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Monster] (2)
프롤로그 : [Monster]
1장 : 망향
이 세계에 오고 난다음 며칠이 지났으려나.
모르겠다, 응, 애당초 시계따윈 가지지도않았고, 하늘은 가끔을 제외하곤 언제나 잿빛구름으로 가득해서 언제 해가 지고 뜨는지조차 모르니까.
이 몸뚱이가 있는 세계는 낯설은 곳이였다. 하늘도, 땅도, 그 위에 있는 모든것들이, 이 세상 그 자체가 전부 낯설었다. 무너진 세계, 잿빛 도시, 살기위해 미쳐날뛰는 사람들과 그들을 잡아먹는 괴물들, 아, 맨 뒤에 건 아직 못봤지. 아무튼, 이런 미친 세계에서 난 살아갔다, 이 괴물과 함께.
그런 환경에서 나는 처음 얼마간 동안 꿈이길 바랬다, 몇번이고 엄마를 부르기도했다. 울고, 화내고, 웃고, 그것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했다. 미친걸까, 모르겠다. 단지 처음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수없어서 울었다. 그런다음 이 현실이 미워서 화냈다. 마지막으론 그 무엇하나 바뀌지않아 웃었다, 웃을수 밖에 없었다. 예전 어디에서 봤는데, 사람은 기뻐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기쁘다고, 그렇다면 웃는게 낫지않을까. 하고 웃어봤다, 하하하 하고 소리쳐 웃어봤다, 전에 살던 우리집이였다면 소음공해로 민원이 들어왔을정도로 웃어봤다.
웃는것인지, 소리치는것인지, 모르게 웃어봤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을 웃어본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몸은, 웃을수 없다고.
얼굴을 매만져보았지만 그저 턱만 움직일뿐 그 어떤것도 움직이지않았다. 딱딱한 골격으로 이루어진 얼굴이라서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게 끔찍하게 싫었다. 이 몸이 싫었다. 웃을수도 없는 이 몸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리고 끝에는 허탈해졌다.
이런 세계에서, 이런 몸으로 나는 왜 살아갈까? 글쎄, 일단은 죽고싶지않다. 죽는건 무서우니까, 왜 무서운걸까? 글쎄, 잘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모른채 하는걸까?
...이런, 또 상념에 빠져있었네.
하지만 이런거, 나쁘지않아. 멍때려도 누가 뭐라하지않는 세계니까, 응, 그런 세계니까.
다시 상념에 빠져볼까, 음, 그 후로 사람들과 친해지기위해 변장을 했다. 뭐 딱히 어렵거나 하진않았다, 그냥 몸만 가릴수있는 옷들만 있으면 되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아무런 죄도없는 옷가게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했지만.. 뭐 어떠려나, 어차피 주인도 도망친듯한데.
그리고 그렇게 변장을 하고 난다음 나는 드디어 사람들과 어울릴수있었다. 응, 어울렸다. 어울렸나? 응, 어울렸어. 아하하, 이 말 굉장히 기분좋네.
구성원도 그리 나쁘지않았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아니, 뭐든 나쁘지않으려나? 그렇겠지, 응, 그렇지.
「저기..」
타닥타닥하고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나는 등 뒤에 열심히 운동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봤다.
"허억...허억... 왜, 뭐 오냐?"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면 닥치고 있어! 젠장 흥 깨게시리"
그러고선 다시 다른 남자, 그리고 여자와 함께 격렬한 운동을 하는 남자에 난 움찔거리고서 시무룩해졌다. 방해한걸까나, 뭐 나도 그 마음을 알긴하지. 한창 자가발전하고있을때 밖에서 부모님이나 형이 말걸면 흥 깨지니까.
하지만 조금 외로워지려하는데, 참아야할까? 그래, 참자. 응, 더 화나게하면 여기에 못있을테니까, 조용히, 착하게 있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등 뒤에서 여전히 들려오는 퍽퍽 거리는 소리와 헉헉 거리는 소리를 배경삼아 다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어째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걸까나, 이 몸뚱이는 성욕마저 없는건가? 아 맞다, 애당초 그것마저도 없지. 하하하, 태어나자마자 고자라니, 진짜 웃기네, 응, 웃기네.
