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믿고
겨울방학도 가까울 시기가 되자, 장미관에 고개를 내밀 기회도 확 줄었다. 애초에, 학교에 올 일 자체가 줄었으니까 장미관에 갈 일이 더더욱 주는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변덕으로 들른 장미관에서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는 조금 놀랐다.
“어라―, 요코잖아. 이런 데서 보는 건 오랜만이네.”
“이런 데, 는 아니잖아. 장미관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세이는 매너 없게 테이블 위에 앉아서 가지고 들어온 듯한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평일이라곤 해도 수업중인 시간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설마 세이가 눈에 들어올 줄이야.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초콜릿을 하나 손으로 집어 입에 던져넣었다. 비터를 예상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달콤한 맛에 조금 놀란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세이는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달콤하지? 유미한테서 받은 건데 말야.”
“……어쩐지.”
장미관은 냉골이라 싸늘하다.
그런데도 세이는 그런 기색은 조금도 내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겨울의 시원한 냉기가 어울리는 세이는, 조각상 같은 옆얼굴을 내게 보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요즘들어 세이가 내뿜는 분위기가 하루하루 날카로워져 가는 걸 느낀다. 다른 사람을 멀리하는 오라라고 해야 할까.
모두와 함께 있을 때는 온화하지만, 혼자 있을 때 등은 멀리서 봐도 예민해져 있는 게 빤히 느껴졌다.
아마도 그건 크리스마스가 가깝기 때문이겠지.
세이에게 크리스마스는 분명 잊을 수 없는 일일테니까.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 이상으로―――
“무슨 일이니, 요코.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엣?”
세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자,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세이가 보였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띄운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세이.”
“응?”
입을 열려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는 걸 느꼈다.
그도 그렇다. 방금까지만 해도 세이에게 있어 성스러울 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그 이야기를 꺼낼뻔 했으니까.
하지만 나도, 다음에 만나면 말하자. 말하자고 수없이 마음을 굳혔던 거다.
“이번 일요일, 비어 있니? 괜찮으면 식사라도 안 갈래?”
“뭐야, 요코가 그런 식으로 꼬시다니, 이상하네. 무슨 일이야?”
“뭔 일도 아냐. 그냥, 좀 있으면 올해도 끝나니까 가끔씩은 이런 것도 괜찮을까 싶어서.”
“뭐야, 데이트 꼬시는거 아니었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친다.
맞아, 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떠려나?”
크리스마스니까, 라거나 세이의 생일이니까, 같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에 담진 못했다.
과연 세이는 깨닫고 있을까. 이번 일요일의 의미를.
하지만, 세이는.
“으음―, 그렇네에.”
하고, 어느쪽인지 모를 애매한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산백합회의 크리스마스 파티도 가까운 날, 갑자기 세이에게 불렸다.
“그러고 보니, 5시에 역 앞 커피숍에서 괜찮아?”
“에?”
너무 뜬금없이 들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려 버렸다.
“그러니까, 저번 이야기. 일요일이잖아.”
“아아……기억해 줬구나. 잊었을거라고 생각했어.”
정말, 언제나 어찌도 이렇게 변덕쟁이인 걸까.
항상 나는 거기 휘둘린다.
“알았어, 늦지 말아줘.”
“그건 약속 못하겠는데에.”
장난치고 있는 건지, 진지한 건지, 태도나 표정만으론 알아볼 수 없다.
중등부부터 교제가 있는 나조차 그건 마찬가지. 지금까지 그래서 얼마나 실수를 저질렀을까.
하지만, 아무리 내가 실수하든 세이는 옅은 미소를 띄울 뿐.
누구보다 부서지기 쉽고, 누구보다 상처입기 쉬운 주제에 금이 간 마음을 누구에게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그렇게 전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생각을 짐작하기 힘든 표정을 짓곤, 표표히 떠나가는 세이.
내가 생각해도 좀 더 할 이야기가 없었나 싶은 마음이지만, 타고난 천성인지 아니면 성장 과정에서 몸에 밴 건지, 나는 내 말투대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이래저래하는 동안 산백합회의 크리스마스 파티도 끝나, 세이와의 약속일이 찾아왔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꽤 빠르게 짔을 나섰다. 어차피 상대가 세이니 과연 시간대로 올지도 미심쩍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늦어도 괜찮은 건 아니다. 거기에, 혹시나 세이도 시간대로 와 줄지도 모르고.
