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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 그라치아


  이 세상에는 참 더러운 일이 많다.
  나나 역시 그걸 확실히 느낀다. 어디를 가도 사람은 믿기 힘든 존재란 걸 머리 안에 숙지한 상태다. 과거의 기억도 그렇게 말하고 말이다.

-알겠냐. 세상에는 자기 말고는 남 믿는 건 10%로 생각해. 언제 어디서 뒤통수 친다. 그리고 가족은 한 30%만 믿고.

  선배의 말이 옳았다.
  세상에 뒤통수치려는 존재는 많다. 자신이 생활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으니까. 어머니에게 보증세우게끔 한 망할 선생이던지, 광고업을 하면서 도둑질 하려는 사람이던지, 또는 길거리에 가다가 ‘도를 아십니까.’ 분류들.

“제길……”

  그리고 제일 심한 건 1년 전 그 사건이다.
  그 사건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선배들과 어머니, 심지어 나나 자신마저 위험하게 될뻔한 그 사건. 그 사건은 제일 치욕스럽고, 악랄했다. 선배 말이 맞았다. 잠시나마 누군가를 믿을 땐, 언제나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무조건, 상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끝까지 믿지 말라고.

“쿨럭. 제길………”

  손을 올린다.
  피가 번진 손은 한없이 붉게 물든다. 차갑게 얼어가는 피를 보며 나나의 말이 겨우 나온다.

“이렇게 되려고 한 건 아닌데……….”

  씁쓸할 뿐이다.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듯, 회색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자신을 덮어간다. 눈의 차가움을 느끼며 나나는 눈을 감는다. 피곤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점점 시선이 올라가면서 나나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드러난다.

-주르륵.

  옆구리가 심하게 파헤친 그녀는 얼어붙은 바닥 위로 축 늘어져 있었다.

3화 사건은 언제나 시작된다. 언제나!



  머리에 붕대를 푸는 나나.
  병원에서 검진 및 치료를 받고, 의사에게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 란 말을 들었지만, 무시하듯 그대로 붕대를 다 풀어버린다.

“휴우.”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만져 본다.
  분명히 실로 상처를 봉합한 흔적은 있지만, 상처는 사라졌다. 분명히 콘크리트 조각을 힘차게 머리에 쳐서 꽤 상처가 큰데도 말이다.

“역시……… 변한 건가.”

  나나의 시선이 팔로 향한다. 왼팔에 물린 자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해로 입은 상처마저 말끔히 재생되었다. 나나는 곧장 칼을 들어 머리에 꿰맨 실을 하나, 둘, 천천히 끊고 뽑으며 TV 뉴스를 본다.

[긴급속보입니다. 방금 제 6구역에서 일어난 대참사에 대해서……]

  TV에서 나오는 내용은 전부 오늘 있었던 사건뿐.
  그 사건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나나는 쓴 웃음을 짓는다. 확실히 논란거리인 사건이니까. 여성형 거인과 거대 괴수와의 싸움. 어디 TV프로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더구나 그런 프로그램은 이미 과거에 완전히 끝장난 지 오래다. 오히려 등신대 히어로가 유행이다.

“아니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갑자기 삼천포로 빠진 생각을 추스른다.
  실밥을 다 뽑은 나나는 TV를 끄고 얌전히 생각해본다.

‘내 몸이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나란 존재가 맞는가?'

  거인이 되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예전이라면 자기 자신이라고 당당히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변한 다음에 그런 것을 묻기가 무서워졌다.

‘내 몸은 다른 사람하고 틀리다.’

  우선, 상처 회복력은 압도적으로 빨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등신대에, 본래 자기 모습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상처는 순식간에 다 아문다. 다만, 이게 어느 정도 크기가 한계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걸 제대로 숙지해야 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건 나중에 미룬다.

‘나란 존재는 진짜인가?’

