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은 그가 호위무사로 전직한 이유. (6)
럼블 파티(Rumble Party)로 돌아간 제인은마스터 라트리아에게 하소연 했다.
“도대체 뭐야아! 기껏 찾아갔더니 내쫓기나 하고! 완전 어이없어!”
화를 내는 제인의 모습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요염한 백발 여인, 마스터 라트리아는 키킥- 하고 웃는다.
“흥…… 평생 백수로 살라지……!”
“하하하…… 그러면 좀 곤란한데……”
“무리에요! 길드 가입을 위한 조건이 그 백수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거라니…… 저는 못하겠다구요.”
“그것 참 곤란하군. 그럼 포기할 거야?”
“……제가 언제 포기한다고 했나요. 말이 통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당황했을 뿐이라구요.”
제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마스터 라트리아가 씨익- 웃었다.
“훗, 그렇게 나와야지…… 게다가 내가 중요한 것을 깜빡한 모양이군. 그 녀석은 날붙이를 정말 혐오하거든.”
검술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이에 제인이 ‘하아?’ 김빠진 소리를 내며 마스터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미리 좀 가르쳐줘야할 것 아니에요!”
“미안허이.”
일단은 분노가 앞섰지만, 궁금한 점도 있었다.
“……검술이 특기 아니었어요? 왜 날붙이를 싫어하는 건데요?”
제인의 물음에 그녀가 술 취한 사냥꾼 앞에서 만났던 여자아이, 마스터 라트리아는 다시 웃을 뿐이었다.
“뭐, 그럴만한 사정이 있네.”
“어휴…… 그런 잉여 인간이랑 팀을 짜라니……”
마스터 라트리아의 말에 제인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럴만한 사정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걸까? 제인은 아까 보았던 루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 하얗게 질린 얼굴은…… 아마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이겠지.
아무리 잘 쳐줘봐야 자신보단 상황이 나쁘진 않을 텐데. 고작 그런 것 가지고……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키킥……”
“왜 웃어요?”
마스터 라트리아가 갑자기 웃기에, 제인이 그녀를 째려보며 묻는다.
“그대, 왠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단 얼굴을 하고 있어서 말이지. 사람마다 안 좋은 기억은 하나씩 있는 법이니…… 그 녀석의 행동을 너무 담아놓지 않도록 해. 내가 대신 사과하지.”
“…….”
제인은 입을 비쭉 내밀었다. 루크는 그녀를 할멈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마치 사람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 꼭 노파 같았다.
“그런데 말이죠. 마스터 라트리아.”
“그냥 마스터라고 불러도 돼. 너는 이미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니……”
“네…… 마스터. 그 루크라는 사람은 마스터를 로리 할멈이라고 부르던데……”
그 말에 라트리아는 하하하! 하고 웃는다.
“뭐…… 맞는 소리이긴 하지.”
“네……?”
기겁하는 제인.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는 2000세가 넘으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 2041세 정도 됐나……?”
“뭐, 뭐라는 거야 이 사람……?”
거짓말도 거짓말답게 해야 할 거 아냐. 이 외모에 2041세라는 건 말도 안 되고 더더욱 그 나이 먹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10살 때 산에서 굴러 떨어지다가 풀 한줄기가 입으로 들어와서 모르고 삼켰는데 그게 하필이면 불로초였지 뭐야~”
“불로초가 이런 재미없는 인간한테?!”
“아하하, 그런가? 참고로……”
마스터 라트리아는 요염하게 미소짓더니,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10대 초반의 유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게 내 본모습이라네.”
“이거 완전 로리 할멈이잖아!”
“하하하- 이런 로리가 말을 걸어봤자 상대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모습을 살짝 바꿔봤지…… 어쨌든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찾아가보도록 해라. 정 안되겠으면 그 야한 몸으로 유혹이라도 해서 녀석을 끌어내 보라고……”
“야, 야한 몸이라니……! 제 몸은 그렇게……!”
라트리아의 말에 제인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유녀의 모습이 된 마스터 라트리아는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아하핫! 농담~ 사실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 뭔데요?”
마스터 라트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똑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씨…… 아침부터 또 뭐야……!”
듣기 싫은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루크는, 짜증을 내며 문 앞으로 갔다.
