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그녀의 호위무사는 백수니트방구석폐인





만사 귀찮은 그가 호위무사로 전직한 이유. (5)


똑똑똑-

루크가 이불을 덮고 다시 잠을 청하려던 그 때,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구만.”

누가 찾아온 건가?

“……칫.”

루크는 혀를 차면서 이불 안에서 나왔다. 장담컨대, 이 마을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루크가 소속되어 있었던 길드에서 루크가 방구석에만 박혀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마스터가 탐탁찮게 여겨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처럼…… 다시 마스터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잔소리를 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너무 모습을 보이지 않아 살아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러 온 것인가.

“할멈, 이제 좀 그만…!”

몸을 일으킨 루크는 짜증을 내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왠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

루크는 일단 문을 닫은 후, 침대에 앉아 눈을 비볐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가?

그래, 아마도 그런 이유겠지. 이 구역에 있는 민가들은 전부 다 마스터가 아예 전세를 낸 건물이다.

고로 아직 경제적으로 불안한 젊은 모험가들이 마스터에게 집을 빌려, 이 민가 밀집 지역에 많이 살고 있었으니…… 사람을 착각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일도 안 하고 방에만 있는 백수라는 것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루크는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니 길드의 누구도 그가 무엇을 하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루크는 여자가 얼른 돌아가길 빌면서 다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똑똑똑-

“루크 씨? 계세요?”

누구냐. 그 루크라는 놈. 밖에서 누가 너 찾더라. 빨리 마중 나가줘라.

……잠깐, 이불로 전신을 덮고 있던 루크는 눈을 번쩍 떴다. 루크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루크는 다시 재빨리 몸을 일으켜 마스터가 감자를 던져 깨트린 창문에 목을 집어넣어 문을 두드리고 있는 여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눈부신 금발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벚꽃색이 되는 투톤 컬러 머리칼에 눈 밑의 눈물점이 특징인 소녀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루크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놀고 있던 그의 왼손이 문고리로 향하던 팔을 콱- 잡아서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

루크가 모험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스터에게 주워진 뒤에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물론 나와서 일 좀 하라는 말도 들은 체 만 체. 이젠 거의 길드 내의 모든 모험가들이 그를 잊거나 포기 한 상태였고, 루크는 점점 길드에서 투명인간이 되어갔다.

하지만 길드원에서 단 한명. 잉여인간 루크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 할멈이 보낸 건가……?’

그래.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분명히 마스터가 누군가를 시켜 어떻게든 자신의 즐거운 백수생활을 방해하려 한 것이 분명하다.

루크는 이 문을 연다면 꽤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냥 없는 척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로 걸어가……

찰칵-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하려했으나, 귀에 들리는 불길한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루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문이 열리고 있었고, 다시 문을 잠그러 가기 위해 몸을 날리려 했을 때는 인터폰 화면으로 봤던 소녀가 이미 방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자물쇠 따는 건 특기라서.”

뭔가 업신여기는 듯한 미소를 띤 소녀의 손에는 해정도구(Lock Pick)가 들려 있었다.

“당신 뭐야……?”

있는 힘껏 여자를 꾹꾹- 밀어내려고 해보지만, 여자는 딱- 버티어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크는 결국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사람 불러버린다!”

“당신, 일도 안 하고 친구도 없어서 투명인간 급으로 존재감이 없다고 들었는데? 부른다고 한들 사람들이 오기야 하겠어?”

“윽……”

루크의 비장의 수는 팩트 폭행에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그렇다. 자신은 투명인간 취급 받을 정도로 존재감도 없고, 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노는 처지라 길드 내에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기도……?

뭐, 당연히 불러도 누군가 올 리가 없지.

루크는 그녀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이 여자가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역시 마스터가 보낸 스파이인가!? 자신에게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앉아봐.”

방에 의자가 없었기에, 루크는 소녀를 침대에 앉혔다.

“어머, 방구석폐인이라도 매너는 있네.”

“할…… 마스터가 시켜서 온 거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잘 아네.”