12월이지만 오늘은 그리 심하게 춥진 않았다. 그래도 코트는 물론 필수여서,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약속 장소를 향했다.
도착한 건 평소대로 약속 20분 전.
이 20분은 나 자신 탓이라고 언제나 세이는 말한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보통 약속시간보다 여유를 두고 가야 한다곤 생각 안 하는 걸까.
분명, 생각 안 하는 거겠지.
하얀 숨을 내뱉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굉장히 어두워졌다.
과연 오늘은 얼마나 기다리게 되는 걸까.
기다리는 것도 일흥이라곤 하지만, 한도라는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의 일루미네이션 빛 안에서, 나는 지정된 가게로 발을 디뎠다.
창가 자리에 앉은 건 바깥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하려고. 그런데도 내 눈에 보이는 건 턱을 괴고 시원찮은 표정을 지은 내 표정.
5시에 올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5시를 지나 버리면 아무래도 한숨이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미지근해진 커피에 입을 대고 가게 안을 둘러보면, 자리 대부분은 차 있었다. 시크하고 차분한 가게지만, 가게 안은 나름 크리스마스답게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도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음악도 차분하다.
고객층도 젊은 학생같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사회인 분위기의 사람이 많아 보였다.
시간을 확인하자, 5시를 10분쯤 지났을 즈음. 오늘은 대체 얼마나 늦게 오는 걸까.
나는 다시 창 밖에 눈길을 향한다.
창 밖, 시야 안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크리스마스답게 사이좋은 듯 팔짱을 끼고 가는 남녀 커플이나, 파티라도 있는지 떠들썩한 학생들,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자식과 함께 가는 부모 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세이는 아직 안 왔다.
시간은 5시 반, 평소보다도 늦다.
어떡할까 고민한 끝에, 나는 커피를 다시 한 잔 주문했다.
6시.
가방 안에 문고본은 들어 있지만, 꺼내 읽을 마음은 안 든다. 몇 번 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그래도 1시간이나 늦을 때는 그리 없다. 세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나타날까. 세이가 오면 어떤 표정을 지어 줄까. 뭘 말해 줄까.
그런 걸 고민하는 것도 싫지는 않지만.
눈을 아래로 떨구자,
컵 안에 마시다 남은 커피가 살짝 흔들리고 있다.
밖을 걷는 인파는 끊이질 않는다.
배가 비기 시작했지만, 여기서 주문을 해 버렸다간 이 뒤에 밥을 먹는데 문제가 생겨 버린다. 그래도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좀 미안하다.
가게의 주인은 사람이 좋아서 특별히 신경쓰는 듯한 느낌은 없지만, 내가 신경쓰인다.
커피 숍에서 이렇게나 오래 있는 손님은 별로 없다. 내가 가게에 들어왔을 때 안에 있던 손님들은 당연하지만 아무도 안 남았다.
이럴 때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편리하리라 느끼지만, 아직 없다.
세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볼까 고민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집에 있진 않을 거고, 그 전에 왠지 전화를 거는 게 싫었다.
하늘은 이미 새카맣지만, 거리를 꾸미는 전광등이 주위를 비추고 있다.
7시를 지나서도 세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도 아니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아닌, 시크하고 오래도록 혼자 경영해온 커피 숍은 역 앞이란 입지인데도 밤 8시에 영업시간이 끝난다.
나는 지불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스쳐나갔다.
밤이 되고서 추위가 한층 강해진 모양이다. 코트 옷깃을 잠그고, 머플러를 감아 바람을 막는다.
아직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런데도 조금씩 줄어가는 기분이 든다.
조금 눈길을 뒤로 향해 보자, 막 나온 문에는 ‘CLOSE’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약속을 한 건 이 가게니 그리 멀리 떨어질 수도 없다. 나는 가게 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다리기로 했다.
위를 올려다보면, 빨려들 것만 같은 칠흑빛 겨울 하늘. 별이 보이면 조금은 로맨틱할지도 모를텐데, 짓궂게도 그래주진 않는 모양.
가방을 고쳐메곤 한숨을 다시 내쉰다.
하얀 안개가 내 입에서 부드럽게 퍼진 뒤 사라졌다.
얼굴은 괜찮지만, 귀가 차가웠다. 뭔가 귀막이 같은 게 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기다린다.
재채기나 콧물도 나올 것 같지만, 세이가 올 때 콧물이 나오면 싫은데 하고 이상한 생각을 해 버렸다. 덕분에 홀로 있는데도 잘못하면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참으려다 역시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재채기를 해 버렸다.
