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또다른 시작이다.
하나의 유성이 떨어져도, 다른 별들은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것처럼.
용사가 쓰러져도.
소녀들은 앞으로 걸어나간다.
용사가 생명의 대가로 만들어준, 미래를 향해서.
IRREGULAR HUNTER - X
53화 LAST
이번 일에 관해서, 그레이엄 제독에 대한 일은 그의 자진 사퇴로 끝을 맺었다.
구체적인 죄목이라고 해봐야 수사의 방해와 크래킹 정도이며, 수호기사들을 공격한 것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그녀들이 범죄자였다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에 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증오해마지 않는 존재인 '어둠의 서'. 그리고 그 '어둠의 서'가 만들어진 최대의 원인인 '어둠의 서의 어둠'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어느 의미로, 이만큼 그의 목적도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레이엄은 이 일을 끝으로 모든 직위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린디가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은, 모든 기력이 빠져버린 듯한 노인의 것이었지만 더할 나위없이 후련해보였다.
"그래도 하야테짱에 대한 원조는 계속 하시겠대. 그 애가 혼자서 날개짓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진실을 말하고 모든 걸 사죄하겠다고."
거기에 더해, 그 소년에 대한 사죄도 더해져야겠지만.
그 소녀들도.
관리국원도.
본래라면 세계 하나가 멸망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이번 사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태가 끝날 때까지 희생자 0명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소년 덕분이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다른 모든 것을 지켜낸 소년.
그 거미도 그렇고, 그 독수리도 그렇고, 그 소년도 그렇고. 이레귤러 헌터라는 건 그런 사람들만 모인 곳인걸까.
그녀에게도 있었다.
그들처럼 자신의 정의를 믿고 앞을 향해 곧게 나아갈 수 있었던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지금처럼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따지며,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 아이 덕분에 겨우 떠올릴 수 있었지 뭐야. 예전의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걸."
그렇게 말하며, 린디는 다시 한번 눈앞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남편이자, 크로노의 아버지.
크라이드 하라오운의 묘.
이곳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이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을 들려주고 있었다.
시신조차 묻혀있지 않은 묘니까, 실제로 들릴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그런거야. 언제나처럼 어수선한 날들이지만… 열심히하고 있어. 나도, 크로노도."
거기까지 말한 후.
린디는 묘 앞에서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볼게요, 여보. 다음에 올 때는 크로노도 함께 올테니까. 그 아이가 얼마나 잘 성장해줬는지 지켜봐줬으면 해. 이것도 상당 부분은 그 아이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도 많은 신세를 졌는데.
결국 자신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소년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와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그 소년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 소년이 남긴 것을 지키는 것 정도는 자신에게도 가능할 것이다.
린디는 묘앞에서 몸을 돌려, 묘지에서 걸어나왔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사건은 종료됐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치루어야 했던 희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크로노에게 들은 적이 있다. 로스트 로기아의 사건은, 그 강한 힘에 이끌려 슬픈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법이라고.
이번 일도 물론 슬픈 일들로 가득했다. 관리국이나 친구들 중에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은 모두 그 사람들─ 사람이 아님에도 더욱 사람같은 그 사람들이 희생해준 덕분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일에 얼마나 희생이 생겼을지, 아니면 지금 자신도 이 자리에 살아있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들의 활약이 컸다.
그렇기에.
"나, 관리국 일 계속 할거야. 집무관이 되고 싶으니까."
페이트는 손을 잡고 걸어가던 친구에게 말했다.
이유라면 있다. 어머니─ 프레시아 테스타롯사같은 사람이나, 이번 일처럼 슬픈 일들이 생겨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막을 수 있도록.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봐버렸으니까. 꺾이지 않는 의지와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세계의 멸망을 막아낸 사람들을.
자신 역시,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들처럼 강해진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도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를 돕는 일이 될지도 모르고.
"나노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뭔가 생각하고 있어?"
페이트의 질문에, 나노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집무관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방향은 아마 페이트짱이랑 같을거야."
나노하는 마침내 찾아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마법을 잘 쓸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의지도 의지지만, 그에 따른 힘이 없으면 안되니까.
힘이 없는 신념은 무력하다.
하지만 신념없는 힘은 의미가 없다.
미래를 개척할 힘과, 그것을 지탱하는 의지.
두가지가 합쳐지지 않으면 안된다.
나노하는 그것을, 그 소년으로부터 배웠다.
