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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루벤크렌체(Luvenkrantze) - 1


‘황궁에서 한밤중에 총격…… 범인은 누구?’




 인트라넷을 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뉴스 기사였다. 정보 통제가 있었는지 그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이 지나서야 올라온 첫 기사다. 급보 아닌 급보를 앞에 두고, 묘한 미소와 함께 한센은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구(球)형의 암흑 속에서 홀로그램 스크린만이 빛나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약간 큰 직사각형의 디스플레이가 이물질을 인식하자 반응을 일으켰다. 난잡하게 퍼져 있는 각 언론사의 헤드라인 중에서 총격 사건에 대한 기사가 확대되었다. 황궁의 정면을 찍은 사진과 함께 글의 홍수가 단번에 쏟아졌다.




「오빠, 체공시간 측정 끝났어요.」




 아네모네의 보고가 올라왔지만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채 한센은 차분하게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예상대로 사실이 왜곡되어 있었다. ‘황궁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총을 쏘고, 섬광탄을 던진 건 모두 반정부 테러단체의 소행이었다. 제1황녀를 최대한 감싸고돌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오빠? 제 말 듣고 있어요?」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던 아네모네는, 여태껏 반응이 없자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글을 읽는 한센의 귀에 어느새 그녀의 말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30초 동안 고요 속에서 스크린을 조작하고 있다가, 여동생의 나직한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인트라넷에 접속해 있는 거죠?」




 “아, 아니.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다급히 변명을 하는 한센을 두고 아네모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센의 말을 믿지도 않는 것 같았고, 꾸중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체공시간 측정 끝났어요. 놀이가 아니니까, 한 번에 제대로 들어주세요.」




 “어, 그래. 결과는?”




「30분 42초 29. 기준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합격이에요. 신형 엔진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그 말에 내심 안도하는 한센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면전에 띄운 홀로그램 스크린을 손짓으로 껐다. 작은 흥분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조종석에 앉은 자세를 고치고, 귀에 꽂은 장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곧바로 시험 기동 시작할게. OD(optic display) 센서에 정보를 전송해줘. 입자 방출량은 얼마나 돼?”




「……수치상으론 3세대 엔진의 두 배에요. 효율도 좋고, 입자량이 고갈될 기미도 없어요.」




 순식간에 바뀐 태도에 놀랐는지, 아네모네는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 방 먹였다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한센은 양옆에 있는 조종간을 손으로 쥐었다.




 부름에 응하듯, 구는 주변의 어둠을 커튼처럼 걷어냈다. 서서히 벌어지는 균열 사이로 햇빛이 조금씩 스며들어왔다. 뒤이어 찾아온 것은,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일광.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리며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시력이 회복되고 손을 치운 순간, 광활한 무언가가 펼쳐져 있었다. 맞닿아 있다, 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것은 시야의 한계까지 뻗어 있는 하늘과 바다였다.




 그 위용에 압도되어 한센은 침묵했다. CG로 보정된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 조종석을 둘러싼 전방위 모니터는 그를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만물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계속 보고 있자니 흥분은 배가 되었다. 바다-정확히는, 교황령의 아드리아 해가 연습 장소로 배정된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OD 센서 온라인. 오작동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아네모네의 무미건조한 보고가 한센의 정신을 현실 세계로 이끌었다.




 환청 같은 노이즈가 머릿속을 울렸다. 잠시 뒤, 소음이 끊기면서 앞이 뿌옇게 변했다. 처음에 뜬 것은 리귄스 상회의 로고였다. 이어 속도계, 나침반 같은 작은 위젯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시야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것들은 가장자리의 자기 위치로 이동했다. 그제야 안개처럼 흐리던 눈앞이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부팅 완료. 기본 인터페이스도 정상 작동중. 메인 시스템과의 호환성도 양호.”




 안구에 직접 HUD를 띄워주는 OD 센서는, 파일럿에게 있어선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복원된 서력 시대의 유물 중 하나로 교단의 허가 아래 최근에 완성된 기술이었다. 리귄스 상회는 민수용만을 생산하지만, 아네모네 덕분에 군용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혹시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어요.」




 성공적인 결과에 안심했는지 아네모네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한센도 마찬가지로 엷은 미소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에 무언가가 침입하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여전히 이질적이었다.




