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감옥 실험 5화
강철의 복도를 유영하는 희미한 녹색 불빛을, 조금은 희미해진 것 같은 은색의 인영이 뒤따랐다. 간혹 거대한 옥문을 지나칠때마다 그 기세를 키우기는 했지만, 지나치자마자 바로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그 외의 인물들은 결코 육안으로 포착할 수가 없다: 11살의 ‘살아남은 아이’, 벨라트릭스 블랙이라는 이름의 삐쩍마른 해골, 그리고 폴리주스로 변신한 호그와트의 방어술 교수가 한 조가 되어 아즈카반을 탐험 중이라니. 이게 일종의 질 나쁜 농담이었다면, 해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웃어야할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계단을 4층 정도 올라갔을 무렵, 방어술 교수의 거친 목소리가 고저없이 말했다, “오러가 옵니다.”
해리는 그 말을 이해하기 까지 무려 1초라는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말았다. 사전에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의 행동강령을 상기한 해리는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폭주하는 것을 느끼며 바로 뒤돌아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갔다.
계단 밑에 도달한 해리는 주저없이 지저분한 바닥에 엎드렸다. 차디찬 강철의 감촉이 두 겹의 망토마저 뚫고 전해졌다. 고개를 올려 윗계단의 끝자락을 슬그머니 바라보자, 퀴렐 교수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각도라는 것은, 즉 만약이라도 눈 먼 주문에 맞을 확률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빛나는 패트로누스 또한 그를 뒤따라, 바로 뒤의 계단에 정지해 바닥에 웅크렸다. 이 은색의 인영 또한 결코 들켜서는 안되었다.
칼바람이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배경음 속, 투명화한 벨라트릭스의 몸이 더 아래쪽 계단에 살며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그녀의 역할은 전무하다고 볼 수가 있다 ─
“가만 있어라,” 냉철한 고음의 목소리가 쏘아 붙였다, “소리를 내지 말도록.”
정적, 그리고 고요.
해리는 바로 앞쪽 계단에 지팡이를 갖다대었다. 만약 그가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주머니에서 크넛을 꺼내거나…망토의 일부분을 찢거나…손톱을 뜯거나…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부터 찾아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분적 변신술이라는 위대한 힘을 휘두르는 해리에게 그러한 사전 준비는 전혀 필요 없었다; 그저 그 공정을 건너뛰고 근처의 아무 물체나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30초 가량이 지나자 해리의 손에는 만곡형의 거울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해리가 최대한 목소리를 죽이고 주문을 읊었다.
…허공으로 부상한 거울의 표면에는, 퀴렐 교수가 투명화한 채 대기하고 있을 복도가 확연하게 드러나 해리를 향해 비추었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발소리가 다가왔다.
마침내 계단을 내려와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복도로 들어선 것은 (거울이 작아서 잘 안보였지만) 붉은색 망토의 사내였다. 그는 거울로는 분간하기 힘든 동물 형태의 작은 패트로누스를 동반하고 있었다.
오러는 전신을 푸른색의 기운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윤곽이 흐렸지만 그 정도는 해리로써도 구분할 수가 있었다. 오러는 사전에 방어막을 전개하고 내려온 것이다.
젠장, 해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방어술 교수에 따르면 결투의 기본이란 바로 자신에게 쏘아지는 모든 공격을 쳐내는 방어를 올리면서, 상대의 방어막을 꿰뚫을 공격을 가하는 것. 그리고 실질적으로 가장 쉽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법은, 바로 미처 방어막을 전개하기도 전인 무방비의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퀴렐 교수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령 뒤통수를 치거나 회피의 여유도 주지 않는 초근거리에서 격발하거나.
그래도 어쩌면 퀴렐 교수라면 이런 상대라도 후방을 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복도 안 쪽으로 세 걸음 가량 옮긴 오러는 우뚝, 하고 멈추었다.
“수준급의 환멸마법이군,” 낯선 사내의 목소리는 잔뜩 굳어있었다. “험한 꼴 보이기 싫으면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누르스름한 피부에 짙은 수염의 사내가 환영을 풀며 도래했다.