“쳇…… 그 로리 할멈……!”

‘로리……?’

제인은 루크가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뭐,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뭐, 일단……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고.”

“응…….”

루크가 턱을 괴며 말하자,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돈에만 눈이 먼 도둑고양이 같은 년!

 

이곳은 국가공인 1위 클랜 황혼의 요정.

10대 후반의 소년과 소녀들은 마치 죄수를 연행하듯, 밧줄에 묶인 한 소녀를 연행하고 있었다.

허리까지 웨이브가 있는 금발과 벚꽃색의 투톤 컬러, 푸른 눈동자, 그리고 뭔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듯한 날카로운 인상의 소녀였다.

“이거 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밧줄에 묶인 소녀가 반항하자, 소녀를 연행하던 무리의 한 소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네 잘못을 몰라서 묻냐? 닥치고 어서 걸어!!”

소년은 윽박지르듯 소녀에게 말하고는 소녀의 등을 거세게 밀쳤다. 소녀는 최대한 버텨보지만,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녀가 도착한 곳은 건축 방식이 특이한 거대한 건물이었다. 얼핏 보면 엄청 신자가 많은 교회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밧줄에 묶인 소녀와 그녀를 연행하는 소년소녀의 무리가 건물 주변에 넓게 펼쳐진 마당의 잔디를 밟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밧줄에 묶인 소녀에게 쏠렸다.

그리곤 소녀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얼씨구”

“이번엔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저런 꼴이래?”

“그거야 들어보면 알겠지. 어쨌든 빨리 법정으로 가보자구.”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건물 안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던 사람들도…… 모두 기대된다는 얼굴로 웃으면서 일체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끌려가는 소녀는 죽을 맛이었다.

“……클랜 안에서 평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일을 하고 싶다기에 받아줬더니…… 뒤통수를 쳐?”

“그렇게 열 올리지 마.”

오렌지색 머리칼에 주근깨를 가진, 어깨에는 꼬리가 두 개 달린 조금 특이한 고양이를 얹고 있는 소녀 도로시가 금발머리 소녀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내자, 옆에 있던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의 안경을 쓴 소년, 펠릭스가 그녀를 말렸다.

“칫, 너 운 좋은 줄 알아. 대신 오늘 일기에 적어주겠어!”

도로시는 밧줄에 묶인 소녀를 이끌고 마당에 펼쳐진 잔디밭을 걸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의 계단을 타고 지하로 향했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보면 몰라? 클랜 자치 법정이지.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냐.”

밧줄에 묶인 소녀는 깜깜한 통로를 몇 분 동안 걸었다. 이 길은 그녀가 여러 번 드나들었던 곳이었지만, 절대로 익숙하지는 않은 장소였다.

지하에는 큰 문이 있었다. 밧줄에 묶인 소녀를 연행하던 소녀는 손잡이를 당겨 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밧줄에 묶인 소녀는 강렬한 빛에 눈을 가리고 싶었지만, 손이 묶여 있는 형편이라 눈을 가릴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눈을 꼭 감았다.

눈을 감지 않았다면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밝기를 가진 빛이었다.

그리고 점차 빛에 적응이 된 소녀는 지진이 났을 때,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혀 있다가 일주일 만에 겨우 구조된 사람처럼 조심스레 눈을 뜬다.

소녀가 눈을 뜨자-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둑고양이! 또 너냐!”

“이번엔 뭘 훔쳤냐!?”

“죽여라! 추방해라!”

소녀가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왕궁에나 있는 파티장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방이었다. 이곳은 클랜 내에서 소위, ‘자치 법정’이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원래 규율을 어긴 자의 처벌은 국가기관인 협회에서 맡지만, 이런 대형 클랜 같은 경우에는 자주적으로 소속 헌터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클랜 자치 법정 제도‘였다.

소녀의 눈앞에는 강인한 인상의 백발노인을 중심으로…… 둥근 방의 모양을 따라 고리형식으로 만든, 책걸상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서 만든 방청석에 클랜의 헌터들이 둘러앉아서 갖은 욕설을 퍼부어대며 소녀를 비난하고 있었다.

