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
저(26세)는 여자를 한 명 죽인 적이 있습니다. 실은 어이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종전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패전 전에는 징병으로 이즈(伊豆)의 오시마(大島)에 끌려가서 매일매일 땅굴공사를 강제로 하게 되어, 원래부터 이렇게 삐쩍 마른 몸이라, 정말이지 지금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했습니다. 종전이 되고는 뭐가 뭔지 그저 기진맥진해 과장하자면 거의 기듯이 도치기 현(栃木県)에 있는 생가에 도착해 그로부터 삼 개월간이나 부모 품에서 그저 멍하니 폐인 같은 생활을 하다가, 머지않아 학생 시절부터 알던 문학 친구인 도쿄의 야나기타(柳田)란 꽤 야무지고 약삭빠른 인물이, “돈은 있어. 신잡지를 발행할 생각이야. 너도 도와.” 하는 뜻을 속달로 부쳐서 저도 뭔가 번뜩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상경해 이“신현실”이라는 문예잡지의, 음, 편집부 차장이라고 하는 직함으로 삼 년이나 마치 반 미친 사람처럼 전후 저널리즘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 종전 직후에 제가 도치기에 있는 생가에서 도쿄로 나왔을 때에는 도쿄의 정경, 보는 것, 듣는 것 전부 슬픈 것들뿐이었습니다만, 적어도 저 개인에게는 통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묘한 기쁨을 느낀 일은 시장에 물자가 잔뜩 나오고, 또 먹고 마시는 포장마차, 작은 음식점이 거리 곳곳에 시끌벅적하게 넘치도록 늘어서서 이상하게 활기를 띠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게는 시장에 상품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그걸 구매할 능력이 없어 그저 구경할 뿐이었지만 그것도 뭔가 신이 나는 기분이 들었고, 또 가끔 친구들과 포장마차의 노렌(暖簾)에 고개를 들이밀어 꼬치구이를 뜯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큰 소리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하거나 하면 확실히 해방된 자유를 누린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신바시(新橋)의 어느 포장마차 여주인이 저에게 반했습니다. 아니, 웃지 말아주세요. 정말 반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니까 저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말씀 드리는 게 늦었지만, 당시의 제 생활은 도쿄역 야에스구치(八重洲口) 부근에서 불에 탄 건물을 아파트 풍으로 개조한 이 층 단칸방에서 살아, 종전 후 첫 겨울의 찬바람은 그 귀신 집 같은 아파트 복도에 이상한 소리를 울리며 미친 듯이 불어댔는데, 오늘 밤도 또 저곳에 들어가 자야 하나 생각하면 허전해서 점점 소주 마시고 들어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데다, 친구나 작가와의 교제 등으로 남 못지않은 술꾼이 되었습니다. 긴자(銀座)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본교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갈 때면, 기차나 도보 어느 쪽이든 신바시에서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니까 대체로 신바시 근처 포장마차에 들르곤 했습니다.
언제인가 야나기타란, 예의 야무지고, 스스로 자기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늘 적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친구 겸 편집부장에게 이끌려서 신바시 바로 근처 강가에 서 있는 오뎅 집에 마시러 갔습니다. 그곳 또한 틀림없이 포장마차였습니다만 안이 깊어 토방에 걸상 몇 개가 늘어져 있는 까닭에 “순서대로 채워”앉으면 손님 열 명은 넉넉히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포장마차에 간 건 그날 밤이 처음이었습니다만 그 가게는 인근의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작가, 만화가들의 사교장 같은 곳이어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른바 그날그날의 "핫뉴스"를 교환하며 웃고 떠드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이랄 것도 변변히 없어, 도요 공(公)이나 도요 짱 같이 그 가게 영감의 애칭 같은 게 이름이었습니다. 도요 공은 사십 가깝게 먹은 땅딸보에, 이마가 좁은 중대가리로, 눈이 나쁜 듯 항상 눈가가 빨갛게 슴벅거렸지만 위압감 있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여주인은 처음 저에게는 삼십 넘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원래 늙어 보이는 편이었습니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거무스름하게 빈틈없는 얼굴이었는데 말이 없는데다 그다지 웃지 않는, 수수하고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 음악가지요?”
내가 소주를 마시는 손놀림을 얼핏 보고, 여주인은 그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왔군!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용모가 떨어지는 여자는, 누군가 머리카락을 칭찬하면 자주, 체호프의 연극에도 나옵니다만, 저는 이렇게 말라깽이인데다 얼굴색도 검푸른 빛이라 용모나 풍채에 괜찮은 구석이 없는 것은, 저도 싫을 정도 그야말로 적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양손의 손가락은 묘하게 갸름하고 손톱도 발그스름해, 다른 곳은 칭찬할 데가 전혀 없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종종 여자들이 칭찬하며 악수를 청해온 적도 있습니다.