“아침부터 어떤 녀석이 내 잠을 방해……!”
“나야.”
짜증을 내며 문을 열자, 어제 자신이 내쫓았던 소녀…… 제인이 서있었다.
“돌아가.”
루크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마스터한테 이거, 맡아두고 있는데.”
제인이 루크에게 붉은 돌멩이 같은 것을 내밀었다.
“그, 그건 폭발석……!”
제인이 내민 붉은 돌멩이를 본 루크가 기겁을 하며 그것을 빼앗으려 들었지만, 제인은 재빠르게 손을 빼고는 그것을 던지려는 시늉을 했다..
“마스터 말로는 이 집 하나는 가볍게 날려버릴 위력이라고 들었어.”
“자, 잠까아아안! 그만둬!! 진짜 날려버릴 셈이냐!?”
제인이 가지고 있는 붉은 돌멩이는 ‘폭발석’이라는 광물로 1년 내내 용암이 흐르는 섬의 광맥에서 발견된 폭발하는 돌멩이다.
폭발의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약간의 충격을 주기만 해도 폭발을 일으켜서 원석 자체가 폭탄으로 쓰이는 일도 많은 광물이다.
제인이 가지고 있는 폭발석의 크기는 주먹 정도의 크기는 되어 보였으니, 그녀의 말대로 이 집 하나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워, 원하는 게 뭐야……!”
“날 들여보내줘.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
“……알겠……”
“그리고 존댓말도.”
“아, 알겠습니다…… 다,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하하하……”
루크는 제인을 얌전히 집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서 무슨 일이신지요……”
루크는 자신의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제인을 향해 허리를 굽힌 채로 손을 비벼댔다.
“나랑 팀을 맺는 거야.”
“……싫습니다만.”
“…….”
제인이 품에서 폭발석을 꺼내 던지려는 시늉을 하자, 루크가 다급하게 소리를 치며 그녀를 말렸다.
“으아아악!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집을 날려먹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해주길 바라.”
“그런다고 얻을 게 뭐가 있어서……!”
“음……?”
“뭐가 있어서요……”
제인이 무슨 말이라도 했냐는 듯이 쳐다보자, 루크는 바로 비굴해졌다.
“내가 길드에 들어오는 조건. 그래, 소위 ‘입단 테스트’라고 하지……? 그게 당신을 집 밖으로 꺼내고 나와 팀을 짜게 하는 거야. 별 다른 이유는 없어.”
“정말 그것뿐이냐……?”
“음……?”
“정말 그것뿐인가요……”
루크의 물음에 제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갑자기 화가 치미는데……”
“으악! 제, 제발 진정해주세요!!”
“그냥 얌전히 오는 게 어때……? 이 집도 사실은 마스터에게 빌린 거라면서? 어제 마스터한테 폭파시켜도 된다는 약속도 받아냈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거짓말! 이 집 하나를 사는데 자그맣지 1000만 골드라고……! 그런 걸 그렇게 쉽게……”
“아니, 날 못 믿나보네? 그리고 또 존댓말은 어디로……”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100% 신뢰하고 있습니다! 존댓말이 빠졌던 건 사실 착각입니다!!!”
‘후훗……’
제인은 집 때문에 비굴해지는 루크를 보며, 이대로 더 놀려먹을 수 있겠다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실컷 골려주고 이참에 어제 자신을 내쫓았던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과를 받을 셈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길드에 얼굴만 살짝 비추라구. 그게 그렇게 어려워?”
제인이 말하자, 루크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게……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좀……”
“뭐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확실하게 대답해!”
“으아아! 제발 자비 좀!!”
제인이 폭발석을 든 손을 높이 들자, 루크가 한차례 비명을 지르고는 땅에 머리를 박고서 개미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마스터는 당신이 끝까지 거절하면 이 집을 날려버려서라도 당신을 데리고 오라고 했어. 어차피 이 집이 사라지면 당신은 알거지 신세잖아? 그럴 바에야 집도 지키고 나도 좀 도와주고…… 이게 윈윈 아니겠어?”
“아니…… 그래도 난……”
“넌……?”“나한테는 일 같은 걸 하면서 살 자격 같은 건…… 게다가 이대로는 ‘그 남자’의 의도대로……”
“무슨 소리야? 좀 크게 말해.”