“현명한 선택이 아닐텐데,” 누런 피부의 사내가 목소리를 깔았다. 그건 더 이상 겁에 질린 어둠의 마왕의 하수인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노련한 범죄자의 냉철한 기세에 가까웠다. “내 배후가 누군지는 모르는 게 낫다. 내 말을 믿도록. 지금 당장 뒤 돌아 이 자리를 떠난다면, 현금으로 500 갈레온을 주겠다. 거절한다면, 글쎄.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는 않겠지?”
길게 정적이 일었다.
“이 봐, 네놈이 누구든 간에,”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었다. “아직 사태파악이 잘 안 되나 보군. 배후가 루시우스 말포이든, 빌어먹을 알버스 덤블도어든 내가 알 바 아냐. 네놈들 전부 쳐 나오고, 수색부터 받고, 제안을 하든지 말든지 하라 ─”
“2천 갈레온, 마지막 제안이다,” 진중한 목소리가 사내의 말을 끊었다. 다분히 경고 섞인 어조였다. “보통의 족히 10배는 달하는 금액이며, 연봉보다 더 큰 액수일 터.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를 믿는 게 좋다. 이 세상에는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이 있는 법 ─”
“아가리 닥쳐!” 굳은 목소리가 고함을 질렀다. “지팡이를 내려라, 5초를 주지. 다섯, 넷 ─”
뭘 하는 겁니까, 퀴렐 교수님? 패닉하며 해리가 속으로 외쳤다. 먼저 공격해야죠! 아니면 적어도 방어막이라도!
“─셋, 둘, 하나! 스투페파이!”
바리는 그저 멍하니 응시했다.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오싹함이 내려앉았다.
누런 사내의 지팡이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속도로 움직여 마치 순간이동한 것처럼 보였다. 방어한 것도, 상쇄시킨 것도 아니다. 바리의 기절 주문은 그 지팡이 끝에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 마냥 매달려, 은은하게 반짝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방금, 제안이 다시 500 갈레온으로 내려갔군,” 사내가 더욱 냉정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 짙은 수염의 얼굴에 띤 메마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다. “아,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아무래도 기억 삭제 주문을 받아줘야겠다.”
바리는 이미 방어막의 술식을 변환시켜 스스로의 기절 마법이 꿰뚫지 못하게끔 하고, 지팡이를 틀어 방어의 자세를 취한 뒤, 잃어버려도 안전한 의수를 전방에 전개했다. 이미 그는 무언으로 방어막을 겹겹이 쌓는 중이었다 ─
그러나 사내의 시선은 바리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팡이 끝에 사로잡힌 바리의 기절 주문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쿡쿡 찔러댔다. 그러면서 정전기처럼 번쩍이는 붉은 불꽃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튕겨, 퍼즐을 갖고 노는 아이마냥 저주를 분해하는 게 아닌가.
사내는 방어막을 전개하지도 않고 있었다.
“궁금하군,” 사내의 거친 음성에 걸맞지 않는 따분한 목소리였다 ─ 바리는 폴리주스라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로 변신한 채 저렇게 섬세한 마법을 구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그를 괴롭혔다 ─ “지난 전쟁에 당신은 어떤 부류였지? 사서 고생하는 쪽이었나, 아니면 몸을 사리는 쪽이었나?”
“사서 고생했었지,” 바리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번에 고했다. 자그마치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오러의 경력답게 그의 목소리에는 강철의 강인함이 깃들어있었다. 은퇴를 고작 7개월 앞두고 있지만, 설령 그 ‘매드아이 무디’도 이보다 더 냉혹할 수는 없었으리라.
“죽음을 먹는 자와는 교전했고?”
바리의 얼굴에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 “둘이 한꺼번에 덤비더군.” ‘그 사람’의 직속 부하에, 손수 가르쳤을 터인 궁극의 암살자 둘. 죽음을 먹는 자 두 명과 단신의 바리. 그것은 맹세코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전투였노라고 바리는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두 다리로 서 있었고, 고작 왼 팔만을 잃은 채 그 전투에서 생존했다.
“그들을 죽였나?” 지팡이에 사로잡힌 기절 저주의 불꽃을 엉킨 실타래처럼 하나 둘씩 풀어가며 사내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손은 경악스럽게도 바리의 마법 구조를 더듬어가 때때로 튕기며 너무나도 손쉽게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망토 너머, 바리의 피부는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금속 의수가 번개같이 허리띠로 내려가 작은 거울을 거칠게 냈다 ─ “바리가 마이크에게, 지원 바람!”
