냥터의 소년
2. 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3. 사지로 가는 하이에나의 왕
4.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된다
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6. 태양의 대천사 미카엘라
7. 우리에게 허락된 새로운 땅
에필로그
외전―메타트론의 탄생
1. 사냥터의 소년 (1)
세 시간 전.
“저것들 또 왔네….”
나는 쌍안경으로 저 앞쪽에 어슬렁대는 남자들을 관찰 중이다.
대건파란 조직인데, 조직 대다수가 양아치나 건달로 구성되어 있다. 몬스터 사체를 주우러 다니는 일반인 그룹 가운데 하나로 무척 악랄한 놈들이다.
폐허가 된 서울이 무법지대인 탓에 놈들은 같은 일반인을 상대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아마 날 찾는 모양이다.
저 대건파 놈들은 남이 수거해 온 몬스터 사체를 강탈하는 게 주특기다. 그도 그럴 게, 죽은 몬스터에게 접근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기에 자기들이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사냥터에서 저렇게 어슬렁거리다가 남의 수확물을 빼앗는다. 아무래도 요즘 내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들었나 보다.
“짜증나는 놈들….”
나는 벽에 기대서는 초코바를 먹었다. 그러면서 대건파 애들을 어찌 처리할지 고민했다.
적당히 쫓아버릴 생각은 없다.
사냥터에서 싸움이란 죽고 죽이는 거다.
시비가 걸리면 끝장을 보는 게 당연하다. 어설프게 처리했다가는 도리어 이쪽이 당한다. 게다가 난 혼자다.
인정사정없이 쓸어버려야 한다.
누가 보면 표독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몬스터 사태 이후 3년간 온갖 더러운 꼴을 다 겪다보니 이리 됐다.
지난 3년간 나는 참 많이 바뀌었다.
아니, 나만 바뀐 게 아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격변했다.
“좋아.”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내 계획은 간단하다.
놈들을 유인해 이 지역의 대장에게 데려간다는 것.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서울대학교 근처인데, 서울에서도 비교적 위험한 몬스터가 적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초능력자인 헌터들은 거의 오지 않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자연사하거나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은 몬스터의 사체를 찾아온다.
그렇지만, 모두 잘 모르는 점이 있다.
나만 아는 건데, 이 일대에 유난히 덩치 큰 외눈박이가 살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나는 놈을 대장이라고 부르곤 했다.
보통 낮에는 길게 누워서 잘 뿐이고 밤에만 움직여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위험한 사냥터에서 밤에 활동하는 일반인은 없으니까.
나는 대건파 놈들을 대장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그걸 위해서 필요한 준비를 하나둘 시작했다.
***
“허억! 헉!”
일부러 숨 가쁜 척하면서 달린다.
허리춤에 돈이 되는 눈알을 매달고 있었기에 저 멍청한 놈들을 꾀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내가 다친 줄 알고 있다. 다들 완전히 신이 난 상태다.
줄줄줄.
채집한 몬스터의 피를 바닥에 뿌리며 달렸다.
“어디까지 가려고!”
“잡히면 네놈 팔다리를 하나씩 자를 테다! 가는 데까지 가봐!”
낄낄거리는 웃음이 들려온다.
미친놈들.
아무리 여기가 덜 위험한 장소지만 엄연히 사냥터인 서울이다. 몬스터가 지나다니는 곳에서 저리 소리를 질러대다니.
“멍청한.”
3년 전 몬스터 사태 이후 서울은 완전히 파괴됐다.
불쌍한 우리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셨고.
그 후 인간들은 수도권 일대에 방어선을 만들어 서울에 사는 몬스터가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래서 몬스터로 가득 찬 서울을 보통 사냥터라고도 부른다.
사냥터는 지역마다 위험의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면 한강 너머 강북 일대는 나 같은 일반인이 몇 분도 못 버틸 만큼 위험하다. 반면 이곳 서울 대학교 근처는 저런 멍청이들도 소리를 지르고 다닐 정도다.
물론 저게 무지의 소치임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몬스터가 있는 땅에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나.
이 근처의 몬스터가 총으로 제압 가능한 수준이라 그렇지, 조금만 북으로 올라가도 지옥도가 펼쳐진다. 총은커녕 대포도 안 먹힐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즐비하다.
“다 왔군. 후우.”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이 벽 너머는 거대한 외눈박이, 대장의 잠자리이다. 엄청난 잠꾸러기라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태평하게 자는 녀석이다.
그런 대장을 깨울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만.
“여깄다! 놈이 여깄어!”
대건파 놈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날 보더니 비웃음을 터뜨린다.
“알아서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는군!”
나는 일부러 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빼돌리다니! 처음부터 내 거였잖아! 너희가 끼어든 거고!”
그리고 거짓으로 눈물까지 흘려댔다.
덕분에 놈들의 비웃음은 더욱 커졌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우는 건 지금 꺼낼 물건의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지만.
바로 죽은 몬스터의 위장이었다.
거대한 두더지를 닮은 녀석으로 대장의 주요 먹거리 중 하나였다. 놈의 위장이 터지면 특유의 악취가 나는데 이게 대장의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 냄새를 뒤집어쓰면 어떻게 될까?
무조건 죽은 목숨이라고 볼 수 있다.
외눈박이는 눈이 별로지만 후각은 예민하다. 몸에 이 냄새가 묻는다면 절대로 외눈박이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붕붕붕.