  꿈 같은 현실이 아니다.
  오히려 악몽에 가까운 내용이다. 자신의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는 이미 그 때 죽은 것이 아닌가 느낀다. 자신이 다른 형태의 무언가로 변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자신과 다르게 신에 필적할 힘을 지녔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의 존재는……’

  진짜 나는 죽었고, 새롭게 나온 힘이 주체가 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원래 있던 무의식이 원래 정신을 잡아 먹은 것인가? 너무 혼란스럽다. 머리를 흔들며 그 생각을 멈춰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미치겠다.”

  머리가 아파온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 애매하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제나 자신감 있고, 실패하더라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거나, 바로 신경질 내는 자신이 되돌아 올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기억에 남아있는 선배들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남의 것을 느껴지는 것.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딩동.

  초인종 벨이 울리자, 나나는 얼른 생각을 멈춘다.
  누가 들어오려는 건지, 아니면 집을 잘못 찾아온 사람인지는 직접 가봐야 아니 말이다. 나나는 얼른 현관까지 달려 나와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설치된 인터폰을 키고 바깥의 사람이 누구인지 쳐다 본다.

“!!”

  인터폰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에 나나는 깜짝 놀라며 얼른 문을 연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타난 얼굴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의 모습.

“나나야, 괜찮냐!”
“선배!”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로 막 껴안으려는 붉은 조끼의 선배. 그리고 그걸 보며 그저 미소만 보이는 녹색 옷의 선배. 두 선배가 나나를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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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한 집무실.
  약간 뒤룩거리는 남자 한 명이 그 안에서 막 서성거리며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심 고민이 많은 그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중얼거림을 누가 들었는지, 곧 회답이 왔다.

-삑.

“!!”

[멍청한 ​놈​.​.​.​.​.​.​.​.​]​

  갑작스럽게 그 자 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영상. 영상이 되어 나타난 건, 검은 양복을 입은 존재였다. 그것의 얼굴은 음영이 짙게 깔려 있어 제대로 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말은 걸걸하며 사악한 남자의 목소리를 내며 뒤룩한 남자에게 말한다.

[군부대를 출동시켜서 그 부대를 전멸시키라고 했지 않았나.]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깃들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 검은 양복의 사내가 괴수를 보낸 장본인이니 말이다. 그의 말에 뒤룩거리는 남자는 사정하듯이 변명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게​.​.​.​.​.​.​.​ 갑작스럽게 거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너희 쪽에서 만든 프로젝트는 아니겠지?]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헤​헤​.​.​.​.​.​.​.​.​.​”​

  살찐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조금씩 깃들지만, 이내 양복의 사내가 그걸 알고는 받아친다.

[그렇다고 네놈이 잘했다는 건 아니야.]

“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선수를 쳤습니다."

[뭐지?]

  뒤룩거리는 사내는, 군복을 입은 그는 양복의 사내에게 자신이 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소리를 높인다.

“이번 군 긴급 회의 때, 제가 손을 썼습니다.”

[오호.]

“괴수와 거인의 출현으로 군부대에 피해가 심했지요. 그래서 덕분에 제 발언권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헤​헤​.​.​.​.​.​.​.​.​”​

  남자는 군 장성 중 하나.
  그리고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자신의 발언권이 높아진 걸 알았다. 괴수를 물리치기 위해 보낸 부대원 중에는 자신의 행실을 나쁘게 보는 장교나 병사가 상당수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전멸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피해를 입고 입원 중에 있었다. 덕택에 그들의 의견을 간단히 무시할 방법이 생긴 것.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괴수든, 거인이든, 상관하지 말고 없애자고 말입니다.”

​[​흐​음​.​.​.​.​.​.​.​]​

  양복의 사내는 그럴 수 있다고 느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존재. 그것도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났으니, 이 오클로시움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괴수는 없앤다고 쳐도, 정체불명의 거인은 손쓰기 어렵다. 오클로시움을 구해준 존재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군부대에서, 그것도 조직이 심어놓은 이 녀석이 제대로 손을 썼다.

“생각해보십시오. 거인이든, 괴수든.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군인들은, 특히 윗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요?”