정적, 그리고 침묵.
“바리가 마이크에게!”
거울은 죽은 듯이 그의 손에 잡혀 아무 신호도 내지 않았다. 천천히, 바리는 거울을 다시 허리띠에 맸다.
“적합한 상대와 진지하게 마주하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로군,” 여전히 바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사내가 말했다. “부디 나를 너무 많이 실망시키 말게나.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공격하도록.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500 갈레온을 받고 돌아가든가.”
기나긴 적막함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바리가 지팡이를 사납게 내려치자 대기가 강철에 찢기며 울부짖었다.
해리의 눈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사방으로 터지는 빛줄기와 섬광 때문에 무엇이 뭔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 거울의 곡선은 완벽했지만 (카오스 군단을 위해 몇 번이고 연습을 했었다) 전장은 너무나도 작았고, 게다가 어차피 근거리에서 전투를 관찰한들 과연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일련의 행동이 눈으로 쫓기조차 힘들었다. 푸른색 방어막에 튕기는 붉은 빛줄기, 서로 맞물리는 녹색의 섬광, 사방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인영, 그야말로 어느 주문이 어느 시전자의 것인지도 몰랐다.
하나 확실한 건 오러는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치며 회피를 반복하는 반면, 폴리주스로 변신한 퀴렐 교수는 한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 채 무언으로 지팡이를 까딱거리고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그가 형언할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낮게 읊을 때마다, 거울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고 다음 순간 방어막이 산산조각나 위태롭게 흔들리는 오러의 신형을 확인하기가 일쑤였다.
해리 또한 7학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벌이는 모의전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건 가히 차원이 틀린 전투였던 나머지 해리는 뇌의 주름마저 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그의 앞에 놓여진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 어떤 7학년이라도 저 오러 앞에서는 겨우 1분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질 것이고, 7학년 부대 전원이 덤빈다 한들 방어술 교수의 옷자락조차 못 건드리리라.
오러의 신형이 무너져, 한쪽 다리와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지팡이를 든 반대 손을 휘두르며 처절하게 주문을 외웠다. 몇 개는 해리도 알아보는 방어 마법이었다. 주문이 끝나자 어둠의 장막이 오러의 주변에 드리워져 칼날처럼 회전했다.
그리고 해리는 폴리주스로 변한 퀴렐 교수가 전장에서 무릎을 꿇은 오러를 향해 오연히 지팡이를 겨누는 모습을 보았다.
“항복해라,” 진중한 목소리가 고했다.
오러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뭐, 정 그렇다면,” 목소리가 말했다, “아바다 ─”
그 순간 시간이 느려져 해리의 청력이 극대화되었다. 케, 다, 브라, 음절 하나 하나가 완연하게 들릴 정도로, 오러가 필사의 몸짓으로 몸을 옆으로 날리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그리고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듯 했으나, 동시에 뭔가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해리가 입을 열어 ‘안 돼’라고 외칠 시간도, 움직일 시간도, 그리고 어쩌면 생각할 시간조차.
그저 선량한 사내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소원을 본능적으로 떠올릴 시간만이 ─
그리고 오러의 앞을 눈부신 빛의 형상이 가로막았다.
녹색의 섬광이 들이닥쳐 목표물을 적중할 찰나에.
그 무렵 바리는 온 힘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반응이 늦었다, 아마 시간에 못 맞출지도 모른다 ─
다가오는 죽음과 적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바리는 그 찬란한 실루엣의 윤곽밖에 포착하지 못하였다. 지금껏 그가 본 것중 가장 밝은 패트로누스. 그 잠깐동안 겨우 그 불가능한 형태인 ‘인영’을 발견한 뒤 경악할 틈도 없이, 녹색과 은빛이 부딪혀 서로 상쇄되더니 소멸했다. 두 빛이 사라졌다. 살인 저주가 막힌 것이다. 그리고 적의 비명, 비명, 비명, 머리를 부여잡고 지르는 처절한 절규가 바리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고, 바리도 함께 쓰러진다 ─
스스로가 내딛은 필사의 도약을 못 이겨 바닥에 처참하게 넘어지자 바리의 빠진 어깨와 박살난 갈비뼈가 항변하듯이 비명을 토했다. 고통을 인내하며 바리는 지면을 딛고 일어나, 상대를 기절시키기 위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는 몰라도 이게 그의 유일무이한 기회일 것임은 분명했다.