“꿇어.”

“윽……!”

도로시가 금발머리 소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확- 아래로 잡아당기자, 금발의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 꿇었다.

“이제부터, 재판을 시작하겠다.”

강인한 인상의 노인이 들고 있던 망치를 두드렸다.

“원고는 증언하라.”

노인이 도로시를 향해 손짓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희 파티는 어제 도둑고양이와 함께 던전 탐험을 했습니다. 그녀의 평판이 클랜 내에서 얼마나 좋지 않은지는 알고 있었지만,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동행했습니다.”

그녀는 분노에 찬듯한 눈빛으로 피고인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의도적으로 던전의 몬스터를 깨워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혼자 보물을 챙겨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발칙한 도둑고양이에게 엄벌을!”

소녀가 분에 찬 얼굴로 소리치자,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제는 묶여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피고는 고개를 들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금발머리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피고의 이름이 제인이 맞는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제인은 고개를 들었다. 자, 원고의 증언이 끝났으니 이제 그녀의 차례다.

“피고의 반론은…… 듣지 않겠다!”

“네에에?!”

하지만 재판장이 내뱉은 뜻밖의 발언에, 제인은 경악하고 말았다.

“자, 잠깐만요…… 제 얘기도 좀……!”

탕!

“지금까지 자네가 이 곳에 온 것이 몇 번째인 줄은 아는가!”

“꺗……!”

제인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려다 제 1위 클랜 ‘황혼의 요정’ (Twilight Elf)의 마스터인 마스터 보어리의 망치질에 목을 움츠렸다.

재판장…… 마스터 보어리가 역정을 내자, 제인은 한숨을 쉬었다. 터놓고 말하자면, 제인은 클랜 법정에 온 것이 이번이 일곱 번째다. 그만큼 클랜 내에서 트러블을 많이 일으켰다는 소리다.

“마스터……”

“어허, 나는 지금 법정의 재판장이다!”

“아니, 그게 존경하는 재판장님!”

탕!

“꺗……!”

“피고의 반론은 듣지 않겠다고 했을 터!”

“…….”

웅성웅성-

재판장이 역정을 내니, 방청석에 앉아 있던 헌터들이 웅성댔다.

쾅!

“방청객들은 조용히. 그리고 피고는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도록 하라.”

법정은 조용해졌다.

“피고…… 헌터 제인은 사냥 중, 제 3 규율(다른 헌터와 힘을 합쳤다면 보물을 균등히 나눠가져라.)와 제 4 규율(남에게 피해 끼치지 마라.)……을 어긴 것을 인정하는가?”

“네……”

제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좋다……”

탕탕탕!

재판장은 가볍게 망치를 세 번 두드렸다.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 그녀의 헌터 랭크를 박탈하고 클랜에서 추방한다!

 



 

“아니, 마스터! 이게 말이나 돼요?! 추방이라니!”

헌터 랭크 강등과 추방이라는 징계 처분이 내려진 뒤, 제인은 마스터 보어리의 방으로 따라가 거세게 항의했다.

높은 랭크를 가진 헌터는 보상이 엄청난 의뢰를 받을 수도 있고, 아직 공략이 되지 않은 던전이나 미궁에 도전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진다.

엄청난 타이틀인 것이다. 하지만 제인은 최하위 랭크인 F랭크. 소위말해 견습생으로 강등당해 버렸다.

C랭크 미만의 헌터는 던전이나 미궁 공략이 허가되지 않았고, E랭크부터 잡스러운 의뢰를 받는 것이 허락 되었으므로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하기 전 까지는 억지로라도 아카데미의 견습생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굳이 아카데미로 갈 필요는 없네. 이곳은 제 1위 클랜 ‘황혼의 요정’…… 웬만한 아카데미 정도의 시스템은 다 갖추고 있으니……”

“하지만……!”

그렇지만 자신이 누군가…… 지금은 헌터 랭크를 박탈당했다고는 하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A랭크 헌터 아니었던가.

