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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언의 나이트메어 1권


투고 | V노블





프롤로그


사방이 철골 구조물인 복도를 누더기를 입은 8명의 소년 소녀들이 걷고 있다. 그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쇠사슬 족쇄가 채워져 발을 옮길 때마다 기분 나쁜 차랑차랑 소리가 울렸다.

“어이. 거기! 빨리빨리 걷지 못해?”

그렇게 소리친 경비가 발을 들어 한 소녀를 발로 걷어찼다.
철제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뱉는 소녀가 떨리는 손으로 나머지 소년 소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본다. 그러나 겁에 질려 점점 뒷걸음질 치는 그들은 소녀를 도와줄 힘이 없다.

“얼른 일어나지 못해! 아직 쓴 맛을 덜 봤나?”

경비가 들고 있는 기다란 창을 소녀에게 들이밀었다. 창끝은 뾰족한 쇠붙이 대신, U자 형식의 기묘한 장치가 달려있다. 소년 소녀들은 그 무기의 무서움에 몸서리치며 시선을 돌렸다.
경비가 즐기기라도 하듯 U형태의 창을 내리꽂았다. 소녀의 가냘픈 목에 딱 맞는 크기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일어나!”

소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도저히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 못했다.

“흠.”

경비가 악랄한 미소를 머금고 창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지지직~!
눈앞에 섬광이 작렬하더니 옅은 플라즈마가 터져 나왔다.

“꺄아악──!”

U자 창끝에서 일어난 치사량에 준하는 전력이 소녀의 몸을 덮쳤다. 창에서 도망칠 수 없는 소녀가 온몸을 경련하며 발버둥 쳤다.
남은 소년 소녀들은 입술을 깨물며 증오어린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

그때 소년 소녀들 사이에서 분노에 휩싸인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죽어죽어죽어!”

“그만 하라고…….”

“꺄아악! 아악! 아아아──”

“그만해!”

벌벌 떠는 무리에서 한 소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갔다. 경비는 그 소녀를 미처 보지 못했고, 온몸을 내던진 소녀의 충격에 벌러덩 고꾸라졌다.
소녀가 엎어진 경비를 노려보며 재빨리 바닥에 쓰러진 소녀의 목을 누르던 창을 뽑았다. 전기충격이 멈춘 소녀의 목에서 연기처럼 옅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야. 괜찮아? 정신 차려!”

소녀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곧 죽을 것처럼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 자식이!”

어느새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난 경비가 분노에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린 놈 주제에 잘도 날 망신시켰겠다.”

“그만둬! 이 애는 기력이 없어.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그딴 건 내 알바 아니야! 실험체인 너희는 명령만 따르면 돼. 명령을 어기는 너 같은 불량품은 처분하면 그만이지!”

경비가 소녀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주먹을 강하게 내리쳤다. 소녀는 짧은 비명을 내뿜으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남은 실험체 무리는 두 소녀를 외면한 채 이 악몽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잘 들어! 너희들은 실험체야. 그리고 나에겐 실험체의 가치가 없는 것들을 처분할 권리가 있어! 마침 잘 됐어. 이것은 이미 가치가 없으니,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여주지.”

그 말에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을 간신히 일으켜 단검을 뽑아 소녀한테 다가가는 경비를 바라봤다. 아직까지 가늘게 경련하고 있는 소녀는 마수의 손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안 돼에──!”

“그만! 거기까지.”

소녀의 비명과 동시에 복도 저편 통로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단검을 제지했다.
모두의 이목이 통로에 서있는 남성에게 쏠렸다.

“루, 루스 관리소장님.”

경비병이 잽싸게 일어나 등등 꼿꼿이 세우고 경례를 했다.
철제 바닥을 밟는 뚜벅뚜벅 소리가 울렸다.

“경비병. 이게 무슨 소란이지?”

“그, 그게 이것이 명을 어기고…… 그리고 저것도…….”

뒷짐 지며 기품 있게 걸어온 루스 관리소장이 사태를 파악한 듯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부탁이야……. 저 애한테 먹을 걸 줘. 더는 버티지 못한다고.”

“음? 너 역시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텐데…… 다른 실험체 걱정이라니.”

“그런 거……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소녀는 필사적으로 관리소장한테 매달렸다. 관리소장이 날카롭게 소녀를 내려다봤다.

“실험체. 번호는?”

“……베타테스터 A701.”

소녀는 이빨을 악물고 자신의 번호를 댔다.

“호오. A 실험체인가?”

관리소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실험체 번호는?”

