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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왕


코끼리의 왕 제1장. 갑작스런 귀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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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밤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모래바람은 기세가 다소 약해졌지만 짙은 밤하늘 아래에선 여전히 위협적이기 마찬가지였다.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바람은 시야를 흐렸고 횃불을 꺼뜨렸다. 하지만 지금, 낙타를 앞세워 거대한 마차를 호위하는 열댓의 무리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구지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행렬은 평소 사막을 가로지르는 일반적인 여행자 무리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튼튼한 로브가산産 목재로 만든 거대한 육두마차와, 그 마차를 에워싸고 있는 수십 기의 낙타 기병들의 모습에선 고고한 위엄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차 기수 자리에서 행렬을 지위하는 드윈 파 오즈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기병들을 향해 외쳤다.

  “집중하고 집중하라! 진형을 흩뜨리지 말고 경계에 소홀하지 마라! 우리의 사명을 잊지 마라! 신의 말씀을 이행하라! 꺼지지 않는 태양처럼 찬미를!”

  드윈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든 병사들이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흩어지지 않는 운명처럼 복종을!”

  병사들의 목소리는 사막을 뒤흔드는 것처럼 사방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드윈은 병사들이 사기충천함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구지가까진 얼마나 남았습니까?”

  그 때 마차 안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윈은 목소리를 낮추어 답했다.

  "꺼지지 않는 태양처럼 찬미를. 위대하신 대주교 저하께 아룁니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이고 있으니, 한 시간만 더 가면 구지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고생이 많습니다. 저 한 사람 때문에 그 먼 곳에서 함께 동반하셔서 이 고생을 하고 계시니, 이후 구지가에서 다시 돌아가실 길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맙고도 미안합니다.”

  "이것이 저희의 임무요, 신명神命을 전달하는 자들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오히려 로베르트 앙헬의 귀명貴名에 따라 존하를 따르게 되어 감명 깊을 따름입니다. 그런 말씀은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주교 저하.”

  드윈의 말이 끝나자 마차 안에서 얕은 한숨이 들려왔다.

  “부끄럽습니다. 신명이니, 존하니, 로베르트 앙헬이니 전부 다…”

  대주교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기에 드윈은 뭔가 잘못 말하기라도 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서둘러 변명하려는 찰나, 드윈은 갑자기 선두가 소란스러워진 것을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인지 행렬이 걸음을 멈춘 것이다.

  “무슨 일이죠?”

  마차 안의 목소리가 물었지만, 드윈 역시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답할 수는 없었다. 드윈은 당황하여 얼른 대답했다.

  “존하 앞에서 이런 실례를! 장으로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드윈은 무예가 출중한 병사 대여섯을 마차 주위에 배치시킨 후, 낙타를 몰아 선두로 향했다. 선두에 도착하니 병사들은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연신 찾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드윈의 외침에 이미 조사차 나와 있던 부장이 답했다.

  “최선두에 있던 낙타가 갑자기 병사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성을 내는 대신, 드윈은 전장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내답게 뭔가 불길한 예감에 빠져들었다. 구지가 주변의 사막은 강한 바람으로 표토가 얇았고, 지하로는 대오아시스로 이어지는 물길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만큼 지대가 약해 곳곳이 모래늪이 잔뜩 분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백 년 전에 인공적으로 만든 도로가 모래늪으로 돌변할 확률은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덫을 만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드윈은 황급히 병사들에게 외쳤다.

  “적이다! 대주교를 보호하라!”

  그 순간 땅 밑에서 수많은 창들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선두의 병사들과 낙타들을 꿰뚫어버렸다. 드윈은 재빨리 뒤로 몸을 굴렀지만, 왼쪽 장딴지로 날아든 창은 피하지 못했다. 드윈은 이를 악물고는 죽은 병사의 칼을 집어 창이 솟아오른 곳으로 던졌다. 칼이 박힌 자리에서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파​선​당​波​善​黨​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대주교를 보호하라! ” 

  드윈의 외침에 병사들도 정신을 차리고는 낙타 등에 부착된 방패를 빼들고는 가마 주위를 2열로 에워쌌다. 다시금 땅 속에서 창들이 가마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제1열이 창을 방패로 막았고, 이어 뒤에 있던 제2열이 창이 날아든 자리를 향해 화살을 쏘며 반격했다. 화살로는 모래를 뚫을 수가 없었지만, 적들의 공격을 잠시 주춤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모래 속에 숨어있던 자들도 더 이상 기습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속히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특수 유리로 만든 고글을 쓴 눈가를 제외하고는 온통 사막색으로 위장된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옷 사이로 드러나는 피부색이 붉은 기운을 띄고 있었다. 그를 보고 병사들은 저들이 이웃 도시인 백조가의 테러 집단, 파선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파선당은 로베르트 앙헬 체제에 불만을 품고 암약하는 비밀 조직으로, 그들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았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 수는 백여 명을 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뛰어난 무예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강인한 전사라도 눈 깜짝할 새에 죽일 수 있는 잔인무도한 비술을 지니고 있는 암살자 집단이었다. 드윈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파선당을 직접 만나게 되어 긴장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 수가 겨우 예닐곱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습을 막아낸 이상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드윈은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파선당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 네놈들 앞에 계신 분께서 누군지 알고도 이따위 악행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아무리 돈에 영혼마저 팔아넘긴 시정잡배의 무리라고 하더라도 감히 하늘을 향해 칼을 뽑아들다니! 정녕 창세의 형벌을 받아야만 정신을 차리겠느냐!”