A랭크로 승급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견습생이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클랜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제인이 몸담고 있는 이 클랜은 국가 내에서 꽤 영향력이 높은 클랜. 때문에 들어오는 일거리도 많았다.

“아니, 마스터! 몇 번을 생각해도 추방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요!”제인이 답답한 듯 소리치자, 마스터 보어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이상 뻔뻔해질 필요는 없다네.”

마스터 보어리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나는 자네 같은 유능한 헌터가 떠나는 것은 원하지 않아. 자네에게 꼭 이루어 내야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네. 지금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자네에게 유예를 주고 있는 셈이지.”

마스터 보어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인은 어느새 말이 없어졌다.

“나도 자네의 사정은 이해하네. 하지만…… 아무리 한시가 급하다고 해서 양심을 속이면서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패배다.

제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스터의 뛰어난 말주변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끼익-

문 앞에서 멀뚱히 서 있던 제인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문고리를 비틀었다.

“…….”

앞으로는 그냥 불만 가지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 목표 달성이 꽤나 늦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마스터의 방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

“잠깐.”하지만 마스터 보어리가 불러 세웠기에, 제인은 문을 열고 방을 나서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로봇처럼 달그락- 달그락- 목이 절도 있게 꺾인다.

“무슨…… 일이시죠?”

제인이 바라본 마스터 보어리는 살며시 웃고 있었다.

“3달 만에 A랭크로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하겠나?”

마스터 보어리는 손가락 3개를 쫙- 펴며 대답했다.

“3달?!”

제인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3달 만에 복귀할 방법이 있긴 한 건가요?

제인의 말에 마스터 보어리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 특권으로 어떻게든 해주지. 그래서…… 클랜을 나갈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도록 하게.”

“……할게요!”

제인은 마스터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쾅- 치며 소리쳤다.

 

 

 

마스터 보어리가 제안한 것은 3달 동안 클랜 내의 견습생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으며 잡일 또한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실력은 좋지만 그게 문제라네. 좀 더…… 음, 협동심이라던가, 그런 걸 키울 필요가 있네. 초심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시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우선 헌터 랭크가 높아야 한다. 그렇기에 제인은 랭크를 되찾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걸레질을 했다.

추방당했을 터인 제인의 등장으로 클랜은 한동안 술렁였다.

추방자가 왜 여기에 있냐느니, 쟤가 소문의 도둑고양이라느니, 생긴 것도 남자 잘 후리게 생겼다느니, 임자 있는 남자만 골라서 훔쳐간다는 별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퍼진 상태.

가시방석인 교실에서 어찌어찌 수업을 끝낸 제인은 갑갑한 한숨을 내쉬며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이었다.

견습생 클래스에서 가르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전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다 아는 내용을 왜 다시 들어야 하지?’ 라는 의문과 함께 화도 났다.

뭐, 3달 정도만 수업을 들으면 A로 랭크로 돌아갈 수 있으니, 조금만 참을까.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나 참을 수가 없어 대걸레를 집어 던지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복도에 있는 헌터들의 시선이 전부 제인에게 쏠렸다.

“으윽……”

제인은 난처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기숙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른 침대에 누워서 이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머.

제일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버렸다.

자신을 법정으로 넘긴…… 성깔 있는 소녀 헌터인 도로시와 마주친 것이다.

“풉…….”

도로시는 F랭크로 강등 당해 견습생 신분으로 돌아간 제인을 비웃었고, 제인의 얼굴은 빠직- 하고 일그러졌다.

얕은 조소로 강력한 한방을 제인에게 선물한 도로시는 어깨에 얹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왠지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제인을 뒤로한 채, 점점 멀어져갔다.

“일기에 적어야겠어.”

제인은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못했다. 일단 먼저 원인을 제공하고 잘못을 한 것은 자신이 맞으나, 도로시의 저런 태도를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었다.

왠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을 수가 없었던 제인은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아, 그래서 헌터를 그만두고 이런 곳으로 온 건가.”

