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우연으로부터 시작된 만남.
그로부터 비롯된 인연들.
그녀들이 웃을 때 기뻐했고.
그녀들이 괴로워할 때 가슴이 아팠고.
그녀들이 함께 있을 때 즐겁고.
지금의 이 행복과 지금의 이 기쁨이.
지금까지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만들고, 이루는 모든 것.
그들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틀린 것이라는 걸, 그들이 가르쳐줬어.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 가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함께 걸어가기 위해 지킨다.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의지'라는 것을.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拳武 최종장… 시작합니다.
3화
전투기인 넘버즈 No.9 노베.
"별로 도움은 안되겠네. 아마 후기 넘버즈는 다들 모르지 않을까? 론과 산요는 우리가 눈 뜰 때부터 닥터와 함께 있었으니까."
"… 그렇게 오래 전부터 모르는 녀석들이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건가."
"어차피 '외부인'이니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 … 설마 뒤통수 맞을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전투기인 넘버즈 No.11 웬디.
"노베한테 물어보셨슴까. 후기 넘버즈들은 다들 그 두 녀석 싫어함다. 속도 알 수 없고 왠지 기분나쁜 놈들이라서."
"이유도 없이, 말인가?"
"초식동물이 육식동물 근처에 안간달까, 그 비슷한검다. 딱히 적인 것도 아니니까 자세히 조사같은 걸 할 리가 없슴다.
전투기인 넘버즈 No.6 세인.
"알만한 사람이라면 칭크 언니랑 맨 위의 네 사람 정도일까… 그 이외엔 다들 비슷할 거예요."
"꽤나 미움을 많이 받은 모양이군, 그 둘."
"아니, 딱히 그런 일을 하진 않았어요. 단지… 그 둘 근처에 가면 이유없이 기분이 나빠졌다고 할까. 그런 느낌."
전투기인 넘버즈 No.5 칭크.
"유감입니다만, 저도 모릅니다. 그 남자들… 「어느 순간부터 깨닫고 보니 있더라」는 느낌이라. 언제 처음 만난건지도 기억 안나는군요."
"생각보다 뿌리깊게 숨어들었던 모양이군."
"닥터와 협력 관계에 있던 것 같긴 하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모릅니다. …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 이외에도 후기의 넘버즈들 전원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다들 비슷했다.
이유없이 기분 나쁜 녀석들이었다, 는 것과 깨닫고 보면 이미 같은 진영에 있었다는 것.
크로노는 그 정보들을 조합해, 이제 막 의식이 돌아온 세이에게 주었다.
"그렇다곤 해도, 꽤 허무하더군. 나름대로 각오도 하고 있었건만."
크로노가 말하는 것은, 성왕의 요람전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측에는, 저 세이조차도 패퇴시킨 불사신의 괴물이 있다. 성왕의 요람을 격침시키려면 그런 괴물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각오로, 처음부터 전력전개로 공격했건만 정작 그들을 맞이한 것은 가제트 드론과 전투기인들 뿐으로, 가장 경계했던 론과 산요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전투력이 압도적이라고는 해도, 산요는 어차피 론의 분신에 지나지 않아. 녀석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일은 그다지 없고, 실제로 계획을 짜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건 론 자신이지. … 물론 그렇다고 그 전투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아주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세이는 침상 위에서 상반신만을 세운 채로 말했다.
한번 의식이 날아가버릴 정도의 치명타를 받았고, 그 후에 폭주했을 때조차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아무리 회복 마법이 있다고는 해도, 도저히 짧은 시간에 회복될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침대 신세. 덕분에 나노하와 페이트들에게선 안도감과 동시에 굉장한 걱정까지 안기고 있었다.
물론 세이를 걱정하고 있는 건 크로노를 비롯한 친우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환생이라… 확실히 구 시대의 종교 개념 중에 그런 것이 있기도 했지만."
문득, 크로노는 세이에 대한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세이가 의식없이 침상 위에만 누워있을 때, 세이는 몇번이나 발작을 일으켰다.
그 원인을 알아보고, 가능하면 해결하기 위해서… 나중에 그에게 원망받을 것을 각오하고 그의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세이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과거에 리오라고 하는 인간이었던 시절.
론과의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말도 안될만큼 오랜 시간을 들여 몇이나 되는 인간의 인생을 조종한 악마.
그 당시의 세이─ 리오는 론을 쓰러트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무간룡으로 변한 론의 체내에 들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임기를 폭발시켜 내부부터 파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은 다시 살아났다. 목숨을 버린 리오를 비웃으면서.
특히 세이의 친우들이나 그에게 연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주체못할만큼의 분노를 속에 담아야 했다.
어째서 세이가 그렇게도 힘에 집착하는지.
어째서 세이가 그렇게까지 동료들을 지키려고 하는지.
그 모든 원인이, 그 괴물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관둬."
"… 응?"
"너희들로는 무리니까. 녀석을 쓰러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뿐이야."
자신도 모르는새에 론에 대한 분노를 얼굴에 띄웠던 것 같다.
크로노는 당황하면서 표정을 원래대로 고쳤다.
"하지만, 그 말은… 론이 다시 나타나면 또 너 혼자 놈과 싸우겠다고 하는건가."
"당연한 소릴. 그런 괴물 상대를 너희들한테 떠맡길 리가 없잖아. 놈과 싸우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 다들 화낼걸. 물론 나도."
세이는 쓰게 웃었다. 물론 그것은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하지만, 세이로서는 단지 동료들이 걱정되기 때문에 자신이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네 힘으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지 않나. 아니, 솔직히 나로서도 놈을 쓰러트릴 방법이 전혀 떠오르질 않아. 단순히 파괴하는 것만이라면 어딘가로 유인해서 아르캉시엘을 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봤자 살아나겠지."
"미안하지만 말야… 녀석만은 내 손으로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돼. 녀석이 내 가족들을 태운 그 순간부터… 내 시간은 얼어붙어있어. 그 시계바늘을 다시 움직이려면, 녀석을 쓰러트려야 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세이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새끼 손가락부터 하나하나 접어, 주먹을 쥔다.
크로노는 그런 세이를 보고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은 언제나 이랬다. 결국 이번에도 자기 혼자 다칠 생각이다. 어쩌면, 예전처럼 목숨을 버릴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 그렇게 안되지.'
그 무간룡과 싸운다고 하면, 지원할 사람은 널리고 깔렸다.
당장 크로노부터도 다음에 론이 나타나면 직접 싸울 생각이니까.
─리오는 메레를 잃고, 혼자서 무간룡을 대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이는,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리오와 세이의 가장 큰 차이.
리오 때와는 달리, 세이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하면… 지금이야말로 그때다.
"뭐, 그 이야기는 우울하니까 나중으로 미루지. 그런데… 단순히 병문안만으로 왔을 리는 없고. 다른 용건이 있을텐데?"
"섭섭하군. 아무리 나라도 친우가 입원했다면 그 이유만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용건이 있긴 하지만."
크로노의 얼굴이 갑자기 짖궃게 변했다.
그리고 세이는 등골에서부터 왠지 모를 오한과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뭐야. 뭘 시킬 생각이야. 말해두는데, 나 지금 일어난지 얼마 안된 환자라구?"
"별 건 아니니까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라."
"누가 무서워 했어!!"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걸. 아무튼…"
크로노는 한장의 서류를 들고서 그것을 흔들었다.
"… 그건?"
"임명장이다. 넘버즈 갱생 교육 부책임자의. 참고로 책임자는 긴가 나카지마 하사. 네가 교육했던 스바루 나카지마의 언니지."
"…… 야. 너 설마─"
"축하한다. 일어나자마자 할 일이 생겼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어버린다.
"안해! 아니, 못해! 할 거 같냐! 할까보냐! 할 수 있을까! 기각! 각하! 무리! 문제외! 절대 거부!!"
"자자, 너무 그러지 말고─"
"지난번에 네 명 가르쳤으면 됐잖아! 뭘 더 바래?!"
"그거야 하야테의 사적인 '부탁'이었고. 이건 나의 공식적인 '임명'이다. 그 차이는 상당히 커."
"임명이고 뭐고, 그 이전에 난 국원도 아닌데?"
"아, 그 건에 대해선 미안하게 됐다."
"… 너. 무슨 짓 했어."
"왜, 그거 있잖나. 1년쯤 전인가 너와 내가 대련했던 거."
"아, 그거야 네가 수권 익힌 거 체크 좀 해달라고 해서 그랬던 거잖아. 근데 체크해달라고 해놓고 수권은 하나도 안 쓰고 마법만 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세이는 굳어버렸다.
분명히 그때 구경꾼이 이상하게 많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 너, 설마─"
"그게 관리국 촉탁 시험이었지. 참고로 넌 멋지게 합격했다. 나노하들도 모르는 일이지만, 넌 그날 이후부터 당당한 시공관리국 촉탁이었어. 물론 아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다섯명도 안되지만."
이, 망할 자식이.
몸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진심으로 한대 후려쳤을 것이다.
월권 행위에도 정도란 게 있는 법이건만 이 녀석은 가끔 너무 막나간다.
"뭐, 그런 거다. 재활 훈련하는 셈 치고 도와다오."
세이는 한참동안이나 이를 빠득빠득 갈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맡긴지 10분만에 후회해도 난 몰라."
역시 이 패턴. 언제나 이렇다니까. 부탁하면 거절 못한다는 것도 병이다.
'그나저나…'
크로노는 넘버즈들의 심문 뒤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저기… 질문 한가지 해도 될까?'
'성실하게 대답해줬으니까, 내가 알려줄 수 있는 범위라면.'
'그 사람 말야. 리오랬나 세이랬나.'
'아.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심하게 당했는데… 좀 어때?'
'의식은 회복했다. 움직이는 건 아직 힘든 모양이지만. 그런데 그건 어째서 묻는거지?'
'그게…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건 반쯤 우리 책임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 아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그렇게 안됐을 테니까 양심에 찔린달까…'
'신경쓸 필요는 없을걸. 그 녀석, 그런 쪽으로는 뒤끝 없으니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보복당할 거 무서워하는 거 아니거든? 그냥 우리가 엄청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그런가… 하지만 그 녀석은 그렇게 된 것조차도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의 사과같은 걸 받진 않을거다.'
'… 어? 무슨 말이야?'
'우리들도 비슷한 식으로 사과했지만, "내가 이 꼴이 된 건 내가 약해서지 너희랑은 조금도 상관없어. 내가 녀석에게 이길 수 있을만큼 강했다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테니까. 결국 내 수련부족이라는 거지. 한심할 노릇이야."라고 되돌려받았지.'
'……'
'뭐, 결국 엄청나게 완고하고 융통성없는 녀석이라는 거다. 우리도 가끔 골치를 썩지만, 천성인 모양이라.'
'… 뭔가, 멋지네. 그런 거.'
'응? 뭐라고?'
'아,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남자로서 패배한 느낌이랄까, 한편으론 경이롭달까."
"… 무슨 의미야."
"아니, 혼잣말이다. 신경쓰지마."
론과 산요에 대한 질문이 끝나자마자, 거기에 협조했던 넘버즈들은 예외없이 세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은 걱정이었고, 속으로 숨기고는 있었지만 그 이외의 감정도 있었다.
물론 넘버즈들의 감정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 은발적안의 「흑사자」는 남자인 자신이 봐도 지나칠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마치 고대의 완벽에 가까운 명화나 조각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고고하고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무신(武神).
시시오 세이에게, 그 이상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아마도, 넘버즈들에게 있어서는 태어나서 본 중에 최고로 훌륭한 '것'이 아닐까한다.
'… 무신이라기엔 상당히 뭐한 외모지만서도.'
여자같이 생겼다던가 어떻다던가 할 수준은 옛저녁에 지났다.