그래도 뭐 어때, 이렇게 행복한데.
모닥불은 이렇게 따뜻하고, 사람들과 얘기할수있고, 아아, 참 행복하다.
뭐, 저들이 날 그저 부하로 쓰려고 받아들인건 알고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외롭지않으면 되니까.
...물론, 섭섭하긴해. 가끔 엄마가 그립기도하고, 집 밥이 그립기도한다. 하지만 뭘 어떻게해도 안되는데, 어쩔수없지. 응, 그렇지.
"후우..후우... 어이 말코이, 근데 어디서 저 머저리를 데려온거야?"
"몰라, 그냥 식량 찾고 다니다가 만났는데 어떻게써도 좋으니까 데려다 달래더라"
"뭐야, 찌질이 아냐? 저딴 놈을 어디다 써?"
"뭐 어때, 여차하면 괴수가 떴을때 고기방패로 쓰면 되겠지"
"낄낄, 그런가.. 윽, 싼다, 받아먹어 이년아!"
내가 듣지못할거라고 생각한걸까, 하지만 이 몸뚱이는 참 쓸데없는데에만 유능하다. 차라리 듣지않았으면 하는데도 듣게하다니,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거 하나없는 몸뚱이였다. 그래도 견뎌냈다. 아프지만, 조금, 아니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안아프니까, 응, 적어도 사람으로 봐주니까. 괜찮아, 나는 괜찮아.
「저기..」
"후우... 또 뭐 임마?"
「나는, 사람이야?」
"...야 말코이, 꼭 저런 정신나간 놈을 데려오냐?"
"쳇, 뭐 예전에 돌아버렸나보지. 닥치고 망이나 서고있어!"
「그래도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에이씨, 그래 임마! 사람이다 사람! 그럼 뭐, 괴수라도 되냐?!"
괴수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움찔거렸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말에 웃음이 났다. 헤헤, 그렇구나, 나는 사람이구나. 응, 역시 사람이였어. 하긴, 내가 괴물일리가 없지.
기뻤다
정말로 기뻤다.
인정해줬다, 내가 괴물이 아니라고, 괴수가 아니라고. 나는 사람이다. 사람
괴물이 아니니까, 나는 괴물이 아니니까.
나쁜건 이 몸이니까.
낮이됬다. 아니, 지금이 낮이던가? 모르겠다. 어느때와 똑같은 하늘은 시간감각을 마비시켜놨다. 단지 일어나는걸보면 낮이라고 추정할 뿐이였다.
우적우적-
그리고 지금은 즐거운 식사시간, 오늘 아침은 뭘까, 하고 기대해보니 예상외로 개사료였다.
...응, 뭐.. 그래, 요즘 개사료도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라니까.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는 개사료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접 개사료를 먹으면서 판별하기도한다고 했으니까. 아하하, 괜찮겠지 뭐.
그래도 통조림 먹는 저 두사람이 부럽긴 하네.
"..? 뭘 봐 임마, 닌 니꺼로 주어진것만 쳐먹으라고, 괜히 우리꺼 넘보지말고"
그렇게 멍하니 저 남자 둘을 바라보다가 남자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몸뚱이가 심장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혹시 방금전에 기분나쁜거로 인해 쫓겨나지않을까?
안되, 그러면 안되.
혼자는 싫으니까, 여기서 쫓겨나면 안되.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개사료를 한웅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우걱-
식감은, 살짝 딱딱한 조리퐁같았다, 맛은 모르겠다. 이 몸뚱이는 혀가 없는건지 맛을 못느낀다. 아니, 애당초 먹을 필요도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되니까, 착한 모습을 보여줘야하니까. 응, 쫓겨나면 안되니까.
우적-
하지만 왠지 아프다. 뭐가 아프지? 아플리가 없는데, 행복한데, 아니, 부족한걸까? 뭐가? 글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서 더 바라면 안되. 더 바라다간, 쫓겨나면 안되니까.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은, 여럿이 모여서 살아야하니까.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거니까.
