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순간
~ 사랑에 빠진 순간 ~
장미관에서 조용히 작업을 진행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눈앞에서 일하고 있는 홍장미님인 미즈노 요코가, 어느샌가 잠들어 버렸다는 걸.
에리코는 그걸 깨닫곤 조용히 펜을 놓았다.
오늘은 요코와 에리코 둘밖에 없었다. 다른 애들은 동아리나 개인적 볼일이나 땡땡이 등으로 부재. 사실 에리코도 오늘은 돌아가려고 했었지만, 요코에게 들켜서 반쯤 억지로 끌려와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요즘 한동안 산백합회 임원들이 잘 안 모였던 영향인지, 상당한 일거리가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조금이나마 정리하려고 에리코까지 끌고 왔던 거겠지만, 정작 요코가 이 상태여서야.
아니, 요코의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혼자서 애쓰다가 피로가 쌓였던 거겠지. 그래서, 다른 사람인 에리코가 보는 상황인데도 피로와 수면에 저항하지 못했던 거려나.
에리코는 살짝 일어나서, 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해 요코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도 요코는 깨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잠을 자면서도 자세가 좋은 데는 정말 고개가 숙여진다. 약간 머리가 아래쪽을 향한 것뿐이고, 펜도 가지고 있으니까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뺨을 괴고, 잠자는 요코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
희미하게 숨소리가 들려온다.
에리코는 생각했다.
‘……곤란해, 요코 귀여워…….’
무심코 넋을 잃는다.
예전부터 미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삼스레 가까이서 바라보면, 매끈매끈한 하얀 피부, 긴 속눈썹, 분홍색의 사랑스런 입술.
거기에 더해 평소에는 우등생으로 지내고 있고, 전교생이 동경하는 그 늠름한 홍장미님이 이렇게 보여주는 무방비한 표정.
게다가 요코는, 주위에서는 완벽한 여성이자 딱딱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지만, 이래 봬도 제법 성격은 귀여운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세이가 빠져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요코…….”
조용히 불러본다. 하지만 요코는 눈을 뜨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한동안 실컷 보고 있다 보니, 요코의 입가에 군침이 고이기 시작한 게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는 홍장미님씩이나 되는 사람이 군침을 흘려 버린다. 게다가 바로 아래는 서류가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입가에는 군침이 고여간다.
에리코는 당황해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요코의 입술 끝에서 한줄기의 침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리코는 잽싸게, 그걸 살짝 닦았다.
자신의 혀로.
에리코의 분홍색 혀는,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불가사의하게 춤추며 요코의 군침을 닦아냈다.
천천히, 맛보듯이 에리코는 그걸 삼켰다.
‘달아…….’
머릿속이 찡 저리는것 같았다. 가슴은 뜨거워지는데 몸이 떨린다. 에리코는 본능적으로 좀 더 요코를 맛보고 싶다고 느꼈다.
살짝, 다시 고개를 가져간다. 이번은 규칙적인 숨을 내쉬고 있는, 그 분홍빛 입술을 맛보고 싶어서.
하지만.
“……으.”
불과 10센티만 남은 상황에서, 요코의 몸이 움찔 떨렸다. 당황하며 떨어져,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에리코.
요코는 천천히 눈을 뜬다.
“……응…….”
무의식중에 손등으로 입가를 닦는다. 이윽고 눈을 뜨고, 거기서 간신히 에리코가 있었다는 걸 눈치챈 듯이 놀란다.
“싫다. 나, 자 버렸어?”
“지친 거 아니니? 괜찮아? 무리하는 거 아냐?”
“응, 괜찮아. 깨워주면 좋았을 텐데.”
“그치만, 요코의 얼굴이 너무 귀여웠는걸.”
“뭣…….”
갑자기 요코의 얼굴에 피가 모인다.
봐, 이런 반응이 귀여운 거야. 분명 다른 학생들은 모르고 있을, 요코의 그런 일면.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 줘.”
“정말이야. 후후, 오늘은 따라온게 정답이었어. 요코의 자는 모습을 독점할 수 있었는걸.”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에리코. 자, 일을 계속……아, 아앗, 꺄, 아야!”
요코는 흐트러진 분위기를 고치려고 했지만, 손을 움직인 순간 펜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려서, 급하게 주으려고 하다 책상에 머리를 부딪쳐 버렸다.
지나치게 허둥거리는 게 또 사랑스러워서, 에리코는 무심코 웃어 버렸다.
“저, 정말. 웃을 일이 아니잖니.”
펜을 주운 요코가 눈에 약간 눈물이 맺힌 상태로 노려본다.
하지만 그런 표정이 다시금 에리코의 마음을 직격한다.
“후후, 미안해. 그래도 오늘은 정말로, 요코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전혀 좋지 않아.”
삐친듯한 요코. 꽤 세게 부딪쳤는지, 아직 머리를 문지르고 있다.
에리코는 일어난 뒤, 앉아있는 요코의 옆으로 다가간다.
“……뭐야.”
“아픈걸 식혀줄까 해서.”
그렇게 말하곤, 수상해 하는 표정을 지은 요코를 무시하고 그 머리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부딪친 부분에 입을 맞춘다.
두둥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자, 자, 잠깐, 에리코?!”
“자, 움직이지 마. 가만히 있어.”
“그래도…….”
아쉽기는 했지만, 너무 끈질겨도 싫어할 뿐이다. 에리코는 입을 떼고 두 세걸음 물러난다.
그런 뒤에 보면, 요코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아픈 건 날아갔니?”
“저, 정말! 아픈 것도 잊어버렸어.”
“그거 잘 됐네.”
멋쩍은 걸 숨기려는 듯, 서류를 바라보고 일을 다시 시작하는 요코.
오늘 에리코의 앞에서 여러 표정을 보여준 요코. 그런 그녀를 독점하고 싶다, 독차지하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정말, 오늘은 일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잠깐, 에리코. 너도 조금은 일 해줘.”
“예―.”
대답하면서도, 펜을 잡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 턱을 괴고 요코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요코는 자신을 보고 있는 걸 깨닫고 있으면서도, 무시하듯이 서류에 고개를 향하고 있다.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느낀, 에리코의 어느 날 오후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