목욕탕이라던가 수영장이라도 가지 않는 한은 과연 남자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물론 진짜로 여자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분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슴은 평평하고, 엉덩이나 허리도 여자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언뜻 보면 여자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와는 다른… 그런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가면 일부 멍청한 남자들에게 헌팅당하는 일마저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이의 성격에 그걸 참을 리는 없고, 그 자리에서 박살냈다.
나중에 그들에게 피해보상을 하느라 지갑이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즐거운 추억이다.
"… 뭔가 대단히 기분나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응? 그럴 리가 없잖아. 그보다 너… 힘들지 않은건가."
지금의 세이는, 재활훈련이랍시고 천장에 손가락 두개만을 박아넣은 채 몸을 수평으로 눕히고 그 상태에서 푸쉬업. 요컨대, 보통의 팔굽혀펴기를 천장에서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손가락이 두개 뿐이지만.
"네 말마따나 병상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나. 무리는 하지마라."
"그다지. 수권의 수련은 신체적인 강인함도 중요해. 게다가 고통이라면 나봉장악 수련때가 몇배는 더 했으니까."
"… 그건 또 뭐야."
크로노의 반문에, 오히려 세이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내 기억 봤다고 하지 않았어?"
"본인이 의식을 잃고 있는데 보면 얼마나 본다고. 게다가 우리가 알고 싶었던 건 론과 관련된 기억이었으니까."
과연. 임수전 수련은 건너뛰었다 이거군.
하긴 용량부터 장난이 아니었을테니 이해못할 건 아니다.
"내 세번째 스승, 바다의 권마 라게크의 수련이야. 임기에 반응하는 독을 몸 속에 주입하는."
"… 독?!"
"응. 처음에는 신체의 자유와 임기의 통제력를 누르는 정도지만, 중독 정도가 심해질수록 고통이 증가하지. 발끝에서부터 개미가 십만마리쯤 기어올라오는 것과 혈관을 몇백개의 바늘이 돌아다니는 것을 합치면 느낌상으론 비슷하겠군. 고통은 비교도 안되지만."
"… 꼭 해본 것처럼 말하는군."
세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크로노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안해봤을 거 같아?"
차마 무서워서 반문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야기는 계속됐다.
"임기에 반응하는 독이니까, 임기를 쓰려고 하면 할수록 중독 속도가 빨라져. 하지만 임기를 안쓴다고 해도 결국 중독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최종적으로 죽는다는 건 똑같아."
"… 그거 장난 아닌데. 어떻게 통과한거야."
세이는 손가락을 천장에서 뽑아내고, 밑으로 떨어져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던져져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간단해. 임기에 반응해서 임기를 억제하는 독이라면, 그 이상의 임기를 꺼내놓으면 그 뿐."
"… 임기 쓰면 중독이 가속된다며."
"그렇지. 그러니까 결국 목숨을 건 레이스라는거야. 독이 뇌까지 도달해서 내가 죽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내 임기가 나봉장악의 독을 능가할만큼 성장하는게 먼저인지."
말도 안되는 수련이다. 크로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수련조차도 마지막 수련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지."
"… 마지막 수련?"
"내 마지막 스승인 대지의 권마, 마크의 수련. 아니, 본인에겐 날 수련시키겠다는 의지가 없었으니까 수련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어, 미안하지만 나로선 상상이 안되는데. 조금 전의 그 극악한… 수련을 빙자한 제자 살해 기도를 능가하는 수련도 있다는 거냐."
세이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패더라."
"… 어?"
"다짜고짜 패던데. 뭐라더라, '너 지금 속으로 나한테 반역할 생각했지. 솔직히 말해!!'라던가. 단언하건대, 전생과 현생을 모두 포함해도 그때만큼 많이 맞은 적은 없어."
무엇보다도 마크의 경우 다른 두 권마의 경우와도 전혀 달랐다. "까짓거 죽으면 할 수 없지 뭐."라는 것이 다른 두 권마의 마인드라면, 마크의 마인드는 "그냥 죽여버리자."였으니까.
그러니까 수련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그 뿐이라는 것과, 아예 처음부터 죽일 작정으로 두들기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후자쪽이 훨씬 질이 나쁘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것도 없겠지.
"…… 그거, 수련?"
"내 입장에선 노임기를 얻고, '인간'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충분히 수련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크에게 그럴 의도가 있었냐고 말하면 대답은 NO야."
그건 스승도 뭣도 아니잖아.
크로노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말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새삼 세이에게 수행을 받을 때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전부 취소하고 싶어졌다. 아니, 솔직히 전에 들은 카타의 수련도 그렇고 지금의 두 경우도 그렇고. 자기들이 받은 수련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니까.
"… 하지만 말야."
문득.
세이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로노가 고개를 들어 세이를 바라보자, 세이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크가 죽은 다음부터… 계속 생각해봤어. 물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게도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마크인데, 어째서 끝끝내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게다가, 최후의 전투에 앞서서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꼬맹이. 내 전투를 똑똑히 그 눈에 새겨두거라. 그리고 내게 대등하게 맞서려고 하는 그 자체로, 그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아두는게 좋을거다."라고.
지금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마크에게는 정말로 자신을 죽일 의지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죽이고 싶은 상대에게는 경고따윌 할 필요도 없겠지.
"마크 역시, 론에게 인생을 조작당했으니까."
"……"
"론이 마크의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마크는 눈치챘을지도 몰라. 마치 옛날의 자신처럼, 이번엔 내가 론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어쩌면 나에게서 옛날의 자신을 겹쳐서 보고 있었을지도."
세이의 전생, 리오가 론에게 인생을 지배당해 환수왕─ 파괴신이 됐던 것처럼.
마크 역시 론에게 조종당해 스승인 마스터 브루사를 배신하고 임수전을 세웠다.
"어쩌면 말야… 정말로 어쩌면이지만… 그 남자는, 나를 론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 걸지도 몰라. 자신에게 맞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건 자신을 넘어서선 안된다는 것. 내가 마크를 넘어설 수 없다면 론에게 있어서 나의 가치는 제로가 되니까, 론이 그 이상 나에게 손을 뻗칠 일도 없게 됐을지 몰라."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의미도 있다.
마크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대등하게 맞서려고 하거나, 자신을 넘어서려 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예전의 성품은 어땠을지 몰라도, 임수전을 세우고 난 후의 마크는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마크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자들을 확실하게 제거해왔고.
하지만 유독 리오에게만은 '경고'만으로 그쳤다. 죽이려고 하면 몇번이나 그럴 기회가, 명분이 있었음에도.
어쩌면 대지의 권마는… 힘을 추구하여 높은 곳으로 오르고, 마지막까지 단 한번도 그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그 최강의 권사는, 옛날의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어린 사자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뭐, 마크가 죽은 지금은 확인할 길도 없고, 확인한다고 해서 그 양반 성격에 똑바로 대답해줄 리도 없겠지만."
그로부터 약 이틀 뒤.
세이는, 교육을 받아들인 넘버즈들의 앞에 서게 되었다.
─여기저기에 아직도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으로.
"… 저기, 아플 거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No.10 디에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걷는 정도라면. 무리하면 당연히 아프지만. 질문은 그게 끝?"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저기, 마법을 쓰는 것 같진 않던데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건가요?"
"수권이야. 그거에 대해 이야기하면 엄청나게 길어지니까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말할게."
"실례입니다만, 도저히 신체적으로 강하게 안보이는데요. 무투파가 되신 이유는?"
"방어전이나 원거리전은 체질도 아니고 취향도 아니니까."
"저희들도 그렇게 강해질 수 있나요?"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르쳐달란 거라면 사양하겠어."
"그, 금색의 용이랑 싸울 때 무섭지 않았나요?"
"그때의 그건 기억도 없는데 무섭고 뭐고가 어딨어."
이 정도는 그나마 성실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키와 몸무게, 그리고 쓰리 사이즈 알려주세요!!"
"166Cm에 50Kg, 쓰리 사이즈는 안 재봤지만 중학교 이후로 별로 안 변한 것 같아."
"특기로 하는 스포츠같은 건?!"
"무술 이외의 스포츠는 좋아하지도 그다지 하지도 않지만, "시키면 뭐든 잘 한다"고 들었어."
"주말을 보내는 방법, 그러니까 취미는요?!"
"보통은 자기 단련이지만 최근엔 친구 소속 부대원들 훈련시킨다던가 갑자기 생긴 딸이랑 논다던가."
"좋아하는 음식은?! 이왕이면 싫어하는 음식도!!"
"고기 종류는 다 좋아해. 그리고 피망만은 싫어. 그건 사람이 먹을 게 아냐."
"피부랑 머리결이 굉장히 좋은데 관리하는 방법은?!"
"… 긴가 교관. 당신은 뒤로 비켜주면 좋겠는데."
빈말로도 '제대로 된' 이라고는 할 수 없을 질문들 뿐이었다.
그러던 중, No.6 세인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어째서인지 다른 손으로 코를 감싸쥐고 있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정장인데도 불구하고 조끼 형식이라 어깨와 목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쇄골까지 약간 나와있는데 그건 일부러 입니까?!"
"이상한 건가? 사무쪽 사람들이 입는 옷은 잘 몰라서, 보통 옷은 하야테─ 그러니까 기동 6과 대장에게 맡겨두고 있지만."
'천연이었어?'
'천연이네.'
'천연이야.'
'천연이구나.'
그녀들로서는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어쨌거나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고.
그리고 여기에서 No.12 디드가 손을 들고 질문을 꺼냈다.
모두가 가장 묻고 싶어했던 질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피하려고 했던 질문을 용감하게도 끄집어낸 것이다.
"지금 교제하는 여성분 있습니까!!"
"……?"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교제, 라는 건 친구를 말하는 거지? 그런 거라면 알고 있는 녀석들 대부분이 친구지만."
이 말로 긴가와 넘버즈들은 확신했다.
이 사람, 사귀는 사람없다. 적어도 여성들 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 사람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라는 것을.
물론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세이의 정신 연령쪽은 '전생'과 비교해서 별로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질문 타임은 여기까지. 이대로 가다간 언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에─ 하고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왔지만, 세이는 가볍게 임기를 뿜어내는 것으로 그것을 눌렀다.
조용해진 넘버즈들을 한번씩 돌아보고, 세이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까놓고 말하지. 너희들은 차원 단위의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있고, 그런 너희들의 갱생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 교육시켜봤자 어차피 병기는 병기, 결국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라는 의견들이지. 실제로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고, 까딱 잘못했으면 너희들은 곧장 사형대 위로 올라갔을 수도 있어. 그렇게 안된 건, 이쪽의 표가 아주 조금 더 많았던 덕분이야."
넘버즈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본인들의 일이니만큼 그들 자신이 모를 리 없다.
자신들이 한 짓이, 얼마나 큰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고 있는 지금… 그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인간'으로서 죄를 갚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말해두지."
그런 그녀들을 둘러보며, 세이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그런 종류'의 말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고 기억에서 삭제해버려. 기억해둘 가치조차 없는 얼간이들의 말이니까."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점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들의 얼굴은 '놀람'으로 번져갔다.
"분명히 세상에는 도저히 손댈 수 없는 극악인이라고 하는 게 존재해. 어떤 수단을 써도 되돌릴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 쓰레기가. 하지만 너희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마음 아파하며, 고민한 끝에 이 자리에 있어. 그런 너희들을, '쓰레기'와 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의견이야."
세이가 잠시 입을 다물자, 방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넘버즈들은 전부 세이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세이의 옆에 대동하고 있는 긴가조차도.
"태생이 보통 인간과 '약간' 다른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묶어버리지마.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감정인 '양심'이라고 하는 걸 가지고 있는 이상, 너희들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자부해도 좋아. 잘못을 저지르고도 뇌우칠 줄 모르는 놈들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너희들은 훌륭한 '인간'이니까."
세이는 넘버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가 최종적으로 바라본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양손이었다.