[제법이군.]

“과찬입니다.”

[하지만 물러.]

  칭찬도 잠시, 이내 양복의 사내가 다시 한 번 신경질을 낸다.

[네놈이 거인에 대한 대책을 망할 오클라시움 놈들에게 맡길지 언정, 네놈 때문에 입은 피해는 산더미처럼 많아.]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분명 거인은 저희 ​쪽​에​서​.​.​.​.​.​.​.​”​

[입 닥쳐라! 이 하찮은 생명체야!]

  버럭 거리는 소리가 영상을 넘어, 집무실 안을 울리는 듯이 다가오자, 뒤룩거리는 남자는 그만 뒤로 나자빠졌다. 양복의 사내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는지, 스파이를 보며 고함을 내지른다.

[거인은 너희 오클라시움 놈들 편에 섰다! 덕분에 조직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우리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 실망했다! 네놈이 그 때 명령 하나라도 하달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 ​그​게​.​.​.​.​.​.​.​”​

[어째서! 그 거인이 나타났을 때! 군부대에게 말해서 거인을 쏘라고 지시하지 않았지! 그러면 일은 손쉽게 풀릴 방도가 나올 것인데! 네놈은 그런 짓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저 역시 ​비​상​사​태​라​.​.​.​.​.​.​.​”​

[닥쳐라!]

  또다시 낸 고함에 뒤룩거리는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며 몸을 완전히 숙인다.

[네 놈이 1년 전 그 사건의 배후 중 하나인걸 조직이 아는 이상, 넌 우리 뜻대로 해야 한다! 우리의 뜻은 이 망할 오클라시움을 없애버리는 것! 그걸 위해 준비한 계획을 제대로 동참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네, 네!”

  사정없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알겠다고 표시하나, 양복의 사내는 그런 것도 여의치 않는지 계속해서 강요하듯, 그를 압박한다.

[거인에 대한 일은 네게 위임 따위 하지 않아. 넌 어차피 수틀리면 버릴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지​.​.​.​.​.​.​.​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 그러하옵니다!”

[그러면 간단해. 우리 쪽에서 계속해서 오클라시움을 날릴 괴수를 보내겠다. 그리고 넌 군부대를 이용해 거인을 몰아붙여.]

  양복의 사내는 그제야 그에게 달콤한 말로 속삭이듯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의 악마 같은 모습에 뒤룩거리는 남자는 그저 복종만 할 뿐, 다른 건 있을 수도 없으니까.

[이번에 다른 부서에서 괴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계 차세대 에너지 대회가 남극에서 열린다고 했지?]

“네, 네!”

[남극에 적당한 녀석을 보낼테니, 너희들도 준비 잘 하도록. 분명 거인은 다시 나타날 것이다.]

  양복의 남자는 천천히 손을 목까지 올린 뒤, 손날을 세운 후 말을 잇는다.

[이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걸 목을 그어버리듯 움직인다.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자의 사정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이내 영상은 저절로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무실은 남자가 서성거리는 그 때 모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는 얼른 일어나서 재빠르게 상관이 시킨 명령에 복종하였다. 어떻게든 다음에 나타날 거인을 죽이기 위해서 정말 적당한 걸 계획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불복할 ​시​에​는​.​.​.​.​.​.​.​.​ ​아​마​도​.​.​.​.​.​.​.​.​

-삑.

“망할 오클라시움 녀석들.”

  양복의 사내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낀다.
  스파이 녀석이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각국에서 조직의 물건을 사러 온 클라이언트들이 실망만 하고 가버린 것이다. 신비동물, 이른바 크립티드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개조하고 뿌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환경에만 살 수 있도록 적응한 녀석들도 꽤 있다.

“거인은 다시 나타난다.”

  옛날 만화나 소설에 나오는 영웅처럼.
  갑자기 나타난 악에 대항해 나타나는 전설의 용사. 그런 류의 이야기는 어디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려면 괴물의 힘보다 오히려 그들이 지키는 사람들의 힘이 더 좋다.