두 소녀가 서로를 마주보고 미소를 지을 무렵, 저 멀리에서부터 유노와 알프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노하와 페이트는 이 갈림길에서 헤어져, 서로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물론 나노하에게는 유노가, 페이트에게는 알프가 따라붙었다.
"유노 군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둔 거 있어?"
"응. 관리국 사람으로부터 무한 서고의 사서를 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어. 본국에 기숙사도 준비해준다 하고, 발굴도 계속해도 된다니까 해버릴까 하고."
"본국이라면 미드칠더보다는 가까우니까, 자주 만날 수 있겠네."
확실히 무한 서고에서 어둠의 서에 대한 자료를 찾아낸 것도 유노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쪽이 천직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노하는 집으로 돌아왔고, 유노도 거기서 배웅을 받으며 아스라로 돌아갔다.
반년하고 조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유성의 용사가 영향을 미친 사람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던 사람은 역시─
"아, 어서 온나! 나노하짱, 페이트짱!"
하야테의 병실에 들어서자, 린포스와 볼켄리터들과 함께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 하야테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벌써 퇴원인거야?"
"응, 뭐. 이제 건강해졌고 말이제. 그래서 아리사짱이랑 스즈카짱 병문안도 거절했대이.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 직행이야!"
그러고보니 어제밤 나노하한테도 스즈카로부터 문자가 들어왔었다.
분명 페이트와 하야테들까지 초대한 파티를 열 예정이라고.
하야테는 휠체어를 움직여, 두 사람의 앞에까지 다가왔다.
"이제까지 여러가지 일이 많았지만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고마워."
"아니, 천만에."
"신경쓰지마."
하야테의 인사에 두 사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야테도 이미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친구를 돕는데, 감사를 받을 이유는 없다.
잠시 동안 보통의 수다가 이어지고,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 하야테짱. 엑스 씨의 일은…"
"괘안타, 괘안타. 어제 하루동안 꼬박 울고 나니까 좀 개운해졌으니까."
─괜찮을 리 없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을 한 사람 잃었는데.
"뭐어, 뭐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도 펑펑 울어버리고 싶지만… 엑스라믄 분명 이렇게 말했을거라. 슬퍼하는 거에 낭비하지 말라고. 언제까지고 꾸물꾸물하고 있으믄 엑스한테 혼날끼다."
"하야테짱…"
"그래서! 꾸물꾸물하는 건 어제까지! 오늘부터는 힘내기로 했대이!"
확실히, 그렇다.
알고 지낸 시간은 극히 짧지만, 나노하나 페이트가 알고 있는 소년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슬프지 않을 리 없다.
사건 때에만 잠깐 만났을 뿐인 자신들조차 슬픈데,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지낸 그녀가 슬프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하야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결정했다.
"아참, 그리고 나노하짱, 페이트짱. 내도 마도사 계속하기로 했는데."
"에?!"
하야테는 고개를 슬며시 뒤로 돌려, 린포스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 역시 아직까지 슬픔의 색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어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랑 이 아이들은 관리국으로부터 보호 관찰 처분 받았거든. 관리국 임무에 종사하는 형태로 죄를 갚는 것도 포함된다고 했어."
이 부분은 린디와 크로노가 크게 힘을 써준 부분이기도 했다.
임기는 꽤 길지만, 아마 이 가족이 두번 다시 떨어지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길이니까.
"내는 촉탁 대우니까, 나노하짱이랑 페이트짱의 후배가 되는거네."
그 말에 나노하와 페이트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시 하야테를 돌아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하야테짱! 오늘은 꼭 돌아와야돼!! 약속이야!"
하야테를 향해 신신당부를 하고 있는 이시다를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나노하는 비타에게 물었다.
"… 어제밤이랑 오늘 아침, 역시 큰일이었어?"
"아. 무단 외박이었으니까. 시그넘이랑 샤멀이 엄청나게 혼났어. 그때 린포스가 뒤늦게 건너온 친척이라는 설정으로 나타나줘서 살았지만."
"무서운 선생님이구나…"
나노하의 감상에, 비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응. 그치만… 좋은 선생님이야."
비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이시다는 좋은 의사이자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야테를 신경써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이시다와의 대화가 끝난 후, 시그넘과 샤멀과 린포스가 하야테의 휠체어를 밀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그넘과 눈이 마주친 페이트가 굳은 얼굴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이 전부 앞으로 나아갈 동안 잠시 걸음을 멈춰, 페이트의 앞에 선 시그넘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시작했다.