"예전의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죄를 지었어. 자신의 감정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포'를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힘을 원했고, 힘을 원했기에 손대서는 안될 것까지 손을 댄 결과 말할 수 없이 큰 혼란이 일어났고… 나는 그 전까지 함께 달려온 동료들을 배신했어. 그리고 그 와중에 내 선배조차도 이 손으로 살해했지. 그러고도 뉘우칠 줄 몰랐지. 아니, 뉘우칠 수 없었어. 그때의 나는 오로지 '힘'을 얻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힘에 탐닉한 아귀같은 존재였으니까. 강해진다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같은 건 할 수 없었지."
엄밀히 따지면, 사형인 단의 죽음은 리오의 책임이 아닐수도 있다.
리오가 단에게 결투장을 내밀기 전날 밤, 이미 론이 단에게 빈사에 가까운 중상을 입힌 다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넘버즈들은 그 의외의 말에 놀랐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어. 내가 들어서버린 잘못된 길을 바로잡아주려는 친우도 있었고, '강해진다'라고 하는 속박에 묶여있던 나를 풀어준 일생의 라이벌도 있었으며, 내 운명을 뒤에서 조종한 사룡(死龍)과 함께 싸워준 동료들도 있었어.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올바른 힘의 사용법이라는 걸 가르쳐준 지금의 친구들도 있지. 나는…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인간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어."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환수왕'과 '무간룡'의 싸움을 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그 '사룡'이라고 하는 것이, 론을 가리킨다는 것을.
"스승과 동료를 배신하고, 동문의 사형을 살해하고, 금기를 깨트리고,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묻힌 최악의 인간. 그렇게, 너희들 정도는 귀엽게 보일만큼 커다란 죄를 지은 나조차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나름대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어. 하물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올바른 길'을 찾아내려 하고,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한 표지판을 찾고 있는 너희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세이는, 마지막으로 단언했다.
"그런 '최악의 인간'이었던 나니까 장담할 수 있어. 너희들이라면, 분명 나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들이 될 수 있을거야."
넘버즈들의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갑자기 이런 소리를 들은 것에 대한 놀라움이나 당혹스러움도 있고, 약간이지만 불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선.
솔직하게 기뻐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비록 지금 당장은 한 사람에게 뿐이지만.
'인간'이라고 인정받은 것을.
약 2개월.
그 기간 동안 세이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이는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뿌듯한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단 남에게서 도움을 받기만한 자신이 누군가를 바로잡아주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
그러나 이건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등 뒤를 살짝, 아주 살짝 돌아본다.
나노하도 페이트도 하야테도 시그넘도 비타도 린포스 아인도 아리시아도 다들 생글생글 웃고 있다.
─얼굴만 웃고 있을 뿐, 다들 각자 훌륭하게 살의와 살기라고 하는 것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나노하와 페이트의 경우엔 과격기와 노임기까지 아낌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유노와 자피라와 크로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신인… 아니지, 이제는 스트라이커가 된 네 사람도 함께.
그러나 그 세 사람은 오직 손을 싹싹 빌었고, 스트라이커들은 고개를 숙이며 연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을 뿐으로, 이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결국 세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앞에 있는 신인… 정확히는 기동 6과 입대 희망서를 제출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칭크."
"네."
"일단은 당신이 대표니까 묻는건데… 왜 하필 기동 6과에?"
"선생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도 쓰여져 있을텐데요."
돌아버리겠네.
식은땀의 숫자가 늘어나는 걸 느끼며, 세이는 다시 한번 희망서들을 읽어봤다.
그래, 기동 6과에 입대를 희망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없다. 하지만 문제는 입대 희망 사유다. 어쨌거나 전원이 '세이 선생님이 있는 부대니까'라고 썼으니까.
나노하들의 살기가 하늘마저 꿰뚫을 듯이 높아진 것은 다름아닌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아니, 확실히 의지할 사람도 마땅치 않고 내가 교관이기도 했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물론 세이는 그 이유에 대해선 어디까지나 헛다리만 짚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다른 한쪽'을 바라본다.
성왕의 요람에서 사로잡혔던 세 사람인 No.1 우노, No.3 트레, No.4 카트르. 아마 교육을 시작한지 3주쯤 지난 다음에 합류한 후발 주자들이었지.
그러고보니 그녀들이 온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거기의 당신들은… 설마해서 묻겠는데 입대 희망자들은 아니겠지."
"유감입니다만, 입대 희망자 맞습니다. 그리고 희망사유도 동일하구요."
우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세이가 가졌던 일말의 희망마저 가차없이 배반했다.
'… 안좋아. 살기가 아까보다도 높아졌어.'
이미 MAX라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더 높아질 여지가 남아있었던가. 지금 그녀들의 살기라면 마크조차 감히 살기로 겨뤄볼 생각을 못할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했다. 안그러면 세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
리오였던 시절 무간룡과 대치할 때 이상의 공포를 느끼며, 세이는 하야테에게 말했다.
"저기 말야. 기동 6과 인원은 충분하지 않아? 굳이 11명이나 보충하지 않아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한데이.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런게 내려왔다 안카나."
하야테는 여전히 얼음이 뚝뚝 떨어질듯한 미소를 지으며 종이 한장을 팔랑거렸다.
"… 내 직감이 옳다면 그 종이는 엄청나게 나쁜 소식을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정답. 까놓고 말해서, 이 사람들을 쓰는 건 기동 6과 설립때랑 마찬가지로 '실험'에 가까운 일이니까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거 아이겠나. 애초에 저 아들은 전과도 있고, 그런 아들을 거리낌없이 받아주는 데는 우리밖에 없다는 이야기제."
"……"
세이는 망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다시 넘버즈들을 바라보았다.
거절할 명분도 없고 게다가 입대를 받아주라고 명령까지 떨어진 이상,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 질문이 하나 있는데."
"응? 뭐고?"
"애초에 나한텐 인사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잖아. 근데 왜 나를 저 아이들과 대면시킨거지?"
하야테는 잠시 세이를 바라보다가, 실로 무시무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거 아니제?"
"… 진짜 몰라서 묻는건데."
"…… 됐다. 모르면 치아라."
세이의 명예를 위해 변명해두자면,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어쨌거나, 설마 넘버즈쪽에서 자신을 '보고 싶다'라는 이유로 지명할 거라고 생각할 순 없을테니.
넘버즈가 기동 6과에 합류한지, 다시 1개월이 흘렀다.
새 멤버들도 그럭저럭 적응을 완료했고─단, 나노하의 '특별 훈련'에만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대원들끼리의 위화감도 많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끼인 세이의 고생이 어느 정도였을지 굳이 말하진 않았다.
세이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3개월간의 재활 훈련을 마치고, 모든 부상과 피로가 회복되어 원상태로 돌아와있다.
몸 상태를 확인한 세이는 곧장 크로노에게로 갔다.
"아, 갈 생각이냐?"
"응. 미룰 이유도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을건가?"
"금방 돌아올거니까."
크로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에게 부탁받았던 정보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조사대가 전멸한 세계의 좌표는 여기에 적혀있어. 통로가 개척됐으니까, 지금이라면 게이트로도 가능할거야."
"… 아아."
"… 거기인거냐. 너의 원래 세계는."
세이는 침묵을 지켰지만, 크로노는 그것을 긍정이라고 여겼다.
"조사대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거긴 이미─"
"알고 있어. 론도 그렇게 말했는걸. 2천만년이나 지났는데, 온전히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어."
어느 의미로,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그러나 머리로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의미.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렇다고 해도 말야."
"… 뭐, 좋아. 거기까지 말한다면 내가 뭐라고 할 순 없겠네. 잘 갔다와라."
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뒤로 돌려 걸어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살짝 돌린 채 말했다.
"너와 유노, 그리고 자피라에게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아. 지금의 녀석에겐 통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어."
혹시나 세이가 없을 때 론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가르쳐두긴 했다. 그러나…
"그건 배울 때 들었지만."
"통하지 않을 가능성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받아쳐져서 너희가 갇히게 될 우려도 있다. 사용할 때 그거 잊지마."
"녀석이 꼭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3개월동안이나 조용했는데."
"우리한텐 그다지 짧은 기간이 아니지만 녀석에겐 눈 깜짝할 사이나 다름없어. 잊으면 안돼. 녀석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몇천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괴물이라는 걸."
인간 기준으로 녀석을 잴 생각하지마.
세이는 그렇게 덧붙이고, 방을 나섰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갑자기 오고 싶어졌다"는 정도.
아니, 정말로 갑작스레 일어난 충동이었을 뿐, 무슨 확신이나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 나는, 이 세계의 무엇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걸까."
세이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걸었다.
있는 것이라곤, 바다와 대지… 그 두가지 뿐.
그 이외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이외의 생물이나… '인간이라고 하는 종족이 이 세계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마저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장소가, 수권의 성지… 수원향의 끝이라고 하는 것을.
수원향의 거대한 '짐승의 나무'도, 수권의 신사도, 사이다인의 석상도.
이곳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후… 후후후…"
자신은, 도대체 이제와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걸까.
원래 속해있던 세계가 멸망한 것을, 그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무언가 변하기라도 하길 기대했던가.
─어느 쪽이든, 지금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끝없는 허무감 뿐이다.
"…… 시간낭비만 했군."
세이는 눈을 감고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서 론의 대책을 새로 짜지 않으면─
─한 순간, 세이의 등 뒤가 밝아졌다.
세이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돌렸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 착각이었던가.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두발짝을 채 떼기도 전에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이 섰던 곳까지 걸어왔다.
"뭘 하는걸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이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곳에 올 때와 똑같다.
논리도 뭣도 없이, 단지 감정이… 지금의 기분이 하라는대로 따를 뿐.
그 감정이 지금 말하고 있다.
"임수 라이온권 임기 「강용호파」!!"
임기가 거대한 흑색 사자의 형태로 변한다.
그 사자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대지를 향해 추락하듯 부딪힌다.
본래는 임기 초래수로 불려나오는 린라이온.
이 기술은, 그 린라이온의 '힘'만을 빌려오는 세이─ 아니, 리오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리오에게 있어, 이 기술 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은 없다.
그것이, 전력으로 수원향의 대지에 부딪혔다.
강용호파는 눈앞에 있던 언덕을 깨끗이 지워버렸고─ 그 밑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
"… 게키타이거?!"
게키레드, 칸도 쟝의 분신.
격기술 내내수로 태어나는 적색의 게키비스트.
하지만, 이게 왜 여기에…
아니, 무엇보다도 게키비스트는 주인의 격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게키타이거는 세이를 내려다본다.
세이는, 그런 호랑이를 올려다봤다.
… 이 게키타이거는…
"설마…"
한걸음 한걸음 호랑이에게 다가선다.
그러자, 호랑이는 머리를 숙여 세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 너, 인거냐…?"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게키타이거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수원향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수원향의 상징인 거대한 나무도.
푸른 숲도, 호수도, 동물들도.
신사와 사이다인의 석상까지도.
"이게…?!"
환상?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오랜만이네, 리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목소리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존재할 리가 없는 사람의 것.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몸을 돌리고 만다.
천천히,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본다.
─백호의 남자 단의 아들이자
─최초로 리오에게 '패배'라는 것을 안겨주었으며
─론에게 이용당하고 있던 자신을 올바른 길로 되돌려준 붉은 호랑이의 권사.
"쟝…!"
"근데 너 엄청 많이 변했다? 옛날하고 하나도 닮은 데가 없잖아."
전과 현생의 유일무이한 라이벌은, 그때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곳에 서있었다.
"… 농담도 아냐. 설마, 한낮 '인간의 의지'가 2천만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다니."
"괜찮아, 괜찮아~♪ 초류진도 6천 5백만년을 버텼는걸. 그거의 3분의 1도 안되니까 문제없어."
"그런 문제냐."
"그런 문제야."
