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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 요리를 위한 레시피1 -입문편-


투고 | V노블





과거의 인연 
Prologue. 요리 예찬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2장. 반쪽짜리 마법사와 허세부리는 여관주인 
3장. 어브노말계 서버 
4장. 내 주방보조와 서버알바가 완전 수라장 
5장. 요리와 나의 어사일럼 
Epilogue. 셰프와 향신료 
작가 후기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4)


“지금 뭐라고 했냐, 너.”
“말이 많다고 했는데.”
“용감한 녀석이군.”

 남자는 사납게 웃었다. 폐부를 찌르는 피 냄새가 풍겼다. 용감한 녀석이라. 하긴, 예전부터 주방만 들어가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단 소리를 많이 듣긴 했다. 성격이 변한다는 소리는 덤이고.

“너, 죽고 싶냐?”

 그르렁, 울부짖는 것 마냥 가라앉은 목소리. 한숨을 내뱉었다. 이래서 머리에 근육만 든 사람들은 싫다. 폭력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사람들. 그 남자를 무시하고 지나쳐 테이블로 가서 그릇에 스튜를 담았다.

“뭐하는 거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릇을 든 손을 뒤로 뻗었다.

“먹어.”
“뭐?”
“음식을 앞에 두고 침만 삼키는 건 삼류나 하는 짓이야.”
“배짱도 좋군. 좋아, 먹어주지. 하지만 만약 허튼짓을 했다면 너, 아니 이곳을 다 부숴버릴 줄 알아라.”

 쓸데없는 협박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남자는 스튜를 떠서 입에 집어넣었다.
 불안해하며 기도하는 미쉘씨. 비웃음을 짓는 주변 남자들.
 그리고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분노에 가득 찬 표정에서 맛있는 걸 먹을 때 나오는 황홀한 표정으로.
 하, 하고. 기가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원초적인 감탄사.

“단장, 왜 그래!”

 다른 남자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남자는 코를 박고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스튜를 퍼먹던 남자는 그릇에 있는 걸 다 먹었는지 다시 한 번 스튜를 펐다. 그런 남자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머뭇거리며 스튜를 떴다. 그리고 그들의 리액션은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와 당근, 완벽하게 조리된 닭고기를 먹고, 국물을 마시고. 옆에 있는 맥주를 한 모금. 수저로 먹는 것이 감질났는지 아예 그릇을 들고 마시다시피 먹는 사람도 있었다. 곧이어 두 솥에 가득 차 있던 스튜는 어느새 밑바닥을 보였다.
하아, 누군가의 만족스러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기분이 나쁘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요리’에 압도당한 거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맛이 궁금했는지 내가 챙겨놓은 자신의 몫을 해치운 미쉘씨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어때, 끝장나지?”
“……그, 이, 아니.”

 말문이 막혔는지 화를 내던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이건 대체 뭐지?”

 대신 옆에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뭐냐고?

“스튜야. 스튜.”
“이게 스튜라고?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이런 건 처음이야…! 넌 정체가 뭐냐. 흑마술사인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흑마술사는 무슨. 그리고 마법이라니, 음식에 대한 실례다. 어디까지나 요리야. 재료를 손질해서 볶고, 끓여서 완성한 스튜라고.”
“그럴 리가 없어! 이게 스튜라면 지금까지 우리들이 먹은 건 대체……! 전설 속에 나오는 ‘천사의 눈물’이라도 넣은 거냐! 솔직히 말해!”

 남자는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물 쓰레기들이 떠올랐는지 언성을 높였다. 하긴 억울하기도 하겠지. 그딴 걸 ‘음식’이라고 속아서 먹었을 테니까. 그것보다 천사의 눈물이라니. 더럽게 촌티 나는 네이밍 센스다.

“그러니까 요리라고. 이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제대로 된 요리.”

 남자가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대체, 너 정체가 뭐냐.”

 정체가 뭐냐고?
 
 

“요리사야. 이 세계에선 제일 대단한.”

 나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그래, 나는 요리사다.
 특별한 힘도, 능력도 없는 평범한 요리사,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마법보다 더한 황홀함을 줄 수 있는 그런 요리사다.

 

◇◇

 

 주방 청소를 끝마친 뒤에 의자에 앉았다. 하아, 피곤하다. 하루 안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충격적인 음식을 먹고.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고. 뭐 그래도 일단 취직은 했으니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다. 취직이라고 해도 조건은 엄청나게 짜지만.
 숙소는 여관 남는 방에서 자도록 하고 월급은 하루 일당 2페니, 한 달이 28일이니 56페니다. 아까 먹었던 음식이 1페니인 것을 생각하면 열정페이도 이런 열정페이가 없다. 만약에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당장 노동청에 신고할 레벨.
 아쉬운 건 나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내 생각보다 하시연, 당신이 적응을 잘한 것 같네. 다행이야. 마음이 놓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계획을 생각하는 데 방해가 들어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 턱을 괸 채로 그 목소리에 답한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
“확실히, 하시연 당신이 죽어버리면 나는 상당히 곤란해져.”

 시야 안으로 요정이 들어왔다. 파닥거리는 날개가 거슬려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요정이 볼을 부풀리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기우제라도 지내냐.

“곤란?”
“그래. 매우 곤란해져.”

 동시에 요정이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요정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무표정하게 나를 보고 있는 원흉이 있었다. 어휴, 무섭다. 좀 웃어라. 어디 덧나냐? 그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요정이 웃었다. 너 말고. 나는 원흉을 보며 천천히 말하였다.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이제는 놀라지 않네? 당신도 성장을 하는구나. 하지만 조금 서운해. 분명 나는 당신에게 자기소개를 했는데, 유레이니아에서 온 오필이라고 말이야.”