"테스타로사."
"네, 시그넘."
"미뤘던 승부, 언젠가 결판을 내도록 하죠."
"네. 정정당당히, 앞으로 몇번이고."
짧은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호전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미소는, 서로를 바라보는 동안 부드러운 웃음으로 변했고,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노하들은 미소를 지었다.
"나노하랑 페이트, 하야테랑 같이 곧 도착한데. 하야테도 포함해서 셋이 말해줄 게 있다고."
아리사는 휴대폰을 접으며, 문자의 내용을 스즈카에게 알려주었다.
"어젯밤의 그거… 혹시 하야테도 함께였던 걸까?"
"글쎄…"
아리사와 스즈카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면서 생각했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냈다.
"뭐, 걔네가 비밀로 하고 싶다면 그냥 비밀에 부쳐도 되지만 가르쳐준다니까 확실히 듣자."
"응! 페이트짱하고의 만남 이야기부터 들려준다면 기쁠거야."
전부 들려준다면, 그 아이들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을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문득, 아리사가 이야기를 꺼냈다.
"… 스즈카."
"응?"
"너도… 연락 안됐지? 그 녀석하고."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 연락을 해봤지만, 그 소년과는 결국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반년 전에 만났을 뿐이지만.
그 소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소년의 용감함도.
그 소년의 총명함도.
그 소년의 다정함도.
그 소년의 자긍심도.
하야테와 가족들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그것이 아리사와 스즈카였다.
그런 두 사람이었기에.
이번의 '연락 두절'에서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 가버린걸까, 그 녀석."
먼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리사였다.
아리사도 스즈카도, 어렴풋이 느꼈다. 확신같은 건 없고, 증거나 어떠한 단서같은 것도 없지만.
─그 소년은 이제, 이 도시에 없을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엑스 씨니까, 우리들에게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는 건 틀림없이 깊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
"헷, 그렇겠지. 또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곳에 끼어들어서는 사람 돕기라던가. 그런 녀석이니까."
그가 싸우는 것은, 그가 다치는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토록 고결한 소년이었기에, 자신들은 이렇게도 깊이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스즈카 아가씨! 아리사 양! 파티 준비 끝났어요!"
저 멀리서, 파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사와 스즈카는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노하와 페이트, 하야테는 츠키무라 저택에서 자그마한 파티를 열었다.
스즈카와 아리사가 소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들은 '죽음'에 대한 부분은 숨기고 어딘지 모를 먼 곳으로 떠났다고만 이야기했다.
놀라운 것은 스즈카와 아리사가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면서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지만.
파티가 끝난 후, 나노하와 페이트는 하야테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볼켄리터들과 놀고 있던 알프를 데리고 나오며, 린포스와 인사를 나눈 후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발 먼저 와있던 린디와 함께,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다들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지만, 최후에는 모든 것을 믿고 이해해주었다.
이것으로, 크나큰 희생을 치룬 '어둠의 서' 사건은 완전히 끝을 맺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넘어,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며.
너는 그곳에 있는걸까.
아무리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네 얼굴 같은 건 보이지 않지만.
… 너는 인간이 아니니까, 죽었다고 해도 하늘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없어진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영영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르지.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도 울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 주인 하야테는 오늘 밤에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그녀는 강하지만, 아직은 어린 소녀니까. 너에 대한 것을 정리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시그넘들도 힘들어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슬퍼하기보다 네가 지켜준 이 삶을 지키기 위해 힘을 내기로 결정했다. 그쪽이 네가 바라는 길일거라면서. 덧붙이자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여러번 있었지만, 이 정도로 보고 싶은 적은 처음이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괴롭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너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 이 괴로움도 이 슬픔도, 끌어안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볼 수 있다면 지켜봐줬으면 한다.
들을 수 있다면 들어주었으면 한다.
우리들은, 네가 구해준 이 생명을 결코 헛되게 사용하지 않을 거다.
주인 하야테와 함께, 끝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앞으로 나아갈 거다.
그것이, 우리가 너로부터 배운 것이니까.
눈을 떴을 때.
소년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서있었다.
"여기는…"
<차원의 틈새. 달리 말하자면 허수 공간이라고도 표현하는 장소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푸른 색의 빛을 발하고 있는 작은 마름모꼴의 보석이 있었다.
"쥬얼, 시드…?!"