 “슬슬 출발해 볼까.”




 그렇게 말하며 여동생이 지정해준 항로를 로드했다. ‘5번’이라고 이름 붙여진 항로의 가이드가 CG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카운트다운 시작할까요?」




 “필요 없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어차피 금방 끝날 일이었다. 절차대로 해봤자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고개를 저으며 앞에 그녀가 있다는 양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뒤, 풋 페달에 조심스럽게 두 발을 올렸다.




「……오빠,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얘기해줄 생각 없어요?」




 소곤거리는 말투로 아네모네는 넌지시 사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유다가 무슨 바람을 불어넣었는지는 몰라도 하는 말에 기대가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소녀 감성을 존중해주는 차원에서 한센은 장난스럽게 조건을 내걸었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말해줄 수도 있는데.”




「정말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어떤 부탁이든 들어드릴게요.」




 흥분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한센은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또박또박하게 자기 ‘소원’을 말했다.




 “갖고 온 수영복, 참 대담하더라고. 어린애는 좀 더 어린애 같은 수영복을 입는 게 어때?”




 아네모네의 역린을 건드린 직후 거절의 뜻을 표하듯 풋 페달을 힘껏 밟았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G의 압박을 받아들였다.




 PIOS-01, '가디언 엠프리스‘의 첫 시험 비행이 시작되었다.

 

 

 



















 80년 전, 인류는 서력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무기를 발견했다.




 인간형인데다 전신에 갑주를 두르고 있어서 철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고장의 흔적조차 없었고, 가슴엔 인간이 타고 조종할 수 있는 콕핏이 내장되어 있었다. 당대의 기술력으로 해명 불가능한, 마법 같은 병기라 하여 철거인의 정식 명칭은 ​‘​마​도​병​기​(​魔​道​兵​器​)​’​가​ 되었다.




 이후 연구와 개량을 거쳐 마도병기는 제식 무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주 전력이자 영공의 상징으로 등극한 게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뛰어난 위력과 기동성, 그리고 갓 주목받기 시작한 신물질 ‘베르셴코프 입자’와의 호환은 마도병기를 현 인류가 만들 수 있는 최강의 무기가 되게 했다. 그 입지와 명성은 서력으로 8천 년대가 되는 지금에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신물질을 활용한 베르셴코프 엔진의 도입으로 마도병기는 전투기를 능가하는 속력을 얻었다. 그에 따른 엄청난 G에 대응하기 위해 파일럿 슈트도 진화했다.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도 원활한 기체 조작을 하기 위해 강화복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인공근섬유로 만들어진 전신 타이즈에 최소필수만큼의 갑주와 벨트를 덧댄 모습이, 마도병기 파일럿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로 통했다.




 그리고 지금의 한센 헤르만은 이러한 관념의 전형이 되어 있었다.




 “큭……!”




 자신을 짓누르는 무형의 힘에서 어떤 악의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를 악물고 참아냈지만 신음이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나왔던 길처럼 앞으로의 항로도 굴곡 많고 험난했기에 인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 와중에 엠프리스는 CG로 만들어진 체크포인트를 통과했다.




 소모된 시간은 5초. 제국군의 최단 기록에서 1.5초 단축되었다. 기쁜 일이지만 미소를 지을 여유가 없다. 수시로 균형을 잡으면서, 커브를 돌 때마다 풋 페달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전신이 관성에 휘말려 사방으로 거칠게 흔들렸다. 초보 마도병기 파일럿에겐 이 순간이 지옥이다.




 브리핑 당시, 5번 항로는 난이도가 제일 높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 도전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상상한 것과 달랐다. 그나마 이걸 끝까지 물고 갈 근성이라도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을 테다.




 ‘No.8’이라 명명된 급커브를 소화하고 있을 때, 귀에 꽂은 디바이스에서 차임벨 같은 알림음이 울렸다. 1초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메르겔이 말을 걸어왔다.




「한센, 애니한테 무슨 말 했어? 들어오니까 자기 가슴이 어떻고 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한센은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보단 오차 없이 커브에서 빠져나오는 게 더 중요했다. 늦게 대답한다고 메르겔이 화를 낼 녀석도 아니어서, 일단 평탄한 직선 구간으로 빠질 때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애니가 해변에서 너 보여준다고 수영복을 새로 샀거든. 내 기억으로는 검은색 비키니였던 것 같은데.”