 서운한 표정을 짓고 어깨를 축하고 늘어뜨리는 요정을 무시했다. 유레이니아. 이 세계의 이름. 그리고 이 오필이란 녀석이 내가 이 유레이니아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이고. 즉, 이 녀석이 내가 이곳에 온 원인이라는 건데.

“맞아. 내가 당신을 이 유레이니아로 데려왔어.”
“이유는?”

 데려왔다는 건 말 그대로인가. 마법인가 뭔가를 써서? 그렇다면 돌아갈 방법도 분명 있을 거다. 후우. 한숨을 내뱉는다. 머릿 속에 오른 열을 천천히 내뱉었다. calm down. 스승님의 말버릇처럼. 침착하자. 흥분하며 돌려보내라고 난리를 쳐도 좋은 건 하나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침착하게, 쿨해야 한다.
 이 녀석은 납치범이다. 그리고 납치범을 자극해봐야 인질 입장에선 좋은 건 없다.

“납치라. 틀린 말은 아니야. 그 부분은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하시연.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어.”

 요정이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예의는 바르다. 예의 없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실례야. 나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아. 그리고 나에겐 당신이 필요하니까. 어느 정도 맞춰줘야지.”
“필요하다고? 내가?”
“그래. 하시연. 당신이 필요해.”
“어째서?”
“하시연, 당신은 이 유레이나아가 이상하다 느낀 적이 없어?”
“이상하지 않은 점을 찾기가 힘든데.”
“음, 확실히 당신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네. 그런데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리’. 유레이니아가 가진 요리법이나 요리에 대한 인식. 그것을 보고 당신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냐고, 그걸 묻고 있는 거야.”

 요리법이나 요리에 대한 인식이라. 근엄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서있는 요정의 옆에서 오필은 뒷짐을 졌다. 생각을 묻고 있는 건가. 나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상, 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지. 요리법도 단순한 끓이기, 굽기밖에 없는데 발전시킬 생각도 없으니. 식재료가 아깝다 해야 하나.”
“정확해. 실제로 유레이니아가 가진 요리에 대한 인식은 ‘이상’하다는 표현이 어울려. 식재료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먹거나 가공한다고 해도 맛이 목적이 아니라 보존만이 목적이니까.”
“전쟁이라도 하고 있어?”

 사실 이것도 좀 웃기는 말이다. 음식은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진화한다. 오히려 전쟁 때문에 탄생을 한 음식도 있을 정도다.

“아니, 그건 아니야.”

 도리도리하고 요정이 고개를 저었다. 흐음. 관찰한 결과 아마 저 요정이 오필의 ‘감정의 표현’ 같은 건가 본데. 감정이 없는 것처럼 차분하기만 한 오필을 대신해서 저 요정이 표정을 바꾸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것도 마법의 일종?

“이 유레이니아에는 많은 수의 신들이 존재해. 그리고 유레이니아의 발전은 신도가 많은 신의 직책에 따라 정해져. 현재 유레이니아에서 제일 많은 수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신은 전쟁의 신과 마법의 신. 이 두 명이야. 그 덕에 유레이니아는 전쟁의 도구와 마법이 엄청날 정도로 발전했지. 하지만 그 때문에 예술과 요리가 등한시되었어.”

 요정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른바 신학이라는 건가? 맞나? 이런 쪽은 잘 모르니 답답하다. 요리의 역사라면 자신 있는데.

“그나마 예술 쪽은 상황이 괜찮아졌어. 크롬버가 죽은 이후로 그 끔찍한 정책이 끝났거든. 그 덕에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귀족이나 왕족들 덕에 신도가 늘어나는 추세야. 하지만 요리는 달라.”
“크롬버?”
“한때 이 대륙을 호령했던 황제야. 금욕을 미덕으로 알았지. 그런데 20년 전 황제가 죽었어. 그로 인해 현재는 대륙 전체가 전시 상황이고.”

 요정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지한 이야기라 그건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내가 돌아갈 방법과 연결이 되어 있을 테니 제대로 듣자.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크롬버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어. 그 덕에 요 근래 귀족들이 맛있게 먹는 법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정말 끔찍해.”

 웩, 하고 요정이 토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리얼한데?

“풍부한 식재료를 가지고 이상할 정도로 조합할 줄 모르지. 아니, 크롬버의 정책 때문에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할까? 조리법이 없으니 유레이니아의 사람들은 스튜라고 부르기도 이상한 끓인 음식과 굽기만 했을 뿐인 고깃덩어리, 빵 정도로 만족을 하고 있어. 거기다가 귀족들도 그저 여러 가지 향신료를 뿌리고 구운 고기에 만족하고 있고. 아니, 그 이상 가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정확하겠네.”

 그것 참 불쌍하군. 물론 좋은 고기는 그저 굽기만 해도 맛있지만 굽는 법에도 차이가 있다. 시어링, 플람베, 레스팅 같은 조리법은 좋은 고기를 더욱더 맛있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런 거 없이 그냥 단순히 굽기만 하다니. 미쉘씨의 말을 생각하면 향신료를 듬뿍 쳐서 굽는 건가. 그게 대체 뭐야. 향신료도 무조건 사용하면 안 된다. 조합에 맞게 적절한 양을 사용해야지.

“그렇기에 나는 시연, 당신을 불러오기로 결심했어. 사실은 다른 사람을 부르려고 했지만, 1년 전에 먹은 당신의 음식이 내 생각을 바꿨거든. 내가 생각한 조건에 완벽하게 적합한 유레이니아를 구할 영웅은 바로 당신이야, 하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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