우적-
이상하게, 입 속에 애벌레 한웅큼 집어먹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턱을 움직여 씹을때마다 무언가, 알수없는 뭔가도 같이 갈려나가는듯했다. 그리고 삼켰을땐, 마치 대못을 집어삼키는것마냥, 몇번이고 목울대로 넘어가지 못한채 입 안에, 몇번이고 굴리고서야, 천천히, 조금씩 삼키고나서야 다 삼킬수 있었다.
먹고싶지않았다. 배고프지않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반찬투정을 하는걸까. 맛을 못느껴서일까, 아니, 그보다 무언가 더 있어. 단지 집밥이 그리웠다. 엄마가 해주셨던 따뜻한 밥, 왜 그땐 그걸 모른걸까? 왜 바보같이 밖에서 사먹기만 한걸까.
바보같이
바보같이
두번째로 집어든 개사료를 입에 넣으려고했지만 팔이 움직이지않았다. 어라? 이러면 안되는데, 먹어야하는데. 근데 왜 움직이지않는걸까?
먹고싶지않아.
하지만 먹어야하는데
그렇지만 먹고싶지않아.
어떻게해야할까.
답은 들려오지않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개사료를 집어먹는 여자, 푹 파인 두 볼과 빼빼마른 몸에 나는 조심스레 내 몫으로 주어진걸 건냈다.
"..."
그리고 힐끗, 나를 곁눈길로 바라본뒤 내가 건내준것도 가져가먹는 여자에 왠지 모르게 입 안이 씁쓸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는 망가졌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마저도, 얼마전까지만해도 이렇게 살아가는걸 상상도 하지못했던 나는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해가고있다. 이래도 되는걸까 하고, 몇번이고 속에서 되새겨보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 생각만하고 실천할 생각을 하지않으니까, 나는 겁쟁이니까. 그리고 어쩔수없으니까. 아니, 그렇게밖에 말할수없는 핑계를 대는거뿐이니까.
"어이, 그만 먹고 일어나. 움직일 시간이다"
...아
멍하니 있다가 어느새 식사 시간이 끝난듯하다. 그런데 남자의 말에 일어난 나와는 달리 여자는 듣지못한건지 주어진 밥을 먹고있었고, 그게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듯했다.
"하 진짜.. 이 빌어먹을 년은 항상 이런다니까!!"
까앙-!!
「..어...!」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여자에게 다가가더니 그릇을 발로 찼다. 그러자 그릇이 나뒹굴면서 미처 먹지못한 밥이 흙먼지가 쌓인 바닥에 떨어져, 먹을수 없게되었다.
거기에 나는 놀라며 남자를 말리려고 다가가려다가 멈칫했다.
"뭐야 너, 불만이냐?"
「아.. 아니, 그게.. 너무 심하신듯해서..」
"불만이면 꺼지든가 멍청아!! 우리들이 니네들 어리광 봐주는 보육원인줄 알어?!! 우리들이 너네들을 먹여살리면 거기에 보답해서 감사하게 일해야지!! 어?!!"
「....」
나를 노려보면서 외치는 남자에 나는, 어쩔수없이 고개를 숙인채 여자를 외면했다. 그리고 거기에 남자는 콧방귀를 뀌고선 여자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고서 일으켰다.
"..."
곁눈길로 힐끗 본 여자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아플텐데도 내색하지않는걸까, 느끼지못하는걸까. 모르겠다. 알듯하면서도 알지못할 그럴 이유.
도와주고싶은데, 그럴수없었다. 나에겐 방법이 없으니까, 아니, 방법은 있다. 하지만 그걸 실행할 용기는 나지않았다. 두눈을, 마주칠수없는건 이 이유일까. 만약 그녀가 나를 질책한다면, 나는 태연하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알수없다. 단지, 단지 나는 끝까지 그녀를 외면하고, 나 스스로를 챙길 뿐이였다.
'죄송해요'
그때문에 속으로 되새긴다.
'죄송해요'
실천하지못하는 겁쟁이로써.
'어쩔수 없어요'
책임을 피하기위한 핑계를 대는 겁쟁이로써.
그렇게.
'나는 외로우니까'
나는 스스로의, 무언가를 갉아내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