「검은색…… 뭐?」




「와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아네모네의 괴성과 함께 마이크 뺏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막을 찢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한센의 눈썹 한쪽이 과도하게 일그러졌다. 조종간을 놓칠 뻔했지만 어떻게든 붙잡고, 앞에 있는 상승 곡선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그걸 말해버리면 어떡해요! 나름 준비하고 있었는데!」




 “뭐 어때, 어차피 보여줄 거면서.”




 퉁명스럽게 받아치며 한센은 양옆을 살폈다. 엠프리스의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역시 바다밖에 없었다. 수면에 닿을락 말락 한 상태로 고도를 높여야 될 포인트까지 이동했다. 신형 병기답게 CG 처리된 가이드를 따라 수면에 깔끔한 일직선을 그렸다.




 상승 곡선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거의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 있었다. 숨겨진 진실을 접한 한센은 자기도 모르게 아연실색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 연습 항로를 고안한 인간은 어느 한 곳이 뒤틀린 변태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걸 사람이 해내라고 만든 걸까. 속으로 개발자 욕을 하며, 한센은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당겼다.




 아홉 번째 체크포인트 통과. 제국군 최단기록에서 2초 단축.




 체크포인트 바로 뒤에서 엠프리스는 급히 에어브레이크를 펼쳤다. 아주 잠깐 어깨와 허벅지의 ​스​러​스​터​(​t​h​r​u​s​t​e​r​)​에​서​ 폭발적인 추진력이 일었다. 눈 깜짝할 새에 자세를 제어하고 몸을 완전히 일으킨 직후 맑은 날 오후의 하늘을 향한 거침없는 상승에 돌입했다.




「한센 너 괜찮아? 갑자기 신음 같은 게 들렸어.」




 저편에서 메르겔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지만, 한센은 말 대신 희열에 가득 찬 웃음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고도가 상승하면서 웃음도 그 열기를 더해갔다. 진심을 다한 환희에 한센은 걱정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실어서 날려 보냈다. 학생 시절, 실습을 할 때도 느껴본 적 없는 해방감이 이곳에 있었다. 시원한 물 같은 것이 몸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상승 곡선의 최고점에 도달할 때까지, 이 세상의 왕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의도인지 내려가는 길은 완만했다. 하지만 한센의 뇌와 심장과 신경계는 진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크게 뜬 눈과 미소가 짜릿함의 여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코스 완주까지 남은 거리는?”




 메르겔도 아네모네도 상관없으니 일단 종착점과의 거리를 묻고 봤다.




「완주까지 25킬로미터. 체크포인트는 서른 개 남았어. 잘하면 기록 경신도 가능하겠는걸.」




 “체공시간 잰다고 30분 날려먹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말이야.”




 한센은 항로를 따라 하강하면서 페달에 점점 힘을 주었다. 체고(體高) 14미터의 하얀 철거인이 수면을 향해 미끄러지듯 몸을 날렸다. 거리가 있다는 말은 즐길 거리가 아직 많다는 뜻도 되니, 굳이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비전투형은 그다지 신경 쓸 것도 없잖아.」




 “그러고 싶어도, 반드시 신경 써야 될 이유가 생겼거든.”




「놀라운데, 한센이 최선을 다할 때도 있다니. 그 여자가 무슨 말이라도 했어?」




 저편에서 예사롭지 않은 흥미를 보였다.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한센에겐 그런 것을 깊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이야. 말해선 안 된다는 부탁을 받기도 했고. 애니도 함부로 물어봤다가 나한테 처절하게 응징당했지.”




「아, 그래서 자기 몸이 어린애 같고 어쩌고 한 거구나.」




 ‘그거 아까 꺼낸 말 아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고도가 어느 정도 낮춰지자 완만한 커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저 앞엔 열세 번째 체크포인트가 있는 나선형의 상승 구간이 있었다. 저길 올라가면 멀미가 생길 듯한 기분이 든다.




「12번 통과, 2.5초 단축. 점점 빨라지고 있네.」




 묘한 흥분에 싸인 목소리로 저편에서 보고를 해왔다. 그런데 이거, 전혀 메르겔의 언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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