<정확한 명칭은 쥬얼 시드 NO.X다.>
프레시아가 열었던 허수공간으로 떨어졌다고 판단된, 결국 관리국이 회수하지 못했다고 하던 최후의 쥬얼 시드.
하지만 그런 것이 왜 이 장소에 있는걸까.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은 분명─
<소멸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소멸되진 않았다. 그래서 이곳으로 옮겨온 거니까.>
"… 하나부터 열끝까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뭐부터 물어야할지 모르겠어. 어째서 나를 여기에… 아니, 어떻게 데려온거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보다, 쥬얼 시드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
그 의문에, 넘버 X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있었다.>
"…… 뭐?"
<나는 처음부터 귀하의 몸 속에 있었다.>
얼티메이트 아머와 루시퍼의 정면 충돌.
그 여파로, 차원의 벽이 잠깐 동안이지만 무너졌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엑스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구에 떨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그 생각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찢어진 차원의 벽 사이로, 이 넘버 X가 흘러들어와서.
─엑스의 체내에 묻힌 후, 그를 옮겨왔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어째서… 나를 여기의 지구에…?"
<귀하가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걸 원한 적은─"
<귀하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속에 이렇게 바라고 있었다. '싸움은 싫다''평온을 갖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귀하를 귀하의 세계와 관련이 없는 이 세계로 이끈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세계로?
<어느 세계라도 상관없었지만, 나와 동형기들이 가장 많이 흩어진 세계였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우연이다.>
우연.
단순한, 우연.
프레시아 테스타로사가 쥬얼 시드 탈취를 위해 유노를 격추시키고.
때마침 자신과 루시퍼가 충돌하여 차원의 틈새가 '하필 그때' 열렸으며.
그 틈새를 통해 쥬얼 시드가 유입되고.
자신을 비롯한 이레귤러들이, 이 세계로 옮겨졌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단순한,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서 일어난 일인 것이다.
<그 이후 귀하는 바랬다. '지금 가진 이 행복이 깨지지 않도록'. 그렇기에 나는 귀하의 사고를 수정하였고, 귀하가 귀하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것을 지워버렸다. 계속해서 현상이 유지되도록.>
아르카디아로 돌아갈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리 속에서 노이즈가 생겨, 그것이 깨끗이 지워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는 그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
덧붙여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쥬얼 시드가 폭주하지 않았던 것은, 엑스가 '자연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그 이야기는 알겠어. 하지만, 왜 나를 여기로 옮겨온 거지?"
<…… 지금까지 귀하의 소원은 총 3번 변했다. 처음의 것. 뒤에 이어진 현상 유지. 그리고 3번째는 '모두의 슬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즉, 3번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하는건가. 그런 거라면 어디라도 좋았을텐데.
<'시공관리국'이라고 하는 것의 존재가 있는 한, 어느 세계의 어디로 떨어뜨리더라도 귀하의 신체가 발견될 우려가 있다.>
"… 고르고 골라서 여기라는건가. 임종의 장소치곤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아니,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 악용되는 것은 절대 안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귀하는 아직 죽지 않았다.>
"… 뭐라고?"
<분명히 나에게 있어서도 '죽은 자의 부활'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상자의 치료'라고 하는 것이라면 허용 범위. 이 공간에서 치료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귀하의 몸은 죽지 않을 정도로 치료가 되었다.>
죽지 않았다.
즉, 살아서 돌아가는 것도 가능─
"아니, 잠깐 기다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여기로 옮겨오지 말고 그냥 치료해줬으면 되잖아?!"
<… 뭔가를 착각하고 있군. 그 시점에서 귀하의 소원은 '몸을 낫게 해달라'가 아니라 '모두가 슬퍼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는 내가 귀하의 몸을 치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로, 융통성없는 녀석이다.
애시당초 자신의 몸 속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그런 식으론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했지만, 귀하의 소원 중 2번째는 '평온한 일상의 유지'였다. 그 당시 내 존재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그 일상은 당연히 깨졌을 것이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왔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면 나를 치료할 필요까진 없었을텐데. 왜 그렇게 한 거지?"
<나는 타 개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탄생한 존재. 이 공간에서는 귀하 이외의 타 개체가 없고, 내 존재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 나는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귀하를 치료했다. 그것 뿐이다.>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며, 엑스는 눈앞의 쥬얼 시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것'은 나노하들의 인텔리전스 디바이스는 물론이고 시그넘들의 암드 디바이스와도 다르다. 일체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의의를 위해서만 힘을 행사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인정이나 그 이외의 계산도 없다.