머리 위에서 위장을 돌리자 그제야 놈들이 이상을 눈치챈 듯 달려들려고 한다. 하지만 이쪽이 한 발 빨랐다.
퍼억.
더러운 냄새와 함께, 위 안에 있던 온갖 오물이 놈들을 덮친다. 그리고 냄새에 자극받아 잠에서 깨어난 대장. 곧장 아비규환이 이어졌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있었다.
지금 눈앞의 살육을 눈에 빠짐없이 담으면서.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본 광경이었다.
툭.
대장이 씹다 만 한 남자의 팔이 바닥에 떨어진다.
도망가는 놈들의 비명이 계속 이어진다.
쿵. 쿵. 쿵.
대장도 그들을 쫓아가며 하나씩 집어먹는다.
무심히 보다가 곧 일어났다. 그리고 이 근처에 숨겨둔 사다리를 가져왔다.
“좋아, 가볼까.”
오늘 이 짓을 한 건 대건파 놈들을 치우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장의 잠자리를 털려는 속셈도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벽 위에 올라섰다. 사다리를 다시 올려 반대편에 놓았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대장의 주의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한 몫 챙길 요량이었다. 대장의 잠자리에는 잡아먹은 몬스터의 사체나, 불운한 희생자의 유품 등이 있다. 다 돈이 되는 것이고, 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내겐 달콤한 것이었다.
“굉장해.”
대장의 신체 모양대로 눌린 이곳은 거대한 쓰레기장 같았다. 사방에 온갖 잡동사니와 사체가 굴러다닌다.
“보자, 어디 있을 텐데….”
며칠 전에 대장이 지네 같이 생긴 몬스터를 사냥하는 걸 봤다. 그 몬스터의 독을 품은 송곳니는 굉장한 돈이 된다.
가공해서 헌터의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장이 지네의 몸통을 먹지 독을 품은 송곳니는 먹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남아 있을 거다.
옳지, 저깄네.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것만 가지고 가면 충분하다. 대장의 잠자리에 오래 있는 건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서둘러 소형 전기톱으로 지네 몬스터의 송곳니를 빼내기 시작했다.
위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검 정도의 크기인 소형 전기톱이 돌아간다.
곧 지네 몬스터의 껍질이 갈려나가기 시작한다.
작업은 그 뒤로도 30분이나 걸렸다.
고생고생해서 송곳니 하나를 겨우 빼낼 수 있었다.
남은 하나가 욕심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미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벽을 다시 넘어간 뒤 사다리를 원래 위치에 숨겨 놓으니, 부서진 건물 너머로 대장의 얼굴이 쑥 튀어나온다.
“흡!”
놀라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건물의 그림자 사이로 숨어들었다. 대장의 입가에는 피가 번들거렸다. 가슴팍에도 희생자들의 혈흔이 가득하다.
분명 한 놈도 남기지 않은 거겠지.
감사할 일이다. 배가 부르다는 건 나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건물의 그림자에 숨어있자 대장이 다시 자기 잠자리에 눕는 게 보였다.
그리고 곧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잠든 것이다.
좋아, 살았다. 다 끝났어.
나는 희열을 애써 억누르며 대장의 잠자리에서 멀어졌다. 대건파 놈들도 치우고 지네 몬스터의 송곳니도 얻었다. 이 송곳니가 못해도 3천만 원은 나갈 터.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목숨을 걸고 사냥터로 나온 보람이 있다.
몬스터 사태 때 부모님을 잃고 누나와 단둘이 남았다.
경제적으로 도움 줄 곳이 없으니 생활이 어땠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 경제는 몬스터 사태로 파탄이 났다.
얄궂게도 요즘은 그 몬스터가 새로운 산업의 동력이 된 모양이지만, 아직도 혼란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거리에는 집과 가족을 잃은 거지가 넘쳐난다.
천만이던 서울 시민이 기반을 잃고 밀려났으니 오죽하겠나. 수도권은 판잣집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런 판잣집 중의 하나가 누나와 나의 보금자리였다. 요즘 돈이 좀 모였다고 해도 이사 가긴 어림없었다.
그래도 아픈 누나를 위해 어떻게든 좋은 환경으로 옮기고 싶었다. 누나는 지금 몸도 마음도 무척 아픈 상태다.
“별일 없으려나.”
집에서 기다리는 누나가 걱정되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번에 큰 수확을 올렸으니 한동안은 사냥터 대신 누나 곁에 붙어 있자. 누나에겐 가족과 치료가 필요했다. 이 독을 품은 송곳니면 누나의 치료비로는 충분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가던 중 갑자기 뒷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윽!”
정말 한순간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몸이 힘을 잃고 쓰러진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지면에 뺨을 대고 나서야 습격 받았음을 깨달았다.
누구지, 대체 누구?
몬스터인가? 아니면 다른 인간인가?
죽음의 예감이 밀려든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기 마련이지. 제법이긴 했다만. 킥킥킥.”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웅성거리는 게 여럿이었다.
나는 식물인간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확실히 끝내버릴까요?”
“됐어. 내버려 둬도 뒈지겠구먼. 몬스터들이 뜯어먹겠지.”
“머리가 완전히 깨졌네요. 좀 더 꿈틀거리다 죽을 듯….”
“아무튼 이놈 덕에 송곳니도 공짜로 얻고, 좋은 구경도 했네. 아주 독한 놈이야.”
곧 나를 습격한 놈들은 떠나갔다.
생각을 좀 하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머리가 굴러가질 않는다.
춥다.
이대로 죽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