세이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녀석을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다. 감동도 뭣도 없는, 실로 재미없는 재회가 됐다는 것 정도는.
"그런데, 애초에 '이런 걸' 만든 이유가 뭐야?"
"아, 별 건 아니고… 마스터 코뿔소(사이) 흉내나 내볼까 하고."
… 이 녀석. 수권 창시자 이름도 못외운거냐(마스터 브루'사 이').
내심 혀를 차면서, 쟝이 한 말을 풀어본다.
"… 잠깐만. 그 이야기는─"
"우리들이 마크와 싸웠을 때 말야. 코뿔소가 '수력개화'해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잖아."
수권사의 잠재능력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내주는 마스터 브루사의 은혜.
그것을 수력개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이다인의 석상이 부서진 이후부턴 불가능했을텐데.
"그렇게 굉장한 걸 받는게 우리들로 끝이라는게 왠지 아까워졌거든. 우리 이후의 수권사들도 그런 걸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 과연. 게키비스트를 불러내고 그것을 석상화시킨 다음 격기혼을 담았다는건가."
예전부터 이 녀석은 단순하다고 해야할지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지 감이 안잡힌다.
세이는 갑자기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마스터 쟝'이라고 불러야 되나?"
"관둬. 너한텐 안어울려."
쟝은 손까지 휘저으며 강력하게 거절했다.
잠깐동안 둘 사이에 웃음이 흐른 후.
세이는 얼굴을 굳혔다.
"내가 뭣때문에 여기에 온 건지, 알고 있어?"
"그야 물론. 내가 불렀는걸."
"…… 뭐?"
"얼마 전에 론이 부활한 것도 알고, 네가 론과 싸워서 졌다는 것도 알아. 보진 못했지만… 엄청나게 큰 '금색'이랑 엄청나게 큰 '검정색'이 부딪혔다는 건 느꼈거든. 론이랑 싸울 수 있을만큼 커다란 '검정색'은 너밖에 없으니까, 틀림없이 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부른 거야."
그래서였던가.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이 세계로 오고 싶어졌던 것은.
세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내가 죽은 뒤로 수권이 어떻게 됐는지 라던가, 그 이외에도 여러가지."
"그 뒤로도 이거저거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듣고 싶다면 못들려줄 것도 없는데."
쟝은 웃으면서, 어디서 꺼낸지 모를 카트를 밀고 왔다.
카트 위에는, 찻주전자와 두개의 찻잔이 놓여있었다.
"… 뭐야, 그거."
"여긴 내 세계니까 말야. 맛은 걱정안해도 돼. 내가 탄 게 아니라 미키가 탄 걸로 상정했으니까."
"요상한 능력만 생겼구나, 너."
세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직후, 카트를 걷어차고 쟝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쟝은 그것을 손으로 잡아냈다.
"너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쁠 건 없지만, 나한텐 시간이 없어. 알고 있지?"
"여전히 성격 급하네. 네 경우엔 그게 장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괜찮지만."
카트가 저절로 사라지고.
세이의 몸에는 흑사자의 장갑이, 쟝의 몸에는 호랑이의 슈츠가 씌워진다.
"코뿔소하곤 달라서, 내 수력개화에는 조건이 하나 있어. 이 대결에서 나한테 인정받은 수권사만 개화해주는 거지."
"확실히, 아무 수권사한테나 다 해줬다간 난장판이 될테니까 말야."
슈퍼 게키레드의 모습을 한 쟝의 몸에서 과격기가 흘러나온다.
세이의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맹하고 뜨거운 과격기.
그에 맞서, 세이 역시 노임기를 뿜어내 과격기의 압력에 맞섰다.
"조심하는게 좋을걸. 신참 수권사들이랑 달리 넌 합격 상한선이 높으니까─ 봐주지 않을거거든."
"봐달라고 한 기억 없어. 아니, 봐줬다간 오히려 내 손에 죽을걸."
"벌써 죽은 내가 또 죽을 리가 없잖아. 그럼─ 시작한다."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벌어졌다.
물론 그 동안에도, 미드칠더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성왕의 요람 전투에서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두 괴물 중 하나─ 환수 바실리스크권의 산요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곧바로, 스타즈와 라이트닝즈 전원의 출동.
지난번 기동 6과 습격때 그가 보여줬던 힘은, 분대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어라, 나오라는 사람은 안나오고 용건없는 애들만 나왔다요.]
"혼자 쳐들어오다니, 용기가 가상하다… 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군. 네놈은 그 정도로 괴물이고."
[정답이다요. 솔직히 말해서 차원항행부대인가 뭔가도 나 혼자 쓸어버릴 수 있다요.]
그 놈의 중력조종.
론의 '낙뢰 비' 이상으로, 일 대 다수에서 유리한 능력.
8:1임에도, 유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녀석을 날려버리고 싶다는 감정이 치밀어오르고 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지만."
[응? 뭐다요?]
"어째서 성왕의 요람 전투에선 나타나지 않은거죠? 당신도 론도."
나노하의 물음에, 산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야, 거기 더 있어봐야 재미없을 것 같아서였다요.]
"…… 무슨?"
[볼짱 다 봤다는 거다요. 전투기인이라던가 성왕의 요람이라던가도 기대이하라서 버렸다요.]
더이상 들을 것도 없고 들을 이유도 없다.
그렇게 판단한 나노하들은 곧장 공격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시그넘과 비타가 레반틴과 그라프 아이젠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뒤를, 스바루와 에리오가.
나노하와 페이트가.
그리고 캐로와 티아나.
이 순서대로, 산요에게 싸움을 걸었다.
「자전일섬」
「라켄틴 해머」
열화를 담은 시그넘의 검과, 마력 분사로 가속이 걸린 비타의 해머.
열화의 마검과 강철의 백작이, 산요의 양 어깨를 때린다.
「리볼버 슛」
「스타르멧서」
스바루의 리볼버 너클이 일으킨 충격파와 에리오의 마력으로 생성된 검.
둘은 거의 동시에 산요의 복부에 꽂혔다.
「하켄 슬래시」
페이트의 바르디슈로부터 만들어진 금색의 낫이, 산요의 목을 벤다.
「엑셀 슈터」
분홍빛의 탄환들이 레이징하트로부터 발사되어, 산요의 전신을 두들긴다.
그 숫자는, 32발. 그것들을 동시에 컨트롤하여 산요를 공격한다.
「크로스파이어 슛」
이번엔 주황빛의 탄환들이 날아온다. 숫자는 여덞.
그것들은 양옆으로 넓게 퍼졌다가, 산요의 뒤로 돌아가 등을 때린다.
「용혼 소환」
캐로에 의해 원래 모습을 되찾은 백룡 프리드리히.
그 입에서 발사된 화염이, 산요를 완전히 집어삼킨다.
[소용없는 짓이다요. 환기 「반중록」!]
구체의 형태로 산요의 몸을 감싼 금색의 빛이, 그 모든 공격을 차단한다.
"무슨─"
하지만 당황한 것은 스바루들 뿐으로, 나노하를 포함한 대장 네 사람은 동요가 없었다. 게다가, 신인들의 동요 역시 그리 오래 가진 않았고.
세이가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괴물.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바, 놀랄 것도 없다.
[환기 「우라비돈」!]
산요의 전방으로 초중력이 발동되어, 위에서부터 찍어누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동 6과의 스트라이커들은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난 상태.
[어, 어?]
산요는 자신의 주변을 멤돌고 있는 그녀들을 따라가지 못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중력조종으로 상대를 느리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산요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다지 빠르지 못했으니까.
"우선 나부터!"
「디바인 버스터」
나노하의 포격을, 자신의 것으로 어레인지한 스바루만의 디바인 버스터.
게다가 지금 스바루의 주먹에는, 격기까지 담겨있다.
리볼버 너클이 있는 오른주먹에서부터 발사된 그것은, 산요의 등을 강타한다.
[크엑?!]
"다음은 제가!"
"나도 도울게, 에리오군!"
「알케믹 체인」
「스피어앙리프」
캐로가 불러낸 쇠사슬이 산요의 몸을 구속하는 동안, 에리오는 스트라다의 가속을 이용해 산요의 허리를 베고 지나간다.
역시, 여기의 스트라다에도 마력만이 아닌 격기가 담겨, 그 위력을 증대시키고 있었다.
[이 꼬맹이들이 짜증나게 한다요…!]
산요는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단박에 끊어버리고 몸을 돌렸다. 그렇지만, 곧 혼란에 빠지게 된다.
─어쨌든 그의 주변엔 무수한 티아나가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페이크 실루엣」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요?!]
한참이나 해매던 산요는, 결국 우라비돈으로 페이크 실루엣들을 지워나갔다.
─하지만, 그 덕분에 '큰 공격'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간다, 레반틴!"
「슐랑게 폼.비룡일섬」
레반틴이 그 모습을 쇠사슬과 같은 검으로 바꾸고, 그 연결칼날에 마력과 함께 격기를 싣는다.
그 상태에서 휘둘러진 레반틴은, 산요에게 부딪혀 폭발과 동시에 산요의 목을 관통한다.
[우겍…!!]
"아직 멀었다고, 그라프 아이젠!"
「프라메 슈라크」
마력과 함께 격기를 극한까지 응축시킨 그라프 아이젠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힘껏 산요를 향해 내려친다.
산요의 머리에 직격된 그라프 아이젠은 곧 폭발을 일으켰고─ 마침내 산요의 거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런 산요를 향해, 두 사람의 '에이스'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가자, 페이트짱!"
"응, 나노하!"
양쪽의 방향에 선 두 사람은, 곧바로 포격에 들어간다.
"엑셀리온─"
"트라이던트─"
나노하의 포격진에는 과격기가.
페이트의 포격진에는 노임기가.
두 가지의 상반된 힘이, 지금 한 표적을 향해 겨누어졌다.
"버스터!""스매셔!!"
산요를 향해 발사되는 세 자루의 뇌창(雷槍)과 한 줄기의 빛 기둥.
이제 겨우 몸을 일으킨 산요에게, 그것을 피하거나 방어벽을 칠 시간은 없었다.
산요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양쪽에서 포격을 받고, 그에 의해 일어난 폭발에 묻혀졌다.
─────────그리고.
[이야, 엄청 아팠다요.]
"?!"
폭발이 걷힌 후.
산요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어떻게…!!"
[어라, 환수왕 나리한테 듣지 않은 거다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산요는 불사신이다요. 론이랑 쪼~끔 다른 의미로.]
"… 과연. 불사신 괴물의 분신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불사신이라는건가."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누가 말했는지 모를 소리가 울렸다.
[뭐, 그런거다요. 알고 있겠지만, '불사'라는 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상대하기 힘든 속성이다요. 환수왕 나리도 그래서 론한테 진 거다요. 그러니까 말하는건데…]
산요는 천천히, 스트라이커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한다.
[환수왕 나리보다도 약한 너희들이 무슨 수로 나를 이길거라고 생각한다요?]
한편.
현재 산요와 기동 6과가 싸우고 있는 정반대인 크라나간 북쪽에서.
크로노, 유노, 자피라의 3인은, 최흉의 드래곤과 마주하고 있었다.
… 일단은 '권사'로서의 모습이었지만.
"꽤나 치졸한 방법을 쓰는군. 분신을 먼저 공격시키고 자신은 뒤로 돌아와서 공격이라니, 그런 잔수를 부릴 타입이라곤 생각안했는데."
[뒤로 돌아와서 공격? 아니,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시공관리국 지상 본부가 있는 미더칠드의 수도 크라나간.
하지만 그래봤자 론과 산요에게는 '인간따위의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크라나간을 파괴하는데엔 둘 중 하나만 와도 충분하다. 하지만…
[리오가 있을 경우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죠. 아무리 산요라도 당신들과 그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니까.]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세이가 없다는 걸 알고 온 거 아닌가?"