그럼에도, 일단은 말하고 싶었다.
"… 고마워. 살려줘서."
쥬얼 시드는 그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 1번.>
"응?"
<그 동안 귀하의 몸 속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많이 써버려서. 소원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은, 앞으로 단 1회 분량이 남았다. 그것을 이용하면 귀하는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쥬얼 시드는 엑스의 앞으로 다가왔고, 엑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현재 가장 추천하는 것은 귀하가 조금 전까지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
<한가지 덧붙이자면, 귀하와 귀하의 동료들이 싸웠던 적 중 살아남은 자들은 이미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론가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나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하지만.>
"……"
<지금이라면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서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겠지.>
돌아갈 수 있다.
하야테의 곁으로.
모두의 곁으로.
또다시, 그 따뜻하고 행복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 저기, 미안하지만. 그 이동… 지구가 아니라 아르카디아로 해줄 수 있어? 처음에 내가 있던 세계 이야기인데."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째서지?>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지금 돌아가는 건… 도망치는 게 되버리니까."
자신은 한번, 아르카디아를 팽개치고 지구로 도망쳤다.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곤 하지만, 그런 것이나 다름없다.
─하야테도, 비타도, 시그넘도, 샤멀도, 쟈피라도, 린포스도.
─나노하도, 페이트도, 유노도, 크로노도.
─스즈카도, 아리사도, 시노부도, 쿄우야도.
─마그마 드래곤도, 웹 스파이더도, 스톰 이글도.
모두, 자신이 해야할 일로부터.
자신의 숙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겨냈다.
그런데, 자신만이 또 도망칠 수는 없다.
언젠가, 다시 한번 모두와 만났을 때.
아무런 거리낌없이, 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마주 웃어줄 수 있기 위해서라도.
<… 한번 아르카디아로 돌아가면, 다시 이쪽으로 올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그쪽으로의 전송을 원하는건가.>
"괜찮아."
쥬얼 시드의 물음에, 엑스는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리 세계가 달라져도… 아무리 우리들 사이를 수많은 세계가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이 마음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이제 두번 다시, 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야테에게서, 모두에게서 나누어받은 이 따뜻함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 알았다.>
넘버 X는 그렇게 말하며, 빛을 뿜어냈다.
<최후의 소원 접수. 이 건을 마지막으로, 쥬얼 시드 No.X는 영구 동면에 들어간다.>
빛이 걷혔을 때, 자신은 모래 사막 위에 서 있었다.
─루시퍼와의 마지막 결전을 치루었던 장소. 바로 그곳에.
회색밖에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아르카디아에 돌아왔다는 것을 인식했다.
"… 자, 그러면."
엑스는 기지개를 펴면서, 숨을 골랐다.
우선은, 이레귤러 헌터를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고, 준비할 일도 있다.
VAVA라면 분명히 자신을 노려올 것이다. 아르카디아에 있다보면 분명 그도 나타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세계를 가로막는 벽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한 전력도 마련해야 한다.
그의 집념은 세계가 갈라진 정도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얼마 전에 몸으로 뼈저리게 체험했으니까.
그리고, 하야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차원을 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아스라에서 전송 장치를 봤고, 대강이지만 구조도 스캔해뒀다. 지금부터 연구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몇년 이내에는 완성품을 볼 수 있겠지.
무엇보다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있다.
지금쯤 아무것도 모른채 자고 있겠지만, 걷어차서라도 깨우지 않으면 안되는 친구가 있다.
그를 만나서 깨우고,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할 일이라면 태산처럼 쌓여있다. 아마 당분간은 쉴 틈도 없겠지.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예전과는 달리, 미래를 보고 달려가기 위해서다.
소중한 가족들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서다.
하야테를, 수호기사들을, 린포스를.
모두를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아무런 거리낌이 없도록.
자랑스럽게, 자신은 '이레귤러 헌터 엑스'이자 '록맨 엑스'라고 말해줄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계 수백개나 수천개 쯤, 금방이라도 넘어줄테니까 말야.
엑스는 이레귤러 헌터 본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발걸음은, 스스로도 놀랄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푸른 유성의 용사 엑스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세월이 지난 후에.
그는 또 한번, 세계를 구하기 위한 길에 나서게 된다.
그는 또 한번, 세계를 구하기 위한 길에 나서게 된다.
─어찌되었건 이것은, 또 한 사람의 '영웅'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의 일이지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