  드윈의 무시무시한 일갈에 답하는 대신, 파선당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그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땅 속에서 사람 크기만 한 거대한 창들 십여 개가 솟아올랐다. 창들은 거대한 나무틀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드윈과 병사 무리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이 오래 전부터 설치해 놓은 장치로 보였다. 전쟁이라면 도가 튼 드윈조차도 그 창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방에서 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드윈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가 되었다. 

  파선당 용병들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고정 레버를 아래로 당기자, 팽팽히 켕겨지던 시위에 걸려있던 창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병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를 막으려던 방패는 조개껍질처럼 산산조각 나버렸고 인간과 낙타가 한 덩이가 되어 창에 꿰뚫린 채 사구 속으로 파묻혀버렸다.. 드윈은 어깨를 꿰뚫리고는 창의 힘을 못 이기고 뒤편으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뒤에서 날아든 창에 허리를 찔리고는 공중에서 그대로 반 토막이 나버렸다. 

  창에 꿰뚫리고도 살아남은 자들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는 것을 반복하며 쇼크사로 죽어갔다. 대주교를 지키느라 마차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온몸에서 피거품을 뿜으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동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줄행랑치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자가 저 위대한 에드워드 미다 르 로베르티나의 자손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창대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파선당 무리의 대장인 자파는 마차를 보고는 시체가 꽂힌 채로 창 하나를 뽑아들어 병사들에게 겨누었다. 병사들은 자파의 괴물 같은 힘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자파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정말이지 유신론자 놈들의 두뇌는 아무리 부수고 해부해도 도통 그 정체를 알 수가 없군. 정말로 그 신이 점지해줬다는 높으신 양반의 목숨이 너희들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건가?”

  “다, 닥쳐라! 네놈들 같은 무신론자 무리의 개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선두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창을 꼬나들은 병사의 두 다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파는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자파는 말했다.

  “삶이란 본디 고통인 법. 그 고통뿐인 목숨, 이만 끊어주겠네.”

  자파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파선당 용병들이 가마를 포위하였다. 병사들은 사색이 되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파선당 용병을 멍하니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마차 주위를 드리우던 장막이 마치 새총에 쏘인 돌멩이처럼 근처에 있던 용병 하나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린 순간 갑자기 마차의 한 쪽 벽면이 산산조각 나면서 기둥 하나가 자파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파는 간신히 몸을 틀었지만 기둥은 그의 오른쪽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마차 안에 병사를 숨겨두었었군. 당장 죽여버려!”

  자파의 외침에 용병들은 가마를 향해 창을 집어던졌다. 가마가 창에 꿰뚫리려는 그 순간, 지붕을 박차고 마차 안에서 한 여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핏빛처럼 붉은 로브에 그와 같은 색의 모자를 쓴 금발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한 걸음에 바로 옆에 있던 용병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여인은 짧은 기합과 함께 상대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그 순간 용병은 입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5m 가까이 뒤로 날아가 모래 속에 처박혔다.

  여인이 주먹을 날린 순간 품속에 있던 흑진주 목걸이가 공중으로 치솟았고, 자파는 아연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과 목걸이를 번갈아 훑어봤다. 가마 안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붉은색 로브와 애들렌에선 구하기도 힘든 흑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것. 아직은 앳된 느낌이 남아있는 얼굴에 고명한 무술 실력을 지닌 계집이라는 점은 뜻밖이었지만, 자파가 알기로 저런 복장을 하고 있는 여인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로베르티나 교회의 대주교 유카 미다 르 로베르티나 2세 말이다.

  자파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고, 파선당 용병들은 진열을 가다듬어 유카에게 달려들었다. 대주교의 파격적인 등장에 놀란 건 아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내 달려드는 파선당 무리를 보고는 유카의 앞을 호위했다. 그때 병사들의 어깨를 비집고 유카가 선두에 나서며 말했다.

  “여러분은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뒤에서 제 후미를 지켜주세요.”

  "하지만…!”