[그거야 그렇지만요. 뭐…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변덕이라고 할까요.]
"… 변덕?"
[새로운 '파괴신'을 만드는 일은 한동안 미루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괴신을 만드는 건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서 해야하는 작업이거든요. 근데 여기에선 아무래도 그렇게 못할 거 같아서. 때문에… 여기만큼은 직접 부숴보기로 했답니다. 산요는 아무래도 일 처리를 천천히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에게만 맡겼다간 언제 여기를 전부 파괴할 수 있을지 모르거든요. 그리고… 인간을 죽이고 그 세계를 부수는 즐거움이라면 저도 알거든요.]
"그렇게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라, 막겠다는겁니까? 당신들은 모처럼 이 세계를 완전히 부술 때까지 살려둘 생각이었는데.]
크로노는 듀렌달을 꺼냈고, 자피라는 건틀렛을 고쳐끼며 유노는 마법연산을 시작한다.
론은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는 수 없네요. 리오가 돌아오면 그가 보는 앞에서 죽여버릴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렇게도 죽고 싶다면 죽여드리는 수밖에.]
말이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번개가 떨어진다. 론의 날씨 조종. 아무런 전조도 준비도 없이 기후를 바꿔버리는 힘.
지난번 세이와 론의 싸움을 본 세 사람으로선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 모습의 론은, 단순히 '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쓰러트린다.
"스트래글 바인드!"
유노의 앞에 떠오른 녹색의 마법진에서부터, 같은 색의 '빛의 끈'이 나타나 론에게로 날아간다.
[쓸데없는 짓─]
""묶어라, 강철의 사슬!!"
녹빛의 끈이 론의 오른손과 오른발을 묶고, 반대쪽에서 날아온 회색빛의 사슬이 왼손과 왼발을 묶는다.
사지가 구속당하고도 론은 여유만만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격수 칠권성들이 사용했던 성성박의 구속조차 가볍게 풀어낸 적이 있으니까.
[인간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동물이니까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 힘으론 저를 파괴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합니다만, 어째서 제 앞에 선 겁니까?]
"뻔하잖아, 그런 건."
솔직히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유라서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창피할 정도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번쯤은 입밖에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 " "친우를 위해서다." " "
[…… 시시한데다 재미없기까지 한 이유군요. 2천만년 전의 그 작자들과 똑같아. 고작 그런 이유로 제 앞에 나선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드리지요.]
"글쎄, 어떨까. 벌써 끝났거든."
[───무?!]
「이터널 코핀」
크로노의 듀렌달이 기계음성을 발하자, 론의 몸이 급속도로 얼어붙는다.
예전, 폭주했던 야천의 서 방어 프로그램조차 일시동결시켰던 마법. 아무리 론이라고 해도, 자신의 불사성만을 믿고 무방비 상태에서 맞은 이상 빨리 풀려나긴 어렵다.
그에 이어, 쟈피라가 손을 앞으로 뻗는다.
─땅을 뚫고 튀어나온 대지의 이빨들이 얼어붙은 론의 몸을 찔러 산산히 파괴한다.
─곧 다시 합쳐지긴 했지만.
[… 방금 한 말은 취소해드리지요. 1회라곤 해도 이 저를 파괴할 줄이야.]
"… 역시 짜증나는군, 불사라는 건."
크로노는 듀렌달을 쥐는 방식을 바꿨다.
듀렌달에 깃든 격기는 극도로 얇아져, 검의 형태로 변한다.
자피라는 주먹을 강하게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몸에서는 자격기가 분출되고 있다.
유노는 지금까지 아껴뒀던 두 자루의 게키톤퍼를 꺼낸다.
앞의 둘과 달리, 예리하거나 강맹하진 않지만 정결한 격기.
세 사람의… 격수권사로서의 자세를 본 론의 눈이 가늘어진다.
[… 각오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천천히 자신을 포위하는 세 사람을 보며, 론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수권엔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손대중따윈 못할 것 같으니까요.]
~수원향~
"후우… 후우…"
"어떻게 된거야? 전보다 약해진 것 같은데."
"… 너까지 그렇게 말하기냐."
세이는 바닥을 짚었던 손을 떼고 천천히 일어났다.
임기개장의 갑옷은, 이미 투구를 비롯해 여기저기가 파괴되어 상당히 경량화되어있다.
반면 쟝의 모습은 깨끗하기 그지없다.
강함도 빠르기도 기의 양도 거의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밀리는걸까.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지금… 누구하고 싸우고 있는거야?"
세이의 생각을 깨고, 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싸울 때 딴 생각하면 안된다는거,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
"너한테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축하할 일이야. 하지만, 정말로 그 사람들을 지키고 싶으면… '여기'에서 힘을 가져가지 않으면 안돼."
마음이, 가라앉았다.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세이는 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있어? 론을… 그 무간룡을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이."
"확신은 못해.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태의 네가 그냥 가는 것보단 나을걸."
그건 장담해도 좋아. 쟝은 그렇게 덧붙이고,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나한테 인정받지 못하면, 넌 여기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어. 말했지? 넌 수력개화를 한번 받은 몸이니까, 그만큼 힘을 더 끌어내는게 어렵다고. 여기서 못하면, 앞으로도 못하게 될거야."
"…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거군."
자세를 낮추고, 주먹을 뒤로 빼낸다.
우연인지 어떤지, 두 사람의 자세는 똑같았다.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의 모습.
"더이상 격기도 임기도 상관없어. 이 주먹에…"
"우리들의 모든 것을 걸고 부딪힌다─ 겠지."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다.
─단지, 거대한 힘의 충돌만이 있었을 뿐.
~미드칠더.크라나간~
"격기술 「연연탄」!"
듀렌달에서부터 격기연찬으로 이루어진 격기의 칼날들이 발사되어 론에게 날아간다.
게다가 그것들은 크로노의 마력 컨트롤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론에게로 쇄도해온다.
"격기술 「전전탄」!"
유노의 몸에서 나온 푸른색의 격기가, 재규어의 모습으로 맹렬하게 회전하며, 그 이빨을 내민다.
일찍이 세이도 사용했던 기술. 하지만 순수하게 '기술'이라는 면만 보면 이쪽이 위다.
"격기술 「엄엄권」!"
쟈피라의 왼쪽 주먹에 뭉쳐진 자격기의 결정체가 포탄처럼 발사된다.
전에 사용했을 때도 론에게조차 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기술이다.
[환기 「류선격」.]
론의 주변을, 하늘 끝까지 치솟아오른 회오리가 감싼다.
환수왕의 권 이외에는 어떤 것도 돌파하지 못했던 무적의 방어벽. 실제로, 이 바람의 벽은 세 사람의 공격을 튕겨냈다.
[도대체 어디까지 어리석은 인간들인건지… 무슨 공격을 해도 소용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얼마든지 지껄여라. 무시할테니."
애초부터 이길 생각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단지, 세이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벌이가 목적.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건대 그 시간벌이조차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어떨지.
[환기 「격뇌격」.]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섯개의 벼락.
그것은 세 사람을 둘러싸고, 육망성의 형태로 변한다.
─육망의 형태로 구성된, 번개의 결계.
그 안에 갇힌 세 사람에게,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거대한 '번개의 기둥'이 떨어진다.
「「프로텍션」」
유노와 크로노의 방어벽이 번개의 기둥을 막아내는동안 자피라가 결계를 깬다.
방어벽이 버틴 시간은 불과 수초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결계를 파괴한 자피라가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아채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번개의 기둥이 지면을 때린다.
"젠장, 전엔 이런 기술 쓰는 거 못봤는데…!"
[당연합니다. 방금 만든 거니까.]
"… 뭐?"
[제가 쓰는 환기의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만드는 거니까요. 애시당초,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만.]
힘 있는 자의 특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오만하고 듣는 사람의 분노를 일으키는 말.
"멋대로… 지껄이지 마!!"
힘을 얻기 위한 노력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소릴 듣고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가장 성질이 급한 자피라는 다시 한번 대지의 송곳니를 날린다.
─하지만, 이번엔 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금색의 환기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파괴된다.
[도대체 지난번 저와 리오의 싸움에서 뭘 보고 배운겁니까. 저 환수왕조차도 저에게 원거리 공격을 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할 거라면 그 주먹으로 직접 덤비시죠.]
"말했겠다…!"
"세이에게서 받은 이 주먹, 확실히 그 몸에 새겨주지!"
한번 완전히 흩어진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돌진해 들어간다.
가장 먼저 도달한 것은 자피라. 건물조차 무너뜨리는 철권이 론에게로 날아간다.
─하지만, 론은 몸을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 그 권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다리를 뻗어 자피라의 복부를 걷어찬다.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자피라의 몸이 엄청난 기세로 튕겨져 맞은 편 건물의 벽과 충돌한다.
"크하악!!"
그 다음으로 론에게 도전한 것은 유노다. 두 자루의 톤퍼를, 신기루가 생길 정도의 움직임으로 휘둘러 론을 강탄한다.
어깨에, 가슴에, 복부에, 허벅지에. 하지만 론은 그 모든 타격을 버텨내고 주먹을 들어올리더니 유노의 어깨를 찍는다.
─톤퍼를 교차시켜 막아냈음에도, 기세를 막지 못해 땅바닥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크로노. 연찬한 격기의 검을, 듀렌달의 형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합의 형식으로 휘두른다.
세이조차도 '느닷없이 기습으로 날아온다면 막을 자신없어'라고 이야기했던 초속의 발도.
그러나 론은 그것조차도 팔을 들어올려 막아내고, 막아낸 주먹으로 크로노를 때려 날린다.
"……큭!"
그 사이 몸을 일으킨 유노가 다리를 휘두른다.
한번의 공격이 빗나가도 어김없이 다음 공격이 이어지고, 그 공격들은 상대의 사각을 철저히 공략해들어온다. 그 연각(蓮脚)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세이라고 해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힘으로 뭉개버리면 그만.
론은 오른발을 휘둘러 유노의 상단 차기를 쳐낸다. 담겨있는 힘의 차이때문에 유노의 몸이 거의 완전히 돌아간 틈을 타, 왼발의 하단차기로 유노의 디딤발을 부러뜨려버린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리를 감싸며 쓰러진다.
뒤에 덤빈 크로노의 경우에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못했다. 무엇이든지 자를 수 있어야할 그의 격기연찬이, 론의 손에 잡히면서부터.
분명 론의 손은 격기연찬에 '베였다'. 하지만 완전히 잘리는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재생해버렸기에 붙잡혀버린 것.
론은 그 손으로는 듀렌달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크로노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 상태에서 힘을 가하자, 크로노의 어깨는 가볍게 탈골된다.
크로노가 통증에도 불구하고 듀렌달을 놓치지않자, 환기의 방출로 날려버린다.
아까 전에 날려갔던 자피라가 자색의 빛에 휩싸인채, 천지전변타로 덤빈다.
그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상태의 론이 자피라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바로 목전까지 닥친 상태.
─자피라의 천지전변타가, 론의 가슴을 꿰뚫으며 지나간다.
완전히 대비를 했던 지난번과 달리 무방비 상태에서 직격. 아무리 론이라고 해도 그 육체에 아무런 타격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론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자피라는, 착지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자피라의 주먹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을 때, 론은 방어나 회피를 포기하고 반격을 택했다. 어차피 자신은 죽지 않으니까.
금색의 환기로 만들어낸 손톱을 휘둘러, 수도(手刀)의 형태로 자피라를 베어낸 것이다.
물론 자피라 역시 세이에 의해 거의 극한까지 단련된 반사신경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치명타는 면했지만, 그래도 중상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세 사람이 전투불능에 빠지기까지, 1분.
하지만 그 사이에 벌어진 공방은 론으로서도 상당히 즐거운 것이었다.
[꽤 하는군요. 여기까지 버텨줄 거라곤 생각못했습니다만.]