“베타테스터 C012입니다.”

경비가 말했다.

“그런가……? 상황은 대충 알겠군. 배가 고프단 말이지?”

“그래. 부탁이야. 당신들도 실험을 원한다면 우리가 죽는 게 불이익일 거 아니야?”

소녀가 무릎을 꿇어 간절한 눈빛으로 루스 관리소장을 바라봤다.

“흠…… 배가 고프다면 먹이를 줘야겠지? 경비병. C012를 데리고 가라. 먹이를 줘.”

경비가 고개를 딱딱하게 끄덕이고 C012를 짊어졌다.

“나머지는 실험장으로 가! 낭비한 시간만큼 이번 실험은 더 가혹할 줄 알아.”

루스 관리소장의 엄포에 소년 소녀 무리는 곧 널따란 실험장에 도착했다. 사방이 새하얀 벽으로 되어 있는 휑한 실험장에 도착한 소년 소녀들은 경비가 나눠준 무기를 한 개씩 들었다.
베타테스터 A701이 든 무기는 낡은 검으로 수많은 실험 속에 날이 뭉툭해졌다.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진 소년 소녀들은 두리번거렸다.

[그럼, 6293번째 실전실험에 돌입하겠다.]

루스 관리소장의 목소리가 방안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소녀는 검을 살짝 휘둘러보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네모반듯한 넓은 방 한 가운데 바닥에서 둥근 게이트가 열리고 원통형태의 철창우리가 올라왔다. 소년 소녀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그 철창을 본 순간 절망에 휩싸이고 말았다.
철창 안에는 괴 육성을 흘리는 각종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던 것이다.
어떤 놈은 수많은 다리를 꼼지락 거리는 긴 몸뚱이에 수백 개의 더듬이가 달려 있었고, 외형은 문어 같으나 다리 끝에 달린 뾰족한 바늘이 위협적인 놈도 있었다. 또 어떤 놈은 몸통은 없고 날개만 있어 철창 속 허공을 유유히 날아다녔다.

도무지 이 세계의 생명체라 볼 수 없는 괴물들은 하나같이 창살 밖에 있는 소년 소녀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듯 으르렁 거렸다.
그때였다. 베타테스터 A701의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금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던 경비가 허공에 설치된 다리를 타며 우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경비병의 손엔 정신을 잃은 베타테스터 C012 소녀가 들려있었다.

“자, 잠깐! 지금 뭐하는 거야.”

A701이 소리쳤다.

[네 뜻대로 배가 고프니 먹이를 주는 거다. 우리 나이트메어들도 너희처럼 굶고 있었거든.]

잔혹한 루스 관리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A701이 막연히 그 광경을 응시했다.
경비가 우리와 연결된 구멍으로 소녀의 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만 둬!”

괴물들이 감옥 위를 바라보며 기뻐하듯 울부짖었다.
경비가 A701을 보며 비꼬듯 씩 웃었다. 순간 C012의 눈과 A701이 마주쳤다. 평온한 미소를 지은 C012이 입술을 움직였다.

‘고, 마, 워─’

경비가 C012을 놔버렸다.

“안 돼에에──!”

낙하하는 소녀의 몸을 향해 수많은 이형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곧이어 뼈째 뜯기는 소리, 가죽이 찢기며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뿜어지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끔찍한 모습에 나머지 실험체들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어 방금 들어온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은 이미 굳게 잠겨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피와 살점들이 A701의 몸에 쏟아져 내렸다. A701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감옥 안에서 소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다. 여기서 살아나가고 싶다면, 나이트메어를 사냥해라. 그럼 제 6293번째 실전실험을 시작한다.]

모터가 도는 소리와 함께 창살이 실험장 밑으로 내려가며 수많은 이형 괴물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쳐 나왔다.
실험체들을 향해 달려드는 수백 개의 이빨과 발톱. 실험장 안은 순식간에 비명과 유혈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몇 분 후, 루스 관리소장은 실험장 앞에 서서 문이 열리는 걸 지켜봤다. 열리는 문 너머로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몇 명의 경비들은 이미 익숙해질 만도 했건만,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욕지기질을 했다.
루스 관리소장이 열린 문을 보며 박수를 쳤다. 틈 사이로 뭔가에 홀린 듯 걸어 나온 사람은 피범벅이 된 베타테스터 A701. 그녀 너머로는 실험체와 괴수들의 사체가 실험장을 뒤덮고 있었다.

“축하한다. A701.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A701은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며 어둠이 술렁이는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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