“스투페파이!”
붉은색의 번개가 쓰러지는 사내를 향해 쏘아졌지만, 도중에 갈기갈기 찢어지며 소멸해버렸다 ─ 방어막에 의한 것은 아니다. 바리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스러져가는 적의 몸을 감싼 일렁이는 대기가.
공기가 너무나도 팽팽해진 나머지 바리는 피부마저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법의 파동이 점점 더 임계점까지 확장하고 또 거대해졌다.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도망치라고 본능이 외친다. 이건 평범한 마법도, 주문도 아닌 마법의 폭주나 다름없었지만, 바리가 미처 두 발로 일어서기도 전에 ─
사내가 지팡이를 저 멀리 던져버리더니 (어떻게 지팡이를 버릴수가!), 몸의 형태를 일그러뜨리며, 얼마 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은 지면에 널브러져 미동조차 없는 녹빛의 뱀이었다. 심지어 바리가 반사적으로 쏘아낸 다음 기절 주문을 직격당해도 반응이 없었다.
끔찍한 마법의 파동과 압력이 흐트러지고, 폭주도 진정되는 듯 하자, 멍한 바리의 뇌는 비명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래, 아래층 계단 부근에서 터져나오는 어린 소년의 비명과도 같이.
얼마 가지 않아 그 비명도 멎었고, 복도에는 오로지 패닉에 헐떡거리는 바리의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뇌리를 타고 흐르는 생각의 흐름은 느리고, 혼란에 뒤섞였고, 이지러졌다. 그의 상대는 말도 안 될 만큼 강력했다. 방금 그건 결투가 아니라, 신입 오러일 적 ‘타르마 부인’과의 연습아닌 연습과도 같지 않았는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실력조차 이 자의 1할에 못 미쳤으며, 매드아이 무디마저 이 자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리고 멀린의 알 두 쪽에 맹세코 도대체 누가, 어떻게 살인 저주를 막았단 말인가?
바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갈비뼈에 지팡이를 갖다대고, 치유 주문을 읊은 뒤, 어깨로 옮겨 꾹 눌렀다. 그 일련의 행동이 생각보다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모양인지, 거의 마법이 고갈되어가는 기분에 탈력감마저 느꼈다. 작게 새겨진 상처나 멍 따위에 소모할 마법은 물론이고, 방어막을 재구성할 힘 조차 없었다. 그저 온 정신을 집중해 가까스로 패트로누스만을 미약하게 유지하고 있을 뿐.
한참 호흡을 가다듬고, 그러나 여전히 가쁜 숨으로, 바리가 입을 열었다.
“거기 너,” 바리가 그르렁거렸다. “누구든 간에. 나와.”
대답 대신 정적이 반기자, 바리는 그 정체모를 또 하나의 인물이 어쩌면 의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뭔가 비명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뭐, 알아낼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나와라,” 바리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담겨있었다, “범위 공격 마법을 쓰겠다.” 허장성세에 가까웠다, 지금은 과연 기초 마법이나 쓸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소년의,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말했다. 높은 어조에 갸냘프고 흔들리는 게, 마치 탈진하여 울음을 애써 참는 듯했다. 소리가 커져가는 게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제발 잠깐만요. 나갈, 나갈 테니까 ─”
“투명 마법을 해제해라,” 바리의 사납게 쏘아붙였다. 환멸 해제 주문을 읊기에는 지나치게 피곤했다.
얼마 후, 접힌 투명 망토의 사이에서 어린 소년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리는 검은색 머리칼과, 녹안, 안경, 그리고 상징적인 번개 모양의 흉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년 전, 오러 경력 80년의 바리였다면 그 뜬금없는 생김새에 눈을 꿈벅였을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살아남은 아이’ 앞에서 결코 적합하지 않을 법한 진한 욕설을 내뱉었다.
“그, 그가,” 소년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앳된 그의 얼굴은 공포와 피곤, 그리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그가 절 납치해서, 저보고 패트로누스를 사용하라고…안 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근데, 할아버지를 죽이게 둘 수는 없었….”