"칭찬하는 건… 이르지 않을까… 하는데!!"
쓰러져 있던 3인은 거의 같은 순간에 일어났다.
마침, 3명이 쓰러져있는 형태는 론을 둘러싼 삼각형. 지금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
고통을 참고 일어나, 론에게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론은 세 사람의 손에서 뻗어나온 자주색의 빛을 피하지 못하고 받는다.
[이건…?!]
"마법도 육탄전도, 전부 이걸 위한거 였다… 네놈을 봉인하기 위해 탄생한 이 기술을 위해서!"
「수권오의 통곡환」
2천만년 전, 3인의 수권사가 론을 봉인했던 비전 중의 비전.
그것이, 시대와 차원을 초월하여 이 자리에서 사용되었다.
[… 확실히, 지난번엔 이거에 당했었죠. 그건 인정합니다.]
─통곡환의 구슬 안에 갇히고도.
론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절대적인 존재에게도 '실수'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저에게는 2천만년 전 딱 한번 있었던 패배가 그 '실수'였죠. 그리고… 보통 한번 한 실수는 두번 다시 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론의 입이 벌어진다.
─지난번처럼, 금색의 빛으로 만들어진 용들이 튀어나와, 서로 얽히며 커져간다.
그것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통곡환의 구슬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나갔다.
"우와아아아아앗?!"
세 사람의 격기가 역류하여, 오히려 세 사람을 덮친다.
그나마 부상까지 가지 않은 것은, 통곡환이 깨지는 순간부터 방비를 하고 있었던 덕분.
한순간 그 모습을 드러냈던 무간룡은, 통곡환을 격파하고 다시 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건 리오가 저에게 보여줬던 기술이랍니다. 통곡환이란 봉인할 대상의 기를, 역으로 이용하여 상대를 봉인하는 기술. 그렇다면 그 봉인하려는 힘 이상의 기를 꺼내놓으면 그 뿐.]
예전, 리오가 바다의 권마 라게크의 나봉장악 수련 때 보였던 방식이다.
결국… 보다 압도적인 힘 앞에 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
[저는 최강이자 궁극의 짐승인 「환수」… 그리고 수권이란 그런 저를 흉내내어 만들어진 것. 말하자면 추례한 모조품이라는 겁니다. 진정한 '환수'인 저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빌어… 먹을…!"
설마설마했는데 통곡환, 야천의 서조차 봉인했던 저 절대의 봉인마저 통하지 않다니.
[당신들과 노는 것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끝내도록 하지요.]
론이 천천히 그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서는, 청백색의 용염(龍炎)이 타오른다.
"세인씨 도착!!"
바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세미롱의 물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세 사람을 붙잡고 바닥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물 속을 잠수하는 것처럼.
그것보다 한발 늦게 발사된 용염은 애꿎은 지면만을 녹여버린다.
그것과 함께, 론의 주위에 무수한 '나이프'가 나타나, 그에게 부딪혀 폭발을 일으킨다.
그 후, 먼지구름이 론의 모습을 지운 틈을 타 녹색의 광선 기둥과 강렬한 에너지탄이 날아와 폭발의 규모를 키운다.
"세 분 다 괜찮으신가요?"
나타난 사람은, 전부 해서 10명.
전투기인 No.3 넘버즈의 실전리더 트레.
전투기인 No.5 춤추는 나이프의 무희 칭크.
전투기인 No.6 대지를 헤엄치는 소녀 세인.
전투기인 No.7 창공의 섬멸자 셋테.
전투기인 No.8 섬광의 마법사 오토.
전투기인 No.9 파괴의 돌격병 노베.
전투기인 No.10 저격수 디에치.
전투기인 No.11 창공을 나는 수호자 웬디.
전투기인 No.12 순살의 쌍검사 디드.
그리고 이들을 이끌듯이 함께 온 긴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락 받자마자 달려온건데, 훈련 중이었거든요."
"… 덕분에 살았지만, 사람 수가 좀 모자라는 듯이 보이는데."
"아, 우노 언니랑 두에 언니, 카트르 언니는 지금 피해확산을 막고 생존자들 대피시키고… 어느 의미로 전투원들보다 바쁠걸요."
전투기인 No.1 '전' 스칼리에티의 비서 우노, No.2 은밀한 첩보원 두에, No.4 환영의 마술사 카트르.
직접적인 전투원이 아닌 세 사람은, 나머지 넘버즈들이 싸우는 동안 생존자의 구조와 그 외의 잔업을 맡았다.
"그나저나 무지막지한 녀석이네. 저게 세이 선생님 원수란 말이지."
적발의 소녀, 노베는 건 너클을 고쳐쥐며 말했다.
"전에 봤을 때와 비해선 많이 쪼그라든 것처럼 보인다만."
보라색 쇼트컷의 여성 트레는 손발에서 8매의 에너지 날개들을 꺼낸다.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핑크색 롱헤어의 소녀 셋테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 지금의 크기라면, 공격이 통할지도."
갈색 짧은 머리카락의 소녀 오토가 조용하게 말한다.
"공격 안통해도 싸울 생각 아니었어?"
갈색 롱 헤어를 뒤로 묶어있는 소녀, 디에치가 이노머스 캐논을 들어올린다.
"선생님한텐 받은 거 많잖슴까. 조금은 갚아야지요."
핑크계의 머리카락을 뒤로 정리하고 있는 소녀 웬디는 어디까지나 쾌활하다.
"그것만이 아니지. 배신의 값도 제대로 받아내야하고."
은발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한 소녀, 칭크가 조용히 찔러넣는다.
"부서지면 고쳐달라고 하죠. 샤멀 선생님은 믿을 수 있고."
갈색 롱헤어의 소녀, 막내 디드가 두 자루의 검을 들어올린다.
넘버즈들은 충분히 전투의욕이 넘쳤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라… 나쁜 기분은 아니군."
"무슨 말씀을. 쉬고 계세요. 저 괴물은 저희들만으로도─"
긴가의 말은 중간에 끊겨버렸다.
─먼지 구름을 뚫고, 론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 따라 방해가 많이 들어오는군요. 그것도 인간조차 아닌 인형들따위가.]
"……"
"……"
"…… 저런 녀석을 말이냐."
… 못 이길지도 모르겠다.
거의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그녀들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하핫, 염치 불구하고 도움받겠슴다."
식은땀을 동반한 웬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금 도착한 10명 플러스 부상자 3명은 빠르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크로노들의 측에 지원이 도착한 그 시점.
나노하들의 싸움은…
[환기 「초중록」!]
산요는 자신을 축으로 하여 그 일대의 중력을 높인다.
그 순간, 하늘에 있던 스트라이커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윽…!"
무릎을 꿇어버린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도 벅찬 상황.
[인간치곤 오래 버틴다요. 하지만 그래봤자 이걸로 끝이다요.]
산요는 두 팔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올려, 거대한 중력의 구체를 만들어낸다.
지금 쓰고있는 기술이 '봉쇄용'이라면, 이건 확실히 '공격용'의 중력.
[그럼, 안녕이다요.]
산요가 두 팔을 내리고, 중력의 구체는 나노하들을 향해 떨어진다.
"저 멀리서 오라, 겨우살이의 가지… 은월의 창이 되어 꿰뚫어라! 석화의 창, 미스틸테일!"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은빛의 창들이 산요와 구체를 꿰뚫는다.
구체에는 셋, 산요에게는 넷. 총 일곱개의 창이.
[우아아아아아악?!]
창에 맞은 자리를 시작으로, 구체와 산요는 점점 돌로 변해갔다.
이윽고, 그 '석화'는 산요의 전신을 뒤덮어 그를 하나의 석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뒤이어 날아온 '분홍빛의 포격'이 그 석상을 산산히 때려부순다.
"다들 괜찮나?!"
"하야테…! 린포스 씨도?!"
"늦어서 미안하다. 리미터 해제 허가를 받는 게 좀 늦었어."
"…… 리미터 헤제? 그럼…!"
"아. 이제부턴 전력으로 날뛰어도 된다는거다."
대장진들의 얼굴이, 희색으로 물들었다.
[으으윽, 지금 건 너무 방심했다요… 어?!]
론과 마찬가지로, 산요 역시 산산조각이 났음에도 금새 부활했다.
─하지만, 그런 산요의 눈앞에서 버티고 있는 건 리미터가 완전히 해제된 스트라이커들.
나노하들은 오래전부터 세이를 지탱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낸 '뛰어넘은 힘'을.
그리고 스바루들은 세이로부터 배운 힘을 적용.증폭시킨 '새로운 힘'을, 산요의 앞에서 전개했다.
「레이징하트 바하무트(Bahamut) 폼」
「바르디슈 길가메쉬(Gilgamesh) 폼」
「슈베르트 크로이트 에덴(Eden) 폼」
「레반틴 오딘(Odin) 폼」
「그라프 아이젠 알렉산더(Alexander) 폼」
「야천의 서 판데모니아(Pandemona) 폼」
「마하캘리버 리바이어선(Leviathan) 폼」
「크로스 미라지 피닉스(Phoenix) 폼」
「스트라다 케찰코아틀(Quezacotl) 폼」
「케류케리온 디아볼로스(Diablos) 폼」
그녀들의 디바이스는 제각각 그 모습을 바꿨고.
그 힘 역시 조금 전하고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나노하와 페이트의 경우엔 과격기와 노임기를, 두 사람 이외에도 다들 수권의 기를 마력과 함께 운용하고 있었다.
그 파괴력은………………………………………………………………………………………………… 상상하기도 싫다.
"자, 간다…! 이것이, 우리들의─"
그녀들은 일제히 흩어져, 산요를 원형으로 둘러싼다.
그 후, 제각기 자랑하는 '최대 최강 최고의 일격'을 준비했다.
「스타라이트 기가 브레이커 개(改)」
「플라즈마 잔버 익시드 스매셔」
「라그나로크-노바 스톰」
「열화신성참룡섬」
「기간트 슐라크 무스펠하임」
「세상을 부수는 멸망의 빛-오메가」
「세인트 버스터 제네시스」
「크로스 파이어 엔드 모멘트」
「묘르닐 썬더 디스트로이」
「용귀 볼테르 브리트라 버스트」
"전력전개!!"
그것이.
산요가 들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리고 파괴된 산요는 곧장 론에게로 복귀했다.
'산요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수복 불가능할 만큼?!'
론의 분신인만큼 산요의 불사성은 론의 그것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한도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파괴된다는 것이다(예외가 있다면, 론이 자신의 불사성을 산요에게 완전히 맡겼을 때다. 이때 산요는 완전한 '불사'에 '불파'지만, 정작 본체인 론의 경우 파괴되면 그 자리에서 부활하지 않고 산요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케이스가 아니다).
…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자는 지금까지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아스라의 주포 아르캉시엘을 받는다고 해도 산요는 부활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 산요는, 「그 이상의 타격」을 받고 완전히 파괴되어 론에게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런, 바보같은─'
"격기술, 「천천참」!!""격기술, 「주주탄」!!"
그 순간 크로노의 격기연찬이 론의 몸을 수없이 난도질하고, 유노의 톤퍼 두 자루가 론의 양쪽 어깨를 강타해 그 무릎을 바닥에 꿇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피라의 철권.
"격기술, 「승승권」!!"
[카으가아아아아악!!]
강렬한 어퍼컷은 론의 턱을 완전히 부숴놨고, 마침내 론은 등을 땅바닥에 대고 뒹굴게 되었다.
"해냈다!"
"아니, 아직이다."
그 뒤를 이어, 넘버즈들의 공격이 이어져 무수한 폭발이 론의 몸을 가렸다.
"… 죽었을까?"
"절대 아닐걸."
"큰일이군. 슬슬 마력도 격기도 바닥인데."
크로노들과 넘버즈의 말처럼, 이미 이쪽의 체력은 한계에 달해있다.
─물론 론은 폭발이 걷히자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났지만.
