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7화
캡슐 자체가 훈련용으로 쓰이는 만큼, 실재하는 무기의 데이터를 입력하여 가상현실에서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나는 소이에게 빌린 칼을 학교에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로 고민하고 있었다. 거북을 상대했을 때의 이상한 기분과 파괴력을 생각했을 때 이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다. 내가 써도 괜찮은 걸까.
결론은 일단 가지고 가자는 쪽으로 내려졌다. 아직 무기를 사지 못했으니 빈손으로 학교에 가는 건 위험하다.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의 검은 무게와 모양만을 모방한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검 모양 액세서리를 입력 장치에 올려놓고 캡슐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운동장의 한구석에서 눈을 떴다.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등교하는 학생들의 행렬에 합류해 교실까지 들어갔다. 나를 죽였던 그녀가 반갑게 인사를…하진 않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순간 움찔했지만 내가 잘못한 게 뭐 있나 싶어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제 왜 안 왔어?”
“너랑 상관없잖아.”
“상관있어! 우린 팀이라구? 빠지면 빠진다고 언질 정도는 주란 말야!”
팀? 웃기고 있네. 언제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묶음으로 취급했지?
“내가 왜 너랑 팀이야. 됐으니까 귀찮게 굴지 마.”
“한야~ 그러지 말구~”
“안 어울려. 징그러워. 한 대 치고 싶어.”
“너무하네. 정말.”
“마녀에게는 관대한 평가지.”
“아직도 내가 죽여서 삐진 거야? 난 정말 단순히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구.”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그녀가 나를 왜 죽였나 보다는 왜 그녀가 나와 친하게 지내려 하는가이다. 내 배를 찌를 때의 냉혹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도 그녀에 대한 의심을 부추긴다. 절대 삐진 게 아니다.
“용서해주면 내가 너한테 정말 필요한 선물을 줄게.”
“필요 없어.”
“뭔지는 듣는 게 좋을 거라구?”
“필요 없다니까.”
단호하게 거절당한 그녀는 그 뒤로 침묵을 지켰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아침 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이번 주까지 부활동을 정하라는 것과 급식비를 제출할 것을 공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1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내려와. 그리고 1교시 담당 선생님과 교차해서 밖으로 나가셨다.
“학기 초니까 조금 엄하게 갈게요. 교과서 안 가지고 온 사람. 숙제 안 해온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그러고보니 교과서를 받지 않았지. 일단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선생님에게 말했다.
“어제 결석해서 교과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네? 변명이 아니라 못 받았다니까요?”
“수업 전 다른 반 친구에게 빌리거나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려 교과서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반에 친구가 있을 리가 없지. 담임선생님께 말씀 못 드린 건 내 탓 맞지만.
“그리고 보통 결석한 사람의 교과서는 책상 서랍에 넣어두거나 옆자리 사람이 맡아주었을 텐데요.”
나는 책상 서랍을 훑었다. 비어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너지.”
내 말에 그녀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내게 물었다.
“뭐가?”
“교과서.”
“모르겠는데?”
잠시간의 눈싸움. 그러나 선생님이 나를 불러 승부를 내진 못했다.
“숙제는 봐주도록 할게요. 교과서 분만 맞도록 합시다.”
나는 교단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긴 막대기를 소환했다. 저거 맞으면 아플 거 같은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교탁을 짚고 엉덩이를 뒤로 뺐다. 막대기가 휘둘러졌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30』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30』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30』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60』
그렇게 10대를 맞았다. 엉덩이를 문지르며 간신히 자리로 돌아왔다. 뒤에서 그녀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왜.”
“이거 왠지 모르겠지만 내 책상에 들어있었어. 선물로 줄게.”
교과서였다. 빠득. 하고 이를 악물었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너 정말 이런 식으로 할래?”
최대한 말을 순화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하게 하품을 했다.
“뭐가?”
“됐다. 나머지 교과서나 내놔.”
“싫은데? 네가 필요 없다고 했잖아.”
여기서는… 정색하고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다. 숙이고 들어가자.
“아까 했던 말 취소할 테니까 교과서 돌려줘.”
“용서해 주는 거야?”
“……절반만.”
“그럼 나도 반만 줄게.”
“…용서할게.”
“아자! 해냈다!”
그녀는 교실 뒤쪽의 사물함으로 달려가 나머지 교과서들을 가져왔다. 절반은 서랍에 넣고 절반은 가방에 넣었다.
“한야.”
어느새 다가온 희조가 말을 걸었다.
“오늘, 우리 집, 와?”
그러고 보니 플레이어인지 npc인지 알아보러 가기로 했었지. 혹시 저 마녀가 이미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지 말란 뜻인지 못 가봤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아, 그런데 나는 오늘도 청소라서.”
“기다릴게.”
“어, 음 그럼 가는 걸로 할까.”
이쯤에서 마녀가 끼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조용히 있었다. 그제 이후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희조가 제자리로 돌아가고도 한참동안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야.”
“왜?”
“아까 선생님이 부르지 않았어?”
“아 맞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근데 교무실이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