  “긴 말 안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카는 병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어느새 파선당 하나의 진척까지 접근한 뒤였다. 용병은 깜짝 놀라 창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지만, 유카는 가볍게 그의 창을 한 손으로 잡아챘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인이 자신의 혼신의 일격을 아기 장난감 다루듯 잡아내는 걸 보고 전사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놀랄 틈조차 없었다. 유카는 텅 비어버린 병사의 가슴에 어깨를 갖다 붙였고, 무지막지한 소리와 함께 용병은 뒤에 있던 다른 동료들과 한데 뒤엉킨 채 나가떨어졌다. 동료 용병이 유카에게 당한 동료의 맥을 짚었으나 그는 이미 숨진 뒤였다. 박살나버린 갈비뼈 조각들이 용병의 흉부를 뚫고 몸 밖으로 기괴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직까지도 용병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선당의 용병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눈앞의 상대가 도저히 그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지 못했다. 유카는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온 창 두 개를 백스텝으로 가볍게 피하고는 공중으로 뛰어 오르며 왼발로 창들을 쳐올렸다. 왼발이 유카의 귀밑머리를 살짝 스친 순간, 그녀의 왼발은 엄청난 속도로 용병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용병은 두개골이 박살난 채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괴물 같은 년!”

  한 용병이 악을 쓰며 그녀의 등을 향해 창을 찔러들었다. 유카는 몸을 빙글 돌며 날아드는 창대를 피하고는 창을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창은 그대로 나무 조각이 되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 충격으로 용병은 양 손바닥을 부여잡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유카의 정권이 훨씬 빨랐다. 쾅! 소리와 함께 용병의 목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사막에 피안개를 흩뿌렸다.

  조그만 여인 하나가 저지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살육의 광경을 보며 자파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심정에 빠져버렸다. 두려운 것은 물론, 어처구니도 없었고 무엇보다 눈앞의 여인이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저 나이에 저 정도 수준으로까지 육체를 단련하고 뛰어난 무예를 익혔다는 것은 어떻게든 이해해보겠다마는, 사각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가볍게 알아차리는 짐승 같은 반사 신경과, 표범보다 빠르고 곰처럼 강인한 힘으로 인간의 육체를 손쉽게 분쇄시키는 그 파괴력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실 유카의 움직임은 평생을 무예로 단련시켜 온 자파로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먹이 휘둘러지는 찰나 눈으로 식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먹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린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육체를 단련하고 무예를 익힌다고 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의 육체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명백한 한계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자파는 파선당의 총사령관인 J.E가 얘기했던 한 무술의 이름을 떠올렸다. 기장권氣場拳이라는 이름의 그 무술은, 로베르트 앙헬의 최고위 성직자 중에서도 단 하나의 핏줄에게만 실전된다는 일당백의 무예라고 J.E는 설명했었다. 그 원리나 훈련 방법에 대한 얘기는 워낙 복잡하여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유카의 움직임과 파괴력을 본다면 기장권 외에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유카의 무술이 정말로 기장권이라면, 그녀를 쓰러뜨릴 한 가지 희망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기장권이 하체에 대한 기습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자파는 창을 하나 집어 들고는 왼팔을 힘껏 뒤로 당겼다. 유카는 다른 용병들을 상대하느라 자파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엄청난 반사 신경을 생각한다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현재로선 이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자파는 혼신을 다해 유카의 다리를 향해 창을 날렸다. 창은 바람을 가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카를 향해 쏘아졌다. 

  “대주교님! 위험합니다!”

병사의 다급한 외침에 유카는 그제야 다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장창을 발견했다.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유카는 자신의 주먹에 심장이 꿰뚫린 채 팔에 매달려 있던 용병의 시체를 창을 향해 집어던졌다. 창은 시체에 부딪히면서 각도가 바뀌며 아슬아슬하게 유카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빌어먹을.”

  자파는 자신이 살 가능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파는 단말마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유카를 향해 다른 창을 집어던졌다. 창은 아까 전 기습과는 달리 정직하게 그녀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유카는 창의 날카로운 촉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권을 날렸다. 유카의 주먹이 창에 닿는 순간, 그녀의 주먹이 꿰뚫리는 대신 창은 스프링처럼 납작하게 접히면서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공중에 흩날리는 나뭇조각 사이를 헤치고서 유카는 자파에게 두 번째 정권을 날렸다. 

  주먹이 그의 이마에 닿기 직전, 자파는 그에게 대주교를 죽이라고 의뢰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당한 미인이었기 때문에 자파는 쉽게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메이였던가? 백조가의 엄청난 세력가인 그 여자가 왜 대주교를 암살하라고 의뢰를 한 것인지 자파는 의문이었지만, 명령에 복종하는 파선당의 특성상 의문은 쉽게 지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죽을 때가 다되니, 자파는 그동안 자신이 알고 싶었던 모든 의문들을 이제야 알고 싶다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대주교를 죽이라고 한 그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J.E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 모든 궁금증과 아쉬움 속에서도 자파는, 생전에 코끼리의 왕이 강림하는 광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서글펐다.


제1장. 갑작스런 귀환 <完>
2장. 동상이몽

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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