제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스터가 일자리를 준다고 해서 따라온 거라구. 나는 내일부터 이 마을에 살면서 일을 하게 될 거야.”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뭐가?”

“럼블 파티 말이야. 세간에서는 ‘답이 없다.’라며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제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너 A랭크라며? 여기는 너 같은 고급 인력이 올 곳이 아닐 텐데.”

루크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잠자코 듣고 있던 제인은 이내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렸다.

“갈 곳이 없으니까 온 거 아냐! 그리고 당신은 일도 안 한다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양심에 찔리지도 않아?”

“별로……”

“어휴”

루크의 뻔뻔한 태도에 제인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쫓겨났던 길드에서 일을 하던 관심 없지만…… 왜 굳이 내 집에 와서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루크가 무심하게 묻자 금발의 소녀, 제인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보였다.

“……내 지갑?”

왜 이게 여기서? 라고 묻는 것 같은 얼굴로, 루크는 지갑과 소녀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아, 너……”

소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돌려받고 싶으면 잡아보시지!]

자신의 지갑을 훔쳐간 여자다.

“이제 기억났어?”

어색하게 웃는 소녀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 미안. 그런 건 좀 서툴러.”

“왜 찾으러 오지 않은 거야?”

제인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묻자, 루크는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안 열어봤냐?

“……?”

“지갑, 안 열어 본 거냐?”

루크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제인은 멀뚱멀뚱 서 있다가 천천히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비었어…….”

충격적인 사실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쫓아오길 바랐으면 저걸 훔쳤어야지.”

루크는 향로 피워놓은 향을 가리키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뭐, 부외자의 눈으로 보면 저런 가느다란 막대기보단 지갑이 더 눈에 띄었겠지만. 텅 빈 지갑 훔쳐놓고 ‘돌려받고 싶으면 잡아보시지!’ 라니.”

“…….”

“돌뤠붿고쉪프몐 재배봬시지~”

​“​이​이​이​이​익​…​…​!​”​

자신이 했던 말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는 루크를, 제인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그래서, 남의 지갑을 훔쳐놓고 뻔뻔하게 다시 나타난 이유는?”

“……당신이 나와 팀을 짜줬으면 해서.”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루크는 제대로 듣지도 않았는지, 맹한 얼굴로 귀를 파고 있었다.

“당신, 듣자하니 검술이 특기라고 들었는데.”

“…….”

“경호원으로 고용해주지 못할 것도 없……”

물론 제인이 무슨 말을 하던, 대충 듣고 넘길 생각이었지만 루크는 그러지 못했다.

“아하, 그러세요.”

루크는 다짜고짜 제인의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제인은 벙찐 얼굴로 루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루크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오싹함을 느낀 제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샌가 자신이 루크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역시 거절할란다.”

하지만 루크는 이내 메마른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뭐?”

“거절한다고. 미안하지만 나가주라.”

“왜, 왜 이러는 거야!”

“넌 몰라도 돼.”

“이해를 못하겠는데!”

“나가기나 해.”

루크가 제인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제인을 거칠게 일으킨 뒤, 필사적으로 제인을 방에서 쫒아내려고 했다. 제인이 이유를 물었지만, ‘나가.’ 라고 일관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납득하지 못한 제인이 필사적으로 버티려고 했으나, 루크는 마치 사람이 변한 것처럼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힘으로 제인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야기 좀 들어봐!”

제인이 소리치자, 순간 방에 침묵이 감돌았다. 제인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루크를 바라보았다.

“당신, 10년동안 일도 안 하고 놀고 있다며?! 완전 인생 낭비라고 생각 안 해……?”

“아, 그러셔? 근데 어쩌나. 난 아직 내가 덜 놀았다고 생각하거든.”

“평생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살 거야?”

“그래. 나는 평생 백수로 살 거라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 찾아봐.”

하지만 시큰둥한 얼굴을 한 루크는 그 한마디와 함께-

쾅-

제인을 내보내고 문을 거세게 닫아버렸다.

“…….”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