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花輪)
“저기, 괜찮으세요?”
문득 정신을 차리자 머리를 양 쪽으로 리본으로 묶은 소녀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느라···.”
“아, 혹시 릴리안 졸업생이신 가요?”
“옛날 이야기지만요.”
노부인은 살짝 웃었다. 후쿠자와 유미는 생각한 것처럼 노인이 몸이 안 좋은 것은 아닌 듯 하자 안도했다.
“어디 찾으시는 곳이라도 계신가요?”
“아니요, 그저 추억을 더듬으며 헤메고 다니던 참이었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 난 듯이 말했다.
“산백합회의 관은 이쪽이 맞지요? 기억이 조금 가물거리는 군요.”
“장미의 관 말씀이시죠?”
장미의 관. 그렇게 불리는 건가. 라고 노인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거기일거라 했다. 유미는 안내를 자청했다.
“그렇게 수고를···.”
“실은 저도 거기로 가는 중이에요.”
“어머나, 혹시 장미님?”
“아직 봉오리에요.”
“맞춰볼까요? 노란색?”
“에헤헤. 빨간 색입니다.”
노부인은 ‘어머. 의외네.’ 라며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유미는 조금 어리둥절해 졌다. 내가 뭔가 노란색 티라도 나나? 병아리 같다는 느낌이라면 조금 있을지도.
“저기 보이네요.”
“아아···. 저 스테인드 글래스, 아직 있군요.”
노부인은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장미의 관을 보았다.
스테인드 글래스. 장미의 관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홍, 백, 황의 세 장미가 그려진 유리창. 유미는 새삼 그 창을 보았다.
“왜 산백합회에 장미인지, 아나요?”
“아니요···.”
학생들이 애칭으로 붙여준 이름이란 것 밖에는 그러고보니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런가. 그럼 왜 저 스테인드 글래스에 백장미가 세 장미들 중 상좌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예.”
이 분, 어쩐지 옛날의 장미님 같은데. 혼나는 거아닐까-. 라고 얼굴에 써논 듯이 걱정스러운 얼굴이 된다. 노부인은 다시 재밌다는 듯이 웃고는,
“그 세분만의 졸업 사진이라 그렇답니다.”
라고는 수수께끼 같은 답을 남겼다. 이해가 안간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또 엉뚱한 질문을 했다.
“강당 뒤의 홀로 서 있는 벚꽃나무는 아나요?”
“예, 그건 알아요!”
유미는 신나게 말하고, 짧게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이번 대의 백장미님은 언니와 동생 모두를 그 벚꽃나무를 인연으로 맺었다고.
말하다, 문득 노부인의 뺨에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요. 감동해서 그렇답니다.”
“그, 그런.”
그렇게 예쁜 이야기였나. 하긴 시마코는 예쁘니까. 아니, 그건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하고 당황해 영문모를 생각을 하고 있자니 노부인은 웃으며 몸을 돌렸다.
“실례가 많았네요. 사례로 한 가지 알려 드릴께요.”
“예?”
“장미의 관의, 1층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두 번째 천정 부근의 나무판자를 보세요. 낙서가 하나 되어 있을 거에요.”
“예···.”
“사실 재미있는건 아니지만, 장미들이 그걸 보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선배로서.”
그럼, 평안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고 노부인은 사라졌다.
“그런 이야기.”
“그래서 유미양이 감동 받은건 알겠는데, 왜 나도 이 짐을 치우는걸 도와줘야 하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 나를 황장미라 착각했는걸. 그러니까 요시노양도.”
“무슨 궤변도 못되는 말을···.”
투덜거리면서도 요시노는 착실히 짐을 치우고 단단한 나무 상자를 찾아와 그걸 발판으로 삼자고 제의 했다. 유미는 상자위에 조심스럽게 올라가, 손전등을 비춰 낙서를 찾았다.
“있어?”
흥미가 없진 않은지, 탐정 기질이 발동했는지 요시노가 물었다.
“응. 카린(かりん)···. 이라고 써져 있는데.”
“카린? 모과나무(花梨. 카린이라 읽는다)?”
라고 말한 요시노는 눈을 빛냈다.
“모과나무 아래에 뭔가 묻어 놨다는 걸까?!”
“시체라던가?”
“···좋은 태클이었다, 유미. 그럴리 없잖아. 당연히 보물지도가 아닐까!”
“그런데 교내에 모과나무가 있었나?”
그 말에 요시노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아마··· 없겠지. 보통. 있다면 알았을텐데.”
“으음. 그냥 그 노부인의 이름 아닐까? 카린.”
“글쎄. 자기 이름을 알려주려고 낙서를 하고, 그걸 먼 훗날 후배에게 알려 줬다?”
“장난기가 많은 분이셨을지도.”
두 사람은 결론이 날 수 없는 토론을 하며, 2층으로 올라 갔다. 두 사람을 맞은 것은, 결벽증이 있는 홍장미의 호된 질책.
“무슨 먼지를 그렇게 뒤집어 쓴 거니?”
“이, 이건 잠시 추리를 위해-.”
“조용히 하렴. 당장 그 먼지 투성이의 손만이라도 닦고 와.”
어깨가 늘어져서 두 사람은 싱크대로 걸어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시마코와 노리코가 쿡쿡거리며 웃는다.
화륜(花輪: 일본어로 카린), 꽃이 둥글게 손을 잡고 있다-. 그것이 그녀들을 가리키는 말임을 꿈에도 생각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