“왜?”
저는 알면서 미심쩍은 듯 물었습니다.
“예쁜 손. 피아노 치죠?”
역시 그랬습니다.
“뭐, 피아노?”
하고 아까 말한 야무진 친구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피아노 청소도 못할걸. 그 녀석 손은 그냥 마른 것뿐이야. 마른 남자가 음악가라면, 간디 옹은 오케스트라 지휘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옆에 있던 손님도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날 밤 여주인한테 들은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이상하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여럿한테서 칭찬을 듣고 또 악수까지 청해온 적까지 있었지만 그건 전부 그 자리의 그 순간만의 농담으로, 저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만, 그 도요 공 여주인의 무심한 빈말만은 묘하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자란 동물은 여자가 묘하게 진심 어린 한마디로 빈말을 하면 저처럼 못생긴 남자도 갑자기 어디선가 자신감이 솟아오른 나머지 여자에게 꼴불견일 정도로 뻔뻔스럽게 굴다가 남자도 여자도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게 세간에서 자주 눈에 띄는 비극의 경위라고 봅니다. 여자는 좀처럼 남자에게 빈말 같은 걸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우리의 경우 단 한 마디에서 시작된 손가락에 대한 빈말이 점점 비극으로 돌입했습니다. 사실 자부심이 없으면 연애든 뭐든 이뤄질 수 없습니다만, 저는 그때부터 매일 밤처럼 도요 공에 다니며, 낮에는 여주인과 함께 긴자를 걷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자부심이 늘어나기만 해, 주위에서 보면 한심한 말이나 늑대가 침을 흘리며 날뛰는 것처럼 불쾌할 뿐이었겠지요. 그러다 저는 어느 날 밤 도요 공에서 주정뱅이 작가인 가사이 겐이치로(笠井健一郎) 씨한테 욕을 먹었습니다.
가사이 씨는 제 고향 선배로, 죽은 형과 대학에서 동급생이었다고 하는데, 그 관계도 있어서 가사이 씨와 저는 그저 작가와 편집자 사이 이상 친하게 지내, 잡지에 가사이 씨의 원고를 받는 건 오로지 제 담당으로, 또 가사이 씨도 제 원고 의뢰는 비교적 기분 좋게 들어주었습니다.
그 가사이 씨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신바시에 있는 오뎅 집 도요 공에 들어왔을 때는 흠칫했습니다. 가사이 씨는 댁이 신주쿠(新宿) 근처라 그쪽으로는 매일 밤처럼 마시러 돌아다녔지만, 신바시 쪽까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은 무슨 모임에서 돌아가는 중인 듯 와후쿠(和服)에 하카마(袴)를 입고 있었습니다. 벌써 꽤 마신 듯 휘청휘청 제 옆으로 와 앉더니,
“들었어. 바보 자식이야, 넌.”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그거냐? 저 여자가, 그런 거야?”
오뎅을 삶는 여주인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하나도, 안 좋잖아. 이걸로 너란 남자도 끝이야. 원래, 자네, 남편 있는 여자하고, ……”
“그건,”
하고 도요 공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미 저희는 이혼했습니다. 저희는 성격이 안 맞습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가사이 씨 컵에 찰랑찰랑 소주를 붓습니다.
“아니, 그건 자네 부부의 일은 자네 부부가 아니면 모르지.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애초에, 관심 없어. 또 이토(伊藤)(내 이름)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 진전되는가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아. 음, 이 소주는 꽤 괜찮군. 자네, 자네, 한 잔 더 주게. 그리고 물도 주게. 이봐, 여주인 씨. 여기도 뭔가 먹을 걸 가져다주게. 그래도 나는 조금도 다른 부부의 이합집산이나 연애의 자초지종 따위에 무례하기 짝이 없게 흥미를 느낄 만큼 그렇게 품위 없는 남자만은 되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아무 관심도 없어.”
가사이 씨는 이미 만취에 가깝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큰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해대고 있어, 다른 손님도 흥이 식은 얼굴로 턱을 괴거나 하며 멍하니 가사이 씨의 난폭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이토를 향해 한 마디 말해두고 싶은 게 있네. 그걸 위해 오늘 밤 여기까지 들르게 된 거라고. 이봐, 이토 군. 자네와는 절교야. 하지만 이건 나의 의지가 아니네. 자네는 이 연애가 진전되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겠지. 말하자면 서로 겸연쩍게 서먹서먹해져 자네는 나를 경원시하고 내 의지와 관계 없이도 자연히 절교하는 형태가 되겠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네. 그럼 실례하겠네. 멍청한 자식!”
휘청휘청대며 일어선 때,
“저기, 실례입니다만,”
하고 명함을 한 손에 든 채 가사이 씨에게 다가간 사람은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였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저희 이토 군이 지금까지 이런저런 신세를 져 한 번 저도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했었는데, ……그게…….”