“그 거인 녀석....... 다시 나타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양복의 사내.
  그의 입가는 기괴할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 미소 너머의 입 안은 시꺼멓게 물들어 있단 것도 제대로 보지 않는 이상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기괴한 사고(思考)를 하며 어두운 공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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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한 밤.
  나나의 집에는 나나를 포함한 3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각각 붉은 조끼와 녹색 조끼를 입은 남자. 둘은 나나의 선배이며, 가족인 사람들. 둘은 나나가 타준 커피를 입 안에 홀짝홀짝 넣으며 나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루룩. 그보다 다행이다. 네가 안 다쳤으니 말이다.”
“위험했다고요.”

  둘이 여기 나나에게 온 이유는 당연했다.
  후배이면서 동시에 가족이란 이유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동적 이야기지만, 나나에게는 골칫덩이 같은 이야기다.

‘이거 ​큰​일​인​데​.​.​.​.​.​.​.​’​

  나나에게 있어서 가장 감당이 되지 않는 사람은 딱 셋이다.
  어머니, 그리고 저기 있는 저 선배 둘.
  특히, 저 중에서 빨간 조끼의 선배가 제일 대하기 힘들다. 딱 봐도 스포츠머리에 빈둥거리는 구석을 가지고 있지만, 은근히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스타일의 선배. 적어도 자신을 걱정한다고 여기에 올 정도면 자신을 너무 생각해준다고 봐야 한다.

“연구소에서 네가 다쳤다는 소리에 너무 당황했다, 야.”

-흠칫.

  순간 나나의 동작이 살짝 멈추었다. 동시에 선배는 커피를 단숨에 마시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머리에 돌덩이 맞아서 입원했다고 들었거든.”
​“​.​.​.​.​.​.​.​.​”​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동시에 선배의 말이 날카롭게 꽂히고 있었다. 어떻게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통 나오지 않았다.

-달칵.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넌 이미 퇴원하고 없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집으로 왔지.”
“그, 그랬군요.”

  어쨌든 얼버무리기 위해서 거짓웃음까지 짓지만, 선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커피 탄다고 부엌에 갔을 때.”
“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
  나나의 몸이 그걸 느끼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보니 말이다. 의료용으로 쓰이는 실밥이 있더라.”
“!!”

  나나는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선배의 날카로운 일침이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산산조각 내고 있으니 말이다. 쿠기가 침에 의해 잘게 부서지는 것처럼, 선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실밥 풀었다는 건 분명 상처 따윈 아무 것도 ​아​니​다​.​.​.​.​.​.​.​.​ 상처가 다 나았다는 증거라도 봐도 되겠지.”

  이내 실실 웃던 선배의 얼굴은 차츰 굳어졌다. 다른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살짝 머금으며 그 상황을 즐긴다. 그렇게 나나의 얼굴이 앉아있는 빨간 조끼의 선배로 향한다.

“선배.”
“나나야.”

  이내 선배의 말이 굳어진다.
  아니, 당연한 진실을 알고 싶은 어투로 바뀐다고 해야 하나. 너무 걱정한 나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 그러한 마음에다 잘 아는 사이다 보니 더 이상 뭐라고 숨기거나 대꾸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
“미안, 역시 너무 이상하게 생각했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 아닐까 싶.......”
“선배.”

  나나는 결국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 증거로 가슴 위쪽을 가린 옷을 살짝 내리면서 대답한다.

“무슨 일 생긴 거 맞습니다.”
“!!”
“제가 지금 TV에서 소문이 자자한 거인이니까요.”
“무, 무슨 소리야? 농담 하는 거지? 그냥 이상하다고 내뱉은 말에 ​갑​자​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선배를 향해 나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생각하시질 모르지만, 제가 그 거인이 맞아요.”
“그런 피어스 가지고?”
“피어스는 아닙니다.”