아직 멍한 바리의 뇌였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그럭저럭 파악이 되었다.
해리 포터, 살인 저주를 살아남은 유일무이한 마법사. 바리는 최대한 그 죽음의 녹빛 섬광을 피하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위즌가모트에서는 필시 포터 가문에 생명의 빚을 진 걸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렇군,” 바리의 목소리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그가 소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꼬마야,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일단 망토와 지팡이를 내려놓았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해리 포터의 전신이 투명화해서 벗어나, 땀에 절어 축축한 푸른색 장식의 호그와트 망토가 드러났다. 그의 오른손은 11인치 서양호랑가시나무 지팡이를 부서져라 쥔 나머지 새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지팡이,” 바리가 되뇌었다.
“죄송해요,” 11세 소년이 중얼거렸다, “여기 있어요,” 그가 바리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바리는 방금 그의 목숨을 구해준 소년에게 인상을 쓸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대신 그는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짜증을 한숨으로 화하고는, 지팡이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자, 꼬마야, 지팡이를 사람에게 함부로 겨누면 안 된다는 것 ─”
바리의 손아귀 안에서 지팡이의 끝부분이 살며시 틀어지고, 동시에 소년이 중얼거렸다, “솜니움.”
해리는 허물어진 오러를 말없이 주시했다. 승리의 고취감도 무엇도 없었고, 그저 끝없는 절망만이 존재했다.
(그때까지는 아직 늦지 않았다.)
해리는 미동없이 널브러진 녹색 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스승님?] 해리가 바람소리를 냈다. [친구? 제발, 살아있어?]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지금까지 공황에 빠져 생각할 틈이 없었지만, 그는 방금 방어술 교수가 ‘경찰’을 죽이려는 광경을 목격해버리고만 것이다.
뱀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해리는 ‘에너바이트’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지만, 마침 각성한 그의 뇌가 황급히 그를 말리려 비명을 토해냈다.
절대로 퀴렐 교수에게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
해리는 찢어질듯한 두통, 마치 두개골이 그대로 쪼개질 듯한 고통을 느꼈었다. 그의 마법과 퀴렐 교수의 마법이 어우러져, 반작용을 일으켜 하나의 거대한 재앙으로 승화한 것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해리가 퀴렐 교수와의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느꼈던 그 파멸의 징조였다. 그들이 서로에게 마법을 사용할 때나, 서로의 마법이 맞닥뜨리면, 공명을 일으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해버린다 ─
해리는 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호흡이 존재하는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그의 시선은 이제 정신을 잃은 오러에게 향했다. 살아남은 아이를 그 두 눈으로 보고 만 오러. 모든 것을 알아버리고 만 자.
그 의미가 선사하는 거대한 충격과 재앙이 해리의 정신을 100톤짜리 망치처럼 거세게 강타했다. 어찌어찌 오러를 기절시키긴 했지만, 이제는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복구할 방법은 없었다, 임무는 실패했다. 모든 게 다.
그는 실패했다.
경악, 절망, 공포. 그의 뇌는 합리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생각하지도, 당연한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기억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꺼진 패트로누스 마법을 반드시 다시 전개해야 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의자를 재배열해둔 오러 리와 오러 맥커스커였기에 둘은 동시에 그 광경을 포착할 수 있었다. 벌거벗은 나신의, 해골 같은 공포가 나락에서 소리없이 비상해 창문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패트로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시야에 들어온 것 만으로 미약하게 두통이 일었다.
그리고 그들의 귓가를 때리는 음성이 있었다. 마치 죽은지 오래 되어 부패한 시체가 내뱉은 듯, 퀴퀴하고 푸석함 그 자체였다.
청력을 앗아가는 것 같은 디멘터의 음성이 감정없이 고했다.
“벨라트릭스 블랙이 탈옥했음.”
경악어린 정적이 잠깐동안 찾아오고, 다음 순간 자리를 박차고 튀어오른 리가 마법부에 지원을 요청하러 통신구로 달려갔다. 그 사이 맥커스커 또한 한창 순찰 중인 오러 3인조를 불러들이기 위해 미친듯이 허리띠를 뒤적이며 거울을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