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은 그가 호위무사로 전직한 이유. (2)
[제발! 이제 그만해……]
[널 위해서 그런 거다.]
[싫어! 이러지 마…….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갑자기 이상해졌어!!]
[……이상해진 건 너 아닌가? 이게 진정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시, 싫어…… 그만……! 으아아아아아악-!!!]
이곳은 코로나 타운의 한 민가.
“헉……”
더벅하게 기른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 루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깼다.
“또 그 꿈이냐……”
루크는 한시라도 빨리 꿈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런다고 기억이 머릿속에서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젠장……”
루크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덧없는 삶. 루크는 그저 의욕 없는 잉여 인간일 뿐이었다.
꼬르륵-
난데없는 배꼽시계가 울리자, 루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있는 삶은 감자를 집어 들었다.
3일전, 마스터가 찾아와 던져주고 간 감자. 바로 먹으려고 했었지만, 먹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탁자 위에 던져놓은 것이었다.
루크가 감자를 대충 입에 쑤셔 넣자, 슬슬 목이 막혀왔다. 그래서 루크는 마찬가지로 옆에 놓인, 3일 전에 떠다 놓은 물을 단숨에 꿀꺽꿀꺽- 마시고는 대충 씹어 감자와 함께 넘겨버렸다.
맛이야 뭐 어때. 그래도 이 걸로 이제 3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휘이이이잉-
깨진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자 느껴지는 추위에 루크는 몸을 떨었다.
“다시 자야지.”
그렇게 중얼대며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던 루크는 다시 잠을 청하려다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집의 구석에 모셔져 있는 사당의 향로에 불이 꺼져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할멈, 역시 안 오는 건가……. 어쩔 수 없구만.”
가볍게 혀를 찬 루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사당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도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기를.”
루크는 불이 꺼져가는 사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잠시 묵념을 한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루크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집 밖으로 나섰다.
“윽……”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간 루크는 눈부신 태양빛에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가리다가도-
“할멈……?”
이상한 낌새를 느껴 미간을 찌푸리고는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
역시, 아무도 없다.
‘그냥 다시 들어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루크는 불이 꺼져가는 사당의 향로가 눈앞에 아른거리자, 이내 한숨을 쉬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이게 얼마만의 외출인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루크는 코로나 타운의 주민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상점가로 향하기로 했다.
루크는 팔을 들어 눈을 가린 채,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멍하니 걷기만 했던 것 같다.
“왜 아까부터 걷기만 하는 거야?!”
뒤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멍하니 걷던 루크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상점가는 또 어디고?”
그런데 이게 웬걸,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한 곳에 나와 있었다. 주변에 바다가 보이는 것을 보니 해안가 쪽인 것 같기도 하고……
루크는 10년 동안 살았던 코로나 타운의 지리조차 모르고 있었다. 밖에 나가질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방금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루크는 한숨을 쉬고는 근처의 나무 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볼……’
루크는 나무그늘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지만,
“엄마, 저 형아 머리카락이 까매! 옷도 신기하고!”
“쉿, 이리오렴.”
주변을 지나가던 한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루크를 가리키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아이를 급하게 뒤로 숨겨버렸다.
‘그, 그렇겠지요.’
루크는 그들을 충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스터에게 주워지고 이 마을에 살게 된지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 마을 사람들과의 안면이 전무했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자신의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는 어디 가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으니……
‘이걸 어쩐다…….’
루크는 자신이 경계당하고 있으니, 길을 물어볼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오빠”
‘그냥 집에 갈까?’
“오빠?”
‘그리고 할멈한테 한번만 봐달라고 싹싹 비는 거야.’
“오빠!”
“뭐, 뭐야……?”
누가 자신을 부르는 것도 모르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루크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오빠 누구야?”
“그러는 넌 누구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니, 웬 여자아이가 루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밝은 갈색머리칼을 양 갈래로 묶은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오빠, 어디서 왔어?
“여기서 산지 10년 됐는데.”
여자아이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나 12살인데 오빠랑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계속 집 안에만 있었거든.”
“일도 안 하고?”
“그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루크는 귀찮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여자아이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하얀 원피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루크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오빠는 언니? 오빠?”
“실컷 오빠라고 불러놓고 무슨 질문이 그러냐…….”
여자아이의 엉뚱한 질문에 루크는 머리가 아파져 이마를 짚었다.
“그치만, 머리를 묶었는데.”
“자르기 귀찮아서 그래.”
“얼굴도 뽀얀데?”
“그건 날 때부터 그랬어.”
“얼굴도 여자아이처럼 예쁜 걸.”
“…….”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 루크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오빠는 왜 이런 곳에 앉아 있는 거야?”
“상점가에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잃어버렸어.”
“오빠 길치야?”
“……아니거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여자아이 때문에 루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것을 본 여자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그럼 내가 상점가에 데려다줄게!”
천진난만하게 웃던 여자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루크의 팔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루크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거칠게 여자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런 이상한 사람이랑 같이 다니면 부모님한테 혼나.”
“엄마랑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는걸.”
꽤나 명쾌한 대답에 루크는 묘한 동질감을 느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멈추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도?”
“응?”
하지만 여자아이가 돌아보자, 이내 한숨을 쉬며 대충 얼버무리고 사과를 했다.
“아니, 아무것도. 미안하다. 괜한 말을 했구나.”
“으응, 괜찮아. 얼른 가자!”
여자아이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루크의 팔을 잡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대견한 아이인가.’
루크는 자신을 이끌며 걷는 여자아이를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며 정말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랑 살고 있는데?”
여자아이에게 끌려가는 듯이 걷던 루크가 물었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이 아이가 혼자 살고 있다면…… 이라는 생각과 함께, 루크는 자신이 마스터 라트리아에게 거두어졌던 그 날을 떠올렸다.
‘일이라는 걸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형편이 좀 나아지면 이 아이를 거두어서 동생처럼……’
“응! 지금은 언니랑 같이 살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던 루크는 갑자기 몸을 흠칫- 하고 떨었다. 자신이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10년 동안 일 좀 하라는 할멈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 했는데. 잠깐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런 꼴이라니…….’
루크는 자신의 물음에 미소로 답하는 여자아이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는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