  선배는 나나가 가슴에 피어스 박아놓고 거짓말을 읊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본인의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TV 영상에도 나왔잖아요. 그 거인하고 똑같은 보석이 지금 보는 것처럼.”
“이상한 소리 작작해라. 설마, 그런 것 가지고 거인하고 동일하다니, ​어​쩌​니​.​.​.​.​.​.​.​.​ 차라리 안 믿고 그냥 네가 돌 맞고 정신이 살짝 나갔다고 여기는 게 나겠다.”
“정말이에요!”

  나나는 큰 소리를 내지르더니, 곧장 괴수를 죽일 때 섰던 그 자세를 취했다.

“보세요! 똑같잖아요!”
“나 참, 그런 건 누구든지 할 수 있겠다. 거기다 뉴스에 보니까 그 다음에 광선을 쏘더라. 광선도 나오지 않는 자세 정도는 나도 할 수.......”

-번쩍!!

  바로 그 순간.
  멋모르고 자세를 취하고 광선을 발사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내 나나의 손바닥에서 황금색 광선이 순식간에 나와 테이블 중앙을 말끔하게 날려버렸다. 딱 테이블 중앙을 원형으로, 그것도 바로 밑에 있는 바닥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말이다.

“.......”
“혀, 형?!”

  다만, 테이블 중앙에 다 마신 잔을 놓은 녹색 조끼의 선배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중앙과 같이 사라진 찻잔을 보며 씁쓸한 미소만 자아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빨간 조끼의 선배가 버럭 화를 낸다.

“얌마! 그렇다고 진짜 쏘면 어떡해! 하마터면 형 손이 날아갈 뻔 했잖아!”
“안 믿은 사람은 누구고요!”
“그, 그래! 안 믿어서 미안하다! 흥!”

  이내 두 사람은 서로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모습을 본 남은 선배는 이내 말끔하게 도려낸 테이블과 나나를 한 번씩 보고는 그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나나야?”
​“​그​거​야​.​.​.​.​.​.​.​.​”​
“네가 어떻게 거인이 된 것인지는 나중에 알아도 늦지는 않다만.”

  살짝 고개를 틀며 손가락 하나를 도려낸 부분에 만진다.
  아직 따뜻하게 남은 부분. 식어가는 부분을 만졌다가 땐 녹색 조끼의 선배는 이내 몸을 일으킨다.

“문제는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가 중요하다.”
“.......”

  이어지는 그 말에 두 사람은 그저 경청할 뿐. 달리 다른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동생, 너라면 어떻게 할거냐?”
“공부와 거인으로 예시를 하자면 둘 다 할 겁니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알바하고 공부도 같이 병행했으니까요.”
“좋아, ​그​럼​.​.​.​.​.​.​.​.​ 나나야. 넌 어떻게 할 거냐.”

  선배들의 대화가 짤막하게 이어지고 곧장 나나에게 그 질문이 들려진다.

​“​.​.​.​.​.​.​.​.​”​
“침묵은 긍정(肯定)이라고 하지만, 선택할 때는 침묵은 ​부​정​(​不​正​)​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것 역시 부정이다.”

  지금 바라는 것은 선택이라고 선배가 그렇게 말한다.
  나나는 깊게 생각해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 질문을 또 다른 선배가 말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빠르게 대답하게 행동해야 되는 문제다. 그 문제의 선택은 오직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될 것 같으니 말이다.

“선배.”
“대답해보렴.”
“저도 이 생활을 영위하렵니다.”
“그러냐.”

  말을 살짝 감추는 또 다른 선배의 태도에 나나는 그저 힘들다고 중얼거린다.
  저 사람은 빨간 조끼의 선배와 다르게 느긋하면서도, 상대를 억압하는 태도를 지니니 말이다. 더구나 합당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저 무신경하게 상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대화하고 부딪히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기에 확실한 의지를 보이면 잘 대해주는 사람이란 것도 사실이다.