가사이 씨는 야나기타에게서 명함을 받아 들고, 근시인 듯 눈에서 오 촌 정도 거리에 가져다 읽더니,
“그럼, 자네가 편집부장인가. 말하자면, 이토의 형뻘이란 말이군. 나는 자네가 부럽네. 왜, 이렇게 되기 전에 자네는 이토에게 충고하지 않은 건가. 돌팔이 부장이야, 넌. 도리어 이토를 부추긴 게 아닌가. 전혀, 그 빨강 넥타이가 맘에 들지 않는군.”
하지만 야나기타는 태연하게 웃으며,
“넥타이는 바로 바꾸겠습니다. 저도 이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별로다. 그걸 알면서 왜 이토한테 충고하지 않았던 건가. 충고를.”
“아니, 넥타이 말입니다.”
“넥타이 따위, 어찌되든 알 바 아니야. 네 옷차림이 어떻든 관심 없어. 문제는 내가 이토와 절교하는 일뿐이라고. 그것뿐이야. 그리고 더는 할 말은 없어. 실례하지. 모두 멍청이들뿐이다.”
내뱉듯이 말하고 셈도 치르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포장마차에서 나갔습니다. 야무진 야나기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쓴웃음 지으며,
“주정에는 당할 수 없군. 완력도 셀 것 같고 말이지. 형편이 안 좋군. 어쨌든, 이토. 선생님 뒤를 쫓아가서 사과하고 와주게. 나도 이번 자네의 연애는 조마조마했었는데, 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저놈이야말로 바보 같은 벽창호라 저렇게 앞으로 우리 잡지에 쓰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당할 수 없지. 가주게. 가서 그리고 음, 적당히 얼버무리고 사과하게나. 선생님 말씀 듣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하면서 말이지.”
저는 바로 가사이 씨를 쫓아 포장마차에서 나와, 그때, 돌아서 힐끗 도요 공의 여주인을 보니, 여주인도 얼굴을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신바시 역에서 따라잡아 그렇게 말하자,
“왔는가.”
하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한 잔 더, 마시자고.”
눈이 팔랑팔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잡아. 자동차를.”
“어디로?”
“신주쿠다.”
자동차 안에서 가사이 씨는,
“한 잔 마시고 휘청휘청. 두 잔 마시고 흔들흔들. 휘청휘청 흔들흔들.”
하고 염불 같은 절(節)을 낮게 거듭거듭 외더니, 그렇게 거의 자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화도 치밀고 불안한데다 슬퍼서 외투 주머니에서 꽁초를 더듬어 꺼내, 추위로 곱은 그 문제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집어 라이터 불을 붙이고, 창밖의 어둠 속에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를 봤습니다.
“이토는 올해 몇 살이나 됐는가?”
아주 푹 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니슈마와시(二重回し)(*1) 옷깃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나이를 알렸습니다.
“젊군. 놀랐어. 그럼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는 조심하게. 나는 그 여자가 특별히 나쁘다고 하는 게 전혀 아니야. 그 사람 일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나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어. 나는 제삼자야.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지. 그렇지만 왠지 너에게는 애석한 마음이 드는 거네. 애석해. 좋아하는 걸로 스스로 지옥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봐. 지금 자네의 기분 같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거야 너와 비교하면 백 배 이상의 여자가 반했으니 말이지. 정말이라네. 하지만 어느 때고 지옥 같은 기억이었지. 모르겠네, 여자의 마음이. 잘 모르겠는 거야. 나는 말이지, 인류, 원류(猿類) 따위의 동물학상의 구별은 틀렸다고 생각하네. 남류(男類), 여류(女類), 원류(猿類)라고 해야지. 종족이 완전히 다른 거야. 몸 구조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고방식도, 대화의 의미도, 냄새, 소리, 풍경에 대해 반응하는 법도 통 다르지. 여자 몸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남류는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세계에 여자라는 동물은 태연히 살고 있어. 자네, 한 번 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역 플랫폼에 서서 멀찍이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살짝 이삼 촌(寸) 허리를 굽혀 한 번 더 바라보면 그 전방의 똑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여. 이삼 촌 키가 크냐 작냐에 따라 그만큼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걸세. 하물며 자네, 남자 몸과 여자 몸의 그 엄청난 차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별세계에 사는 거야. 우리에게는 파랗게 보이는 것이, 여자한테는 빨갛게 보일지도 몰라. 그렇게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말하니 우리 남류는 여류와 서로 이해한다고 쉽게 우쭐거리곤 하지만 터무니없는 지레짐작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소주를 한 되 마시고 흔들흔들하는, 딱 그 정도 기분으로 이 여류라고 하는 생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장을 보든 뭘 하고는 또 남류를 비평하지 않을까 싶네. 소주 한 되, 분명히 그 정도야. 맨정신으로 인사불성으로 그렇게 옆집 부인과 우물가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니 말이지. 실로 불가사의해. 분명히 여류들끼리의 대화에는 우리 남류에게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주 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 남류가 들으면 대충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여류끼리의 대화이니 말이지. 인사불성은커녕,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실로 수수께끼야!”