루크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제인이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다.
“흥…… 나는 계속 기회를 줬는데 거절한 건 당신이라구? 이젠 마스터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집을 폭파하는 수밖에 없네…….”
제인이 다시 겁을 주려는 듯, 팔을 높이 치켜들자……
“더, 더 이상은 못 참아! 억지로라도 빼앗아주마!!”
드디어 눈이 돌아간 루크가 제인을 덮쳤다.
“내놔! 내놔! 내놔!!!”
“앗…… 잠깐……! 어딜 만지는 거야……?!”
“그걸 내려놔!!”
루크는 폭발석을 빼앗으려고 하고, 제인은 폭발석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다.
그렇게 격렬한 몸싸움을 하던 도중……
폭발석을 빼앗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루크가 제인의 팔을 속박해 짓눌렀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제인은 폭발석을 놓쳐버렸다.
툭-
““아……””
딱딱한 나무 바닥에 떨어지는 폭발석, 그리고 탄식하는 두 사람……
“어, 어떡해……!”
“이런 미ㅊ……”
입이 떠억- 벌어진 루크는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겨우 참고, 사당과 제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살짝 고민하고는,
“젠장……!”
당황한 얼굴로 입을 가리고 있던 제인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자신도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쾅-!!!
폭발로 인해 루크의 집이 불길에 휩싸였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머리를 더벅하게 길러 묶은 청년, 루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집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와, 집이 사라졌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반면, 루크의 옆에 서 있던 소녀, 제인은 개운한 얼굴로 손을 털며 말했지만-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스터한테 들키면 끝장인데……’
사실 그녀 또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아아아아아아! 이게 지금 제정신이냐? 아아아앙?!”
정신이 반쯤 나간 루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제인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물어 내! 내 집 물어내라고! 으아아아아!! 내 즐거운 백수 생활이이이이?!”
루크는 제인의 멱살을 잡아 흔들다 말고, 주저앉아서 머리를 싸맸다.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고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적당히 겁만 줄려고 했는데 당신이……”
“닥쳐어어! 그런 위험물을 민가에 들고 온 게 상식에 어긋나는 거라고!! 젠장! 가슴 큰 금발 여자는 멍청하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사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크가 소리치자, 금발 소녀 제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실례네! 어, 어찌됐든 결국 집은 사라졌고. 당신은 이제 살 곳이 없잖아? 그러니 길드로 돌아오는 것을 추천…… 하는 바인데.”
“…….”
루크는 자신의 집이었던 잔해들을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 이상하다…… 분명 자신의 신난 백수 생활은 영원토록 계속될 터였는데……
“으아아아아아악!!”
루크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마을 전체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자, 옆에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제인은 흐르는 식은땀을 미처 다 닦지도 못한 채 다가와 조심스럽게 루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하…… 저기, 미안.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
“…….”
매서운 눈으로 제인을 쏘아보던 루크는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사, 사당……!”
그리고는 다급한 얼굴로 기어가 집의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그러다가 다쳐!”
루크가 폭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뜨거운데다, 날카로운 잔해들 속에 손을 거침없이 들이밀었다. 루크의 손과 팔에 작은 상처들이 늘어가자, 그것을 보다 못한 제인이 루크를 말려보았지만,
“놔.”
루크는 조용히 제인의 팔을 뿌리치고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계속 잔해를 파헤쳤다.
쏴아아아-
그런 루크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던 잔해들의 불도 거의 꺼져버렸고, 루크는 잔해를 파헤치는 것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폭발에 사당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집의 구석에 소중하게 모셔놨던 사당은 형태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거라고는 청동제 향로뿐이었다.
“…….”
“저기…… 괜찮아……요?”
“아, 괜찮지. 물론 괜찮고말고.”
자신의 눈앞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향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루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제인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시 말해두겠지만. 나는 일 같은 거 하기 싫어. 설령 하게 된다고 해도 너랑은 절대 하기 싫거든?”
“정말 실례되는 말을 잘도……”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신경 좀 꺼줄래?”
루크는 삐그덕- 경직된 안면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웃어보이고는 제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무, 무서워…….’
제인은 그 썩은 웃음을 보고 루크가 화를 겨우 참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챘다.
“…….”
제인은 천천히 빗속으로 사라지는 루크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