[역시 인간과는 직접 싸우고 볼 일입니다. 싸울 때마다 놀라게 되니. 설마 산요마저 쓰러질거라고는.]
"… 그런가. 저쪽은 벌써 끝냈다는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적은 론 뿐이라는 것.
─하지만, 세이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산요가 저 몸에 복귀한 이상 론의 불사성은 완전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파괴'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러선다고 하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계속 해볼 모양이군요.]
"물론이지. 아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끝내도록 하지요. 환기 「개천뇌격진」]
론이, 갑작스럽게 그 오른팔을 하늘로 쳐올렸다.
지금까지 '기술'을 사용할 때 어떤 모션도 취하지 않았던 론이 한 일이기에, 모두는 움직임이 잠깐이나마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번개줄기가 떨어진다.
그것 자체는 지금까지의 공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크로노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는 정도.
처음엔 저 녀석이 뭘하는건가 했지만, 곧이어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번개줄기는 계속해서 떨어져내린다. 론과 그들을 둘러싼 원형의 형태로. 게다가 한번 떨어진 번개줄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하늘과 지면을 잇는 '번개의 벽'이 되어있다.
그 원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은, 그 '번개의 벽'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그리고, 그 안쪽을 모조리 메울만큼 거대한 '번개기둥'이 떨어졌다.
[드디어 잡았군요, 지금까지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닌 생쥐 여러분.]
번개기둥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것은, 론 뿐이었다.
요컨대 그는 자기까지 범위 안에 집어넣고 번개기둥을 떨어뜨린 것이다. 자기는 맞아도 상관없으니까.
"설마… 이런 방법으로…"
[불사신의 특권이지요. 당신들은 거기 쓰러져서 가만히 지켜보고 계세요. 지금까지 당신들이 지켜왔던… 이 세계의 파멸을. 그리고 시공의 파멸을.]
론의 말이 귀에 닿자, 이가 저절로 갈린다.
─하지만, 론의 공격은 그들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몸안에 기계가 내장되어있는 넘버즈 중 섬세한 이들은 이미 의식이 없다.
그들로서는, 론이 천천히 크라나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제, 기랄…!!"
[… 등장이 상당히 늦은 거 아닙니까. 덕분에 친구들만 아픈 꼴을 당했는데요.]
론은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쉰 후에 그렇게 말했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리는 순간 그를 향해 거대한 사자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론은 오른손을 들어올려, 사자의 이빨을 받아낸다.
─하지만 그 압력에, 수미터를 뒤로 밀려났다.
[?!]
강용호파가 아니었나? 아니, 기술은 같다. 위력이 지난번과는 비교가 안될 뿐이다.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탄 손바닥을 움켜쥐며, 론은 사자가 날아온 곳을 바라본다.
은발의 사자가, 패기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거기에 서있다.
세이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중얼거린다.
"간다, 쟝."
<아, 언제든지.>
교차시켰던 두 팔을 다시 펼친다.
"<수권 「격임개장」>"
나타난 것은 검은 사자와 붉은 호랑이.
두 짐승은 산산히 흩어져, 세이의 몸 여기저기에 장착되기 시작한다.
오른쪽 어깨에는 사자의 머리, 왼쪽 어깨에는 호랑이의 머리.
적색과 흑색이 한데 뒤섞인 전투용 갑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싼, 한 사람의 수권사.
"그 강인함은 하늘을 부수고"
"그 용맹함은 대지를 뒤덮으며"
"그 몸으로 모든 짐승의 수호자이며 모든 짐승 위에 오롯한 자"
"내 이름은 수권투신, 사호왕(獅虎王) 시시오 세이/리오"
"지각한 주제에 주인공처럼 나타나다니…!"
"선생님… 늦으셨어요…"
크로노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저 모습은─
론은 재생이 끝난 손을 쥐었다 펼쳤다 반복하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확실히 조금쯤은 강해진 것 같습니다만… 이 정도라면 환수왕보다도 아래로군요.]
"착각하지마라. 지금 건 시험삼아 날려본 것 뿐이니까."
[호오, 그렇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군요.
론의 말은 끝까지 나오지 못하고 끊겼다.
그 한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수십미터는 떨어져있던 두 사람의 거리가 갑자기 좁혀졌다.
자세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론의 복부에, 세이의 주먹이 꽂힌다.
[카… 악…?!]
단 한번의 보디 블로우.
그것만으로, 론은 복부를 감싸쥐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복부에 주먹이 꽂히고 그 뒤로 흘러간 충격파로, 론의 뒤쪽에 있던 유리창들이 깨지고 가로등이 쓰러졌다.
고작 여파만으로 그 정도. 론의 복부에 박힌 충격 자체는 어느 정도였을지.
[크, 케헤에엑!!]
론의 입에서 금색의 환기가 쏟아져나왔다.
인간으로 한다면 '토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
격기술도 임기도 아닌, 단순한 펀치였을 뿐인데도.
'이 내가… 고작… 인간의 공격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손을 짚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일어난 론의 가슴에, 이번엔 왼손의 장타가 꽂힌다.
[크, 어, 가아아악…!!]
옆에서 보면 살짝 밀친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공격을 받은 론은 끝도 없이 날려가 뒤쪽의 건물 안에 쳐박혔고, 그 충격으로 건물은 붕괴됐다.
"수권 「강용호포탄」!!"
오른손에서부터 흑색의 사자.
왼손에서부터 적색의 호랑이.
그것은 전에 론이 기동 6과에 쳐들어왔을 때 사용했던 기술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규모가 다르다.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론이 파묻힌 건물 안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두 마리의 '짐승의 왕'은, 잔해속에서 론을 끄집어내 물고, 할퀴고, 때리고, 쳐박고, 걷어차고, 몸으로 부딪힌다.
[뭐냐… 이 힘은 대체 뭐야?!]
"이것이, 네놈이 그렇게 깔 본 수권이다!!"
짐승의 왕들은 금색의 사룡을 공중으로 쳐올렸다.
그리고, 세이는 그런 론에게 추가공격을 퍼부었다.
"수권 「천지강호파」!!"
오른손으로는 노임기를 담은 장타.
왼손으로는 과격기를 담은 주먹.
그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공격들이, 끝도 없이 론에게 퍼부어진다.
조금 전 론을 무릎꿇리고 날려버렸던 공격들이, 말그대로 '끝도 없이'.
[억, 크, 카학, 크어어아아아아악!!]
오른쪽으로 튕겼다 왼쪽에서 받아쳐지고 아래쪽으로 떨어질 듯 하면 다시 위쪽으로 올려쳐진다.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가는 폭포처럼, 론은 공중에 떠올려진채 떨어지지도 못하고 두들겨졌다.
'강한 것도 빠른 것도 움직임도 기술도, 예전과는 전혀 달라…! 도대체, 뭐가 있었던거냐?!'
피하는 것은 불가능. 두 팔을 들어서 가드했더니 막은 팔이 부서졌다.
그저, 공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
─마침내, 공격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강한 일격'을 날리기 위한 준비였을 뿐.
"수권 「수왕격타」!!"
단순한 오른주먹 스트레이트.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그 단순한 스트레이트에 직격당한 론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려간다.
가장 먼저 부딪힌 건물을 관통하고, 그 뒤의 건물을 관통하며, 그 다음의 건물마저 관통한다.
결국, 교외에 있는 산에 부딪힌 후에도 한참 밀려나다가, 간신히 정지했다.
"…… 한방에… 어디까지 날려간거야…?"
"킬로미터 단위는 가볍게 돌파한 것 같은데."
저 녀석,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져버린거지?
<처음 쓰는 기술들만 쓰는데도 잘 쓰네.>
"깔보면 곤란하지. 한번 익힌 기술을 실수하는 일따윈 없으니까."
<뭐, 넌 예전부터 그랬지만서도.>
"그나저나 넌 언제까지 남의 머리속에 있을 셈이야. 냉큼 성불하지 못해?"
<나쁠 건 없잖아. 론을 쓰러트릴 때까지만인데.>
"나빠. 충분히 나빠. 프라이버시라는 말도 모르냐."
<괜찮아, 괜찮아. 기억 읽는다던가 하는 일은 못하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망할 자식."
세이는 끊임없이 불평을 내뱉았다.
그 '시험'에 통과한 건 좋은데 쓰잘데기 없는 것까지 들러붙었으니까.
머리속에서 계속 소리를 울려대니 아무리 세이라도 참기 힘들다. 불평정도는 당연한 일.
─하지만.
'… 저 녀석, 뭔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어?!'
'… 혹시 저렇게 강해질 때까지 수련하다가─'
'설마 선생님, 우리들 때문에 그렇게까지…!'
머리라도, 다쳤나? 그래서 정신이 나간거라던가?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저 녀석, '힘을 얻어서 친구들을 지킬 수 있다'라고 하면 무슨 짓이든지 하니까.
넌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우리들 충분히 강해졌으니까.
"…… 유노. 크로노."
"… 아. 알고 있어."
우선, 병원부터 보내자.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저 먼곳에서, 무언가 '엄청나게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의 정체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를 죽이는 일 따윈 할 수 없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론의 모습을 벗어던진 '무간룡'.
볼테르조차 한입에 씹어버릴만큼 거대한 금색의 드래곤이 산을 밟고 일어선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준 세이조차도, 론을 죽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즐거워요… 볼 때마다 예상을 뒤집어주니.]
환수왕의 힘으로도 자신을 쓰러트리지못하자, 환수왕 이상의 힘을 어디선가 가지고 나타났다.
도대체 이 자의 한계는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한도 끝도 없이 강해져왔다.
[하지만.]
무간룡의 눈들이,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지금 그 눈에 담겨있는 것은, 틀림없는 살의.
[고작 인간 주제에, 이 나에게 잘도 굴욕을 줬겠다…!]
여덞개의 머리, 여덞개의 입에 동시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입 하나하나에서 용염들이 타오른다.
그 후 무간룡의 앞에서 하나로 합쳐진 용염의 결정들은, 또 한마리의 용으로 변해간다.
지난번 전투에서 환수왕을 녹여버린 그 불꽃.
<온다, 리오!>
"지금은 세이라니까. 그리고 그건 나도 보면 알아!!"
세이는 오른주먹을 뒤로 빼냈다.
그리고 그 주먹에, 과격기와 노임기가 섞인… 이제는 수권기라고 불러야할 힘을 집중시켰다.
'시험'의 마지막 순간.
자신이 내뻗었던 정권과, 쟝이 뻗었던 정권을 하나로 합친 힘.
<빗맞추지 않게 조심해. 이거, 한발 밖에 못쓰니까.>
"내가 너냐. 쓸데없는 걱정하지마."
그것을 발견한 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한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자신조차, 한번도 보지 못한 '빛'.
─상관없다. 무슨 짓을 하든, 이것을 막는 것따윈 불가능하니까.
[그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깨끗이 사라져라!!]
“수권오의 「극무격임권」”
론이 가장 먼저 느낀 위화감은 용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태울 수 없는 것따윈 존재하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꽃.
그것이 자신의 '진짜' 불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떻게…?!]
분명히, 론을 죽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만년 전에는 통곡환의 봉인으로 그쳐야 했고.
그때 이후로, 쟝은 계속 생각했다.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한가지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죽이지 못하면, '없애버리면' 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인연'으로부터 힘을 얻고.
그 주먹에 적중된 상대를 모든 '인연'으로부터 끊어내.
─상대를, '모든 것'으로부터 지워없앤다.
육체는 물론 영혼조차도 남지 않고, 완전히.
론이 다시 부활할 때를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지만, 쟝의 생전에는 그것을 쓸 기회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세이에 의해 발휘되었다.
쌓아올린 인연의 숫자라면, 쟝을 훨씬 웃도는 '지금의 세이'에 의해서.
[웃기지 마라…!!]
공포.