이 가사이 겐이치로라는 작가는 젊었을 무렵 애인에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차여 그 타격이, 그야말로 미간에 깊은 상처가 될 정도로 강한 듯, 그 이후 새장가도 들지 않고, 술만 마시며 여자를 아예 신용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자를 비웃는 듯한 소설만 써서, 그래도 독서계 일부에서는 가사이 씨의 그런 십 년이 하루 같은 독설을 꽤 통쾌하게 여겨 가사이 씨도 신명이 나, 지금에는 가사이 씨의 여자에 대한 욕설은 말하자면 그의 장기같이 되어 있었다.
“응? 알겠나? 여류와 남류가 이해한다는 건, 그건, 무리라는 말이지. 그런 어설픈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는 여기서 예언해도 좋아. 자네는 그 여자한테 배신당할 거네. 틀림없이 배신당해. 아니, 그 여자 하나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 한 명의 개인적인 사정 따위 난 모르네. 나는 그저 동물학 쪽에서 보는 여류의 일반적인 개론을 기술한 것뿐이야. 여류는 돈을 좋아하니까 말이지. 죽은 이의 이마에 세모난 종이가 있어, 거기에 “사”란 글자가 쓰여 있는 것처럼 여류의 이마에는 예외 없이, “돈”이란 글자가 쓰인 세모난 종이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세.”
“죽는다고 하네요. 헤어지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뭔지 몰라도 약을 갖고 다닙니다. 그걸 먹고 죽는 다네요. 태어나서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넌 머리가 이상해 진 게 아닌가, 멍청한 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멍청한 놈. 나는 단념했다. 여기는, 어디냐. 요쓰야(四谷)인가. 요쓰야에서 돌아가라, 멍청한 놈. 잘도 내 앞에서 그런 어이없는 말을 뻔뻔스럽게도 하는구나. 지금 죽는 건, 너겠지. 여자가, 흠, 무슨 말을 하든, 결국은 돈이야. 기사 양반, 요쓰야에서 바보가 한 명 내리오.”
여자 마음은 공연히 시험해 볼 게 아닙니다. 저는 가사이 씨한테 하도 거칠 게 매도당해서 분한 마음에 그 울분을 애인에게 풀어, 그 다음 날, 여주인이 회사로 주뼛주뼛 찾아오자 냉담하게, 전날 밤의 굴욕을 숨김없이, 약간의 과장도 없이 들려주고는 나도 남자로서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이제 더 고집을 피운들 나는 너와 헤어져서 저 주정뱅이 가사이 씨를 다시 보게 해야 한다, 하고 실은, 헤어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한 편으로는 또, 이참에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럴듯하게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날 밤 자살했습니다. 약을 먹고 수로에 몸을 던졌습니다. 뒤처리는 도요 공이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공손하게 해줬습니다. 그 이래로 나와 도요 공은 애처로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주인의 자살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초봄의 어느 날 저녁, 가사이 씨는 그날 밤 이래 처음으로 도요 공의 포장마차에 언제나처럼 만취한 채 나타났습니다.
“내가 저번 달 이 가게에서 계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 ……”
그다지 기운이 없는 말투였습니다.
“계산은 필요 없습니다. 나가 주시죠.”
하고 도요 공은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습니다.
“뭐야, 화내고 있네. 남류, 여류, 원류가 신경 쓰였나 봐? 그렇지만 정말이라면 어쩔 수 없지.”
찰싹하고 시원한 소리가 났습니다. 도요 공이 가사이 씨의 뺨을 친 겁니다. 이어서 제가 발로 차 쓰러뜨렸습니다. 가사이 씨는 네발로 기며,
“멍청한 놈, 폭력은 쓰지 마. 남류, 여류, 원류, 틀림없이 옳아. 틀리지 않았어.”
이미 반쯤 자는 만큼 취해 있었습니다.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가 딱하고 가사이 씨의 머리를 치며,
“눈을 떠. 이 동물박사야. 네발로 기어나가라.”
하고 말하고, 또 딱 가사이 씨의 머리를 때렸지만 가사이 씨는 아무런 저항도 않은 채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남류, 여류, 원류, 아니, 여류, 남류, 원류의 순인가. 아니, 원류, 남류, 여류일까? 아니, 아니. 원류, 여류, 남류의 순인가. 아, 아프군. 폭력은 안 돼. 원류, 여류, 남류인가. 부조금 천 엔 여기 두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