“……애취.”
그리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린 내가 눈을 들자, 숨을 헐떡이는 세이가 서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보이면 싫다고 생각한 것만 보여 버리는 걸까.
“……으, 하악……윽.”
아직 숨을 가다듬는 세이.
나는 손수건을 넣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4시간 지각, 신기록이네.”
“……바보.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당연하잖아.”
“이렇게나 차가워져서……감기라도 걸렸다간 어쩔 거야.”
“어머,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리는게 아니니?”
“요코…….”
머리도 어지럽고, 달려서 열이 난거지 뺨도 붉다.
내 뺨에 닿은 세이의 손끝은 약간 따스했다.
“변명할 게 있으면 뒤에 들을게. 그보다 먼저, 배가 비었어.”
그 말을 하고, 배를 눌러 보였다.
세이는 화난 듯한, 그러면서도 울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을 보인다.
“왜 이렇게 계속 기다린 거야. 몇 시간이나 늦은 내가 확실히 나쁜 거니까, 돌아가도 괜찮았을텐데.”
“어째서냐니.”
나는 손을 뻗어, 흐트러진 세이의 머리칼을 고쳐주었다.
“세이가 시간과 장소를 말했잖아. 그러면 세이는, 늦어도 분명 올태니까.”
내 말에 한 순간 몸을 떤 세이.
잠시 뒤, 몸에서 힘이 빠져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믿음을 받는다는 것도 괴롭네.”
머리를 긁는다.
그 표정은 평소의 세이로 돌아와 있었다.
“가자. 어떤 걸 먹을까? 세이는 배 고프니?”
“꽤.”
“그럼, 좋은 거 줄게.”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안에서 자그만 포장을 꺼냈다.
뭐야? 라고 말하는 듯한 세이의 눈길에서 숨기며, 포장을 연다.
“세이, 입을 열어줘.”
“에, 뭐야―――.”
그 말을 하느라 열린 입 안에, 포장에서 나온 조각을 집어 손가락으로 밀어 넣는다.
세이는 눈을 크게 떴지만.
“…………달아.”
“후훗.”
커피 숍에서 주문한 커피에 따라온, 자그만 초콜릿. 달콤한 초콜릿 뒤에 쓴 커피는 잘 어울린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세이의 입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그 전에 잽싸게 세이가 내 팔을 잡았다.
“세이?”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세이는 말 없이 내 손을 당겨서 검지를 입에 넣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손끝을 적셔, 혀가 부드럽게 손가락 안쪽을 간질인다.
근지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듯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온다.
“읏……세이?”
“아직 남아 있어. 아깝잖아.”
그 말을 하곤, 세이는 웃었다.
손끝에 약간 붙어있던 초콜릿 조각을 세이는 빨고 있었던 거다.
“바보.”
나는 부끄러워져서 빙글 세이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세이가 머금었던 검지에 살포시 입맞춤을 한다.
달콤하고 애절한, 세이의 맛이 났다.
“갈까.”
“어머, 요코, 얼굴 붉지 않아?”
“시끄러워.”
“아하하, 귀엽네, 요코는.”
어린 악동같은 표정을 지으며, 기분이 좋아진 세이. 방금 지었던 울 것 같은 표정은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세이 바보.”
그 말을 하면서 세이의 팔을 잡고, 겨울의 마을을 나란히 걷는다.
나는 옆에서 걷는 세이에게 눈길만을 향하며, 방금 세이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 세이가 깨닫지 못하도록 마음 속으로 나직히 말한다.
―――저기, 세이. 믿는다는 것도, 괴로운 거다?
이렇게 나란히 걷고 있으면, 점점 더 그날 일이 떠오른다. 과연 세이도 마찬가질까.
1년 전은 한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나와 세이 둘 뿐. 내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모를 특별한 날.
그리스도의 탄생일이어서도, 세이의 생일이어서도 아니다.
빛나는 일루미네이션도, 화려한 음학도, 하늘에서 흩날리는 하얀 가루도, 하늘을 채운 수많은 별도, 모두 필요 없다.
단지, 나와 네가 함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이라는 특별한 날을 느낄 수 있다.
자그맣고, 수줍고, 애처롭고, 하지만 정말로 따스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너와의 연결.
어느샌가 모습을 보인 맑디 맑은 겨울 달.
상냥하고 온화한 달빛이 나와 세이, 둘만의 세계를 비추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