분명 론은 지금 저 주먹에게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존재 자체가 지워 없어져버린다는, 본능적인 공포.
용염의 출력을 올린다. 말그대로 자신의 전력을 용염에 쏟아부어, 세이의 극무격임권을 받아낸다.
─이윽고, 세이의 주먹이 밀리기 시작했다.
"안되는건가…!"
<역시, 우리 둘만 가지고는─>
세이와 함께, 이미 반쯤 현신하여 주먹을 뻗고 있는 쟝마저도 밀리고 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가능할 것 같으냐! 인간따위에게, 이 나를 지워없애는 일 따위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어쩔거야?"
무간룡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사방에서부터 형형색색의 빛들이 날아와 무간룡의 몸을 강타한다.
[이, 마법사놈들이…!!]
"이대로 사라져라… 이 세계와, 그리고 세이를 위해서!!"
산요를 쓰러트리고 전속력으로 날아온 스트라이커들이, 산요를 날려버린 것과 같은 힘으로 무간룡을 공격했다.
─그 순간 사방에서부터 회오리와 번개가 몰아친다.
무간룡이 발생시킨, '기후변화'. 그것도 규모면에서는 지금까지와 비교가 안된다.
"저런 공격을 하고 있으면서, 이런 짓을…?!"
그 뿐만이 아니라, 세이와 맞서고 있는 용염의 힘도 더욱 커진다.
그와 함께, 세이와 쟝의 무릎이 바닥에 박힌다.
"크, 아아…!!"
[인간이여, 그리고 세계여! 이제야말로 사라져라!!]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때 일어난 일을 그렇게 부를 것이다.
세이와 쟝의 주먹 위에.
─몇개나 되는 손들이, 얹어진다.
"… 어?"
고개를 돌려, 손의 주인들을 바라본다.
《이게 몇년만이야. 아니, 세는 것도 힘드려나. 그나저나 너희 정말 많이 변했다?》
《오~스. 너무하잖아. 둘이서만 재미보기냐! 나도 저 녀석한테 한방 날려주고 싶다고!》
《안그러면 말이지, 지금까지 윤회도 안들어가고 버팅기고 있던 보람이 없으니까.》
《시간에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아슬아슬했네.》
격수 울프권의 게키바이올렛, 후카미 고우.
격수 라이노세라스권의 게키쵸퍼, 히사츠 켄.
격수 재규어권의 게키블루, 후카미 레츠.
격수 치타권의 게키옐로, 우자키 란.
"게키렌쟈…?! 게다가 고우까지?!"
《야, 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귀신보듯이 할 건 없잖냐. … 귀신 맞지만.》
<어?! 그치만… 어떻게 모두가 여기에…>
《… 니들 말야. 잊고 있는 거 아냐? 수권은─》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반드시 달려와서 돕는다. 그게 수권의 가르침이었지.】
이번에 올려진 손들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여러 동물들.
코끼리, 박쥐, 상어, 고릴라, 펭귄, 가젤, 그리고 살쾡이.
【엘레펀트권, 엘레펀 킹포! 모두 오랜만이야!】
【배트권, 배트 리. 이 세계에서 자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
【샤크권, 샤키 첸! 에이, 그래도 선배. 기분이란 게 있잖아요.】
【고릴라권, 고리 옌. 기분 내고 있을 틈따윈 없는 걸로 보이네만.】
【펭귄권, 미쉘 펭! 그래도, 뭔가 우리들이 아는 세계랑 많이 달라.】
【가젤권, 푱 표우! 마법이라고 했던가, 참 편한 세상이 됐어.】
격수 칠권성.
수권의 창시자, 마스터 브루사 이의 직속 제자들이자, 모든 격수권사들의 스승.
그리고, 그 칠권성 중에는 이 사람도 있었다.
【예전과 달리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구나. 장하다, 리오야.】
"마스터… 샤프…!"
페리스권의 샤프. 쟝과 리오(세이)에게 있어, 최초이자 최고의 스승이었던 자.
하지만 나타난 '동물'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라, 우리들은 모른 척 하기야?〕
〔이래서 어린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 마스터 라게크와 마스터 카타?!"
임수 삼권마. 그 중 두 사람인 임수 젤리권의 라게크와 임수 호크권의 카타.
권성들과 마찬가지로, 브루사 이의 제자들이었으며… 임수전을 세운 이들이기도 하다.
〔이만큼 '인연'이 모였으면 아무리 상대가 괴물이라고 해도 이길 수 있겠지.〕
《진짜 의미에서의 격임 연합인가… 나쁘지 않은걸!》
【이번에야말로, 저 재앙의 화근을 완전히 뿌리뽑는거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수권사들이, 극무격임권에 힘을 더한다.
순식간에, 론의 용염을 밀어내기 시작해 마침내 처음의 호각 상태로 돌아왔다.
[말도 안돼…! 이런 게, 이런 일이…!]
《말 되는데.》
【우리들은, 네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이 날을 위해 지금까지 기다려왔다!】
〔더이상 누구의 인생도 가지고 놀 수 없도록, 여기서 끝내주지.〕
한발짝, 두발짝.
무간룡의 발걸음이 뒤로 떨어졌다.
[고작 인간주제에…! 내 흉내에 불과한 힘으로, 네놈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나를 없애겠다는거냐, 인간들이여! 절대의 존재인 이 나를!!]
〔아니, 네놈은 절대의 존재도 뭣도 아니다. 단지 너무 오래 살아서 미쳐버린 용일 뿐.〕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의 손이, 얹어진다.
〔잘도 이런 놈한테 애먹고 있구나, 애송이.〕
"마스터… 마크…!"
최강의 권마이자 최강의 수권사. 대지의 권마 임수 베어권의 마크.
그의 힘과 '인연'이, 여기에 더해졌다.
【다른 사람 다 와도 자넨 안올거라고 생각했네만.】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지. 하지만 저딴 놈 상대로 여태까지 애먹고 있는 꼴을 보다못해 나온거다.〕
"… 설마, 당신이…"
마크는 고개를 돌려 세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의 노임기를 폭발시키며 말했다.
〔우리 임수권은 모든 수권을 능가하는 최강의 권. 상대가 괴물이든 뭐든 '최강'이 아니면 안되고, 패배따윈 용납되지 않는다. 저런 놈에게 임수권이 패배한 채로 끝난다는게 마음에 안들더군. 그리고…〕
최강의 권사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무간룡을 바라본다.
〔좋든 싫든 네놈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기 때문이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도 졌다간 가만두지 않겠다, 얼간이 제자놈.〕
이 광경을, 뭐라고 불러야할까.
지금까지 쌓아온, 그리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인연'들이.
존재했던 모든 수권사들이 격과 임의 구분없이 한자리에 모여, 무간룡을 쓰러트린다.
"…… 가자."
<… 응. 이번에야말로, 전부 끝내는거야.>
모든 '인연'과 '힘'이, 주먹에 깃든다.
─이 주먹으로 부술 수 없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수권은, 정의의 주먹!》
【올바른 것은, 반드시 승리한다!】
〔이제야말로 사라져라, 사룡이여!〕
"<이것이, 수권의 힘이다─────!!>"
[이게… 죽음…!]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이 내가, 모든 환수의 왕인 내가…!!]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다고!!]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고.
수많은 인간의 인생을 부숴온 금색의 사룡은, 사라졌다.
그리고, 미드칠더를 뒤덮었던 기분나쁜 '금색의 구름'이, 깨끗이 걷혔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 어째서냐."
"응? 무슨 일 있어? <마스터 세이>."
"그 마스터라는 말이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그거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어."
"…… 예를 들어?"
"어째서 론을 쓰러트리기까지 했는데 내 생활은 변하지 않는거지?"
스트라이커들과 넘버즈들을 훈련시키던 도중, 세이는 이렇게 절규했다.
겨우 쟝도 게키렌쟈들도 권성들도 권마들도 성불해서 편해졌다고 생각했건만!
"그야, "우리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라는 네버 엔딩 스토리랄까… 솔직히 용 한마리 쓰러트렸다고 변하는게 있을 리 없잖아."
"… 닥쳐, 크로노. 맞고 싶냐."
아, 그야 발전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쟝이 가기 전에 나노하들과 스바루들, 그리고 크로노들과 넘버즈의 수력개화까지 해준 덕분에.
스승으로서 보자면 이만큼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제자들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좀 봐주라… 나 슬슬 미도리야 돌아가보지 않으면 모모코씨한테 죽는다고! 아니, 진짜로 죽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한텐 연락했으니까."
… 뭐라고 연락했을지 묻는게 엄청나게 두려워졌다.
"슬슬 우리들끼리도 답을 내야하는데, 당사자인 세이가 빠지면 안되니까 허락해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엄마한테 "파이팅"소리까지 들었는걸."
"…… 답? 무슨 답?"
"응, 세이는 몰라도 되는거야."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서 공포를 느껴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뭐, "모두 사이좋게 함께~"라던가 "우리들의 공유물"이라던가 하는 결말도 좋긴 하지만, 뭐랄까… 그냥 내면 재미없잖아?"
"동감이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힘의 우열은 가려놔야겠지."
나노하의 말을 린포스(아인)가 이었다.
"마침 오늘은 대장진들과 플러스 알파들의 공식 대련날… 딱 좋지."
"디바이스들 점검도 마쳤고 말야. 준비만반이라구."
"참, 근데 인원수가 모자란 것 같은디, 누구 빠짔나?"
"아리시아만 오면 되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된댔어."
"OK, 그럼 문제없고… 근데 저기서 몸 풀고 있는 쟈들은 뭐고?"
"새 참전자들이랄까… 긴가랑 넘버즈 전원. 총 13명. 전투원도 아니면서 무리하는 애들도 있지."
실로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이 대화는 세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즈음, 세이는 크로노와 유노, 자피라 세 사람과 대화 중이었으니까.
"앞으로 힘든 일이 엄청나게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용기와 의지를 잃지 마라. 론과 싸울 때 정도의 각오만 하면 돼."
"………"
"괜찮아. 세이는 우리들의 히어로니까, 분명 할 수 있을거야. 힘내!"
"그러니까 네놈들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냐고!! 알아들을 소릴 하란 말야!!!!"
마침내 뇌용량 과부하로 인해 폭발한 세이는 격임개장까지 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그녀들' 역시 전투를 시작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좌지우지할만큼, '중요한 일'을 걸고서.
〔그나저나 저 바보자식은 그녀들이 저렇게까지 해주는데도 눈치못채는건가…〕
【아, 그건 내 잘못일지도. 어렸을 때부터 수행에 매달리는 걸 보고도 뭐라고 안했으니.】
《… 근본적인 원흉은 마스터셨군요. 그럼 지금 당장 내려가서 알려주시지 그래요?》
【그건 안되지.】
《네? 어째서요?!》
【재밌잖나. 지금이 더. 자고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러브스토리따윈 재미가 없는 법.】
〔… 권성맞냐, 네놈.〕
마크가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건강해보이니까 다행이네요.>
쟝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론에게 인생을 조작당하고.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전부 빼앗겨야 했던 리오니까.
그런 리오가, 모처럼 손에 넣은 행복이니까.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되었던 호랑이의 권사는, 자신의 필생의 라이벌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잃어버리지마라. 절대로.>
그녀들도, 그리고 지금의 행복도.
… 뭐, 지금의 저 녀석이라면 어떤 적이 오든 그 주먹으로 박살내버리겠지만.
짐승을 마음으로 느끼고
짐승의 힘을 손에 넣는 권법 '수권(獸拳)'
수권에는 서로 대적한 두 유파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정의의 수권 격수권(擊獸拳) 「비스트아츠」
또 하나는 사악한 수권 임수권(臨獸拳) 「아크가타」
또 다른 세상에서 하나가 된 두 유파의 권사들은
오늘도 더욱 높은 곳을 향해, 한결같이 정진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