“전 과학자입니다. 물론 공학자도 겸하고 있지요.”
“정확히는 에너지 관련이지.”
“그건 놔두고요. 아무튼, 전 지금의 자신이 자신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제가 거인으로 대체되었는지, 그런 생각을 계속 ​해​버​리​니​.​.​.​.​.​.​.​ 선택하는 것도 힘들거든요.”
​“​.​.​.​.​.​.​.​.​”​

  또 다른 선배는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연달아 끄덕인다.
  어떻게 거인이 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나나의 정신 상태는 자아가 혼란스러운 상태다. 오히려 걱정해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하니, 또 다른 선배는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의 제가 과거의 저와 맞는지, 그거라도 확인하려면 두 개의 삶을 다 영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하지마. 분명 넌 나나가 맞으니까. 안 그러면 그렇게 어려운 소리도 내뱉지 않잖아?”
“선배는 입다물고 있어요. 믿어주지도 않는데.”
“난 30%만 믿으니까.”

  끼어든 선배에게 살짝 화를 냈지만, 그런대로 나나는 괜찮다고 느꼈다. 아무튼 둘 다 자신을 걱정해서 오고, 이렇게 말까지 나눴으니 말이다. 이내 또 다른 선배가 말을 꺼낸다.

“그렇구나. 알았다. 전적으로, 네가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마.”
“선배.”
“아무튼 네가 결정한 일이니 우리는 더 이상 터치하지 않으마.”
“어이, 형. 그렇다고 터치하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에 어쩌려고?”

  그 말에 녹색 옷의 선배는 잠잠히 고개를 숙여 생각하다가 다시 든다.

“알았다. 그럼, 목숨에 지장받지 않으면 터치하지 않으마.”
“너무 빨리 바꾸는 건 아닌가요?”
“원래 형이 그런 사람이니까.”
“이 ​녀​석​들​.​.​.​.​.​.​.​.​ 나도 생각 좀 하면 안되냐?”

  이내 셋은 그런 식으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 간에 그간 있었던 이야기 및 농담 따먹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두 명의 선배는 나나에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돌아갈 차비를 한다.

“그럼, 먼저 가보마.”
“잘 있어라, 후배야.”
“선배들도 잘 가세요.”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이내 집 안은 다시 정적을 찾는다. 두 명이 완전히 가버렸다는 증거지만, 나나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나만의 ​삶​이​라​.​.​.​.​.​.​.​’​

  선배들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이렇게 상담도 해주었다.
  조금이나마 자신이 자신이라고 느껴졌다.
  저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니​.​.​.​.​.​.​.​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자볼까. 너무 피곤하고, 앞으로 있을 일도 많으니까.’

  이내 나나 역시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차피 괴수가 나타난 건 한 순간이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게 어디 여러 번 일어날 일이라고 속으로 웃는다. 한 번이면 족하지, 두 번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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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당했다고 하더군.”

  어두운 공간 저편.
  아주 크게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녀석이 보낸 개조 신비동물이 당했으니 말이다.”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어차피 신비동물의 힘이다. 개조해도 그 정도지.”

  그 말을 이어가듯,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녀석은 남극에 있을 포럼에 다시 한 번 개조 신비동물을 푼다고 한다.”
“어리석군. 거인을 없애겠다는 각오인가?”
“그 역시 허무할 뿐, 어차피 혼란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혼란과 광기가 필요하면 다른 힘을 써야 하는 법.”

  이내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빛이 튀어나온다.
  거기에는 보이는 건 장례식 복장을 입은 묘령의 여성. 그 여성의 얼굴은 검은 천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목소리만은 자기 앞에 나온 스크린을 보며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제물의 준비는 끝이 났다.”
“미천하고 먼지보다 못한 인류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놀랍게도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곂쳐 들린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 여성.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그 존재는 이내 막 남극에 있을 포럼 준비 영상을 보며 징그럽게 소리 낸다.

“자, 오너라. 사건이여.”
“넌 정말 아름답고 갑작스럽게 오는구나.”
“그리고 언제나 일어나는 사건이여.”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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